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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25 1기(13.3~18.2)

7월의 추천 도서 (856) 책의 적 - 윌리엄 블레이즈


1. 책 소개


서지학의 세계적인 고전 <책의 적>을 우리나라 최초로 번역한 책. 1880년 초판이 출간된 이 책은, 그 자체가 책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책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집이다. 세계 출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쇄업자이자 애서가인 윌리엄 블레이즈는 이 책을 통해 사랑하는 책을 망가뜨리는 못된 적들을 고발한다. 

저자는 책을 태워버리는 불, 책을 집어삼키는 물, 책을 먼지로 만드는 열기, 먹잇감으로 삼는 좀과 쥐 등의 자연재해라고 할 수 있는 적들에 대해서는 사전대비와 관심을 강조한다. 반면 무자비하게 책을 난도질하는 제책사와 책 수집을 취미로 여기는 수집광들, 무지와 독단 때문에 책을 버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공격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특히 책에 대한 소유욕을 애정으로 착각하는 자칭 애서가들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책이 우리의 문화이고 문화는 나누는 것임을 다시 깨닫게 해준다. 또한 저자가 직접 엄선한 삽화들을 본문에 수록하여, 당시의 책을 보는 듯한 독특한 감회를 맛볼 수 있게 하였다.



2. 저자


지은이 윌리엄 블레이즈(William Blades)는 1828년 런던 남부 지역에 자리 잡은 클래펌(Clapham)에서 태어났다. 블레이즈는 1840년 부모가 경영하는 인쇄소의 도제로 출판 인생을 시작했다. 7년 동안의 도제 생활을 마친 뒤 그는 공동경영자로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블레이즈가 명성을 떨치게 된 이유는, 인쇄공으로서보다는 『윌리엄 캑스턴의 생애와 인쇄술(The Life and Typography of William Caxton)』이라는 명저를 남긴 학자로서의 공헌 때문이다. 『책의 적』을 비롯한 그의 연구는, 책의 역사와 서지학 분야에서 보다 과학적인 체계를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또한 헨리 브래드쇼와 더불어, 노동자계급을 계몽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서관협회를 설립하였다. 『책의 적』은 바로 이 무렵 저술한 계몽적 출판물 중 하나이다. 이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별다른 연구 결과를 내놓지 못한 채 189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3. 목차



옮긴이의 말 

제1장 불 
제2장 물 
제3장 가스와 열기 
제4장 먼지와 무관심 
제5장 무지와 편견 
제6장 책을 먹는 좀 
제7장 해로운 동물들 
제8장 제책사의 횡포 
제9장 서적 수집광 
제10장 하인과 아이들 
후기 
결론 

윌리엄 블레이즈의 저서들 
찾아보기



4. 책 속으로



활판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의 필사본처럼, 희귀하고 귀중한 물품들은 아주 잘 보존되었다. 하지만 인쇄기가 발명되고 종이책들이 일반적으로 보급되면서 도서관이 늘어남과 동시에 독자들이 많아지자, 희소성이 떨어지면서 책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책들은 눈에 띄지 않는 외진 곳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이리하여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지만 입에는 자주 오르내리는 좀들이, 그 사이 도서관에 상주하는 점령자로서 장서가들의 천적으로 등장했다. _ p. 101

금세기로 접어들면서부터 벌레들이 갉아먹을 수 있는 책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언급했다. 오늘날에는 종이를 만들 때 혼합물을 많이 첨가하기 때문에, 벌레들은 이런 종이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다. …… 따라서 옛 성현들의 지혜를 담고 있는 고문헌들은, 시대를 뛰어넘는 생존경쟁에서 오늘날 출간된 쓸모없는 책들보다 훨씬 취약하다. 오늘날에는 보편적으로 고문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에, 그 벌레들은 험난한 시련의 시대를 맞이하여, 자신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고문헌들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지기만을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바랄 따름이다. 따라서 존 러벅 경이 개미에 관해 연구했던 것처럼, 곤충학자들은 기회가 닿는 대로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책벌레의 습성에 관해 반드시 연구할 필요가 있다. 
_ p. 122-123

사람과 마찬가지로 책에도 정신과 육체가 있다. 정신, 즉 책의 내용은 지금 여기서 우리가 다룰 주제가 아니다. 육체, 즉 책의 외형이나 표지를 구성하며 그것이 없이는 내용도 전달할 수 없는 이 육체가 바로 제책업자가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야이다. 다시 말해서 제책업자가 책의 육체를 만들어 낸다. 그는 형태와 장식을 결정하며, 육체가 병들고 쇠약해졌을 때는 치료를 해 주고, 사후에는 사체를 해부하는 일도 종종 도맡아서 처리한다. …… 제책업자가 자신에게 맡겨진 아주 깨끗한 새 종이를 함부로 다루어 귀중한 책의 품위와 아름다움과 가치를 떨어뜨리는 현장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을 경우, 만일 내가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제책업자를 심판하는 입장이라면 나는 함부로 깎인 채 버려진 그 종이 대팻밥을 모아서 불을 지핀 다음, 서서히 타들어가는 불길 위에 극악무도한 그 범죄자를 올려놓고서 화형을 시켜 버리겠다. _ p. 139-141


5. 출판사 서평



『책의 적』에서 책의 역사를 만난다

우리는 지금, 2만 2천여 개의 출판사와 6천 7백여 개의 인쇄소가 연간 2만 7천여 종의 책을 펴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일주일이면 520종이 넘는 책이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이쯤 되면 책은 영혼의 양식은커녕 애물단지에 가깝다.
아마도 책의 입장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처음 활판인쇄술을 발명한 15세기부터 증기인쇄기가 등장한 19세기까지가 가장 가슴 뛰는 시기였을 것이다. 한 자 한 자 손으로 베끼고 새기는 필사본과 목판본의 시대에, 책을 쓰고 펴내는 것은 고스란히 권력의 행사였다. 그러나 활판인쇄에서 증기인쇄기의 발명으로 이어지는 인쇄술의 발달은, 책을 권력의 상징에서 만인의 연인으로 탈바꿈시켰다. 그것이 『성서』든 『논어』든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문화재’로서의 책은, 이때부터 일상의 희로애락이 담긴 ‘작은 이야기’(小說)를 전하는 ‘소비재’가 되었다. 윌리엄 블레이즈의 『책의 적』은, 책이 커다란 질적 변화를 겪은 바로 이 시기를 증언하는 보기 드문 저작이다. 
1880년 초판이 출간된 『책의 적』은, 그 자체가 ‘책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책의 역사를 보여주는 최고의 자료이다. 비록 우리에겐 낯설지만, 유럽은 물론 이웃 일본에서도 이미 1930년에 번역, 소개되었을 만큼 이 책은 전 세계에서 서지학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기에 뒤늦게나마 이 책을 통해 책의 역사에서 빛나는 한 시대를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책을 사랑한 인쇄공, 윌리엄 블레이즈

출간 125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이 오래된 책을 번역하여 펴내는 이유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기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고 답하겠다. 책도 많고 책에 대한 담론도 많지만 정작 책에 대한 기본 지식과 자세는 의심스러운 이즈음이다. 그래서일까? 백여 년 전의 인쇄업자 윌리엄 블레이즈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책 사랑은 놀라움을 넘어 숙연한 감동마저 안겨준다. 
윌리엄 블레이즈는 한국의 독자들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세계 출판의 역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열세 살에 인쇄공 생활을 시작한 블레이즈는 최고의 인쇄업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에 머물지 않았다. 영국 최초의 인쇄공 윌리엄 캑스턴에 관심을 가진 그는 500권에 달하는 자료를 섭렵하여 캑스턴에 관한 최고의 저작을 남겼으며, 책에 관한 체계적 연구를 통해 서지학의 기초를 닦은 서지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또한 노동자계급을 위해 ‘도서관협회’를 설립한 독서운동가이기도 했다. 인쇄공에서 서지학자로 또 독서운동가로 다양한 이력을 보였지만, 기실 이 모두는 책에 대한 애정 표현에 다름 아니며, 『책의 적』은 그 애정의 증거이다. 

책의 연인, 책벌레를 고발하다

블레이즈는 이 책에서 사랑하는 책을 망가뜨리는 못된 ‘적들’을 고발한다. 책을 태워버리는 불, 책을 집어삼키는 물, 책을 먼지로 만드는 열기와, 먹잇감으로 삼는 좀과 쥐. 자연재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적들에 대해서, 블레이즈는 비난보단 사전대비와 관심을 강조한다. 
반면, 무자비하게 책을 난도질하는 제책사와 책 수집을 ‘취미’로 여기는 수집광들, 무지와 독단 때문에 책을 버리는 이들에 대해선 공격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특히 책에 대한 소유욕을 애정으로 착각하는 자칭 애서가들에 대해서는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빈틈없고 치밀한 두 발 달린 약탈자들”(p.154)이야말로 “자신을 자칭 애서가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책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적들이 아닐 수 없다”(p.157)고 공박한다. 또한 자신의 장서가 망가질까봐 꽁꽁 숨겨두는 “지나친 기우에 휩싸인 소장자들도 책의 적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p.166)고 단언한다. 
그래서 19세기 인쇄공 블레이즈를 통해 우리는 책은 문화고 문화는 나누는 것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특히, 본문에 함께 실린 삽화들은 블레이즈가 직접 엄선한 그림들로서, 당시의 책을 보는 듯한 독특한 감회를 안겨준다. 

책, 취미가 아니라 의무다

블레이즈가 이 책을 쓸 당시, 영국은 대량 출판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었다. 잡지와 신문과 팸플릿의 발행부수가 크게 증가했고, 독자층 역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책과 독서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대중의 소일거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 이런 추세와 정반대되는 흐름도 나타났다. 부르주아 계층을 중심으로 희귀본을 수집하고, 나름의 서지학을 추구하는 ‘애서가’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책에 대한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서적수집광들에 대해 블레이즈는 시종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 어떤 점에서 『책의 적』은, 책을 이용해 지위를 과시하고 호사 취미를 충족시키는 이들에 대한 공격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레이즈가 책의 적들을 서술한 내용을 읽노라면, 그가 책이라는 무생물을 사랑한 사람이 아니라, 책을 쓰고 만들고 읽는 그 모든 관계를 사랑한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그는 ‘결론’에서 이렇게 확언한다. 

정확히 말해서, 고서를 소유한다는 것은 신성한 의무를 다한다는 것이며, 소유자나 관리자가 알면서도 이 의무를 무시한다면 이는 마치 부모가 어린 자식을 돌보지 않는 것과 같다. 책의 주제나 가치가 어떠하든지 간에, 고문헌은 그야말로 소중한 국가 유산의 하나이다. 고문헌을 비슷하게 복제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똑같게 만들어 낼 수는 없으므로, 역사적 자료로서 소중하게 보존해야 한다. _ p. 194

책을 의무로 생각하는 마음, 모든 것이 방편이 되어버린 2005년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