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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25 1기(13.3~18.2)

6월의 추천도서(471) 마지막 잎새 - 오 헨리



 

 

 

 

책소개

오 헨리 단편선. 많은 사람들이 '오 헨리' 하면 단연 '단편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는 실제로 약 300여 편의 단편소설을 쓰면서 매우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다. 특히 가난, 질병 등으로 삶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이나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애환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 많다.
그가 이러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성장 과정에 따른 것이다. 오 헨리는 어렸을 때 폐결핵으로 어머니를, 알코올중독으로 아버지를 잃고 나서 할머니와 고모 밑에서 자라고, 자신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아 일찍이 고향을 떠나 황무지 텍사스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였다. 결혼 후에는 잠시 은행원으로 일하였는데, 공금횡령을 했던 것이 그만둔 후에 들켜 중앙아메리카 지역까지 도피하였다.
그러던 중 아내의 병세가 악화되어 임종을 보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체포되어 3년간의 옥살이를 하였다. 그는 이러한 성장 과정을 통해 인간성의 숭고함과 고귀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바람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해학적으로 교훈적으로 풀어내어 독자에게 감동과 연민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자소개

미국 단편 소설 작가로서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 보통 사람들, 특히 뉴욕 시민들의 생활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그의 단편 소설들은 우연의 일치가 작중인물에 미치는 영향을 우울하고 냉소적인 유머를 통해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갑작스런 결말로 인해 극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그의 등록상표가 되다시피했으나 그런 수법의 유행이 한물가자 평론가들은 바로 그런 수법 때문에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숙모가 교사로 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졸업 후에는 숙부의 잡화상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1882년 텍사스로 가서 농장, 국유지 관리국을 거쳐 오스틴에 있는 제1국립은행의 은행원으로 일했다. 1887년 애설 에스티스와 결혼했으며, 이무렵부터 습작(習作)을 시작했다. 1894년 주간지 『롤링 스톤 The Rolling Stone』지를 창간했으나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휴스턴 포스트 Houston Post』에 기자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가끔 만화도 기고했다.
1896년 2월 은행 공금횡령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온두라스로 도피했다. 그러나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스틴으로 돌아왔고, 당국의 배려로 재판은 아내가 죽을 때까지 연기되었다. 그는 최소한의 형을 받고 1898년 오하이오의 컬럼버스에 있는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모범적인 복역으로 형기는 3년 3개월로 줄어들었다. 그는 교도소의 병원에서 야간에 약제사로 일하면서 딸 마거릿의 부양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다. 미국 남서부와 중남미를 무대로 한 그의 모험소설은 즉각 잡지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으며 그는 출감하면서 이름을 W. S. 포터에서 O. 헨리로 바꾸었다. 1902년 헨리는 스스로 '지하철위에 건설된 바그다드'라고 묘사했던 도시인 뉴욕에 도착했다. 1903년 12월부터 1906년 1월까지 그는 뉴욕의 『월드 World』에 매주 글을 쓰면서 동시에 잡지에도 기고했다. 최초의 소설집 『캐비지와 왕 Cabbages and Kings』(1904)은 온두라스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이며 『400만 The Four Million』(1906)·『The Trimmed Lamp』(1907)는 뉴욕 시민들의 일상 생활과 낭만과 모험에 대한 추구를 묘사했고, 『서부의 마음 Heart of the West』(1907)는 텍사스 산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환상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헨리의 말년은 자신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악화된 건강, 금전상 압박과의 싸움, 알코올 중독 등으로 얼룩졌다. 1907년에 한 재혼은 불행했다. 1910년 6월 5일, 과로와 간경화, 당뇨병 등으로 뉴욕 종합병원에서 사망했다. 사후에 『Sixes and Sevens』(1911)·『뒹구는 돌 Rolling Stones』(1912)·『Waifs and Strays』(1917) 등 3권의 선집이 나왔다. 나중에 즉흥적으로 쓴 소설과 시를 모은 『O. 헨리 선집 O. Henryana』(1920)·『Letters to Lithopolis』(1922)와 초기의 작품을 모은 2권의 책 『Houston Post, Postscripts』(1923)·『O. Henry Encore』(1939)가 출간되었다. 『경찰관과 찬송가 The Cop and the Anthem』·『마지막 잎새 The Last Leaf』 등의 단편에서 보이는 따뜻한 휴머니즘은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제럴드 랭퍼드가 쓴 전기 『앨리어스 O. 헨리 Alias O. Henry』가 1957년에 나왔다.

 

줄거리

워싱턴 네거리에서 멀지 않은 그리니치 빌리지에 화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었다. 그 동네 어떤 납작한 벽돌집 꼭대기 방에 수와 존시가 공동 화실을 마련했다. 그것이 6월이었다. 그런데 찬바람이 부는 11월의 어느 날, 느닷없이 다가온 폐렴은 가난한 화가 존시를 병석에 눕히고 말았다.

어느 날 아침, 의사는 수를 복도로 불러서는 존시가 살아날 가망은 10분의 1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 환자가 살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오는 겨울에 입을 외투의 스타일에 대하여 한 마디라도 물어 보게 되면 그녀가 살아날 가능성은 10분의 1에서 5분의 1로 늘어날 것이라고 의사는 덧붙인다. 방으로 돌아온 수는 일본제 냅킨이 펄프가 되도록 울었다.

그런데 이윽고 울음을 그친 그녀가 젊은 화가와 삽화를 그리고 있는데 존시가 무언가를 거꾸로 세고 있었다. 열둘, 열하나······ 그러더니 여덟과 일곱을 한꺼번에 세었다. 건너편 벽에 붙은 담쟁이 잎이 앙상하게 매달려 있었다. 존시는 저 담쟁이 잎이 다 떨어지면 자기도 죽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가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꾸짖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래층에 베어먼이란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 광부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내려갔다.

베어먼 노인에게 존시가 아픈 이야기를 했더니 그 담쟁이와 생명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고 한다. 이층으로 올라온 그들은 창 밖을 내다보았다. 줄기찬 비가 눈과 섞여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존시가 커튼을 걷어 달라기에 마음을 졸이며 커튼을 올렸다. 그런데 암록색 담쟁이가 그대로 꼭 붙어 있었다. 종일 잎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커튼을 올리라고 말했다. 담쟁이 잎은 그대로 있었다. 존시는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언니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죽기를 원하는 것은 죄악이야. 언니가 요리하는 것을 보겠어."

오후에 의사가 왔다. 이제 간호만 잘하고 영양만 섭취하면 염려 없다고 말한 다음 아래층의 베어먼인가 하는 노인이 폐렴인 것 같고 증세가 급성이라서 내려가 봐야겠다고 한다. 사실 베어먼 노인은 찬비가 내리던 그날 밤 벽에다 담쟁이 잎을 그리다가 병을 얻은 것이다.

출처 - 알라딘, 예스24,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