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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추천도서(331) 대지의 저주 받은 사람들 - 프란츠파농

 

 


 

 

1월의 추천도서(331) 대지의 저주 받은 사람들

 

출판사 서평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 새롭게 태어났다. 이 책이 먼저 새롭게 태어난 곳은 프랑스다. 1961년 이 책 초판 출간 당시 사르트르가 쓴 서문 앞에, 2002년판에는 파농 전기(傳記)의 저자로 잘 알려진 정신과 의사 알리스 셰르키의 새로운 서문이 더해졌고, 파농의 결론 다음에 알제리 독립 운동의 첫 세대 투사인 무하메드 아르비의 후기가 덧붙여져 프랑스판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Les damnes de la terre, Paris : La Decouverte)이 만들어졌다. 이 새로운 판본이 다시 다른 언어로 번역된 최초의 국가는 한국이다. 2004년,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한국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르트르는 “제3세계가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자신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된 것도 파농을 통해서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또 한국을 비롯해 독립과 자립에 목말라했던 많은 제3세계 국가의 지식인들이 파농의 이 책 속에서 그들 투쟁의 정당성을 찾았다지만, 지금 더이상 식민지는 존재하지 않고, 제3세계란 말이 낡은 냄새를 피우고,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말도 식상해진 21세기에, 새삼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새로운 서문과 후기까지 붙여 다시 출간한 의도는 무엇일까?

인간을 사물로 전락시키는 경제적·문화적 식민화를 자각하기 위하여
알리스 셰르키(그녀가 2000년에 쓴 파농 전기의 한국어판은 2002년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는 「2002년판 서문」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민족의식 및 정체성의 위축과 폭력이 지배하는 상실의 시대에서 살아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싶다면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읽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파농의 책은 제국주의 국가에 강제 병합된 ‘식민지 국가의 민중’뿐 아니라 노예화된 삶을 사는 개인의 해방 즉 ‘존재의 탈식민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파농은 국가와 민족과 개인의 ‘탈식민화’를 누구보다 먼저 분석해낸 인물이며,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후반 ‘기지촌 지식인’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던 ‘탈식민주의’ 비평 혹은 논쟁의 원점이 되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탈식민화를 말하기에 앞서 식민화의 정의부터 들어보자.
“식민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특정 정치권력이 강제력에 의거하여 특정 지역의 주민들을 복속시켜서 노예화한 다음, 그 지역의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강제적이고 독점적으로 동원하고, 그것을 자신의 의도대로 사용하고, 피식민지의 주민들로 하여금 그러한 질서를 받아들이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식민화란 정치적·개인적 주권의 상실과 동일한 것이다. 철학적으로 본다면 식민화된 민족 혹은 지역의 주민은 자신의 재산권의 행사, 운명의 설정, 그리고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데 주인이 되지 못한다. …… 따라서 식민화란 일차적으로 정치경제적 지배가 관철되는 상황인 동시에 피지배자가 자신의 모습이나 주장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을 통칭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김동춘, 「한국 사회과학에서의 탈식민의 과제」)
파농이 살았던 20세기 초중반의 식민화는 경찰과 군대 등 무력을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가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다른 민족이나 국가를 ‘근대화하고 문명화한다’는 명목 아래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형태로 나타났지만, 오늘날 이른바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식민화는 거대 다국적 기업과 금융자본, 미국의 문화산업이 생산하는 정보의 주도하에 전세계 민중들의 물질적 재생산과 정신의 영역이 지구적 자본주의 논리에 완전히 흡수되어 자신의 문화와 전통,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그에 맞추지 않을 수 없게 된 경제적·문화적 지배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전지구적 경제·문화의 지배자는, 파농이 말했듯 “2세기 전 유럽의 식민지는 유럽을 따라잡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도가 성공을 거두어 나타난 유럽의 오점, 병, 비인간성을 엄청나게 증폭시킨 괴물”, 미국이다.
유럽의 오점과 비인간성이 증폭된 괴물은 전지구의 민중을 사물로 전락시켰다. 그들은 더이상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오늘 FDA(미국식품의약국)의 마크는 우리 건강의 보증이며, 영어―파농의 표현에 따르면 [식민지]모국(母國) 언어―구사 능력은 한국어 구사 능력보다 중요하고, 무디스의 평가가 우리 경제 상황을 대표한다.
이렇게 “정체성이 위축되고 폭력이 지배하는 상실의 시대” 즉 ‘식민화의 시대’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식민지 원주민은 사물로 전락하거나 동물적인 상태에 떨어지고, ‘악의 화신’으로 간주된다. 원주민, 즉 피억압자는 늘 이주민(억압자)에 의해 열등하게 취급되지만, 그 자신의 열등함을 진심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주민이 경계를 풀 때까지 기다리느라 그의 근육은 늘 긴장 상태이며, 이런 긴장은 이따금 유혈적인 폭발로 배출된다. 부족 전쟁, 씨족 갈등, 개인들 간의 다툼이 그런 예이다. “이주민이나 경찰은 언제나 원주민에게 매질을 하고 모욕을 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원주민이 품 속의 칼을 빼는 것은 다른 원주민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적대적인 행동을 하거나 공격적인 눈길을 보냈을 경우다. 원주민에게 최후의 수단은 형제를 상대로 자신의 인격을 방어하는 것이다.”(본문 p.75)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인간성을 부여하는 탈식민화를 위하여
몇 년 전 우리나라 지식계에 일었던 탈식민화 논의는 바로 이러한 경제적·문화적 식민화 상황에 순응해온 지식인들의 자기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언제나 해외 유수의 학자들의 이론을 수입하기에 바쁜 이론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은 많지만 미국을 연구하는 사람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 미국의 이론으로 분석되는 한국 사회 등은 ‘기지촌 지식인’이라는 말까지 낳았다. 그러나 지식계에서 잠시 달아오르는 듯하던 ‘탈식민주의 논의’는 어느새 잠잠해졌고, 여전히 많은 지식인들이 ‘기지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 식민화된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파농의 탈식민화 과정에 대한 분석도 참고해야겠지만,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파농의 외침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뭔가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 오늘 우리는 미국을 모방하지 않는다면, 미국을 따라잡으려는 욕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미국은 지금 무모한 광기에 휩싸여 모든 지침과 이성을 팽개친 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최대한 빨리 멀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모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리는 청사진과 본보기를 원한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미국이 가장 본받을 만한 모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런 모방이 가져다준 가슴 아픈 좌절을 살펴본 바 있다. 미국의 성과, 미국의 기술, 미국의 양식은 더이상 우리를 유혹하지 못한다. 미국의 기술과 양식에서 인간을 찾으려 하면, 오직 끊임없는 인간의 부정과 잔혹한 살인만을 보게 될 것이다. 인간의 조건, 인류를 위한 계획, 인간성을 증대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일은 진정한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문제들이다. 미국을 흉내내지 말자. 우리의 근육과 두뇌를 모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자. 미국이 낳을 수 없는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자.”(본문 p.354; 지금 인용은 본문 중의 유럽을 미국으로 바꾼 것이다)
결국 진정한 탈식민화는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는 것이며, 그 일은 지배적 현실에 대한 비판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 비판은 “식민지 지배질서에 대한 비판이자, 그것에 길들여진 정신적으로 노예화된 자신에 대한 비판의 동시적 진행”(김동춘, 앞의글)이다. 과거에 파농의 알제리와 같은 물리적 식민화의 세계에 살았고, 오늘은 정신적·경제적 식민화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불행히도 두 개의 모국을 지닌 식민지의 원주민들이다. 한 모국(일본)에서는 물리적 강압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아직도 그 그림자는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으며, 또 한 모국(미국)에는 경제적·군사적·정신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 따라서 우리가 이제 진정한 탈식민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는 물론 과거의 ‘식민지 지배질서에 대한 비판’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미완성된 과거의 탈식민화를 완성할 때 현재의 탈식민화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이며, 그 탈식민화의 자리에서 파농의 말처럼 “미국이 낳을 수 없는 완전한 인간”이 되어 서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년 7월 20일 ~ 1961년 12월 6일)은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및 작가이다.

 

[[1925년]] [[마르티니크]]의 [[포르드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프랑스군에 지원해 각지에서 파시즘 세력과의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후에는 [[리옹]]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해 학위를 취득한 경험은 그가 식민지 민중들의 정신적 고통을 정신의학자로서의 지성으로 분석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실제로 프란츠 파농은 [[인권]]과 [[자유]]를 지배계급들에 의해 억압받은 [[식민지]] [[민중]]들이 정신장애로 고통받는 일이 많다고 주장한다.[[1952년]]에는 《[[검은 얼굴 하얀 가면]]》(Peau Noire, Masques Blancs)을 저술했다. 그는 여기서 흑인성이라는 사회적이고 신체적인 기억과 그 효과의 총체에 대해 조명한다. 이 책으로 인해 [[식민주의 심리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 책을 두고 '이후에 쓰여진 모든 책은 이 책의 주석에 불과하다'는 평가까지 내린다.

[[1953년]]에는 알제리의 주앙빌 정신병원으로 부임하여 근무하게 된다. [[1954년]] 발발한 알제리 독립전쟁은 그의 인생을 크게 바꾸게 되는데, 물론 초기에는 비밀리에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에 대한 활동 지원을 했으나 [[1957년]] 이후에는 병원을 완전히 그만두고 혁명에 투신하기에 이른다. 그는 민족해방전선의 기관지 알 무자히둔에 기고하는 등 민족해방전선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혁명정부에 의해 가나 대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알제리의 독립을 눈앞에 둔 [[1961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그간의 투쟁과 진료 성과를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Les Damnés de la Terre)에 정리하게 된다. 같은 해 12월 [[메릴랜드 주]]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소개된 저서 이외에도 그의 저서엔 기고문을 모은《아프리카 혁명을 향하여》등이 있다.

 

 

목차

 

2002년판 서문 - 알리스 셰르키

1961년판 서문 - 장 폴 사르트르

1. 폭력에 관하여

2. 자발성의 강점과 약점

3. 민족의식의 함정

4. 민족문화에 관하여

5. 식민지 전쟁과 정신질환

6. 결론

2002년판 후기 - 모하메드 아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