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 1825 1기(13.3~18.2)

9월의 추천 도서(1657)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 김영두








 

1. 책 소개

 

※ 제 44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수상도서 
대학자 퇴계와 젊은 학자 고봉이 주고 받은 편지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었을까? 옛 학자들의 학문에 대한 괴로움과 서로에 대한 애정 그리고 존경심이 오늘을 사는 젊은 학자를 통해 온전한 우리 말로 되살아났다. 사심 없는 영혼의 교류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2. 저자

 

퇴계 이황

퇴계 이황은 도산 서당에서 성리학의 심성론을 크게 발전시킨 한국철학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의 자는 경호이며, 호는 지산 ·퇴계이다. 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 도산에서 진사 이식의 여섯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퇴계의 아버지는 서당을 지어 교육을 해 보려던 뜻을 펴지 못한 채, 퇴계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퇴계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하며 순탄한 관료 생활을 보내던 그는 종 3품인 성균관 대사성에 이른 43세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갈 뜻을 품게 된다. 

이후 세 차례나 귀향과 소환을 반복하면서 고향에서 연구, 강의, 저술에 전념한 퇴계는 50세 이후에는 고향의 한적한 시냇가에 한서암과 계상서당 및 도산서당을 세우고, 그의 학덕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문인들을 가르치며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집중하였다. 권력에서 멀어진 후에도 조정에서는 계속하여 높은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거듭 사직 상소를 올려 받지 않았으며 마지못해 잠시 나갔다가도 곧 사퇴하여 귀향하기를 반복하며 학자의 길을 걸었다. 연구에 몰두하던 그의 나이 70세, 1570년 12월 8일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고봉 기대승과의 4단 7정에 관한 논쟁을 통하여 학문적 논쟁의 모범을 보여주고, 성리학의 심성론을 크게 발전시켰다.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3. 목차

 

1 부
일상의 편지들
1558~1561
영혼의 교류가 시작되다
1-1덕을 높이고 생각을 깊게
1-2시대를 위해 더욱 자신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1-3덕을 그리워하는 마음
1-4면신례의 고초 속에서
1-5선생님을 깊이 그리워하며
1-6벼슬과 학문 사이에서
1-7그대와 같은 어진 벗이 학업을 이루기를
1-8뼈 없는 벌레처럼 물렁한 사람이 될까 두려워
1-9자기의 병을 알고 고치고자 한다면

(하략)
1562~1565
처세의 어려움을 나누며
1-16사단칠정 논변의 어려움
1-17우리에 갇힌 원숭이와 조롱에 갇힌 새처럼
1-18진실한 공부를 방해하는 세 가지
1-19승정원의 승지가 되어
1-20처세의 마땅함에 대해
1-21사직하고 물러나는 일의 어려움
1-22처신하는 방법이 달라
1-23만장 절벽에 마주 서서, 화살처럼 곧게
1-24둘째 아이가 병으로 죽었습니다
1-25몸을 마치는 날까지의 근심
(하략)


1566~1567
서울과 의주 사이에서
1-33인심도심에 대한 설
1-34두 가지 관직에서는 물러났으나
1-35사단칠정 후설과 총설을 드리며
1-36여러 번 관직을 옮기며
1-37사단칠정 총설과 후설의 안목이 두루 바르니
1-38인심?도심에 대한 논의
1-39잠시의 틈조차 내지 못하며
1-40도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1-41제 이름을 빌어 나도는 책을 없애 주시길
1-42환후가 여전하시다니
(하략)

1568~1569
병과 귀향의 와중에
1-53두 가지 고민과 두 가지 근심
1-54아직까지 강릉에 가지 못하여
1-55분부하신 일은 알아보고 추진하겠습니다
1-56성학십도를 보냅니다
1-57성학십도가 매우 정밀하고 정확하니
1-58그대의 가르침을 받으니
1-59어제 선생님을 뵙고서 인사드리니
1-60고증이 소홀했던 부분들을 깨우쳐 주시니
1-61바르게 지키며 질박한 것을 높게 여겨
1-62앞 시대의 전적을 널리 참고하여
1-63조정암이 임금께 아뢴 글의 초본을 보내니
1-64오늘을 정암의 시대와 비교해 보니
1-65성학십도와 차계는 어제 저녁에 바쳤습니다
1-66임금의 친부모에 대한 호칭을 논하다
1-67서명도를 고치다 1
1-68서명도를 고치다 2
1-69서명도를 고치다 3
1-70그대는 아직도 나를 모릅니까?
1-71참으로 복잡한 내막이 있는데
1-72굳이 오실 것 없습니다
1-73과회공이 부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1-74찾아뵈려고
1-75벼슬을 떠나는 도리 1
1-76벼슬을 떠나는 도리 2
1-77벼슬을 떠나는 도리 3
1-78봄 얼음을 밟는 것 같이 두려운 마음으로
(하략)
1570
마지막 해의 편지
1-101세상에 드러나는가의 여부
1-102글은 더욱 맛나고, 가난은 더욱 즐거우니
1-103술을 굳게 다스리지 못하면
1-104마음의 중심이 불안하여 생긴 허물
1-105공경과 방자함을 같이 행하는 도가 어디 있습니까
1-106호남과 영남으로 더욱 멀어지니
1-107주신 말씀 제 병에 맞는 약 아닌 것 없으니
1-108한가한 가운데 ?감춘부?를 읽으니
1-109늙은이의 어둡고 막힌 생각 씻어 주시기를
1-110사물의 이치에 이르는 길
1-111벼슬 없는 신세
1-112고친 심통성정도에 대한 기명언의 논의에 답함
1-113제 몸 보존하겠다는 생각 접은 지 오래
1-114제 견해가 잘못되었습니다


2 부 
학문을 논한 편지들


사단칠정을 논한 편지들
2-1그대의 논박을 듣고서
2-2퇴계에게 올린 사단칠정설
2-3사단칠정이 이기로 나뉜다고 한 논설
2-4고봉이 퇴계에게 답해 사단칠정을 논한 글
2-5논의의 시말을 드러내고자
2-6제1서를 고친 글
2-7퇴계가 답한 제2서
2-8후론에 대해
(하략)

태극을 논한 편지들
3-1일재 선생과 주고받은 편지들
3-2태극을 논한 편지들을 보여준 데 대한 답서
3-3편지 끝에 태극에 대한 편지를 논한 글에 대해
상례나 제례의 격식을 논한 편지들
4-1악수에 대한 설과 맏며느리가 제사를 주재하는 문제
4-2주제설
4-3별지 : 체천의 예에 대하여
4-4악수설
4-5상례와 격식에 관한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국가나 왕실의 전례를 논한 편지들
5-1조정의 의례 제도에 관한 몇 가지 논의
5-2형제가 대를 이었을 때 서로 복을 입는 것과 
후부인이 복을 입는 데 대한 논의
5-3칭위에 대하여
5-4문소전과 덕흥군의 가묘에 관한 논의
5-5문소전과 덕흥군의 가묘에 대한 논의에 답하며
5-6전전에 위패를 모시는 규칙에 대해 1
5-7전전에 위패를 모시는 규칙에 대해 2
5-8전전에 위패를 모시는 규칙에 대해 3
(하략)

묘갈명을 논한 편지들
6-1묘갈문을 삼가 올립니다 
6-2별지 : 갈문에 대한 몇 가지 품목들에 대해
6-3갈문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6-4갈문에 대한 사사로운 몇 가지 생각을 다시 보냅니다
6-5다시 고치며 선생님의 결정을 기다립니다
일러두기 
옮긴이의 글
퇴계와 고봉이 편지를 주고받은 13년 동안의 일들
퇴계 이황, 고봉 기대승에 대한 짧은 소개

 

4. 책속으로

 

명언에게 답합니다.1-18 퇴계가 고봉에게

 

구경서具景瑞1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전해 준 그대의 편지를 받아 보았습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의 여러 상황이 잘 갖추어져 있어, 먼 곳에 막혀있어 답답했던 마음이 얼음 녹고 안개 걷히는 것보다 더 시원하게 풀렸습니다. 크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산간 벽지에 살고 있어서 서울 소식을 듣는 경우가 드물어, 그사이 고향에 내려갔다가 병으로 사직한 것과 명을 받고 다시 서울로 돌아간 일 같은 곡절을 모두 알지 못했는데, 이제 편지를 받고서야 알았습니다. 따라서 한번 시험하려 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분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벼슬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고, 오늘날의 사람이 옛사람들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경력을 쌓으면 더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늙고 미천한 저는 병으로 인해 한가히 지내고 있으니, 임금의 은혜가 하늘과 같습니다. 다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의 직책이 지금까지 해임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봄 소명을 받았을 때 사직을 청한 뒤로는 감히 다시 사직을 청하지 못했으니, 스스로의 마음만 불안할 뿐 아니라, 듣자니 여론도 사직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여론이 매우 당연하지만 지난날에 사직으로 인해 낭패를 보았기 때문에 더욱 움츠리고 조심되어 감히 사직의 뜻을 밝히지 못하고, 대간의 탄핵으로 파직되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의리에도 맞지 않고 염치도 모르는 짓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지난 겨울 자중子中이 제게 왔을 때, 그대가 제 편지에 답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을 이미 말했습니다. 말재주만으로 경쟁하다시피 하는 것은 참으로 무익하고, 진실한 공부는 매번 하다가 말다가 하는 것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하다가 말다가 하는 잘못을 자세히 생각해 보면 기질과 습관의 치우침, 물욕의 가림, 세상사의 구속, 이 세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행히 이곳은 산중이라서 물욕의 가림과 세상사의 구속은 적지만, 치우친 기질과 습관은 바로잡기 어려워, 뜰 앞을 서성이면서 매번 강직한 친구의 도움 받기를 생각하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대의 편지를 받으니 마치 큰 보물을 얻은 것 같아, 펴서 읽어 보고는 깊이 감복한 나머지, 늙고 혼미하다는 이유로 감히 스스로를 포기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그대도 지난날 스스로 방종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만, 오늘에 와서 사람들이 그대의 풍모를 상상하고 흠모하기를 그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부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다 하여, 마음속으로 너무 근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보내 주신 별지는 저의 어리석음을 많이 깨우쳐 주니, 천하의 서적을 다 읽어 보아야 한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우 다행입니다.
경서가 돌아가는 길에 이 글을 부칩니다. 이만 줄이오니 살펴 주시기를 빕니다. 삼가 절하며

답합니다.
계해 2월 24일, 황이 머리 숙입니다.

--- pp. 101 ~ 103

 

제가 세상을 업신여기고 다른 사람을 낮추어 본다고 하는 말을 들으셨다는데, 저는 그런 마음이 없다고 스스로 믿습니다. 그러나 의논하는 때에 기운을 가라앉히지 못해 남들의 험담을 불러 일으켰으니, 참으로 아프게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치우친 성품을 바로잡는 것이 마땅합니다. 말을 삼가는 데 모자라고 몸을 단속하는 데 소홀한 병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평소에 스스로 알고 있던 것이라 늘 경계하고 반성했음에도 그런 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뿌리가 깊고 두텁지 못한 까닭에, 일이 있을 때마다 드러나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비록 뿌리가 얕지만 그 위에 노력을 더한다면 아마 조금은 나아질 것입니다.

 

술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근래에 병이 잦았기 때문에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몸을 기르고 덕德을 기르는 데 모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정말로 굳게 절제하여 술에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 p. 317

 

세상 사람들은 제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서 잘못 천거했다고 다투어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잘못 천거했다는 뉘우침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것은 제가 그대에게 바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 같이 알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대가 평생 뛰어난 재주를 마구 써 버리고 방탕한 습관에 묶이며, 술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놀이와 방종에 빠져서, 마침내 성현의 세계와 수만리 멀리 떨어지게 된다면, 이는 곧 세상 사람들의 공격이 진실로 사람을 제대로 안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비록 잘못 천거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해도 그럴 수 있겠습니까?

--- p. 306

 

이른바 미진했다 함은 다름이 아니라 학문을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자신을 높이고, 시대를 헤아리지 못했으면서 세상을 일구는 데에 용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패한 까닭이니, 큰 이름을 걸고 큰 일을 맡은 사람은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 p.34

 

저는 늘 말하기를 “처세가 어려운 경우 나는 내 배움이 완전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내 배움이 만약 완전하다면 반드시 처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했습니다. --- p. 29

 

 

 

-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