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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추천 도서 (894) 송강가사(松江歌辭) - 정철


 

 

1. 책소개

 

《관동별곡》,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장진주사》…. 낯익은 제목이다.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해 우리를 고문()했던 고문()들. 시험에 쫓겨 막상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하고 기계적으로 외웠지만 이들이 두고두고 명문으로 회자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송강 정철의 가사를 한데 모았다. 유려한 현대어 풀이는 물론 정확한 원문과 상세한 해제, 전문적인 주석이 함께 있어 간단한 맛보기부터 깊이 있는 연구까지 가능하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2. 저자소개

 

정철

저자 : 정철
저자 정철[, 1536(중종 31)∼1593(선조 26)]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다. 본관은 연일(), 자는 계함(), 호는 송강()이다.서울 장의동(,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 출생으로 돈녕부판관 유침()의 아들이다. 어려서 인종()의 귀인인 큰누이와, 계림군() 유()의 부인이 된 둘째 누이로 인해 궁중에 출입해 같은 나이의 경원대군[, 후의 명종()]과 친숙해졌다. 10세가 되던 1545년(명종 즉위 원년)의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관련되자 그 일족으로서 화를 입어 맏형은 장류() 중에 죽고, 부 유침은 유배를 가게 되자, 그도 관북()ㆍ정평()ㆍ연일 등 유배지를 따라다녔다. 1551년에야 해배()되어 조부()의 산소가 있는 전남 담양 당지산 아래로 이주해, 그곳에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여 년간 지냈다. 여기서 김인후, 송순, 기대승 등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임억령에게서 시를 배웠으며, 이이, 성혼, 송익필 같은 유학자들과 교유했다. 1561년(명종 16) 26세에 진사시에 1등으로,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사헌부지평을 거쳐 좌랑ㆍ현감ㆍ전적ㆍ도사를 지내고, 31세에 정랑ㆍ직강ㆍ헌납을 거쳐 지평, 이어 함경도 암행어사가 되었다. 32세에 이이와 함께 사가독서했다. 이어 수찬ㆍ좌랑ㆍ종사관ㆍ교리ㆍ전라도 암행어사를 지내다가 40세인 1575년(선조 8) 낙향했다. 43세에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으로 승진해 출사했다. 이후 사간ㆍ집의ㆍ직제학을 거쳐 승지에 올랐으나, 진도군수 이수()의 뇌물사건으로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시 낙향했다. 45세 되던 1580년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이때 《관동별곡》과 《훈민가》 16수를 지어 가사와 시조문학의 대가로서의 재질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그 뒤 전라도 관찰사ㆍ도승지ㆍ예조참판ㆍ함경도 관찰사 등을 지내고, 48세에 예조판서로 승진,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으나 역시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음 해에 사직, 고향 창평으로 돌아가 4년간 은거했다. 이때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등의 가사와 수많은 시조ㆍ한시 등을 창작했다. 54세에 정여립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서인의 영수로, 최영경 등을 다스리고 철저히 동인을 배제하며 이듬해 좌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1591년 건저문제()로 진주로 유배, 이어 강계로 이배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3. 목차

 

송강가사 · 상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장진주사()
송강가사 · 하
1. 교술가()
2. 연군()
3. 풍류()
4. 풍자()
5. 친화자연()
6. 자성()
7. 자긍()
8. 별리() · 기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