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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추천도서(22.3~23.2)/2022-8

8월의 추천도서 (3461) 이탈로 칼비노의 문학 강의

1. 책소개

 

환상문학과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문호
책, 출판, 문학을 사랑했던 이탈로 칼비노의 유작
문학의 미래에 부치는 미완의 강의록

1984년 6월 6일 이탈로 칼비노는 이탈리아 작가로는 최초로 하버드대학의 유서 깊은 문학 강의(‘찰스 엘리엇 노턴 시학 강의’, 이하 노턴 강의)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1926년에 시작된 노턴 강의는 전통에 따라 한 학년도 동안 여섯 번의 강의로 진행되며 주제 선택은 강연자의 자유이다. 칼비노는 뉴 밀레니엄을 15년 남겨 둔 시점에서 “2000년에도 보존되어야 할 몇 가지 문학적 가치”를 강의 주제로 선택한다. “문학과 책이 처할 운명에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던 시기였다. 칼비노는 여섯 강의 중 다섯 강의의 원고를 작성하고 미국행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1985년 9월 6일 뇌출혈로 쓰러진 후 일어나지 못했다. 강의도 이뤄지지 못했다. 강의 원고는 타자 원고 그대로 수습되어 1988년 가르찬티 출판사에서 초판이 출간되는데, 부인 에스더 칼비노가 서문을 썼다. 작가의 돌연한 죽음으로 생전에 손수 정리 및 교정되지 못한 원고, 인터뷰 기사, 기고문, 편지 등을 묶고 연구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차차 이뤄진 듯하다. 이탈리아 최대 출판사인 몬다도리가 펴내는 세계문학 전집 〈이 메리디아니〉 제1권 『이탈로 칼비노, 에세이 1945~85』에도 칼비노의 노턴 강의 원고가 수록되었다. 1991년에는 같은 전집의 한 권으로 칼비노의 『장단편소설집』이 출간되는데, 이 소설집에는 당시 현대문학 연구자들이 작성한 ‘이탈로 칼비노 연대기’가 실렸다. 몬다도리는 1993년 칼비노의 강의 원고를 단독 단행본으로 펴내면서 칼비노의 문학세계를 함축적으로 내보이는 이 책에 걸맞도록 흩어져 있던 ‘작가 연대기’와 ‘초판 서문’을 한데 모으고, 이전에 수록하지 못한 강의 원고 한 편과, 강의 원고에 대한 해제 성격을 띠는 문학평론가 조르조 만가넬리의 논문까지 수록했다. 한국어판에는 이탈로 칼비노를 한국에 알리는 데 힘쓴 이현경 선생님의 후기도 실어 이 책과 칼비노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저자 : 이탈로 칼비노 (1923~1985).
 

쿠바의 수도 아바나 교외의 산티아고 데 라스 베가스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칼비노가 이탈리아인임을 잊지 않길 바라며 이탈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칼비노가 두 살이 되기 전 온 가족이 모국으로 돌아와 산레모에 정착해 살았기 때문에 칼비노는 자기 이름이 “호전적인 국수주의자” 같은 인상을 준다고 느꼈다. 청소년기에 문학작품을 읽었지만 만화 잡지를 더욱 탐독했고 영화에 푹 빠져 지냈는데, 대학 진학 전까지는 희곡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1941년 농학자인 아버지와 식물학자인 어머니의 뜻에 따라 토리노 대학교 농학부에 입학했다. 영화 평론을 쓰고, 훗날 긴 인연을 맺게 될 에이나우디 출판사에 글을 투고하고, 당시 새로운 경향의 문학작품들을 읽으며 문학, 정치, 문화, 윤리 영역에서 식견을 길러 나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한때 징집을 피해 숨어 지내기도 했으나, 1944년 이탈리아공산당 유격대에 합류해 나치 파시스트에 맞서 싸웠다. 종전 후 귀환병에게 주는 혜택을 이용해 같은 대학 문학부로 옮겨 학업을 마쳤다. 친우들의 격려를 받으며 첫 장편소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을 집필해 1947년 출간하고 리치오네상을 수상했다. 이후 그를 환상문학의 대가로 자리매김케 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다양한 방면의 문인, 역사가, 철학자와 우정을 나누며 지적 교유를 이어 갔다. ‘우리의 선조들’ 3부작으로 불리는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 우주론에 관한 환상적인 짧은 이야기 모음집 『우주 만화』, 하이퍼소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와 『교차된 운명의 성』, 철학소설 『팔로마르』 등을 발표하며 문학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이탈리아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유서 깊은 문학 강의에 초청되어 강의록, 즉 이 책의 원고를 쓰던 중 급작스런 뇌출혈로 생을 마감했다. 

출처:교보문고

 

3. 목차

서문_에스더 칼비노
이탈로 칼비노 연대기
작가 연대기 참고문헌

1강 가벼움
2강 신속성
3강 정확성
4강 가시성
5강 다양성
부록_시작과 끝에 대하여

후기_조르조 만가넬리
인용 출전
옮긴이 후기
인명 찾아보기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묘사란 묘사 대상과 비슷해지려는 시도로서 그를 통해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조금씩 더 다가간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언제나 조금씩 더 불만을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계속 관찰하고 이렇게 관찰한 내용을 보다 잘 표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Let 69) 〈이탈로 칼비노 연대기〉

내가 카발칸티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이유는 내가 말하는 ‘가벼움’이 의미하는 바를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이라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벼움이란 모호함이나 경우에 따른 포기가 아니라 정확함과 결단력이다.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깃털이 아니라 새처럼 가벼울 수 있다.” 〈1강 가벼움〉

기계의 세기는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가치로 만들었고 속도의 기록은 기계와 인간이 진보해 온 역사를 나타낸다. 그러나 정신적인 속도는 측정될 수 없으며 비교나 경쟁을 허용하지 않으며 그 결과들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정리할 수도 없다. 정신적인 속도는 그것 자체로 가치 있으며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실제 이익이 아니라, 그러한 기쁨에 민감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쁨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빠른 추론이, 오래 깊이 생각한 추론보다 더 훌륭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반대이다. 그러나 빠른 추론은 신속함에 내재한 특별한 뭔가를 전달한다. 〈2강 신속성〉

사실 나의 글쓰기는 언제나 서로 다른 두 가지 인식 유형에 해당하는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었다. 한 길은 분할된 합리성의 정신적 공간 속으로 뻗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점들, 투영된 것들, 추상적인 형태들, 힘의 벡터들을 연결하는 선들을 그어볼 수 있다. 다른 한 길은 사물들로 가득 찬 공간 속으로 뻗어 나가며 페이지를 언어로 채움으로써 그러한 공간과 동등한 언어적 등가물을 창조하려고 애쓴다. 쓰인 것을 쓰이지 않은 것에,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전체에 세밀하게 맞추려는 노력을 통해서 말이다. 이러한 길들은 정확성을 향한 두 가지 상이한 충동이며, 이 충동들은 결코 완전한 만족에 도달할 수 없다. 〈3강 정확성〉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얀 것 위에다 검은 것을 두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글로 쓴 말이 중요하게 된다는 점이다. 글로 쓴 말은 처음에는 가시적 이미지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표현을 탐색한 것이 되고, 나중에는 처음에 설정한 문체를 일관성 있게 전개하는 것이 되며, 차츰차츰 해당 영역의 주인으로 머물러 있게 된다. 글쓰기는 언어 표현이 더욱더 적절히 흘러 나가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테고, 가시적 상상력은 그저 뒤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4강 가시성〉

문학은 모든 실현 가능성을 넘어서 측량할 수 없는 대상들에 접근할 경우에만 살아남는다. 시인이나 작가들이 다른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모험에 찬 일에 착수하는 경우에만 문학은 계속해서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이 보편적인 설명들을 불신하고, 어떤 분야에 제한되지 않고 전문화되지 않은 해결책들을 불신할 때부터, 문학의 위대한 도전력은 다양한 지식과 다양한 기호 체계들을 세계의 다채로운, 다면적인 전망 속에 모두 엮어낼 수 있게 된다. 〈5강 다양성〉

시작은 완전히 다른 세계, 즉 언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시작을 하기 전에는 외부에 완전히 다른 세계가, 글로 쓰이지 않은 세상이, 경험했거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있거나 있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문지방을 넘어 우리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데 첫째 세계와 매번 결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전혀 맺지 않을 수도 있다. 성질상 외부 세계는 연속적이며 가시적인 한계가 없기 때문에 시작 지점은 탁월한 문학적 장소이다. 〈부록_시작과 끝에 대하여〉

어쩌면 문학에 관한 이 책에서처럼 칼비노는 미궁, 거울로 된 복도, 자신의 문학이 빚어내는 환상적 풍경들 속으로 여행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이는 기분 좋고 매력적이며 강한 전율이 느껴지는 여정으로 순간적으로 스치는 불안감을 안고 빠르게 출발한다. 그런 미소와 두려움으로, 힘이 있지만 낯선 마법사의 손을 잡는다. 아, 그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가 덧붙여 설명하지 않고 자신을 해석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후기〉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과학자 집안의 미운 오리 새끼
시대의 진폭 속에서 다르게 사유한 작가


강의를 여는 말이 되었을 책의 짤막한 첫머리에서 칼비노는 다음과 같이 지난(당시에는 지금) 천년기를 정의한다. “이제 문을 닫기 시작하는 지금의 천년기는 서양의 근대 언어들뿐만 아니라, 이 언어의 표현적·인지적·상상적 가능성들을 탐색한 문학이 탄생하고 확장한 기간이었다. 또한 책의 천년이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책이라는 매체가 우리에게 친밀한 형식을 취한 시기이기 때문이다.”(p.77) 칼비노는 1923년에 태어나 예순두 해의 삶을 영위한 20세기 인물이다. 과학자 집안에서 장성해 유일한 문학가인 자신을 미운 오리 새끼라고 여겼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소설을 읽고 유머 잡지를 즐겨 보고 영화에는 푹 빠져 지냈다. 단편, 시, 희곡을 지었으며 희곡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고교 재학 중에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서서히 정치적으로 각성해 갔다. 1944~45년에는 이탈리아공산당이 조직한 유격대에 자원 입대하여 나치 파시스트에 맞서 싸우는 여러 전투에 참가했고, 이탈리아공산당의 지역 기관지에 활발히 기고했다. 종전 후 귀환병에게 주어진 혜택을 이용해 전공을 문학부로 옮겨 졸업했다. 칼비노는 “나는 전쟁 중에 지적으로 성숙해졌습니다”라고 술회한다. 출판사와 잡지에 꾸준히 투고하면서 ‘문학 공부’를 제대로 시작했다. 1946년 12월, 첫 소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을 완성했다. 첫 소설은 이듬해 10월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칼비노는 투고하던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입사까지 하여 당대 여러 분야 지성들과 교류하며 책을 만들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내 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책에 바쳤어요. 출판업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탈리아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만족합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출판계의 모범이 되었던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일한 것은 적잖이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p.29) 주로는 단편을 발표하고, 드물게 장편을 쓰면서 문예·정치·영화 잡지에 기고하고, 출판 프로젝트를 이끄는가 하면, 새로운 소설에 대한 평론을 쓰는 등 작가·편집자·문학 평론가로 활동했다. 리얼리즘 경향의 소설들을 발표하던 중 1951년 여름 “거의 단숨에 『반쪼가리 자작』을 집필한다.” 〈우리의 선조들〉 3부작으로 불리게 되는 연작의 첫 작품이다. 1956년 이후로는 정치적으로 공산주의와도 결별한다. 같은 해 11월 『이탈리아 민담집』 출간을 계기로 참여 지식인의 모습과 대조된다는 평가와 함께 ‘우화 작가’의 이미지를 얻었다. 이듬해 『나무 위의 남작』을, 1959년에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펴내며 〈우리의 선조들〉 3부작을 완간했다. 이로써 리얼리즘 계열 문학이 주름잡던 세계 문학 판도에 한 획을 그으며 현대문학과 환상소설의 거장(보르헤스, 마르케스와 함께)으로서 명성이 높아진다. 그런 후에도 당대 문학의 핍진한 세계관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던 칼비노는 새로운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1960년대 들어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지고, 과학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프랑스의 울리포(‘잠재 문학 작업실’, p.48) 그룹과 교류가 활발해졌다. 이 시기에 “기상천외하고 역설적인 희극성(항상 유희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에 대한 취향, 과학과 언어 조합 기술에 대한 관심, 실험주의와 고전성이 공존하는 문학에 대한 장인적 사고”를 실험하는, 『우주 만화』 『티 제로』로 묶이게 될 단편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칼비노는 문학가 이력의 정점에 이른 1981년 프랑스의 정치·경제·문화 등의 발전에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내 작업의 대부분은 무거움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언어와 문학의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칼비노의 문학세계


칼비노가 노턴 강의록에 붙인 제목은 ‘다음 천년기를 위한 여섯 가지 메모’다. “2000년에도 보존되어야 할 몇 가지 문학적 가치”를 가벼움, 신속성, 정확성, 가시성, 다양성, 일관성이라는 여섯 가지 주제어에 담고자 했다. 강의(책의) 순서는 “칼비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결정되었다(옮긴이 후기). 첫 강의의 주제를 ‘가벼움’으로 선택한 이유는 글의 첫머리에 밝혀져 있다.

“픽션을 쓴 지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니, 여러 길들을 탐색하고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나니, 그동안 실행한 내 작업에 대한 총체적인 정의를 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작업의 대부분은 무거움을 제거하는 것이었다고. 나는 때로는 인간의 모습에서, 때로는 천체에서, 때로는 도시에서 무게를 제거하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구조와 언어에서 무게를 제거하고 싶었다.”(p.81)

칼비노는 당대의 문학 사조에 기꺼이 투신할 수 없었다. 2차대전 종전 후 이탈리아에서는 네오리얼리즘이 문학은 물론 예술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전 유럽의 상황이 비슷했다. 전후 청산과 복구의 방편이 네오리얼리즘이 되었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되었건 다큐를 찍듯 현실을 냉엄하게 직시해야 할 의무가 모든 젊은 작가들에게 주어진 정언명령이었다.

첫 소설을 비롯한 칼비노의 초기 소설은 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삶의 사건들과 “나의 글쓰기에 생명을 불어넣길 바랐던 재빠르고 예리한 민첩성 사이에 뛰어넘기 힘든 틈이 벌어져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이 틈을 마주하는 어떤 순간에는 세상이 돌로 변해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치 메두사의 냉혹한 시선을 피하지 못해 돌로 변한 듯 말이다. 논지를 여기까지 풀어 간 칼비노는 다른 주제의 강의보다 ‘가벼움’을 다루는 1강에서 가장 많은 고전 작품을 예시로 들며 고대 문학과 이탈리아 문학의 전통 안에서 ‘가벼움’의 가치를 입증하려 한다. 그 편폭은 시간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신화와 철학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탈리아어로 쓰인 문학이 형성되던 초창기의 시인은 물론 셰익스피어, 베르주라크, 스위프트, 『천일야화』, 카프카를 아우른다.

칼비노는 가벼움의 가치를 칭송하기 위해 무거움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가벼움은 무거움에서 나온다. 가장 먼저 그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이야기를 가져온다. 메두사와 돌,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하늘을 나는 페르세우스와 거울(아테나 신의 방패), 메두사의 피에서 탄생하는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 칼비노의 신화 해석은 다음과 같다. “페르세우스의 힘은 그가 살아야 했던 괴물 세계라는 현실, 항상 함께해야 하고 짐처럼 짊어져야 할 현실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직접 보기를 거부하는 데에서 나온다.” (p.84)

칼비노는 신화의 이야기 구조와 상징에 대한 과도한 해석을 경계한다. 공포스런 모습의 메두사, 그의 눈을 마주치면 돌로 변하는 두려움. 메두사의 가공할 힘에 맞서기 위해 페르세우스는 무게를 버리고 우회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현실이 여러 가지 얼굴로 대적해 올 때 매번 정공법만으로 맞설 수는 없다. 치명상을 입지 않고 그 무게에도 잠식되지 않으려면 때론 페르세우스처럼 고도와 각도를 변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언어에서 무게를 제거한 예로는 이탈리아 문학 태동기의 두 시인 카발칸티와 단테가 비교된다. 이 대목을 읽는 독자라면 칼비노가 단테가 아니라 카발칸티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에 놀랄 수도 있다. 카발칸티가 지은 소네트의 한 행(“그리고 바람 한 점 없이 내리는 하얀 눈”)과 단테가 『신곡』 「지옥」편에서 쓴 비슷한 시행(“바람 없는 높은 산에 내리는 눈같이”)을 인용하며 시어의 선택과 배치 등을 세세히 따져 분석한다. “단테가 가장 추상적이라 할 수 있는 지적인 사색에도 물질적 고체성을 부여하는 반면, 카발칸티는 명백한 경험의 구체성을 운율을 맞추고 음절을 나눈 시구에 녹여버린다고 말할 수 있다.”(p.100)

인간의 실존적 조건은 삶의 무게를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의 기본값이라면 삶의 무게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가벼움에 대한 탐색은 문학의 본령에도 기본값으로 입력될 것이다. 문학사에 등장한 모든 작가가 추구한 방향은 아니었을지언정, 현실 세계를 미궁으로 인식하고 “작가의 역할이 복잡한 현실의 미궁을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언어를 통해 그 지도를 그리고 출구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가장 좋은 태도를 제시하는 것”(p.291~2)이라고 생각한 칼비노에게 가벼움은 자기 문학의 출발점이었음이 분명하다.

미궁에 도전하는 글쓰기
미궁에서 길을 만드는 방법


칼비노가 옹호하는 문학적 가치들은 대비되는 관념을 묵살하지 않는다. 무거움이 가벼움보다 가치가 덜하거나 무가치해서가 아니라 “그저 가벼움에 대해 할 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런 열린 태도는 다른 특질들에 대한 논의에서도 유지된다.

신속성은 “문체와 구조, 이야기의 경제성, 리듬,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는 본질적인 논리”를 결정하는 정신적인 속도의 문제이다. 따라서 “서사에서의 시간은 늦춰질 수도 있고 순환할 수도 있으며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정확성은, 작가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테그닉이자 가치이지 않나 싶은데, 칼비노가 보기에 글쓰기의 정확성과 연관된 설계/이미지/언어라는 요소를 살펴보면 마치 페스트에 감염된 것 같은 증상들이 발견된다.

가시성은 언어의 조합과 조탁을 통해 구현된다는 측면에서 정확성과 함께 가며, 상상력(“정신적인 이미지 형태로 소유하고 있는 어떤 생각”, p.201)을 언어로써 표현하려고 궁구하는 과정에서 획득되는 특질이라는 점에서는 어떤 형식의 문학에서든 공통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다양성(Molteplicit?)은 세계의 다수성과 다의성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인식론적 특성을 함축한다. 칼비노는 다양성 강의에서 “백과사전적 소설” 혹은 “소설-백과사전”이라는 명칭으로 여러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며 현대소설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다양성의 양상을 풍부하게 보여준다.

일관성 원고는 작성되지 못했다. 이 원고는 하버드에 도착한 후 쓰려고 했으며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다룰 계획이었다. 초판에 미처 포함되지 않았던 부록 〈시작과 끝에 대하여〉에는 이 원고 ‘일관성’에 포함될 예정이었다는 편집자 주석이 첨부되어 있다. 비록 현재 부록 원고에 『필경사 바틀비』가 인용된 흔적은 없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고심했을 작가들이 선택한 첫 문장의 향연이 펼쳐진다. 실로 이야기의 시작은 무수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지만, 오늘 밤 들려줄 이야기를 결정하는 순간 다양한 가능성으로부터 분리되므로, “시작 지점은 탁월한 문학적 장소”라고 한다. 이 책은 문학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칼비노가 아름다운 문장과 깊이 있는 사유로 엮은 탁월한 문학적 장소가 되었다. 문학의 보편적 본질을 톺아보는 동안 자신의 문학까지 아울러 해설해내는 신속성, 정확성, 가시성, 가벼움, 다양성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불현듯 깨닫게 된다. 

 

출처: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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