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 1825 1기(13.3~18.2)

4월의 추천 도서 (780) 4.19 혁명 희생학생 추도시집 뿌린피는 영원히 - 한국시인협회


 

 

1. 책소개

뿌린 피는 永遠히
韓國詩人協會 編
春潮社/1960年(5.19),初版
157페이지,문고판형
4월혁명희생학생추도시집 
4.19혁명관련서적으로 빠른시기에 간행된 도서 (5월19일)

 

 

 

2. 관련 서평

 

거룩한 젊음의 피 민주주의 꽃으로 피어나다 - 인권환 (고려대 명예 교수)


4·19혁명 50주년이 돌아왔다. 12년간 지속되었던 독재정권을 피의 항거로 무너뜨리고, 마침내 자유와 민주를 되찾았던 1960년 4월 19일, 그로부터 어언 반세기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이에 따라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고대의 4·18의거도 50주년을 맞게 되었고, 그 날을 기념하고자 1969년 제1회를 시작하였던 고대의 ‘4·18기념 마라톤 대회’도 금년으로 40회를 맞는다. 모든 고대인에게 감회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필자는 1960년 5월 19일, 그러니까 4·19 후 꼭 한 달 뒤에 발행되었던 4·19 추모시집 《뿌린 피는 영원히》(사진, 필자 소장본)을 열어보면서 50년 전의 그 날을 회상하고자 한다.

여기서 우선 이 시집의 서지적 상황과 이 시집의 편자였던 <한국시인협회>에 대하여 간단히 살피기로 한다. “4월혁명 희생학도 추도 시집”이란 이름으로 나왔던 이 시집은 총 157페이지의 문고판으로 춘조사(春潮社) 발행이었다. 그리고 시집의 속표지에는 “4·19 민주혁명투쟁에 쓰러진 젊은 학도들에게 이 시집을 삼가 드립니다”라고 하여 시집 발간의 취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실상 이 시집의 편자였던 한국시인협회는 간행 직후 ‘삼일당’(진명여고)에서 발간기념 낭송회를 갖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시 시인협회는 어떤 상황이었고, 추도시집 편찬의 주역은 누구였던가. 시집의 후면에는 ‘편자 한국시인협회’라고만 밝혔을 뿐, 간행의 경위나 편집과정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한국시인협회는 4·19 3년 전인 1957년에 결성되었고, 첫해에 75명이 가입하였다. 그리고 초기에는 회장 제도가 없이 모든 일의 운영을 간사들이 분담하는 체제였다.

그래서 조지훈(사무), 이한직(기획), 박목월(출판), 김경린(사업), 유치환(대표)의 5명의 간사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대표간사는 유치환이었지만, 그가 지방에 있었던 관계로 협회의 모든 일은 서울에 있으면서 협회의 탄생을 주도하였던 조지훈이 맡아 하였고, 본 추도시집 역시 그의 주동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조지훈이 대표간사로 상임위에서 선출된 것은 4·19항쟁 다음해인 1961년이었다).

《뿌린 피는 영원히》는 1,2부로 나뉘어 총 39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1부는 초등생, 고교생, 대학생 등 22명의 22편, 2부는 기성 시인 17명의 17편, 총 39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필자들 중 유일하게 국민학교 학생(수송국, 강영희)이 눈에 띄고, 고교생 7명 중에는 금년에 한국시인협회 회장이 된 이건청(한양대 교수 역임)의 작품이 들어있어 이채롭다.


그리고 대학생 14명 중에는 모교생 김기현(국문56), 김종기(국문57), 이중흡(국문57), 정진규(국문58, 1998년 시인협회 회장 역임), 이정숙(국문59), 김재원(영문59) 등 6명이 들어 있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기성 시인들로는 신동문, 박희진(영문50), 박목월,송욱, 유치환, 황금찬, 이한직, 정한모, 김수영, 박성룡, 장만영, 김원태, 박두진, 김광림, 박남수, 고원, 조지훈(모교 국문과 교수) (이상 목차순) 등 당시 저명시인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어, 본 시집에 대한 당시 시단의 관심과 열의를 느끼게 한다.

수록된 39편의 내용을 보면, 4·19 직후에 쓰여진 작품들인지라 그날의 함성과 절규, 비탄과 비명, 저주와 분노, 감격과 환희가 생생하게 그대로 느껴진다. 마치 50년 전의 그날의 상황이 보이는 듯 들리는 듯 눈앞에 방불(彷佛)하다.

 

먼저 당일의 치열했던 현장과 처절했던 상황이 나타난다.

 

아! 슬퍼요/아침 하늘이 밝아오며는/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저녁노을이

사라질 때면/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오빠와

언니들은/피로 물들였어요/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수송국, 강영희)

 

……전쟁은 아니었다/지각을 흔드는 차륜소리/피를 보려고 조준한 총구/

분명 시가지에 검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아 피 묻은 아우성/

청년은 팔이 꺾였다 다리가 부러졌다/모세관에 죽음의 못이 박히고/

질주하는 <엠브란스>마다 찢긴 옷자락이 실려가고 있었다……(김기현, 모교)……

불붙는 몸둥아리가 밀물진/효자동에서 중앙청 앞에서 세종로에서/

고막을 찢던 캄캄한 야만/그 가난하고 순된 소원을 짓밟는 총구는/

인류와 한 겨레의 영원한 모멸로 남을 때/우리의 아픔은 허구 많은 그르침/

우리의 묵념은 그 순혈/다시 일어서 나아감이여/……(정현종, 연세대)

 

……거짓없는 입과 욕기없는 눈동자와 또한 순정의 맨주먹으로/

팔장을 끼고 어깨를 짜고 가던/우리들 청춘의 대열에/

아! 가슴 만치 얼굴 만치의 조준으로/누구를 지키자는 조준으로/

무엇이 미운 조준으로 마구다지 쏘아부친/총알 총알 총알……(신동문, 시인)
 

 

다음으로는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독재자와 부패 정치인에 대한 규탄과 저주가 나타난다.

 

……그것은/죄 없는 죄인이 압제의 발급에 시달리고/

수갑 채인 민주주의가/암흑에서 신음하던 날/……

그 강산에 미친 바람 탄 민주반역자들은 정의를 가장한/

불의와 부패의 날을 이루었구나 (윤무한, 경북고)

 

……음산한 도시 또는 거리 거리마다/

사정거리를 두고 한 핏줄기를 난사한/탐욕한 자들아/

눈을 감으라. 사라지라/정말 살풍경을 만든 탐욕한 거역의 괴수들이여/……(김종기, 모교)

 

……이제 우리 앞엔 확 트인 자유의/대로가 열렸구나, 피로써 찾은 우리 주권/

그것을 다시 더럽혀 되겠는가/어떻게 세운 우리의 나라라고/

오! 뉘우쳐라 아직도 한 방울 피와 눈물이 있다면/

뇌우쳐라, 아니 차라리 혼비백산하라/너희들 썩은 탐관오리쯤/

다시 이 땅에 얼씬도 말 일 이다./(박희진, 시인)

 

끝으로 이 시집의 정서적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피 흘리고 죽어간 젊은이들에 대한 비통한 심정, 그리고 그들에 대한 그리움과 그들의 거룩한 희생에 대한 앙모(仰慕)의 염이다. 이는 본 시집이 4·19혁명 희생자들에 대한 추도시집이었던 만큼 이러한 면이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이 순금의 아침에/우리 한강가의 그 숱한 모래알 하나, 하나에서도/

살아 눈 뜨고 있을 자네여/천의 천, 만의 만년을, 강물 속에 우리의 한강에 스미어 흐를/

자네여/이 순금의 아침에 나는/네가 고이 잠들 수 있기만을/

오늘의 잔치가 순수한 참회의 음식이기만을 기원하는 것이다/자네여/(정진규, 모교)

 

……이제 밝아 오는 아침이면/살아 남은 우리 모두들/

계곡마다 점치는 조종을 울리며/그대들 영전에/

자유와 민주의 이름으로/비를 세우리니/민주의 이름으로/비명을 쓰리니/

조국의 이름으로 잠든 젊은이여/자유를 노래한 젊음이여/……(이석형, 중앙대)

 

……그날 19일/내 옆에 서서 목청이 높았는데/

우정이 용기를 불러준다고 스크람을 더 굳게 했는데/

꽃이 없는 4월의 하늘에/네 이맛박이 뚫어져 흘린 그 피는 크낙한 꽃을 피웠는데/

아아 지금/나는 너를 기억하기 위한 까만 상장을 가슴에 달고/

네가 서야 했을/어떻게도 이름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김재원, 모교)

 

……정의는 오로지 벌거숭이다/어진 피, 젊은 피, 자라는 피다/

용감하게 쓰러진 그들이다/남산도 북악도 모두 보았다/

한강이 목 놓아 부를 이름들/거리마다 목 놓아 부를 이름들/

영원히 영원히 소리칠 태양/……(송욱, 시인)

 

……고요한 아침에 강산에 고운 피로/새로운 공화국의 터를 닦은 날/

1960년 4월 19일!/인류역사는 이날을 길이/

4월혁명의 거룩한 이름으로/뭇 사람의 가슴 속에 기념하리라/

아릿다운 젊음의 자랑스런 넋이여/

자유와 민주주의의 영원한 주소에 편히 쉬라/

그리고 꽃잎마다 풀잎마다/생시엔 아예 웃어보지 못한/

멋진 웃음을 피워달라/……(고원, 시인)

 

4·19가 지나고, 4월 25일 각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문과 데모가 있었고, 4월 26일 이 대통령의 하야성명으로 학생혁명은 성공으로 끝났다. 위의 시들은 이런 격동과 격정의 상황에서 쓰여진 시들인지라, 50년 전의 울분과 비탄, 절규와 감격이 오늘처럼 느껴진다.

시집 맨 끝에 실려 있는 조지훈의 유명한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는

본교 캠퍼스 조지훈 시비 후면에도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