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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25 1기(13.3~18.2)

4월의 추천도서(423) 러셀 자서전 - 버트란드 러셀


 

 

책소개

 

사상가, 철학자, 수학자, 교육 혁신가이자 실험가, 지성과 사회와 성 해방의 옹호자, 평화와 시민권과 인권을 부르짖은 운동가였던 버트런드 러셀의 일생은 놀라우리만치 많은 굴곡과 풍요로 점철된 삶이었다. 자신의 성격과 믿음들에 어긋남 없이 서술되는 그의 인생 이야기에는 박력과 매력, 그리고 진솔함이 담겨 있다. 그의 일생을 거쳐 간 수많은 폭풍우와 일화들이 눈앞에 보듯 선명하게 회고되고 있는 이 자서전은, 명쾌하고 정직한 문체로 참으로 비범한 사람의 비범한 인생을 그린 20세기의 가장 감동적인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소개

 

버트런드 러셀

 

영국의 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사회사상가로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한 인물. 버트런드 러셀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으로로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지식욕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1872년 영국 몬머스셔의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의 강사가 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중 반전운동(反戰運動)에 참여한 것이 화근이 되어 사직했고, 1918년에는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후 유럽 및 러시아와 미국 등을 방문하여 대학의 강의를 맡기도 했으나 주로 저술활동에만 전념했다.

그의 탁월함은 자신의 지능을 최대한 사용하는 놀라운 능력(그는 하루에 거의 고칠 필요가 없는 3,000 단어 분량의 글을 썼다고한다)과 기억력이 밑받침 되었지만 그의 활동력의 원천은 심오한 휴머니즘적 감수성이었다. 그의 사상은 분리된 두 개의 주제를 갖고 있었다. 그 하나는 절대 확실한 지식의 탐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이었다. 전자는 그의 스승이며 협력자였던 화이트 헤드와의 공저 "수학원리"로 결실을 맺어 현대의 기호논리학과 분석철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 책은 수학적 대상을 실재라고 간주하여 논리에 의해 기초를 세우고 수학을 논리로부터 도출하려는 그의 시도를 담고 있었다.

철학자로서의 그의 업적은 특히 이론철학에서 두드러지고 있다.그는 무어, 비트겐슈타인 등과 더불어 케임브리지 학파의 일원으로 19세기 말부터 영국에서 유력한 학설이었던 관념론에 대한 실재론을 주장했었다. 하지만 그는 곧 헤겔학파, A.마이농 등 당대의 철학 흐름 변화를 따라 자신의 사상을 조금씩 발전시켰으며 신실재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는 인식론과 존재론을 사상의 소재로 활용했으며 영국 고유의 경험론을 그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의 사상은 빈학파나 논리적 실증주의를 중시하는 철학자 및 논리학자에게 자극을 주게 된다. 논리학자로서의 러셀은 프레게의 업적을 계승했으며, 페아노와 쿠츨러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며 데데킨트와 칸토어 등의 현대수학의 성과를 근거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했다.

현실 사회에 대한 진솔한 관심과 스스로가 자유로운 무정부주의, 좌파, 회의적 무신론적 기질이라고 불렀던 그의 성향은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평화주의자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핵 무장 반대자로서 사회변혁운동에서 일관성 있게 표현되었으며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1979년 웨일즈에서 사망할 때까지 문필가, 철학자,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외계의 지식』,『철학이란 무엇인가』,『서양 철학사』,『사회개조의 제원리』, 『심리분석』, 『서양철학사』, 『물질의 분석』, 『의미와 진실의 탐구』, 『수리철학 서설』 등이 있으며, 특히 1950년에는 『철학에 있어서의 과학적 방법』, 『자유와 조직』, 『권위와 개인』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제1부 1872-1914
프롤로그/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13
1. 유년기...15
2. 청년기...58
3. 케임브리지 시절...93
4. 약혼...127
5. 첫 결혼...217
6. <수학 원리>...255
7. 다시 케임브리지로...359
제2부 1914-1944
8. 제1차 세계대전...407
9. 러시아...555
10. 중국...604

 

책 속으로

 

위대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1922년, 신비주의에 한창 열을 올리던 그가 내게 똑똑한 것보다는 착한 것이 낫다고 아주 진지하게 호언장담하던 시절, 나는 그가 말벌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스브루크에사 나와 함께 숙박 시설에 묵을 때도 벌레들이 무서워 한 곳에서 이틀을 자지 못했다. 나는 그때 러시아와 중국을 여행한 후여서 그정도 사소한 문제에는 단련이 되어 있었으나, 세상에 어떤 것을 준다 해도 벌레를 진득하니 참고 살 수는 없다고 하는 그의 확신에는 모두지 단련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작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명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1920년 한 해 거의 전부를 여행하는 데 보냈다. 부활절 때는 바르셀로나의 카탈란 대항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바르셀로나에 들렀다가 마요르카로 가 솔레르에서 머물렀다. 그곳 여관 주인이 말하기를, 자신은 홀아비이기 때문에 음식을 제공해 주지는 못하지만 언제든 과수원에 들어가 오렌지를 따먹어도 좋다고 했다. 그 얘기를 얼마나 공손하게 하던지, 깊은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pp. 565-566

어느 해 겨울, 친구와 나는 땅굴 집을 만드느라 한철을 다 보냈다. 기어들어가야 하는 길다란 통로와 180 세제곱 센티미터 크기의 방이 있는 공간이었다. 나는 하녀를 하나 꾀어 땅굴 집에 데리고 들어가, 키스도 하고 포옹도 해보았다. 한번은 그녀에게 나와 같이 하룻밤을 보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럴 바엔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대답하기에 곧이곧대로 믿었다. 게다가 그녀는 놀라움을 나타내면서, 나를 착한 소년인 줄 알았노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진전되지 않았다. --- p. 60

『수학 원리』를 저술하는 동안 화이트헤드 부부와 나의 관계는 힘들고도 복잡했다. 세상에 드러나는 화이트헤드의 모습은 차분하고 합리적이고 사려 깊고 분별이 있었으나, 그를 깊이 아는 사람들은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자제젹 강한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그는 온건하다고 보기 힘든 충동들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가톨릭 교회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다가 그녀와 사랑에 빠지면서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꿈을 접었다. 늘 돈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합리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무모하게 돈을 쓰면서 그럴 여유가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는 자기자신에게 험한 욕설을 마구 퍼부어 부인과 하인들을 겁먹게 만들곤 했다. 때로는 며칠씩 완전히 입을 봉하여 집안 식구 누구와도 말하지 않았다. 화이트헤드 부인은 그가 미쳐버리지나 않을까 늘 염려했다. --- p. 265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 p. 13

레닌과 한 시간 동안 대화한 후 나는 약간 실망을 느꼈다. 애초에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으나,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지적 한계가 뚜렷이 느껴졌다. 그가 신봉하는 마르크스주의는 다소 편협했고 작은 악마 같은 잔인한 일면마저 엿보였다. 나는 『볼셰비즘의 이론과 실천』이라는 책에 레닌과의 면담 내용과 러시아 여행기를 실었다. --- p. 580

 

 

출처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