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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25 1기(13.3~18.2)

3월의 추천 도서 (1477) 조선왕 독살 사건 - 이덕일

 

 

 

 

 

 

 

 

1. 책소개

 

조선사 최고의 논쟁을 일으킨 새로운 대중 역사서
우리시대 최고의 대중 역사 저술가 이덕일 3년 만에 팩션형 역사서로 귀환!

『조선 왕 독살사건』제2권.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를 낱낱이 파헤치는 책. 저자는 특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왕들의 독살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특히 잘 알려진 기존의 정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몰랐었던 야사 속에 나타난 사실들까지 총정리 하여 살펴본다.

이 시리즈는 인종, 선조, 소현세자, 효종 등 독살설에 휩싸인 왕들의 최후 순간을 되짚어보며 그 속에 숨겨진 권력과 암투, 음모와 배신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독살 여부를 밝히는 데 멈추지 않고, 왕의 갑작스런 죽음이 초래한 정치적 파장까지 흥미진진하게 그려내었다.

개정증보판으로 1권과 2권으로 나눠져 출간된 이번 책은, 전편에 이어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사도세자의 후예들, 효명세자 등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의 독살 미스터리가 더한다. 더불어 폭군의 대명사로 일컬어져 왔던 연산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전편보다 더 흥미진진한 조선왕들에 관한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2. 저자소개

 

이덕일

1961년 충남 아산 출생. 숭실대 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북항일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필두로 한국사의 쟁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대중역사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우리 역사의 온갖 미스터리를 객관적 사료를 토대로 선명하게 풀어낸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조선 왕 독살사건』 등의 문제작을 펴내면서 우리시대의 대표적 역사저술가로 자리매김했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이덕일의 여인열전』 등 생존 당시 주목 받지 못했던 불운한 천재들이나 역사 속에 안타깝게 묻혀버린 인물을 복원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이덕일은 객관적 사료에 근거하여 역사의 미스터리와 의문에 대한 문제제기로 새로운 형태의 역사서를 집필해왔다.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논쟁적인 주제로 새로운 역사해석의 선두에 서있다.

그는 최근 정치사 위주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통해 제대로 주목 받지 못한 그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풍부하고 정확한 사료에 근거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문체로 대중역사서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 그는 방송과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면서 더 많은 독자들을 미지의 역사로 이끌고 있다. 이덕일은 기존의 정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야사와 어울려 흥미로운 우리 역사의 숨겨진 이면을 밝혀내어 역사 연구의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으로 있다.

저서로『운부 1.2.3』『사도세자의 고백』『우리 역사의 수수께끼』1ㆍ2권,『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누가 왕을 죽였는가』『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오국사기』『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설득과 통합의 리더 류성룡』『조선 최대 갑부 역관』『조선 선비 살해 사건』 등이 있다.

 

출처 - 예스 24 제공

 

 

 

3. 목차

 

[1권]
서문 반성 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1장.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죽음 - 제5대 문종
종기와 어의 전순의, 그리고 수양대군
2장. 사대부들의 한으로 남은 왕 - 제6대 단종
계유정변과 상왕 복위 기도 사건
3장.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 - 제8대 예종
족질과 오래된 공신들
4장. 쿠데타와 폭군 만들기 - 제10대 연산군
학질과 소리 없는 죽음
5장. 대윤과 소윤, 그리고 사림파 사이에서 - 제12대 인종
이질 증세와 주다례
6장. 방계 승통의 콤플렉스와 임진왜란 속에서 - 제14대 선조
중풍과 찹쌀떡
7장. 조선의 꿈의 좌절 - 소현세자
학질과 의관 이형익

 

 

[2권]
1장. 사라진 북벌의 꿈 - 제17대 효종
종기와 어의 신가귀의 산침
2장. 예송 시대에 가려진 죽음 - 제18대 현종
복통과 뜸 치료
3장. 이복형제의 비극 - 제20대 경종
게장과 생감, 그리고 인삼차
4장. 개혁 군주의 좌절 - 제22대 정조
홧병과 연훈방
5장. 끝나지 않은 비극 - 사도세자의 후예들
노론과 정순왕후의 복수
6장. 조선 정치 체제의 죽음 - 효명세자
새로운 정치와 안동 김씨 세력들
7장. 식민지 조선 백성의 군주 - 제26대 고종
해외 망명 계획과 식혜
에필로그 왜 조선에는 독살설이 많을까?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4. 책속으로

 

꿩 고기는 종기와 상극이었다. 꿩이나 닭, 오리 등은 껍질에 기름이 많아서 종기 환자에게는 절대 처방하면 안 되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종기 환자에게 꿩을 처방하는 것을 독살의 증거로 삼기도 한다. 꿩 고기가 종기에 금기인 것은 반하半夏 때문이기도 하다. 반하생半夏生의 준말인 반하는 천남생과의 다년초로서 그 괴근塊根(덩이뿌리)은 맵고 독성이 있으나 담痰, 해수咳嗽, 구토 따위를 치료하는 데 쓰기도 한다. 특히 음력 4월경의 반하는 독성이 매우 강해서 사람도 반하 한 숟갈을 먹으면 죽을 정도라고 한의사들은 말한다. 문종이 종기로 누웠을 때가 음력 4월인데 전순의가 꿩 고기를 올렸다는 것이었다. 꿩 고기는 겨울철 대지가 얼었을 때에 올려야 하는데, 전순의가 이를 무시하고 문종에게 계속 섭취시킨 것은 고의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처방인 것이다. --- 1권 1장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죽음 - 제5대 문종」 중에서

정희왕후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기대승奇大升의 문집인 《고봉집高峯集》에는 선조 2년(1569) 아침 경연에서 기대승이 선조에게 삼년상에 대해서 설명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 중 예종 사망에 대한 정희왕후와 공신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이 눈에 띈다.
“성종께서 어린 나이로 즉위하시고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당시 대신 중에는 세조조의 공신이 많았습니다. 예종의 소상小祥(사망 후 1년 뒤에 지내는 제사)이 겨우 지나자, 대비전에서 진풍정進?呈(대궐 잔치)을 거행하면서 대신들에게 대궐의 뜰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때 전교하기를 ‘취하도록 마시라’ 하였으므로 신하들이 종일토록 대취했는데, 한명회와 정인지 등은 일어나서 춤을 추기까지 하였답니다.” --- 1권 3장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 - 제8대 예종」 중에서

연산군이 폐비 윤씨와 관련된 신하들은 죽이되 그 재산은 다른 신하들에게 주었다면 쫓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경우 재산을 분배받은 신공신들은 국왕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연산군은 빼앗은 재산을 혼자 차지함으로써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 중종반정 당일까지 영의정, 판서, 승지로 근무하던 벼슬아치들이 반정 세력에게 붙은 핵심적 원인은 이 때문이다. --- 1권 4장 「쿠데타와 폭군 만들기 - 제10대 연산군」 중에서

은언군이 역적으로 몰릴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모두 무시했다. 누가 은언군을 추대한 것도 아니고 그가 상계군과 홍국영을 엮어 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정순왕후가 역적이라고 아무런 물증이나 근거 없이 지목한 것뿐이었다. 문효세자의 죽음과 의빈 성씨의 죽음에 상계군이나 은언군이 관련되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그러나 김심노심金心老心으로 정순왕후 김씨의 뜻을 간파한 노론은 일제히 은언군을 죽이라고 요청했다. 정조는 느닷없이 은언군을 죽이라는 주청을 거부할 수 밖에 없었다. --- 2권 5장 「끝나지 않은 비극 - 사도세자의 후예들」 중에서

세자의 죽음에 의문이 있다고 시작된 공세는 차차 세자의 치료 잘못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진 채 네 명의 신하가 세자 때 전횡했다는 공세로 바뀌었다. 그리고 세자가 총애했던 네 명의 대신들은 세자가 죽은 지 몇 달 만에 모두 조정에서 쫓겨났다. 그렇게 조정은 다시 안김의 세상이 되었다. 조선을 정상적인 국가로 되돌리려던 효명세자의 시도는 그렇게 끝나고 만 것이다. …… 안동 김씨 · 풍양 조씨의 두 외척은 효명세자가 중심에 선 가운데 제한적 역할을 부여할 때만 가문을 넘어 국가 차원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조선에서 마지막으로 국정의 중심을 잡으려던 효명세자의 급서는, 그의 노력으로 조금씩 회생의 기운을 보이던 정상적인 조선 정치 체제의 죽음이었다. --- 2권 6장 「조선 정치 체제의 죽음 - 효명세자」 중에서

 

출처 - 예스 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