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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25 1기(13.3~18.2)

3월의 추천 도서 (1478) 조선의 뒷골목 풍경 - 강명관

 

 

 

 

1. 책소개

 

이 책은 2001년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를 통해 풍속사의 새로운 전형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강명관 교수의 '조선풍속기행' 두 번째 이야기다. 이번 책은 '뒷골목 풍경'을 중심으로 하여 지배 중심의 역사에 의해 잊혀져온 서민들의 삶과 문화를 되살려내고 있다.

지은이는 <조선왕조실록>과 <백범일지>는 물론, 개인 문집까지 비롯한 다양한 자료를 조사하여 소위 말하는 '뒷골목 비주류 인생'들의 삶에 주목한다. 탕자, 왈자, 도박꾼, 술집부터 뒷골목의 의사와 도둑, 기생 등 그 범위도 다양하다.

지은이는 이들의 인생을 되살려 내면서, 지난 500여년 간 우리네 삶의 모습이 지금과 별 다르지 않음을, 당시의 문제의식과 부조리, 민중들의 삶의 애환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놓치지 않고 있다.

 

출처 - 알라딘 제공

 

 

 

2. 저자소개

 

강명관

강명관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문학을 현대의 텍스트로 생생히 살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조선후기 서울의 도시적 분위기에서 활동했던 여항인들의 역사적 실체와 그들의 문학을 검토하여 조선 후기 한문학의 연구 지평을 넓힌 역저(『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문화일보)". "풍속사, 사회사, 음악사, 미술사를 포괄하는 방대한 지적 편력을 담아 내고 있다. 정작 문학 텍스트 자체에 논의를 거의 할애하지 않았는데도, 논의 전개 과정에서 그 시대와 함께 문학 텍스트의 의미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한양대 정민)." 등의 호평을 받았다. 광범한 지적 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풍속사 읽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문학을 쉽게 풀이한 저서들을 다양하게 출간하였다.

또한 그는 조선 시대에 지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어 유통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머릿속에 어떻게 설치되어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결정하는가, 그리하여 어떤 인간형이 탄생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공부 중이다. 최근작 『열녀의 탄생』과 연계하여, 조선 시대 남성-양반이 그들의 에토스를 만들기 위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의식화했던가,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남성다움, 양반다움으로 남성-양반은 여성, 백성들과 구별 짓고, 우월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면면을 연구할 계획이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조선의 뒷골목 풍경』,『근대 계몽기 시가 자료집』,『안쪽과 바깥쪽』,『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농압잡지평석』,『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열녀의 탄생』, 『시비是非를 던지다』등이 있다.

 

출처 -  예스 24 제공

 

 

 

3. 목차

 

서설|잊혀진 조선 사람들의 역사를 위하여
1. 수만 백성 살린 이름없는 명의들|민중의
2.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된다|군도와 땡추
3. 투전 노름에 날새는 줄 몰랐다|도박
4. 마셨다 하면 취하고, 취했다 하면 술주정|금주령과 술집
5. 타락과 부정으로 얼룩진 양반들의 잔치|과거
6. 누가 이 여인들에게 돌을 던지는가|감동과 어우동
7. 서울의 게토, 도살면허 독점한 치외법권 지대|반촌
8.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뒤흔든 무뢰배들|검계와 왈자
9. 조선 후기 유행 주도한 오렌지족|별감
10. 은요강에 소변 보고 최음제 춘화 가득하니|탕자
보론|옛 서울의 주민구성
주석

 

출처 - 알라딘 제공

 

 

 

4. 출판사 서평

 

민중의 조광일, 백광현, 피재길. 백범의 탈옥공작 벌인 불한당의 괴수 김 진사, 최고의 대리시험 전문가 류광억, 반촌 사람 교화에 나선 안광수, 최고의 판소리꾼 모흥갑, 유흥계 누빈 거문고의 명인 이원영, 조직폭력배 검계를 일망타진한 포도대장 장중익, 검계의 일원이었던 집주름(부동산 중개업자) 표철주... 이 책을 통해 이름 석자와 함께 자신들의 삶을 세상에 알린 이들이다.

금사 이원영의 전을 쓴 김윤식은 이렇게 말했다.

"노인께서는 이제 늙으셨습니다. 세상에 다시 이름을 떨칠 수가 없으니, 내가 노인장을 위해 글을 써서 영원히 전해지게 해보지요."

하지만 하찮은 일개 금사의 한평생이 영원히 전해질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가 그 글을 보고 이렇게 전하고 있으니 김윤식의 의도가 과히 어긋나지는 않은 셈이라 해야 할까?

이 책에 인용된 자료들은 조선시대 개인 문집을 비롯하여 『백범일지』<황성신문> 『조선왕조실록』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이 자료들을 읽고 해서하는 저자의 자세는 마치 탐정이나 추리소설가의 그것과 흡사하다. 하나의 주제를 꼬투리 삼아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광범하게 섭렵하며 궁금증을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옛날의 기록들은 생생한 현장보고서로 다시 태어난다. 예컨대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는 마치 신문의 사회면을 보듯 당시의 사건 사고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왕시로가 집권세력의 역사와 이전투구를 설명하는 근거자료로만 인용되었던 『실록』의 새로운 면목이다. 역사서나 국문학 관계 서적 속에서 두꺼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법한 자료들과 기록들도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로 거듭난다. 스스로의 궁금증 때문에 이 '한심한(?)' 주제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갈무리해 둔 저자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출처 - 예스 24 제공

 

 

 

5. 책속으로

 

홍양호가 물었다.
'의술이란 천한 기술이고, 시정은 비천한 곳이다. 그대의 재능으로 귀하고 현달한 사람들과 사귀면 명성을 얻을 것인데, 어찌하여 시정의 보잘것없는 백성이나 치료하고 다니는가?'
조광일의 대답인즉 이렇다.
'나는 세상 의원들이 제 의술을 믿고 사람들에게 교만을 떨어 서너 번 청을 한 뒤에야 몸을 움직이는 작태를 미워합니다. 또 그런 작자들은 귀인의 집이 아니면 부잣집에나 갑니다. 가난하고 권세없는 집이라면 백 번을 청해도 한 번도 일어서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어진 사람의 마음이겠습니까? 나는 이런 인간들이 싫습니다. 불쌍하고 딱한 사람은 저 시정의 궁핍한 백성들입니다. 내가 침을 잡고 사람들 속에 돌아다닌 지 십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살려낸 사람은 아무리 못 잡아도 수천 명은 될 것입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니 다시 십년이 지난다면 아마도 만 명은 살려낼 수 있을 것이고, 만 명을 살려내면 내 일도 끝이 날 것입니다. 26

한국사를 민족이란 코드로 읽고 그에 맞추어 얼개를 짠다면, 민족이란 코드에 걸려들지 않는 무한한 다른 것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 장구한 시간을 민족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 추상화시켜버린다면, 양반/남성의 목소리에 가려 있던 상놈과 노비와 여성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줄 것이며, 서북 사람의 억울한 사연은 어디서 들을 수 있겠는가. 실제 우리 역사를 만들어간 대다수의 상놈 개똥이, 종놈 소똥이, 여성 말똥이들은 과연 나날을 살면서 한국 민족임을 의식하고 살았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들은 상놈으로 종놈으로 여성으로 살았을 뿐이다. 이렇듯 민족이란 이름으로 모두를 뭉뚱그리는 순간 개똥이, 말똥이, 소똥이는 사라진다. 존재했던 모든 것들의 구체성과 다양성이 증발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민족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던, 혹은 '민족'과 공존했던 '근대'와 '민중'이라는 코드 역시 마찬가지다. 근대와 민중 역시 민족과 동일한 왜곡과 배제의 폭력을 휘둘렀음은 여기서 다시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존재했던 다양성과 구체성을 지워버리고 오로지 단일한 중심만을 내세워 대상을 왜곡시킴으로써 애써 중심을 닮게 하는 권력이야말로 중심적 담론의 독재가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정치독재보다 더 근원적인, 정치독재를 가능하게 하는 독재의 기원이 아닐까? 민족이나 근대, 민중 등 거대하고 중심적인 코드를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

역사를 정의한다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이지만, 나의 아마추어적 견해로는 인간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을 들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도 인간은 결정된 존재가 아니다. 유전적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변해가는 존재다. 다만 그 변화가 매우 더디거나 혹은 돌연적일 뿐이다. 한편 인간은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변화시켜나가는 존재다. 현재의 인간은 시간적 변화의 산물이며, 역사학은 바로 변화하는 인간을 해명하는 학문이다. 나는 어떤 교훈적, 목적의식적, 기념비적 역사관도 믿지 않는다.
시간 속의 인간을 읽는 코드는 무수한 복수다. 예컨대 한국의 역사학은 성(性)에 관한 담론을 배제하지만, 나는 성이야말로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코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열녀'를 예로 들어보자. 열녀 담론은 도덕적 담론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실제로는 남성이 여성의 성을 독점하기 위해 제출한 책략이다. 열녀의 문제는 곧 섹스의 문제인 것이다. .

도둑이 영웅되는 사회 양산박(梁山泊)의 군도를 그린 은 지금도 읽히며 영화나 비디오로도 가공된다. 은 조선시대에 이미 소설화되었고, '임꺽정'은 일제시대에, '장길산'은 해방 이후에 모두 소설화되었다. 소설이 아닌 실제의 홍길동과 임꺽정, 장길산은 과연 의적이었을까? 그들은 정말 탐관오리만을 응징하는 그런 도둑이었을까? 사료를 보건대 결코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아름답게 남는다. 부정직한 체제와 지배자에 대한 저항만으로도 그들은 아름답게 기억된다. 도둑을 영웅시하는 사회는 어딘가 곪아 있는 병든 사회다. 병든 체제에 대한 저항이 군도가 형성한 이미지인 것이다. 임꺽정 부대가 활동할 당시 사관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 도적이 생긴 것은, 도적질하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기한(飢寒)이 절박하여 부득이 도적이 되어 하루라도 연명하려고 하는 자가 많기 때문이니, 그렇다면 백성을 도적으로 만든 자가 과연 누구인가. 권세가의 문전이 시장을 이루어 공공연히 벼슬을 팔아, 무뢰한 자제들을 주군(州郡)에 나열하여 백성들을 약탈하게 하니 백성이 어디로 간들 도적이 되지 않겠는가. - 《명조실록》 16년 10월 17일

그리고 구체적으로 윤원형(尹元衡)과 심통원(沈通源)을 두고 "물욕을 한없이 부려 백성의 이익을 빼앗는 데도 못하는 짓이 없는" 대도(大盜)라 하였다(《명종실록》 16년 1월 3일). 조정에 있는 권세가가 대도란다. 신문이며 방송에 나날이 나는 소식을 보니, 과거 군도가 설치던 시대와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땡추와 김 진사가 사뭇 그립다. .

 

출처 - 알라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