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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25 1기(13.3~18.2)

3월의 추천도서(390) 동물의 심장과 피의 운동에 관하여 - 윌리엄 하비


 

1. 소개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영국의 의사.생리학자로, 켄트주의 포크스턴에서 출생,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 1598년 이탈리아의 파도바대학에서 유학한 후 1602년에 돌아왔다. 1609년에는 바르톨로에 병원의 주임 의사가 되었다. 1623년 제임스 1세와 1627년 찰스 1세의 시의가 되기도 했다. 인체의 구조를 연구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소 우주론에 영향을 받아서 특히 심장에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스승인 파브리키우스의 영향으로 실제적으로 실험해서 연구해야 한다는 사상을 이어서 받았으며 그가 발간한 판막의 역할을 제대로 추측해서 자신의 혈액순환론을 근거로 삼기도 했다. 1628년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를 출판하였다. 이 책은 혈액순환론을 제시한 짧은 논문으로써 당시 갈레노스의 이론에 지배받던 생물학, 의학계에 과학 혁명을 일으킨 시발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지만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이 책은 기존 이론 모순을 제시 및 반박, 새로운 가설 설정과 실험을 통한 가설검증이라는 근대과학의 순서를 모두 따라서 자신의 의견을 증명한 것으로 그 내용뿐만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중요한 저서이다. 그는 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발생학에도 기여를 했는데, 1651년 에는 '동물발생론' 을 저술하여 동물은 모두 알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생애

 

영향을 끼친 요소들

하비의 연구에 영향을 끼친 요소들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파도바 대학으로써 그가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파도바 대학에 의학을 공부하러 갔을때 당시 파도바 대학은 공개 해부학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이 강의는 말 그대로 공개적으로 넓은 홀에서 해부를 하면서 강의를 하는 것으로 지도교수인 의사가 직접 해부하기보다는 조수를 시켜서 해부를 하면 그 내용을 지도교수가 갈레노스의 이론과 맞다고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해부는 나중에 하비에게 하여금 실제로 해부를 하면서 연구를 하게 영향을 끼친다. 두 번째로는 그의 스승인 파브리키우스가 있다. 파브리키우스는 당시 파도바 대학의 강의에서 벗어나 실제로 자신이 실험이나 해부 혹은 관찰을 통해서 알아낸 것들을 가르쳤다. 이 중에는 정맥에서의 판막의 발견도 있었다. 파브리키우스의 이런 연구방식은 후에 하비에게도 똑같이 전해진다. 또한 파브리키우스는 아리스토텔리스의 소 우주론에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써 그의 제자인 하비에게도 이 사상은 그대로 전해져서 하비 역시도 심장이 우리 몸의 중심이자 모든 생기의 근원이라 생각한다. 이는 하비가 심장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게된 계기가 되고 후에 혈액순환론으로까지 이어져서 갈레노스의 이론을 깨부스는 생물학에 과학 혁명을 가져온다. 천문학과 물리학에서의 과학혁명의 중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탈피하는 것이였지만 생물학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도움을 받아 과학혁명을 이루게 된다.

하비의 연구 방식

하비의 연구 방식은 이론과 실험이 결합된 방식으로 완벽히 근대과학의 연구 틀을 지켰다. 하비는 일단 그전의 이론을 생각하고 그 이론이 맞다면 어떤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해봤다. 그 다음은 그것이 타당한가 생각했고 불가능하다면 그것을 계산을 통해서 모순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그 전의 이론을 반박하고 그 자신의 새로운 이론 즉 가설을 세웠다. 가설을 세운 후에는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과 관찰을 계속해서 자신의 가설을 증명했다.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실험과 해부로 자신의 연구를 뒷받침했는지 실제로 그의 혈액순환론은 그가 처음 이 가설을 생각해내고 10년간 해부와 연구를 통해 뒷받침할 근거를 찾은 후 발표됐다. 또한 하비는 해부또한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많은 종류의 동물을 살아 있는 채로 해부했다. 그 이유는 심장의 작용을 좀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였으며 특히 심장박동이 느린 냉혈동물의 심장을 많이 해부하고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폐순환을 발견하지만 아쉽게도 이것이 최초의 발견은 아니다.

혈액순환론

혈액순환론은 하비의 저서인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에 처음 소개되었다. 하비는 일단 갈레노스의 혈액파도설이 맞다면 인간의 피는 매일 (한 번 박동 할 때마다 나오는 피의 양)*(하루동안 뛰는 수)를 곱한 만큼의 피의 양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계산하니 1800L라는 양이 나왔고 사람이 매일 1800L의 피를 소비한다면 적어도 매일 이 정도의 양을 먹어야하는데 이는 불가능하고 실제로도 그렇지 않다. 즉 모순인 것이다. 이에 하비는 스승인 파브리키우스의 판막을 생각했고 판막의 역할은 혈액이 순환하기에 생기는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수문 같은 것이라 추측했다. 그 후 10년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실험들을 행하였는데 결절사실험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결절사 실험이란 팔의 윗부분은 줄로 묶는데 이때 세게 묶으면 피부 깊숙한 곳의 동맥까지 묶여서 팔의 윗부분이 부풀어오르고 조금 약하게 묶으면 정맥만 묶여서 아랫부분이 부풀어 오른것을 관찰한 실험으로 동맥과 정맥이 이어져 있음을 보인 실험이다. 또한 그는 혈관에 가는 철사를 꽂을때 한쪽으로만 잘 들어감을 실험해서 혈관에는 혈액이 한쪽으로만 흐르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러한 수많은 실험들로 하비는 자신의 혈액순환론을 증명하고 주장하지만 당시에 이런 하비의 주장은 인정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그의 스승인 파브리키우스마저도 하비를 비난했다고 한다.

그 외 업적

대정맥 – 우심실 – 허파동맥 – 허파 – 좌심실 – 심장수축 – 대동맥 – 동맥계으로 이어지는 폐순환을 발견해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우심실에 판막이 있으며, 이 판막이 피가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막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러나 판막의 존재 이유를 혈압과는 관련짓지는 못하고 수로에서의 판문 정도로 생각했다.

또한 발생학에서도 많은 임신상태의 동물들을 해부하고 죽은 임신한 생명체들을 관찰해서 모든 생명체는 알에서 깨어난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자의 역할을 규명하지 못해 수정시 원거리 상에서 일정한 생명력이 전달되어 발생된다고 설명하였다.

후대에 끼친 영향

하비의 한계는 너무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우주론에 집착한 나머지 허파와 심장의 관계를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한 점이 있다. 즉 폐순환과 대순환(체순환)을 연결시키지 못한것이다. 그는 심장을 피를 흐르게하는 장기가 아니라 생명력까지 더하는 장기로 봤다. 또한 그는 동맥과 정맥이 만나는 지점인 모세혈관도 찾지못했다. 이는 그가 인정을 못받는 가장 큰 이유가 되며 사후 30년후 말피기에 의하여 발견된다. 하지만 하비는 피가 순환한다는 사실을 정양적인 계산과 근대적인 실험을 통해서 증명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그야말로 근대과학의 근본적인 특성인 계산과 실험을 훌륭하게 사용해서 피의 순환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즉 하비의 업적은 그것의 순수한 과학적 업적도 있지만 근대과학의 시발점, 특히 생물학 분야에서는 천년이 넘게 지배해온 갈레노스의 사상을 처음으로 반박하고 의문을 갖게 해 생물학의 과학혁명을 이루었다는 점을 높이 살 만 하다.

 

 

책 속으로

 

 십중팔구 그것은 우리 몸을 통과하는데, 몸의 모든 부분들이 피와 함께 양분을 공급받고 성장하면 생기를 띤다. 피는 따뜻하고, 완벽하며, 증기 같고, 정령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양분을 담고 있다. 일부의 피는 차갑고, 굳어져 있으며, 황폐화된 모습으로 변하는데, 그런 상태에서 피는 마치 몸의 샘이나 고향을 향하듯 심장으로 돌아와 강력하고 격렬한 자연열로 다시 그 완벽함을 회복한다. 그것은 다시 발삼(향료의 일종)으로 채워지듯 정령으로 충전되어 몸 전체에 녹으면서 퍼져나가는데, 이처럼 피가 돌 수 있는 것은 심장의 역동적 박동 덕분이다. 따라서 심장은 생명의 시원이며, (태양이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것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듯이) 인간 소우주의 태양이며, 그 힘으로 그리고 박동에 의해 피는 완벽하게 움직이면서 생장을 이뤄내고 부패와 곪음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그리고 이 친숙한 수호신은 몸 전체에서 영양공급이라는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며, 생명의 토대가 되고, 모든 것의 지배자가 된다.

 

 위의 문장은, 하비가 심장을 피의 순환을 지속시켜주는 펌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묘사한 첫 번째 인물이라는 일반적 평가가 사실은 잘못된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실제로 심장이 기계적 펌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의 단계로 나아간 것은 르네 데카르트로, 그는 1637년에 출판된 『방법서설(Discourse on Method)』에서 밝혔다). 그리고 많은 책들에 써 있듯이, 하비가 심장을 피의 열을 발생시키는 원천으로 보았다고 말하는 것도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그의 관점은 그보다는 훨씬 신비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하비의 작업은 전진을 위한 의미심장한 첫걸음이었다.

남아 있는 그의 저작에서도(불행히도 1642년, 의회 군대가 런던에 있는 그의 집을 급습한 탓의 많은 논문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개인적 관찰과 경험에서 흘러나온 지식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는 특히, 우리가 그 원인을 모른다고 해서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부정확한 피 순환에 대한 '설명'에 친절하게 귀기울이고, 피가 순환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자신이 실제로 이뤄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