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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추천 도서 (727) 삶을 바꾼 만남 - 정민


 

 

1. 책소개

 

오랫동안 다산의 향기를 흠모하며 발자취를 연구해온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가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 사이에 이어진 도탑고 신실한 사제간의 정(情)을 정리했다. 『삶을 바꾼 만남』은 진정한 스승도 진정한 제자도 찾아보기 힘든 요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이 운명적인 만남에 주목한다.

신유박해 와중에 멀리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를 간 정약용은, 당시 머물던 동문 밖 주막집에 작은 서당을 열었고, 그곳에서 소년 황상을 만난다. 시골 아전의 아들이었던 황상은, 이 만남으로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스승 정약용의 '삼근계(三勤戒)'를 평생 마음에 담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는 1818년 스승이 해배되어 서울로 돌아간 뒤에도 깊은 산속에 거처를 마련하고 농사를 지으며 붓을 놓지 않았고, 늘그막에는 작은 집을 지어 오직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에 새김은 물론, 노년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스승의 묘를 찾아 멀리 강진에서 경기도 남양주까지 한겨울에 발을 싸매고 천릿길을 여러 차례 다녀갈 정도로 우직한 마음을 지녔다. 이런 그의 마음이 글에도 그대로 묻어났는지, 그는 당시 장안 명류들과 교유하며 글 솜씨를 인정받는다. 특히 추사 김정희가 그의 시를 흠모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책의 저자인 정민 교수는 황상과 다산의 아름다운 교유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황상이 남긴 글들이 가슴을 쳤다고 말한다. 시작은 「삼근계」라는 작은 글이었지만, 방대한 자료와 문헌 들을 통해 새롭게 살아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군더더기 없이 가슴으로 치고들어오는 정제된 문장들로 깊은 학문의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보인다.

아무도 '스승'에 대해 말하지 않는 요즘, 저자는 한 사람을 믿고 그 가르침을 평생 따른 황상의 일생과, 그 마음을 받아 제자에게 바른 가르침을 주고자 노력한 다산의 스승으로서의 자세를 조명한다. 서로 격을 갖추어 믿음으로 진실되게 이루어진 이들의 만남은 독자들의 마음을 새롭게 일깨운다.

 

출처 - 예스24

 

2. 저자소개

 

정민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무궁무진한 한문학 자료를 탐사하며 살아 있는 유용한 정보를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다산 정약용이 창출한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과 그 삶에 천착하여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다산의 재발견』 『삶을 바꾼 만남』을 펴냈다.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미쳐야 미친다』 등이 있다. 또, 청언소품에 관심을 가져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어록청상』 『성대중 처세어록』 『죽비소리』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옛글 속 선인들의 내면을 그린 『책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등의 수필집과 한시 속 신선 세계의 환상을 분석한 『초월의 상상』,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아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을 담은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를 썼다. 아울러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한시 미학 산책』과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을 썼다. 2012년 8월부터 1년간 하버드 옌칭연구소의 초빙을 받아 머물면서 그곳의 자료를 바탕으로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을 썼다.

 

출처 - 예스24

 

3. 목차

 

글을 열며
아! 과골삼천 | 동문 밖 주막집 | 60년간 새긴 말씀 | 사의재와 읍중 제자 | 문심혜두를 어찌 열까? | 이 시는 남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 | 학질 끊는 노래 | 새벽의 생각 | 동기부여 학습과 칭찬 교육 | 20년 공부가 물거품입니다 | 채마밭을 일구고픈 욕망 | 내외가 따로 자라 | 이제부터 시사가 원만하겠다 | 우물우물 시간을 끌었다 | 한겨울의 공부방 | 시 짓기 시합 | 두륜산 유람 | 다산의 아들 노릇 | 귀한 것은 마음을 알아주는 것 | 네 아들은 내 손자다 | 취생몽사 | 여기까지만 말한다 | 유인의 삶이 어떠합니까? | 봄을 잡아둘 방법 | 적막한 숲속 집 | 리모델링 공사 | 꽃에 대한 탐닉 | 구걸하지 않겠다 | 사람에게 귀한 것은 신의다 | 홍임 모녀 | 강진 제자들과의 갈등 | 내가 많이 아프다 | 18년 만의 재회와 영결 | 정황계 | 이 사람을 대적할 수 없겠다 | 일지암의 초의 선사| 꿈에 뵌 스승 | 고목에 돌아온 봄 | 득의의 시간 | 슬픈 해후 | 사다리는 치워지고 다리 끊겼네 | 일속산방을 꾸며보렵니다 | 호사다마 | 이런 사람이 있었네
글을 닫으며
황상 관련 연보
황상 관련 주요 인물 생몰
원문
참고문헌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4. 출판사 서평

 

어떤 만남은 운명이다!
조선시대 전방위 지식인 다산 정약용, 그의 가르침을 따라 평생을 산 단 한 사람, 황상

10여 년 연구의 결실로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생애가 입체적으로 복원되다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http://cafe.naver.com/mhdn)에 2011년 1월 3일부터 11월 21일까지 ‘우리 시대의 명강의’ 코너에서 ‘삶을 바꾼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연재되었던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의 글이 동명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정민 교수는 2004년 대한민국 인문 독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던 [미쳐야 미친다]를 통해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운명적인 만남을 소개한 이래, 10여 년 동안 정약용과 황상에 대한 자료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만난 소장자들을 어렵게 설득해 새로운 자료들을 발굴하고 그 노력의 결실로,[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다산어록청상]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다산의 재발견] 등을 발표하면서 다산 정약용의 삶과 학문적 업적 그리고 그 문화사적 의미를 다각도로 밝혀왔다. [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은 저자의 이런 오랜 노력의 정점을 찍는 결과물이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한 기간은 1801년에서 1818년까지 18년 동안이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조선 후기 최고의 지적 성취에 속하는 수많은 저작들을 쏟아냈다. 또한 조선시대 권력의 변방이었던 그곳 강진에서 아암 혜장과 초의 의순 등의 승려들과 교유하며 새로운 지적 흐름을 주도하는 동시에 자신의 독창적인 교육법을 통해 제자들을 키워냈다. 그 제자 가운데 황상이 있다.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는 인문학이 귀결할 지점은 추상화된 인류가 아니라 구체적인 한 인간이어야 할지 모른다. 지워진 흔적들과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꼭꼭 숨어 있는 먼지 낀 자료들을 찾아내야 하는 한문학의 길에서, 한 사람의 생애를 그가 맺었던 관계들의 망을 통해 입체적으로 복원하고 그 삶의 잊힌 의미를 되살리는 작업은, 어렵기에 더욱 빛난다. 정민 교수는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삶을 바꾼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인간 정약용의 속살 같은 마음을 만나게 하는 동시에 끊겨 있던 흔적들을 추적하여 황상이라는 한 사람의 빛나는 삶을 복원시켜낸다. 이제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아름다운 만남은, 독자들의 머리를 깨우고 가슴을 울릴 것이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학생은 있지만 제자는 없다’는 탄식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존경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진정한 스승도 진정한 제자도 드문 요즈음이다. 정민 교수에 의해 200년 전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그의 제자 황상(黃裳, 1788~1870) 사이에 이어진 도탑고 신실한 사제 간의 정리(情理)가 울림이 커다란 의미로 되살아난다.

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인 다산 정약용은 많은 제자와 후학을 거느린 조선 최고의 석학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제자가 있었다. 신유박해 와중에 멀리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를 와 변변히 머물 곳도 없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던 정약용은 당시 머물던 동문 밖 주막집에 작은 서당을 열었고, 1802년 그곳에서 열다섯 소년 황상을 만난다. 시골 아전의 아들이던 황상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다산 정약용의 ‘삼근계(三勤戒)’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평생 공부에 매진했고,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한마음으로 공부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았다. 1818년 스승이 해배되어 서울로 돌아간 뒤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던 아전 노릇을 그만두고 백적동 깊은 산속에 거처를 마련하고 농사를 지으며 초서와 시 짓기 등의 공부를 놓지 않았으며, 늘그막에는 ‘일속산방(一粟山房, 좁쌀 한 톨만 한 작은 집)’을 지어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모두가 출세를 위해 공부할 때, 오직 황상은 스승이 입버릇처럼 일러주신 ‘유인(幽人,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조용한 곳에서 숨어사는 사람)의 삶’을 실천했던 것이다.

“내 스승이신 다산 선생님께서는 이곳 강진에 귀양 오셔서 스무 해를 계셨네. 그 긴 세월에 날마다 저술에만 몰두하시느라 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지. 열다섯 살 난 내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三勤)의 가르침을 내려주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네.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를 얻었느니라. 너도 이렇게 하거라.” 몸으로 가르치시고 말씀으로 이르시던 그 가르침이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어제 일처럼 눈에 또렷하고 귓가에 쟁쟁하다네.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그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날로 나는 죽은 목숨일세. 자네들 다시는 그런 말 말게.” --- p.13

스승의 말씀을 명심누골(銘心鏤骨), 마음에 새기고 뼈에 아로새기다

18년의 강진 유배 생활을 마치고 다산이 서울로 올라오자 많은 제자들이 그의 집을 기웃거렸다. 다산의 힘을 얻어 출세를 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결국 다산의 강진 시절 수많은 책을 집필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운 이청(이학래)은 과거 시험에 도움을 주지 않는 다산에게 실망하여 추사 김정희의 문하로 들어가버렸고, 스승을 곁에서 모시며 아끼던 제자들까지도 자신에게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자 뒤돌아서 스승을 흠잡고 서울에 올라와도 인사조차 드리지 않았다. 모두가 이러할 때, 홀로 묵묵히 스승의 뜻을 지킨 한 사람의 제자가 황상이다. 출세를 위한 공부는 실패로 귀결한다는 진리를 따르며 18년 동안 상경하지 않고 은자의 삶을 실천하다, 1836년 다산의 회혼례를 맞아 상경한 길에 스승과 눈물로 영결한 그는 다산의 사후에도 늘 스승의 말씀을 간직하고 허투루 살지 않았다. 이는 다산의 아들 정학연, 정학유 형제와 아름답고 돈독한 우의로 이어졌고, 이후 두 집안은 집안끼리 관계를 이어가자는 의미로 ‘정황계(丁黃契)’를 맺기도 했다.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묘를 찾아 멀리 강진에서 경기도 남양주까지 한겨울에 발을 싸매고 천릿길을 여러 차례 다녀갔다는 황상의 이 우직한 마음은 그의 글에도 오롯이 묻어났다. 엄하고 깐깐했던 다산의 교육을 견뎌내고 그 솜씨를 인정받은 황상은, 다산의 큰아들 정학연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형제, 이재 권돈인 등 당시 장안의 명류들과 교유하며 글 솜씨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추사 김정희는 그의 시를 흠모하여 제주에서 귀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강진에 들러 일속산방을 찾기도 했다. 신분의 구별이 엄격하던 시절, 시골 아전의 아들이 영의정을 지낸 이재 권돈인을 찾아가 대면하는 감동은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제주도에 있을 때 한 사람이 시 한 수를 보여주는데, 묻지 않고도 다산의 고제(高弟)인 줄을 알 수 있겠더군요. 이름을 물었더니 황 아무개라고 하였습니다. … 들으니 황모는 시문이 한당(漢唐)에 가까울 뿐 아니라 그 사람됨도 당세의 고사(高士)라 할 만하여 비록 옛날 은일의 인사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 할 수는 없다고 합디다. 그래서 육지로 나서는 대로 그를 찾아갔더니 서울에 올라갔다고 하여 구슬피 바라보며 돌아왔습니다. 이제 내가 서울로 오니 그는 이미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하는군요. 제비와 기러기의 어긋남과 같아서 혀를 차며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 p.424

탁자 위에는 수선화 구

근이 수반 위에서 막 싹을 틔워 올리고 있었다. 벽에 걸린 것은 생전 처음 보는 자명종이었다. 온통 신기한 물건들뿐이었다. 황상은 주눅이 들어서 쩔쩔맸다. 영의정을 지낸 나라의 큰 어른이 먼 시골의 아전의 자식을 직접 초대해서 따뜻한 말씀을 건네고 있지 않는가? 믿기지가 않았다. 정학연도 추사를 대할 때와는 달리 한결 공경하는 태도로 물음에 응대했다. 이들의 대화는 수선화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나라 걱정을 지나, 시에 대한 대화로 마무리되었다. 황상이 권돈인의 분부에 따라 「무량수각에 나아가 절 올리고進拜無量壽閣」란 제목으로 시 한 수를 지어 올렸다. --- p.481

한 번의 만남으로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다

저자는 황상이 다산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180도 달랐을 것이라고 한다. 운명을 바꾼 만남이란 무엇일까. 스승 다산은 일관된 가르침을 주었고, 제자 황상은 한결같은 자세로 받아들였다. 다산도 위대하지만 제자도 위대한 대목이다. 황상이 있으므로 다산도 더욱 빛이 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런 황상과 다산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고, 황상이 남긴 글들이 가슴을 쳤다고 말한다. 깐깐하고 엄한 스승이었던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평생 노력했던 황상을 가리켜 ‘눈물이 나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시작은 다산의 「삼근계」라는 작은 글을 우연히 본 것에서 비롯했지만, 그 글에서 받은 감동은 방대한 자료 조사와 문헌 연구로 이어져, 우리에게 잊힌 사람이었던 황상과 그가 스승과 나눈 아름다운 인연을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문장들로 복원해내었다. 600쪽에 달하는 분량과 자칫 어렵다고 느낄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눈앞에 환하게 펼쳐지는 듯한 묘사와 서술, 명징한 해석은 독자들에게 깊은 학문적 즐거움과 감동의 세계를 선사하며, 황상과 다산, 저자 정민 세 사람의 ‘맛난 만남’을 음미하게 한다.

황상과 관련이 있는 필첩의 소장자를 물어물어 찾아가 그 생생한 묵흔과 마주했을 때는 감격을 가누지 못했다. 다산과 정학연, 그리고 추사 형제가 황상에게 준 여러 권의 친필첩을 보았다. 필치가 황홀했고, 내용이 눈물겨웠다. 자료가 나올 때마다 문

 

출처 - 예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