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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25 1기(13.3~18.2)

3월의 추천도서 (12) 가시나무새 - 콜린 맥컬로우

 


 


 

◎ 목차

 

제1부 젊은날의 초상
제2부 랠프 신부와의 만남
제3부 드로게다의 비극
제4부 장미빛 은하수
제5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제6부 아름다운 유산
제7부 가시나무새


◎ 리뷰


1977년에 발표한 콜린 맥콜로우의 대표작. 소설의 배경은 1910년대 호주. 드로레닥 목장에 부임하게 된 신부 랠프는 외롭게 살아가던 소녀 메기를 딸처럼 돌봐주게 된다. 그의 보살핌 속에 처녀가 된 메기는 사랑을 고백하고 랠프는 성직의 충성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을 겪지만 성직의 길을 걷는다. 아버지와 오빠가 목숨을 잃은 화재로 극심한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끝없는 사랑을 호소하는 메기. 그러나 신의 사랑을 실천하기로 한 랠프는 결혼을 권유, 평범한 행복을 빌어준다.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원치 않은 결혼과 이혼을 한 메기는 단 한번의 사랑으로 랠프의 아이를 낳는다. 19년이 지나 청년이 된 아들 데인마저 사제가 되고 싶다고 간청하는데….


가시나무새...... 이 새는 평생 동안 가시나무를 찾아헤매다가 그 가시에 스스로 가슴을 찔려 죽는 순간 일생에 단 한 번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전설의 새라고 한다. 이는 한 번 만져준 사람이 계속 만져줘야 살 수 있다는 식물 유추프라카치아의 전설과 더불어 지고지순한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소설 「가시나무새」는 유명한 작품인 만큼 여러 출판사에서 재차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 작품은 우리 부모 세대의 기억에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명작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풋풋한 십대 시절의 일로, 친구가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며 극찬한 작품이었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지고지순한 고전 로맨스는 소녀의 감성을 뒤흔들기 마련... 그 당시 책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줄거리만 찾아보았던 기억이 있다. 가톨릭 신부와 한 여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부터 참 파격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했었다. 

흔히 불륜이란 소재로 대표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고전명작에서 현대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다뤄지는 설정이다. 원래 금기는 깨지라고 있는 법... 기존의 질서를 타파하는 파격 설정이야말로 인간의 심리를 절묘하게 자극하는 매력이 있는 법이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이 원수 가문이 아니었다면, 채털리 부인이 사냥터지기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과연 주목받았을까. 안나 까레리나나 보바리 부인의 사랑도 마찬가지... 비록 그 결말이 비극으로 치닫는다 할지라도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진실된 사랑을 나누었다면 어찌 후회하랴... 

그렇다 해도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상대를 유부남이나 근친남도 아닌 금욕적인 가톨릭 신부로 설정했다는 점은 분명 파격적이다.

지금이야 불륜이란 소재가 워낙 일반화된지라 웬만큼 파격적인 설정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추세이지만, 성직자의 사랑, 그것도 보수적인 가톨릭 신부를 다룬다는 건 역시 무리인 듯, 제 아무리 막장 설정이 난무하는 드라마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불교 승려라면 모를까...(사실 우리 나라에서만 해도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서로 사랑하여 설총을 낳은 사실이 역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으니...)

이 작품이 출간된 시기라면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을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는 여주인공 메기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뉴질랜드에서 살던 메기 클리어리는 열 살 때 가족과 함께 호주 드로게다의 고모 집으로 옮겨오게 되고 그곳에서 젊은 미남 신부 랠프를 만난다. 랠프 신부는 메기를 딸처럼 돌봐주게 되고 점차 호감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메기가 소녀로 성장할 무렵, 랠프 신부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간직한 채 떠나버리고, 그를 그리워하던 메기는 그를 닮은 남자 루크와 결혼한다. 하지만 노동자인 루크는 농장을 마련할 욕심밖에 없는 무정한 남자였고, 메기의 돈과 급여를 모두 자기 명의로 돌려버리고 메기는 가정부로 일하도록 방치해둔다. 메기는 그의 딸 저스틴을 낳지만 여전히 그는 무심하기만 하다. 결국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홀로 섬으로 요양을 떠나는 메기... 그곳에 휴가를 얻은 랠프 신부가 찾아온다. 마침내 그들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고 꿈 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 후, 메기는 랠프 신부를 떠나보낸 후, 남편과 헤어지고 딸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랠프의 아이를 낳는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들 데인은 딸 저스틴과 함께 사이 좋은 남매로 성장한다. 저스틴은 유명 배우가 되지만 데인은 성직자가 되겠다며 떠난다. 그는 추기경이 된 랠프 신부를 만나고 오랜 수련기간을 마친 후 성직을 서품받게 되지만 사고사로 곧 세상을 떠나고 만다. 메기는 비로소 랠프에게 데인이 그의 아들이란 사실을 밝히고 함께 드로게다로 와서 장례를 치른다. 그곳에서 랠프 추기경은 메기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그 후, 메기의 딸 저스틴은 사랑하는 남자 라이너와 결혼하게 되고, 메기는 그 사실을 전보로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뒤로 하고 딸이 이어가는 새로운 삶을 바라보게 된다. 

▲ 문지사에서 출판된 이 책은 연필로 그린 듯한 아름다운 삽화가 돋보인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작품은 단순히 불륜의 사랑 얘기라기보다는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그 중심에 사랑이 자리잡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여주인공 메기의 인생 역경이 시간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부터 그녀의 딸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서... 이러한 구성은 펄벅의 <대지>를 연상시킨다.

사실, 처음 랠프 신부를 보았을 때 그의 성직자답지 않은 세속적인 모습에 잠시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 젊은 미남 신부는 여주인공 메기의 고모인 메리 카슨의 추파를 받기도 하고 그녀가 남긴 유산을 탐내기도 한다. 본인 스스로 천삼백 만 파운드에 메기를 팔았다고 말했을 정도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경건하고 금욕적인 성직자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휴가 때 스포츠 셔츠를 입고 스포츠 카를 타기도 하는 그는 신부이기 이전에 혈기넘치는 한 젊은 남성의 이미지를 구현해낸다. 그러기에 그의 성직자로서의 고뇌나 갈등은 그리 와닿지가 않은 게 사실이다. 한 여인을 사랑하여 스스로 계율을 깼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성직을 버리지 못하는 그는 참 이기적인 인간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데인이 죽은 후에야 그가 아들임을 알게 되고 그 뒤를 따르듯 생을 마감하는 그...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던 게 아니라 본인이 그 사실을 부정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찌되었건 사랑이나 자식 때문에 성직의 명예를 포기할 순 없었을 테니...
안 그래도 이 작품 출간 후, 성직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한다.

메기 역시 랠프 신부의 아이를 임신한 후, 그 사실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남편 루크와 관계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등 이기적인 면모를 어김없이 드러낸다. 이는 돈을 위해 아내를 혹사시키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그녀의 남편 루크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버젓이 저지르고도 평정을 유지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이 진정 행복해지기를 바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거부감 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시대와 배경을 막론하고 지극히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그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에 고소어린 미소를 머금게 한달까.. 가시나무새가 그러듯 운명의 가시덤불 속에 자진해서 가슴을 들이미는 두 사람... 죽을지언정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다면 그걸로 행복한 것일까... 누가 봐도 비난받아 마땅한 그들의 사랑을 가시나무새의 전설을 앞세워 애잔하게 묘사한 건 불륜의 사랑이나 그 어떤 것도 결국은 고통스런 인생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결말을 읽어내린 후, 메기에서 그녀의 딸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삶이 계속되는 듯한 여운에 휩싸였다. 이런 류의 인생사의 매력은 단연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여운이다. 

덧붙여서, 하얀 백사장에 야자수가 서 있는 매트로크 섬의 묘사가 기억에 남는다. 나체로 해변을 걸을 수 있는 곳, 망고를 안고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 메기가 랠프 신부와 최초로 사랑을 나눈 이곳은 그녀의 남편 루크와 결혼 생활을 하던 열악한 북부 퀸슬랜드와는 너무나 대비되는 곳이다. 이런 낙원에서 모든 세속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있고 싶은 건 모든 여성의 로망인 듯... 이 점을 정확히 포착해낸 작가의 솜씨는 참으로 절묘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배경인 호주의 풍부한 정취 묘사를 보면서 애니 <레이디 죠지(국내 방영명 들장미소녀 제니)>를 잠시 떠올리기도 했다. 그 작품 역시 호주를 배경으로 의남매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난다. 추억의 애니 리뷰를 쓰면서 총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