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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추천 도서(554) 명장열전 – 이성무


 

 

1.책소개

 

철저한 국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외환으로부터 국방을 다지고 나라를 지킨 명장들을 만날 수 있는 책.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에서 활약한 31명의 명장을 만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명장부터 많은 조명을 받지는 못했으나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사람들까지 그 면면을 자세하게 살펴본다.

 

먼저 고대에서는 살수대첩으로 유명한 을지문덕,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을 비롯하여, 연개소문, 계백, 궁예, 견훤 등을 다룬다. 또한 역사상 사료가 많지 않은 양만춘까지 살펴봄으로써 외세에 맞서 국방을 지켜낸 무장들과 내치와 외환을 모두 극복한 사람들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는 고려를 건국한 왕건, 그리고 한국사 최고의 협상가 서희, 무신정권의 혼란기에서 활약한 무장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변안렬에 대해 소개한다. 문치주의 국가 조선은 여러 차례 외국의 침략을 받았다. 이순신, 정기룡, 권율, 곽재우, 남이흥, 임경업 등을 비롯한 많은 무장들이 뛰어난 능력으로 이 시기를 극복하였다. 나라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끝은 행복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의 명장들을 만난다.

 

마지막으로 개항과 더불어 세계사의 격변에 휩싸인 근대에서는 항일 의병운동을 한 뛰어난 명장들을 살펴본다. 유명한 김좌진, 홍범도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국하는데 활약한 여러 무장들을 볼 수 있다.

 

출처 알라딘

 

2.저자소개

 

저자 : 이성무

저자 이성무는 1937년 충북 괴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사학과를 거쳐 국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대학교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 연구교수와 독일 튀빙겐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원장, 연세대학교 용재석좌교수를 지냈다. 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현재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남명학연구원장,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과거제도》, 《조선 초기 양반 연구》, 《조선의 사회와 사상》, 《조선 양반사회 연구》, 《한국역사의 이해》1~8, 《조선왕조사》, 《조선시대 당쟁사》, 《조선은 어떻게 부정부패를 막았을까》, 《조선을 만든 사람들》, 《재상열전》 등이 있다. 현재 《제왕열전》을 집필하고 있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3.목차

 

1. 고대의 명장

을지문덕 - 살수대첩으로 고구려의 영웅이 되다

김유신 -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하다

연개소문 - 당나라와 숙명적 대결을 펼치다

양만춘 - 당나라에 맞서 안시성을 지켜내다

계백 - 백제의 마지막 구국혼을 불사르다

장보고 - 통일신라에서 해상강국의 꿈을 펼치다

궁예 - 몰락하는 신라에 맞서 미륵의 나라를 세우다

견훤 - 후백제를 세우고 후삼국 시대를 열다

2. 고려의 명장

왕건 -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하다

서희 - 대담한 협상으로 거란의 대군을 물리치다

강감찬 - 귀주대첩으로 고려를 구하다

최충헌 - 무인정권 시대의 정점을 달리다

최영 - 뛰어난 용맹과 굳은 절개로 고려의 마지막을 지키다

변안렬 -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다

3. 조선의 명장

이성계 - 불패의 명장, 조선을 건국하다

이종무 - 쓰시마 원정으로 왜구를 제압하다

최윤덕 - 실력과 덕으로 4진을 개척하다

김종서 - 호방한 기개로 북방 6진을 개척하다

신립 -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다

이순신 - 불멸의 명장, 조선을 구하다

정기룡 - 젊은 무장, 왜적을 물리치다

권율 - 행주대첩으로 조선 육군의 위용을 세우다

곽재우- 홍의장군, 의병을 일으키다

장만- 과도기 조선의 병권을 잡다

남이흥- 정묘호란을 맞아 순절하다

임경업- 병자호란, 치욕과 맞서다

4. 근대의 명장

양헌수 - 병인양요에서 적의 공격을 물리치다

유인석 - 위정척사의 기치 아래 항일의병을 일으키다

홍범도 - 항일독립전쟁에서 용맹을 떨치다

김좌진 - 청산리 전투의 영웅이 되다

지청천 - 광복군 사령관으로 항일무장투쟁의 대미를 장식하다

 

출처 알라딘

 

4.출판사 서평

  

왜 성공한 무장은 죽거나 혹은 불행해지는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31명의 명장,

전쟁을 이끈 그들의 뛰어난 전략, 그리고 그 후의 삶

 

국가를 지키는 첩경은 철저한 국방이고,

외교는 그 위에 전개되어야 한다

 

한국은 통일신라 이후로 중국의 책봉 체제에 속해 있었다. 고구려 때 벌어진 수·당 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중국과 전쟁을 치른 적이 없으며, 중국에 사대했다. 또한 삼국 시대를 거쳐 들어선 고려와 조선은 문치주의 국가로 국가 안보에 있어 국방보다 외교를 중요시했다. 따라서 문무 구분이 없던 삼국 시대에는 무관 출신이 주로 무장을 맡았으나 고려 시대 이후 전술보다 전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문관들이 전쟁 수행에 있어 총사령관을 맡았다.

 

이와 같이 역사가 흐르면서 한국사에서 적의 침입이 있더라도 전쟁에 이길 생각보다는 적당히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풀어 가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그러나 나라의 안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철저한 국방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런 바탕 위에 외교가 있고, 평화로운 국제관계가 가능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철저한 국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외환으로부터 국방을 다지고 나라를 지킨 명장들을 만날 수 있다.

 

무장의 자질과 훌륭한 전략이야말로

국가의 존망을 좌우한다

 

이 책에서는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에서 활약한 31명의 명장을 만난다. 우리에

게 잘 알려진 명장부터 많은 조명을 받지는 못했으나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사람들까지 그 면면을 자세하게 살펴본다.

먼저 고대에서는 살수대첩으로 유명한 을지문덕,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을 비롯하여, 연개소문, 계백, 궁예, 견훤 등을 다룬다. 또한 역사상 사료가 많지 않은 양만춘까지 살펴봄으로써 외세에 맞서 국방을 지켜낸 무장들과 내치와 외환을 모두 극복한 사람들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는 고려를 건국한 왕건, 그리고 한국사 최고의 협상가 서희, 무신정권의 혼란기에서 활약한 무장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변안렬에 대해 소개한다.

문치주의 국가 조선은 여러 차례 외국의 침략을 받았다. 이순신, 정기룡, 권율, 곽재우, 남이흥, 임경업 등을 비롯한 많은 무장들이 뛰어난 능력으로 이 시기를 극복하였다. 나라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끝은 행복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의 명장들을 만난다.

마지막으로 개항과 더불어 세계사의 격변에 휩싸인 근대에서는 항일 의병운동을 한 뛰어난 명장들을 살펴본다. 유명한 김좌진, 홍범도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국하는데 활약한 여러 무장들을 볼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31명의 명장을 통해, 우리는 열강이 각축하는 21세기의 우리에게 필요한 국제관계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군사지도자와 국가지도자는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지 그려볼 수 있다.

 

출처 예스24

 

5.책속으로

 

이성계가 무장으로 활동하던 14세기 중엽은 중국 내륙에서 명나라가 일어나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던 때였다. 고려는 이 시기에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세력을 확대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원나라와 사이가 나빠져 자주 무력 충돌을 빚었다. 게다가 정세가 혼란한 틈을 타 북으로는 여진족, 남으로는 왜구의 침탈이 끊이질 않았다. 이성계는 이즈음 여러 전투에 참여해 전공을 세우며 고려 무장으로서 확실한 지위를 차지했다.

1361(공민왕 10)에 독로강 만호인 박의가 반란을 일으켰다. 박의의 무리가 정부군을 무너뜨리고 기세를 올리자 이성계가 친병조직을 이끌고 출동해 박의를 토벌했다. 또 같은 해 홍건적이 고려를 침입해 개경이 함락될 지경에 이르렀을 때도 이성계가 군대를 이끌고 개경 탈환작전에 나섰다. 이성계는 성에 가장 먼저 입성해 승리했다. 이로써 이성계는 공민왕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무장으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

1362(공민왕 11)에는 원나라가 쌍성총관부를 되찾기 위해 병사 수만 명을 이끌고 침입했다. 이때 원나라의 사주를 받은 여진족 나하추의 부대를 맞아 고려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자 공민왕은 이성계를 동북면병마사로 임명해 출정하도록 했다. 당시 나하추 부대는 계속된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성계의 거침없는 공격에 맥을 못 추고 대패했다. 나하추는 수하 몇 명과 함께 겨우 목숨을 부지해 도망치면서 말했다고 한다.

“이자춘이 지난날에내가 재주 있는 아들이 있노라라고 하더니, 과연 거짓말이 아니었다.”

1364(공민왕 13), 원나라로 도망을 갔던 충선왕의 셋째 아들 덕흥군이 고려 출신 최유와 함께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원나라를 등에 업은 덕흥군은 공민왕을 폐하고 고려의 왕이 되려고 했다. 압록강을 건너온 덕흥군과 최유의 군대를 의주에서 만난 고려군이 패전해 후퇴하자, 공민왕은 최영을 급파하고 이성계 역시 출정시켰다. 최영과 이성계는 수주 달천에서 적에 맞서 합동작전을 펼쳤다. 이성계는 뛰어난 궁술로 적장을 쓰러뜨려 승기를 잡은 후 덕흥군의 선봉부대를 무찔렀다. 이어서 최영과 함께 주력부대를 공격해 큰 승리를 거두었다.

철통같이 북방을 지켜오던 이성계는 1376(우왕 2)에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남으로 내려왔다. 당시 일본은 내분을 겪어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 때문에 살기가 힘들어진 일본의 일부 영주들은 무사들을 이끌고 고려나 중국 해안을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았다. 이성계는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고려의 백성을 괴롭히다가 충청도까지 올라온 왜구를 지리산 일대에서 물리쳤다. 특히 1380(우왕 6)에는 아기바투가 이끄는 왜구가 함양과 경산, 상주까지 올라와 노략질을 했는데, 이성계가 이들을 운봉에서 맞아 섬멸했다. 이를 황산대첩이라고 한다. 이 전투에서 최무선이 화약과 화통을 이용한 포를 개발해 처음 사용하기도 했다.

이성계는 1382(우왕 8)에 여진족 호바투가 동북면 일대를 침략하자 다시 북으로 올라가 이들을 격퇴했다. 또한 1385(우왕 11)에는 함주까지 올라온 왜구를 무찔렀다. 이처럼 크고 작은 전투에서 뛰어난 전략과 용맹으로 승리한 이성계는 고려가 인정하는 최고의 맹장으로 이름을 높였다.

그러다 마침내 1388(우왕 14)에는 수문하시중에 올랐다. 이는 최영이 맡고 있던 최고관직 문하시중 바로 아래 직급이었다. 이로써 이성계는 고려 조정에서 명실상부한 지위와 권력을 쥐게 되었다. - 패전을 모르는 맹장, 이성계, <이성계 - 불패의 명장, 조선을 건국하다> 중에서

 

출처 예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