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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25 1기(13.3~18.2)

5월의 추천도서(443)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 엥겔스



 

 

서문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그의 저서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에서, 어째서 우리 두 사람이 1845년 브뤼셀에서 "독일철학의 관념론적 견해에 대립되는 우리의 견해 - 즉 주로 마르크스에 의해 완성된 유물사관 -를 같이 완성하기로" 결심했는지를, 즉 "사실상 우리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철학적 확신을 결산하기로 한 경위"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계획은 헤겔 이후의 철학을 비판하는 형태로 수행되었다. 두권의 두꺼운 8절판으로 된 초고는 오래 전에 베스트팔렌에 있는 출판사에 맡겼었으나, 그 후 우리는 사정이 달라져서 출판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 우리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이해한다는 주요한 목적은 달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원고를 쥐들이 갉아 먹는 비판에 맡겨 두었다.

 그 때부터 40여 년이 지났고 마르크스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그나 나나 이 문제를 가지고 다시 논의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헤겔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대해서는 이곳저곳에서 단편적으로 언급한 일은 있었으나 그 어느 곳에서도 전체를 포괄적으로 취급하지는 못하였다. 포이에르바하는 여러모로 헤겔 철학과 우리의 견해 사이의 매개고리를 형성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그에 대해서도 다시 토론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마르크스의 세계관은 독일과 유럽의 경계를 멀리 벗어나 세계의 모든 발달된 언어권 내에서 신봉자들을

갖게 되었다. 다른 한편 독일의 고전철학은 외국 특히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에서 부활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조차 그 곳 대학들에서 철학이라는 명목하에 공급되는 절충주의라는 거지 죽에 사람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바로 지금이야말로 나는 헤겔 철학에대한 우리의 관계 -  우리가 어떻게 헤겔철학에서 출발하였으며 또 어떻게 헤겔 철학과 인연을 끊었는가-를 체계적으로 간략하게 서술할 때라고 생각하였다. 이와 꼭 마찬가지로  또 나는 질풍노도의 시대(sturm-und Drangperiode)에 헤겔 이후 그 어느 철학자보다도 포이에르바하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잡지 [신시대] 편집부가 슈타르케의 포이에르바하론에 대한 비평을 써 달라는 요청을 기꺼이 수락하였다. 나의 글은 그 잡지의 1886년 제4호와 제5호에 발표되었는데, 이제 나는 그것을 다시 단행본으로 발행하려고 한다.

이 글을 출판사에 보내기 전에 나는 1845~46년의 낡은 원고를 찾아내어 다시 검토 손질하였다. 그 가운데 있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부분은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부분은 유물사관에 대한 서술이었는데, 이 서술은 경제사 분야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이 그 당시 얼마나 불충분하였는가를 보여 줄 따름이었다. 초고에는 포이에르바하의 학설 자체에 대한 비판이 없었다. 그러나 그 대신에 나는 마르크스의 어떤 한 낡은 노트 가운데서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11개 항목의 테제(These)를 발견하였다. 여기에 부록으로 인쇄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그것은 마르크스가 후일의 연구를 위하여 썼던 초고이지 결코 출판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테제는 새

로운 세계관의 천재적인 맹아를 내포한 최초의 문헌으로서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것이다.

 

 

목차

001. 포이에르 바하에 관한 테제 / K. 마르크스
002. 루드비히 포리에르 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 F. 엥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