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 1825 1기(13.3~18.2)

5월의 추천도서(432) 로마사 - 테오도르 몸젠


 

 

 

책소개

 

몸젠의 《로마사》는 로마 건국부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사망까지를 그린 로마의 역사서이다. 기존의 로마사 연구서와 달리 역사적 증거물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어 좀 더 실증적이며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몸젠의《로마사》는 세 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었으며, 제1권(제1, 2, 3책) 1854년, 제2권(제4책) 1855년, 제3권(제5책) 1856년에 각각 출간되었다. 1856년에는 제1권이 개정 증보되었고, 1857년에는 나머지 두 권도 개정 증보되어 다시 출간되었다. 1903년 11월 사망 직전 몸젠이 최종적으로 손본 제9판은 제1권이 1902년, 제2권이 1903년, 제3권이 1904년에 각각 출간되었다. 이 책은 고대 이탈리아의 시작부터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를 다룬 제1권의 절반을 담았다.

몸젠은 이 책에서 로마의 역사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역사를 다룬다고 말한다. 국가 체계의 형태를 갖추고 난 이후 로마라는 도시 공동체가 이탈리아 반도를, 이후 세계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좀 더 높은 차원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결코 그렇게 주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몸젠은 강조한다. “흔히 로마 인에 의한 이탈리아 정복이라고 불리는 것은 기실 이탈리아 반도에 살던 전체 민족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합당하다. 로마 인들이 이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이긴 했으나, 아무튼 그들도 이들 가운데 한 부분이었을 뿐이다.”

 

저자소개

 

독일 슐레스비히 가르딩에서 프로테스탄트교 목사의 아들로 1817년에 태어났다. 어린시절 주로 집에서 공부하였으며, 4년간 알토나의 김나지움에서 공부하였다. 1837년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학위를 받고 1838~43년 킬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그는 덴마크 왕이 주는 연구장학금으로 이탈리아에 3년간 머물면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보관된 로마시대의 비문들을 접할 수 있었다. 당시 독일에서 법률연구는 주로 로마법을 내용으로 삼았기에 이 시기를 거치면서 그는 장래 연구방향의 큰 틀을 잡았다.

1848년 혁명 이후 라이프치히대학교 민법 교수로 있었으며, 1849년 5월 작센에서 일어난 봉기에 가담하여 교수직이 박탈되었다. 1852년 취리히에서 법률학 교수직을 맡았다. 이후 몇 년을 외국에서 머물다가 1857년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의 연구교수로 임용되었다. 이듬해 베를린에서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임명되었고, 1861년 베를린 대학의 로마사 교수가 되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1863-66년, 1873-79년의 시기 동안 프러시아의 하원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비스마르크에 강력히 반대하여 자유당과 사민당이 연정을 구성할 것을 충고하였다. 1879년 대학 동료가 유대인을 반대하는 정치적 운동을 벌이자 강력히 규탄하기도 했다.

1880년 7월, 그의 서재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캠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 등에서 대출한 고문서들이 함께 재가 되었다. 1902년 로마사 연구에 대한 공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비문학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극소수에 해당된다. 그는 1500여 개의 연구작업을 통해 로마사를 효과적으로 분석하는 틀을 마련했다. 그의 걸작은 1854년부터 56년까지 저술한 『로마사』 3권으로 이 책들을 통해 로마 공화국의 몰락과 카이사르의 통치를 19세기 말의 시기와 비교 해석하였다.

그는 비문학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보기 드문 사례에 해당되는 인물로, 평소 새벽 5시에 일어나 도서관에서 연구를 하였으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당시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던 구전자료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했으며 고전시대를 이상화하는 계몽주의식 연구태도를 거부했다. 스스로 기억할만한 업적으로는 '로마헌법'의 저술을 꼽고 있다.

 

서평

 

독일 테오도어 몸젠(1817~1903)이 쓴 로마사 연구의 고전 '몸젠의 로마사' 첫 권이 번역 출간됐다. 영국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와 함께 손꼽히는 로마사 연구서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번역됐다. 한마디로 로마서 연구의 고전이자 역사 연구를 넘어서는 인문학적 교양의 결실이 바로 몸젠의 '로마사'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로마사 연구는 바로 이 책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몸젠은 1902년 12월 바로 이 책 '로마사'로 독일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역사 연구서가 문학상을 받았다는 점은 '로마사'가 가진 의미, 즉 '로마사'가 역사 연구서를 넘어서는 인문학적 교양의 결실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싶다고 옮긴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사실  '서양 인문학 전공자들의 필독서' '역사적 저작들의 위대한 고전 중 하나' 등의 수식어가 붙은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159년 만에 한국도 번역 국가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니 만시지탄이다. 
   로마법·문학 전공한 세 학자의 번역의 계기가 "시오노 나나미 소설이 대학교재로… 이건 아니다 싶었죠" 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는 "나는 나의 <로마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 몸젠의 로마사가 있고 기번의 로마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사를 쓴다"고 반박한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다만 그 시대의 요청이 글을 쓰고 연구하고 읽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완독한 뒤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는데 1권에서는 좀 지루할 정도로 꼼꼼히 여러 제도적인 측면을 다루었다. 
   책은 로마 역사를 '신화'로 바라보던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고대 로마인의 삶과 로마의 흥망성쇠를 실증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서 저자는 로마의 역사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역사를 다룬다고 말한다. 그는 "흔히 로마인에 의한 이탈리아 정복이라고 불리는 것은 기실 이탈리아 반도에 살던 전체 민족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합당하다"면서 "로마인들이 이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이긴 했으나, 아무튼 그들도 이들 가운데 한 부분이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역자들은 앞으로 10년 동안 10권 분량으로 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독자로서 '로마인 이야기' 처럼 매년 한권 한권 읽을 것이다. 중간에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또한 완독할 것이다. 좋은 책이 많이 나와야 겠지만 여러 나라의 고전 또한 많이 번역되고 읽혀야 그 사회가 탄탄해지고 사상적으로도 성숙되는 문화국가로 자리매김한다고 본다. 새로운 출발을 기대한다. 추천서냐고 물어보면 실례되는 책이다

출처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