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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씩 추천 도서/2022-5

5월의 추천도서 (3365) 우리 안의 파시즘 2.0

1. 책소개

 

우리가 성취했다고 믿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상대를 용납하지 않는
일상의 오징어 게임으로 퇴화하고 있는가?

민주화 이후 부족주의로 퇴보하는 ‘K-민주주의’를 진단한다!

 

대화의 여지 없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여과 없는 비난을 퍼붓는 것이 일상적인 한국의 정치 풍경은 민주주의의 퇴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을 앞두고 시민들이 누구를 뽑아야 할지, 아예 투표를 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다. 끊임없이 ‘너는 누구의 편이냐’를 묻고 따질 뿐, 분석과 대안 모색은 있는 힘껏 회피하는 한국정치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1999년 ‘우리 안의 파시즘’ 기획을 제안하며 한국사회에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었던 역사학자 임지현은 이 책 《우리 안의 파시즘 2.0: 내 편만 옳은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를 통해, 우리가 성취했다고 믿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상대를 용납하지 않는 일상의 오징어 게임으로 퇴보하고 있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할 때라고 역설한다.

한국사회의 갑갑한 정치적 풍경 속에서 지금 여기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우리 시대 대표 지성들이 세대와 분야를 넘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공정과 능력주의, 세대-연공-인구의 착종, 국민주권 민주주의, 식민지 남성성, 일상적 인종주의, 관종과 인터넷 담론, 한국의 문화종교 현상, 수사의 정치학, 교가에 깃든 파시즘 등 우리 사회의 예민한 지점을 짚는 이 책은 뉴스에 지치고 민주주의에서 부족주의로 퇴화하는 듯한 현실을 우려하는 독자들의 시야를 넓게 트여줄 것이다.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저자 : 임지현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겸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소장. 《희생자의식 민족주의》(2021) 《기억 전쟁》(2019)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2016) 《오만과 편견》(2003, 공저) 등을 썼고, 1999년 《당대비평》 편집위원으로 ‘우리 안의 파시즘’을 기획했다. 역사에서 기억으로 관심을 전환해 기억의 연대를 통한 동아시아의 역사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저자 : 우찬제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문학비평가. 《애도의 심연》(2018) 《나무의 수사학》(2018) 《불안의 수사학》(2012) 《프로테우스의 탈주》(2010) 《타자의 목소리》(1996) 등을 썼고, 생태소설과 생태시 앤솔러지 등을 편집했다. 최근에는 기후 침묵의 기억을 환기하며 기후행동을 위한 생태학적 지혜와 상상력을 탐문하는 환경인문학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 : 이욱연

 

서강대학교 중국문화학과 교수 겸 인문과학연구소 소장. 《루쉰 읽는 밤, 나를 읽는 시간》(2020) 《이욱연의 중국 수업》(2018) 《이만큼 가까운 중국》(2016)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2008) 등을 썼고, 《루쉰 독본》(2020)을 옮기고 엮었다. 동아시아와 한국 현실에서 출발해, 청년들과 함께 중국 근대문학을 읽으면서 한국사회의 오늘과 내일을 고민하고 있다.

 

출처:교보문고

 

3. 목차

 

여는 글. 우리 안의 파시즘, 그 후 20년
일상적 파시즘은 어떻게 진화했는가?_임지현

01. 능력주의의 두 얼굴
민주적 공정사회인가, 엘리트 계급사회인가?_이진우

02. 세대-연공-인구 착종이 낳은 기득권
한국의 노동시장 불평등은 어디서 유래하는가?_이철승

03. 국민주권 민주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정치
참여가 대의를 밀어낼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_박상훈

04. 식민지 남성성과 추격발전주의
한국사회는 왜 기후위기를 직면하지 못하는가?_정희진

05. 너무 익숙해서 낯선 일상적 인종주의
한국에는 정말 인종차별이 없을까?_조영한

06. 주목경제 시대의 주인공, 관종
프로보커터는 어떻게 담론을 오염시키는가?_김내훈

07. 한국의 작은 독재자들
정치종교와 문화종교 개념으로 살펴보는 퇴행적 대중의 출현_김진호

08. 천千의 언어, 천千의 대화
부사의 정치학이 낳은 배제와 억압을 넘어서_우찬제

09. 우리 안의 행진곡과 소리의 식민성
청각을 통해 작동하는 일상 속의 파시즘_배묘정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지 35년이 지나 실시되는 대통령선거가 여전히 색깔론에 물들어 있다는 것은 진짜 문제다. 그러니 한국사회의 정치적 공론장에서 진영론이 종교적 주술처럼 횡행하는 것도 놀랍지 않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정치의 제로섬 게임은 일상의 오징어 게임으로 재생산된다. 확신에 찬 정치 지도자나 그를 따르는 지식인들은 이단을 심판하는 중세의 종교재판관처럼 군림하고, 21세기 한국의 인터넷 익명들은 1600년 2월 ‘캄포 디 피오리 광장’에서 조르다노 브루노의 화형에 환호하는 로마 군중과 다를 바 없다. 우리의 일상과 의식을 이처럼 옭아매고 있는 한국사회의 파시즘적 결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미래가 없다. 지난 20여 년 ‘우리 안의 파시즘’이 2.0 버전으로 업데이트되고 진화하는 동안, 우리의 민주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 〈여는 글. 우리 안의 파시즘, 그 후 20년〉, 20~21쪽

완전한 능력주의의 디스토피아를 신랄하게 묘사한 마이클 영에 의하면, 능력주의는 엘리트와 대중이 동의할 때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능력이 지배 원리가 돼야 한다는 데 하층 계급이 상층 계급과 뜻을 모은 만큼 선택의 수단을 트집 잡을 수 있을 뿐, 모든 사람이 신봉하는 기준 자체는 건드릴 수 없었다.” 능력을 결정적인 요소로 보는 인식이 만연하면, 엘리트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존중받고 아무 능력도 없는 다수는 절망의 나락에 빠진다. 성공한 사람은 마땅히 받아야 할 노력의 대가를 받았을 뿐이라고 여기며 오만해지고, 실패한 사람은 능력이 없고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라는 패배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승자에게 갈채하고 패자를 조롱하는 태도가 당연해지면, 패자 스스로 자신을 조롱한다. 신분상승의 수단인 동시에 현상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능력주의는 결국 인간의 존엄을 빼앗는다.
- 〈01. 능력주의의 두 얼굴〉, 40쪽

베이비부머들이 물러가면 이 모든 세대-연공-인구 착종 문제도 해소될까? 그렇지 않다.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사라지더라도 이들이 구축해놓은 정규직 위주의 연공 시스템은 그대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 또한 가파른 연공제 사다리가 부여하는 상층 정규직의 수혜를 누리기 위해 극심한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따라서 연공제를 중심으로 확대된 불평등의 구조는 다음 세대에도, 또 그다음 세대에도 반복될 것이고 심지어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 〈02. 세대-연공-인구 착종이 낳은 기득권〉, 62쪽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를 말하며 국민참여를 주도하려 하면 민주정치는 위험에 처한다. 여론동원정치로의 퇴락을 막을 길이 없다. 정치가 권력투쟁의 승자 자리를 두고 극단적인 다툼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그러면 민주주의는 함부로 운영되기 시작한다. 상대를 동료 시민이나 동료 정치인이 아니라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몰아붙여도 상관없다. 그런 것이 관행이 될 때쯤이면 민주주의는 ‘스트롱맨’의 게임으로 퇴락한다. 공존과 타협의 민주주의 규범을 준수하는 사람, 한마디로 말해 ‘정치하는 정치인’은 힘을 쓸 수가 없다. 남는 것은 최고권력자로서 대통령을 위한,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의 권력정치뿐이다.
- 〈03. 국민주권 민주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정치〉, 88쪽

한국 현대사를 지배하는 식민 콤플렉스 또는 제대로 된 국가, 더 나아가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를 향한 의지의 근원은, 기원을 상정한 역사주의에 기반한다. ‘아직은 아닌not yet’이라는 사고방식, 즉 지금 여기의 현실을 부정하는 사고에서 비롯된 미래 지향의 추격발전주의는 성장 신화를 지속시키고 탈성장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환경운동이 어려운 이유다. 환경파괴에 완전히 무지/무감각ignore한 한국사회의 자연파괴 지향과 주류중심주의의 근원에는 ‘역사적 시간의 공간화the spatialization of historical time’에 대한 신념이 자리한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말하는 “우리는 미국의 1990년대” “○○은 서울의 1970년대”와 같은 식의 언설이 대표적이다. 한국사회의 영원한 피해의식은 이런 식으로 분출한다.
- 〈04. 식민지 남성성과 추격발전주의〉, 103~104쪽

한국사회의 인종주의는 근대 이후 사회진화론적 세계관 속에서 작동했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한국인은 인종주의 위계의 상층부가 아닌 하층부에 속했고 서양, 백인 그리고 백인이 되고 싶은 일본을 모방하고 추월하려는 욕망에 강하게 이끌렸다. (…) 대중문화 등 한국에서 시작된 다양한 현상에 ‘K’를 붙일 만큼 자부심이 커진 ‘국뽕’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한국인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우월감을 느끼고 있다. 일상적 인종주의는 이러한 우월감을 통해 국가주의/민족주의와 더욱 강하게 결속된다. ‘우리 한국인’에게 이로운 집단과 해로운 집단을 구별하는 국가중심주의는 인종주의를 도덕적이고 정당한 요구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 〈05. 너무 익숙해서 낯선 일상적 인종주의〉, 124쪽

‘일침’과 ‘사이다’의 향연 가운데서 상호존중이 설 자리는 없다. 오히려 상대방을 시원하게 모욕하고 도발하며 ‘연승’을 거둔 사람은 해당 커뮤니티에서 ‘네임드’가 된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이 ‘네임드’의 발언, 공격 대상과 공격의 레토릭에 주목하고 그렇게 천천히 추종자가 된다. 이런 사람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넘어 본격적으로 미디어 전면에 나서면 프로보커터로 성장해 다양한 도발 퍼포먼스로 담론을 오염시킨다. 오늘날 정치와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포퓰리스트들과 프로보커터들은 또렷한 전선, 절대 악을 상정한 선동과 도발로써 ‘우리’와 ‘그들’을 분리해 정치적 부족주의를 더욱 심화시킨다.
- 〈06. 주목경제 시대의 주인공, 관종〉, 145쪽

197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이 고강도의 전체주의 체제를 구축할 때, 대중은 그 불온한 기획에 수동적으로 순응한 것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이 시기에 정권의 국민 만들기 기획은 대중의 열렬한 참여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새마을운동’과 ‘자유교양운동’이다. 대중은 생산적인 산업역군으로서 경제적 주체였을 뿐만 아니라, 전체주의 체제의 ‘국민 되기’에 앞장선 이데올로기적 주체이기도 했다. 요컨대 그 시대를 성찰하는 데 실패한 다수의 대중은 박정희라는 독재자를 추종하는 ‘작은 독재자들’이었다.
- 〈07. 한국의 작은 독재자들〉, 156쪽

선거철이면 느끼는 것이지만 후보자들은 결국 유권자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자기에게 표를 몰아줬으면 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조부사나 최상급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장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슬그머니 말을 바꿀 때도 그런 수사학적 책략을 끌어들인다. 유세 현장에서 후보자의 에토스와 로고스와 파토스 전략을 의심하며 성찰한다면, 의미와 소통의 진정성과는 다른 비판적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강조부사나 최상급 표현 그리고 대조의 수사를 아무런 반성 없이 사용한다면 더욱 의심해야 한다. 일방향적 파시즘의 언어는 결코 먼 곳에 또는 과거에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08. 천千의 언어, 천千의 대화〉, 185쪽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군가풍의 행진곡, 행진곡풍의 군가는 규율권력의 이데올로기를 담는 그릇의 구실을 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행진곡류의 노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단지 그것이 일본 제국의 통치와 동원의 수단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식민지배 시대의 자기복제 과정을 거쳐 도달한 내면화의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박정희 군사정권으로부터 시작된 개발독재는 명실공히 ‘군가와 행진곡의 시대’의 개막을 선포했다. 국가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행진곡풍의 수많은 건전가요들은 대중에게 국가와 민족, 겨레와 동포라는 거대 서사를 위해 끊임없이 전진할 것을 독려하고 있으며, 여기서 개인의 목소리는 손쉽게 소거되고 있다. 군부독재의 시대가 군가와 행진곡의 장려·유행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전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 〈09. 우리 안의 행진곡과 소리의 식민성〉, 201쪽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1. 민주주의는 어떻게 더욱더 퇴보하고 있는가
- 1.0에서 2.0으로 진화한 ‘우리 안의 파시즘’

1999년 여름 《당대비평》에 ‘우리 안의 파시즘’ 특집이 발표되자 한국사회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때는 처음으로 ‘민주화세력’이 집권에 성공했던 시기로, IMF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때였다. ‘우리 안의 파시즘’은 민주화세력이 사회를 개혁하고 진보로 이끈다는 믿음에 제동을 걸었다. 운동권의 군사주의와 서열주의, 명망가들의 성추행과 가정폭력 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오랫동안 한국사회에 스며든 지도자 숭배와 복종의 문화, 가부장주의와 성차별주의, 민족주의적 과대망상증과 외국인 혐오 등을 고발한 ‘우리 안의 파시즘’ 담론은 ‘일상적 파시즘’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파헤쳤다.

그러자 ‘운동의 후퇴국면에서 나타나는 문화주의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연상케 한다’는 비판부터 ‘민중을 파시스트로 간주하고 적으로 돌리는 논리’라는 비난까지 격렬한 반응이 뒤따랐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수없이 좌절되었던 민주화가 정권교체라는 형식으로 실현된 것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 특집을 기획하고 일상적 파시즘을 한국사회의 주요 의제로 끌어올린 역사학자 임지현은 이와 같은 반응에서 ‘좋은 헤게모니를 가진 우리’가 ‘나쁜 헤게모니를 가진 저들’을 몰아내면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민주화세력의 안일한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만 22년이 지난 지금, 임지현 교수는 지난 20여 년 동안 권력의 작동방식이 힘에 의한 강제와 억압에서 내면화된 규율과 동의를 통한 자발적 복종으로 이동했다고 진단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일으킨 의학적 비상사태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의학적 비상사태를 깊이 있게 토론하는 과정 없이 ‘위기’라는 이름으로 모든 논의를 봉쇄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한쪽은 정부와 입장을 달리하는 쪽에 ‘토착 왜구’라는 딱지를 주저 없이 붙이고, 반대쪽은 상대방을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행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퇴행을 거듭하는 지금, 우리 안의 파시즘을 다시 한번 낱낱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일상과 의식을 이처럼 옭아매고 있는 한국사회의 파시즘적 결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미래가 없다. 지난 20여 년 ‘우리 안의 파시즘’이 2.0 버전으로 업데이트되고 진화하는 동안, 우리의 민주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 임지현, 〈우리 안의 파시즘, 그 후 20년〉

2. 한국사회는 어떻게 ‘진보’의 덫에 빠졌는가
- 불공정과 불평등, 폭력의 기원을 찾아서

우리 안의 파시즘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인 ‘불공정’과 ‘불평등’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철학자 이진우는 능력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의 명암을 조명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 합당한 대가를 받는 사회가 공정하다는 믿음은 사람들이 있는 힘껏 노력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하지만 ‘능력’을 사회적 상승의 절대적 수단으로 생각할수록 더욱 나은 조건을 갖고 있거나 세습하는 엘리트 계급에게 유리해진다. 능력주의가 사회적 지위의 획득 수단에서 기득권의 세습 수단으로 변질된 지금, 누구에게나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조건이 확립되지 못한다면 계급 간 갈등이 심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회학자 이철승은 세대 간 갈등이 세대 내 갈등으로 이전되는 양상을 ‘세대-연공-인구 착종’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으로 설명한다. 연공 임금제(연공제)는 근무기간이 길수록 높은 임금을 주는 제도로 오랫동안 한국의 노동시장을 지배해왔다. 1980년대부터는 전투적 노동조합과 진보 지식인/정당의 네트워크가 결합함에 따라 다시금 정당성을 획득했다. 여기에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동시장의 상층에 굳건히 자리 잡음에 따라 일자리 배분과 임금 분배가 정체되어버리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지금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2030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갈등도 근본을 파고들면 세대-연공-인구 착종이 놓여 있다. 세대-연공-인구 착종과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융합 연구자 정희진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폭력의 근원을 우리에게 깊이 뿌리 박힌 ‘식민지 남성성’과 ‘추격발전주의’에서 찾는다. 서구를 따라잡아야 할 모델로 간주하는 한편 남성을 약자로 설정하는 식민지 남성성은 여성과 자연을 복종과 개발의 대상으로 삼는다. ‘근대화’라는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사회는 구성원을 경쟁과 갈등의 한가운데로 내몬다. 필자는 한국사회가 진보적 시간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제대로 직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제는 추격발전을 멈춰야 이토록 폭력적인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한국 현대사를 지배하는 식민 콤플렉스 또는 제대로 된 국가, 더 나아가 ‘팍스 코리아나’를 향한 의지의 근원은, 기원을 상정한 역사주의에 기반한다. ‘아직은 아닌’이라는 사고방식, 즉 지금 여기의 현실을 부정하는 사고에서 비롯된 미래 지향의 추격발전주의는 성장 신화를 지속시키고 탈성장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든다.” - 정희진, 〈식민지 남성성과 추격발전주의〉

3. 한국정치는 어떻게 민주화가 진척될수록 민주주의에서 멀어지는가
- 대중의 정치적 주체화가 낳은 기묘한 모순

우리 안의 파시즘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은 한국정치다. 편을 갈라 싸우면서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 태도는 여전하고, 더 나아가 상대를 비난하고 조리돌리는 행태가 일상적이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문재인 정부의 정치 행태를 ‘국민주권 민주주의’로 요약하고 그것이 드러내는 위험성을 낱낱이 살펴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촛불집회로 결집된 사회적 에너지는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세력이 힘을 합친 만큼 폭넓은 사회개혁을 추진할 만한 동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와 집권 여당은 ‘국민주권’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특정 지지층의 목소리를 키워 반대파를 밀어내는 데 힘을 소모했다. 직접민주주의의 당위만을 강조한 결과 정작 시민의 참여가 약화되는 역설도 발생했다. 대의민주주의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직접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행태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필자의 지적이 쓰라리다.

신학자 김진호는 대중의 정치적 동원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를 ‘정치종교’와 ‘문화종교’라는 개념을 통해 더욱 자세하게 살펴본다. 정치종교는 후발 국민국가에서 원자화된 개인이 추상적 비전에 헌신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적군과 아군의 종말론적 대결을 통한 파시스트 구원신화를 가리킨다. 한편 문화종교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문화적 가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 속에서 대중이 정치적 주체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반동성애 담론을 통해 ‘적그리스도’와 맞서 싸우는 개신교회와 신도들이 대표적이다. 김진호는 대중이 4·19와 5·16으로 상징되는 정치종교 시대를 지나, 6월항쟁을 거쳐 민주화된 지금의 문화종교 시대에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결핍에 시달린 나머지 타자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데 앞장선다고 진단한다.

이제 혐오의 정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널리 퍼지고 있다. 연구자 김내훈은 ‘관심’을 통해 팽창하는 주목경제의 시대에 사람들이 편을 갈라 싸우면서 정치적 부족주의가 심해지는 지금 여기의 온라인 담론장을 살펴본다. ‘관종’은 주목경제 시대의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를 무단으로 올리며 논란을 확대하는 이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세상을 반영한다. 왜곡된 인정욕구는 위선과 가식에 대한 위악으로 진화하고 냉소주의와 정치혐오로 자가 발전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잃고 롤모델이 사라진 담론장은 청년세대의 과격화와 대중의 극우화로 이어지기에 너무나 쉬운 토양이다.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를 말하며 국민참여를 주도하려 하면 민주정치는 위험에 처한다. 상대를 동료 시민이나 동료 정치인이 아니라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몰아붙여도 상관없다. 그런 것이 관행이 될 때쯤이면 민주주의는 ‘스트롱맨’의 게임으로 퇴락한다.” - 박상훈, 〈국민주권 민주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정치〉

4. 한국문화는 어떻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만을 욕망하는가
- 우리 일상 속에 무심하게 스며든 파시즘의 흔적

일상 구석구석에 스며든 파시즘은 눈에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일상의 감각, 언어, 노래와 같은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커뮤니케이션학자 조영한은 한국사회에 넓게 퍼져 있는 인종주의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인종에 무감한지를 드러낸다. ‘다문화’가 대표적으로, ‘다문화’는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을 라벨링하고 국민으로 편입시키면서도 무심코 배제하는 장치로 작동해왔다. 특히 한국민은 식민통치와 발전국가 시대를 거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억압받아왔다는 인식이 강해, 인종 문제는 다민족국가의 일이거나 지극히 폭력적인 사건에 한정된다는 편견을 가져왔다. ‘한류’의 성공에 심취해 자긍심에 사로잡히는 사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인종주의에 물들어 있는지 성찰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국문학자 우찬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식의 언어에 숨은 억압 기제를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코로나19라는 의학적 비상사태 속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마스크를 쓰라는 말은 언뜻 반드시 따라야 하는 지침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무런 조건도 고려하지 말고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듯한 언명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특히 지나친 강조부사와 최상급 표현은 수신자가 이성적으로 판단할 여지를 좁히고 대화의 가능성을 없앤다는 점에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파시즘적 언어는 우리 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음악학자 배묘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는 교가와 군가에 숨은 식민성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 식민통치 시기에 일제는 대중을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집단체조와 국민가요를 만들었다. 아이러니는 반식민 투쟁을 펼친 투사들도, 일제의 식민통치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사람들도 모두 일제의 가요 리듬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데 있다. 군사독재 시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의 리듬을 딴 건전가요를 만들고, 학교마다 전해오는 교가에 전쟁과 개발의 논리가 스며들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연 지금은 오와 열에 맞춰 나란히 걷기를 강요했던 국민학교 시절의 규율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일상의 파시즘은 이처럼 더욱 진화하고 있다.

“선거철이면 느끼는 것이지만 후보자들은 결국 유권자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자기에게 표를 몰아줬으면 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보다 강조부사나 최상급 표현 그리고 대조의 수사를 아무런 반성 없이 사용한다면 더욱 의심해야 한다. 일방향적 파시즘의 언어는 결코 먼 곳에 또는 과거에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우찬제, 〈천千의 언어, 천千의 대화〉

 

출처: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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