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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추천 도서 (758) 인생의 발견 - 벤저민 프랭클린


1. 책 소개


벤저민 프랭클린의 덕을 향한 열정의 인생! 

『인생의 발견』은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되새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을 법한 '인생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질문한다. 그리고 그 해답을 개인의 발전을 이루어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공의 이익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삶으로부터 이끌어낸다. 

약 8백 페이지의 두꺼운 이 책은 사업가, 언론인, 과학자, 발명가, 외교관, 저술가, 정치가, 철학가로서 어느 하나 모자라지 않은 삶을 살았던 프랭클린의 일생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특히 인생에 대해 엄격하기보다 흐르는 물살을 타듯이 자연스럽고 여유롭게, 그리고 동시에 타인의 행복을 함께 배려하는 모습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프랭클린의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평가까지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기술하여 더욱 흥미롭고 다채롭게 그의 일생을 접한다. 또한 프랭클린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정치가로서의 삶을 포함한 전 생애를 조명하여, 프랭클린에 대해 알고 싶어 했던 사람들에게도 충분한 만족을 준다.



2. 저자


지은이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 

아스펜 연구소(Aspen Institute) 소장. CNN의 CEO와〈타임 TIME〉지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그는 《키신저 전기 Kissinger: A Biography》의 작가이며 《현자: 여섯 명의 친구들과 그들이 만든 세계 The Wise Men: Six Friends and the World They Made》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아이작슨은 아내와 딸과 함께 워싱턴에서 살고 있다. 



3. 목차


옮긴이의 말_ 스스로 성공의 공식이 된 사람, 벤저민 프랭클린 
들어가는 말_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1장_ 방랑의 길: 보스턴, 1706~1723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라 

2장 숙련공: 필라델피아와 런던, 1723~1726 
규칙으로 무장하고 삶의 속도를 조절하라 

3장_ 인쇄공: 필라델피아, 1726~1732 
고귀한 소명에 뿌리를 내려라 

4장_ 시민: 필라델피아, 1731~1748 
열정에 열정을 더하라 

5장_ 과학자와 발명가: 필라델피아, 1744~1751 
호기심이 세상을 바꾼다 

6장_ 정치가: 필라델피아, 1749~1756 
겸손하게, 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라 

7장_ 고난: 런던, 1757~1762 
되는 것은 키우되, 안 되는 것은 버려라 

8장_ 다시 집으로: 필라델피아, 1763~1764 
눈앞의 현실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라 

9장_ 공작원: 런던, 1765~1770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포기하지 말라 

10장_ 반란: 런던, 1771~1775 
풍자의 힘 

11장_ 독립: 필라델피아, 1775~1776 
갈 길은 가라, 폭풍 속일지라도 

12장_ 외교관: 파리, 1776~1778 
현실과 이상을 결합하라 

13장_ 오만한 낙천가: 파리, 1778~1785 
자신을 알리되 완전히 알게 하지는 말라 

14장_ 중재자: 파리, 1778~1785 
인내와 끈기로 설득하라 

15장_ 현자: 필라델피아, 1785~1790 
마지막까지 신념을 지켜라 

에필로그_ 그리고 남은 사람들 
나가는 말_ 벤저민 프랭클린, 인생의 발견 
등장 인물 / 연대기 / 통화 환산 / 감사의 글 / 참고문헌



4. 책 속으로


프랭클린이 발명한 것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끊임없이 재창조된 것은 바로 그 자신이다. 미국 최초의 위대한 평론가인 그는 인생과 저술 속에서 새로운 미국의 원형을 창조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자신만의 얼굴을 대중에게 보여 주었으며 후세를 위해 이를 꾸준히 연마했다 ······ 그가 창조한 이미지는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가죽 앞치마로 상징되는 장인 계급 출신으로 태어나 자란 프랭클린에게는 기득권을 가진 엘리트보다 장인이나 사상가로서의 삶이 훨씬 편했다. 그는 세습 귀족의 겉치레나 허세에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살면서 자신을 ‘인쇄인 벤저민 프랭클린’이라고 부르곤 했다.(14쪽) 

미국의 개척자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너무 좁게 느껴지면 변방으로 떠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조금 유형이 다른 반항아였다. 황무지는 그에게 매력을 주지 못했다. 대신 그는 새로운 상업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던 뉴욕과 필라델피아에 매료되었다. 이곳에서는 자수성가의 기회가 있었다. 존 윈스럽이 청교도단을 이끌고 황무지를 개척했다면, 프랭클린은 시장 골목을 개척하러 나선 완전히 새로운 종자였다.(61쪽) 

빚을 갚을 때까지는 최대한 절약해야 한다. 항상 진실을 말하려 애쓰고, 만족시킬 수 없는 기대를 다른 사람에게 심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말과 행동에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이성적인 존재에게 있어 가장 매력적이고 탁월한 특성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부지런히 전념한다. 근면과 인내만이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절대 나쁘게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다.(87쪽) 

프랭클린의 목적은 부의 축적이 아니었다. 훗날 프랭클린이 누린 명성이 알뜰한 절약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가난한 리처드의 격언들도 금전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프랭클린이란 사람 자체가 탐욕스러운 자본가 타입은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저는 ‘부자로 죽었다’는 말보다 ‘유익한 삶을 살다 갔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205쪽) 

프랭클린은 현실 정치에서 능숙한 실무자처럼 힘의 균형 게임을 계산할 줄 알았을 뿐 아니라, 동시에 긍정적인 미국의 예외성을 활용할 줄 알았다. 미국의 예외성이란 바로 다른 나라들이 가지지 못한 덕이었다. 전략적인 권력에서 나오는 ‘강한 힘’과 이상 · 문화의 매력으로부터 흘러넘치는 ‘부드러운 힘’은 한 나라의 영향력을 넓히는 데 똑같이 중요한 요소이다.(528쪽) 

프랭클린은 첫 수로 미국과 프랑스의 동맹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수로는 영국과 평화를 협상하고 동시에 프랑스와의 우정도 지켰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명의 공격적인 선수가 겨루는 완벽한 3차원 게임을 보여 주었다. 그는 말의 배열이 안 좋을 때는 탁월한 인내심을 발휘했고, 말의 배열이 좋을 때는 전략적인 이점을 신중하게 활용했다.(646쪽) 

프랭클린은 새로운 공화국을 창조하는 데 이바지한 중요한 문서가 만들어질 때마다 항상 힘을 보탰다. 그는 유일하게 건국의 근간이 되는 네 가지 문서, 즉 독립 선언서, 프랑스와의 동맹 조약문, 영국과의 평화 협정서, 헌법에 모두 서명한 인물이다. 게다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최초의 연방 체계였던 1754년 올버니 계획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에 이미 각 주와 전국 정부가 권한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프랭클린이 1775년에 제안한 연맹 규약은 실제로 1781년 채택된 불운한 규약보다 최종 헌법에 더 가까웠다. (709~710쪽) 

프랭클린은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며 영리한 천재였다. 그는 순수 예술과 실용적인 기술 분야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과학적 발견에 재능이 뛰어났다. 그의 상상력은 대단했다. ······ 그가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유머는 섬세하고 유쾌했다. 그의 풍자는 신랄하면서도 선의를 바탕으로 했다. 그는 수시로 호라티우스, 유베날리스, 스위프트, 라블레가 되었다. 그는 냉소 · 비유 · 상징에 대한 천부적 재능을 능수능란하게 발휘하여,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는 프랑스 사람들의 표현처럼 어린애와 같은 단순함을 지닌 위인이었다. 그의 성격은 사람들을 항상 매료시켰다.(740쪽) 

프랭클린은 우연히 얻은 세습적 특권이 아니라, 능력이나 노력 또는 덕이 힘의 원천이 되는 새로운 정치 질서를 주장했고 그러한 질서를 정착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도망자 신분의 도제이던 그가 계급의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왕과 식사를 하는 고관이 되었다. 이것은 훗날 철저히 미국적인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프랭클린은 때로 털모자를 쓰고 자신을 낮춰 가면서까지, 엘리트의 겉치레를 완강히 거부했다. 이것은 그에게 원칙의 문제였다.



5. 출판사 서평


털모자로 소박한 현자의 이미지 만들어··· 
끊임없이 자신의 이미지를 새롭게 재창조하다 

작가, 인쇄업자, 출판업자, 과학자, 박애주의자, 정치가, 외교관, 사회개혁가··· 이 모두가 벤저민 프랭클린을 칭하는 말이다. 과연 그는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성공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생의 단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매 순간마다 깨어 아낌없이 시간을 활용했던 근면성실한 사람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은 절대 다시 찾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던 그의 철저한 시간 관리는 그를 평범한 인쇄공에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는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당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인물이었던 프랭클린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귀족 시대에 태어난 가난한 민주주의자로 모범을 보여 미국이 귀족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프랭클린이 발명한 것 중 가장 흥미롭고 끊임없이 재창조되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꾸준한 자기계발을 통해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갔던 그는, 일반인들이 자신의 통찰력을 공유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미국적인 장르인 자기계발 서적을 최초로 만들었다. 그 예가 바로〈가난한 리처드의 달력(Poor Richard's Almanack)〉과 《자서전》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창출해 나갔는데, 수레 가득 신문을 싣고 거리를 누비는 필라델피아의 어린 인쇄공이라는 이미지는 근면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프랑스를 누비는 털모자를 쓴 외교관이라는 이미지는 소박한 현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는 단순히 이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그쳤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매우 근면한 사람이었으며, 소박한 현자였다. 이와 같은 프랭클린의 실용주의적 전략과 현실적인 태도는 자기관리와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매우 유용한 것이다. 
한편 프랭클린은 복잡한 사생활 문제로 인해 실제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서출 아들을 거두는 일에 마지막까지 힘썼을 뿐 아니라, 인생에서 저질렀던 모든 과오를 선행으로 수정해 나갔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인간적인 모습은 후세에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보통 사람들의 영웅, 벤저민 프랭클린 

프랭클린이 스물한 살 때부터 흔들리지 않고 고수했던 근본적인 이상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하고, 보통 시민들의 지혜를 신뢰하는 것이었다. 프랭클린은 새로운 국가는 그가 ‘중간 사람들’이라고 지칭한 계층으로부터 힘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개인적 덕목을 배양하기 위한 자기계발 체계와 공동선을 증진하기 위한 도시 발전 프로그램을 통해 평범한 시민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지배 계급을 창조하여 공표하는 데 이바지했다. 보통 사람들의 영웅이 되었던 벤저민 프랭클린. 그의 삶 전반에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삶에 대한 애정, 그리고 덕을 향한 열정이 가득했다. 그로부터 중간 계급의 미덕과 가치를 바탕으로 한 미국적 국가 정체성이 발아했으며, 그의 의지는 미국의 정신이 되어 아직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인생의 발견: 벤저민 프랭클린’은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있어 미국 건국의 과정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또한 프랭클린이 제시하는 시간관리 노하우, 메모의 습관, 미래행동계획 등 구체적인 성공의 법칙이 담겨 있어 이를 구체적인 성공 지침으로 삼고 실천해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가 여든네 해 동안 지켜왔던 신념과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책은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고찰하도록 한다. 어떻게 하면 유익하고 덕스럽고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질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