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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추천 도서(18.3~19.2)

3월의 추천도서(1836) 가장 멍청한 세대 - 마크 바우어라인




1. 책 소개

정보들이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왜 점점 무지해져 가는가?

오늘날 우리 세대는 지식과 기술의 발달로 누릴 수 있는 삶의 우선권은 늘어나고 있다. 1980~1990년대 경제 디지털 혁명은 손쉽고 빠르게 정보와 상품, 오락과 친구를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의 지적 능력은 미디어나 전자 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가장 멍청한 세대』는 디지털이 어떻게 미래를 위태롭게 만드는지 ‘가장 멍청한 세대’의 탄생과 특징을 지식, 독서, 영상, 학습, 전통, 미래 등에 걸쳐 상세히 기술한다. 

저자는 시대를 잠식하는 무지와 무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적 노력과 사회 전반의 이르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책을 읽는 것을 권한다. 책은 젊은이로 하여금 숨을 고르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롤 모델을 찾게 하고 자신의 격동적인 감정을 관찰해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또한 지식인들의 파이프라인과 청년 단체의 양성으로 미래의 지식인들의 탄생을 도모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가정과 학교 마을과 시장이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출처 : 교보문고



2. 저자



저자 마크 바우어라인Mark Bauerlein은 에모리 대학 영문과 교수이며, 미국국립예술진흥회에서 일하면서 문화와 삶에 대한 연구를 감독했다. 그중에서 특히 위기에 처한 독서 문화를 심도 있게 연구해왔다. 『월 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위클리 스탠더드』, 『리즌』 등에 글을 기고했고 많은 책을 집필했다. 강연을 통해 대중과 활발히 접촉하고 있는 그는 ‘인디펜던트 여성 포럼’이라는 단체에서‘가장 좋아하는 지성인’이라는 말을 들은 바 있고, 칼럼니스트 조지 윌George Will은 그에게 ‘아찔한’ 사람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출처 : 교보문고


3. 목차


프롤로그 …… 5 

제1장 
지식 Knowledge …… 15 

제2장 
독서 Reading …… 49 

제3장 
영상 Media …… 91 

제4장 
학습 Learning …… 143 

제5장 
전통 Tradition …… 203 

제6장 
미래 Future …… 245 

에필로그 …… 274

출처 : 본문 중에서



4. 책 속으로


사람들은 제이 레노Jay Leno가 마이크를 손에 쥐고 촬영 채비를 마친 채 스튜디오를 떠나, 로스앤젤레스 거리를 걷는 사람을 대상으로 즉석 상식 퀴즈를 내는 《투나잇 쇼》의 ‘제이 워킹’ 코너를 재미있어 한다. 레노는 전문가답게 “미국 국기에는 별이 몇 개 있을까요?”, “예수님은 어디서 탄생하셨을까요?”, “토니 블레어Tony Blair는 누구입니까?” 같은 질문을 속사포처럼 퍼부으며 사람들을 놀린다. 때때로 그는 사람들에게 질문의 난이도를 고르게 해주는데, 8학년(우리나라의 중2)부터 2학년 수준까지 선택 가능하다. 가장 인기를 끈 참가자 몇 명은 《투나잇 쇼》 무대에서 열리는 가상 퀴즈쇼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응답자의 연령대는 대부분 어린 편이다. 이 사실은 연장자의 기억력이 더 좋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제이 워킹’ 코너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정규 프로그램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이는 20대다. 몇몇 질문과 응답을 살펴보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뭔지 기억하나요?” 레노가 젊은 청년에게 묻는다. 그러자 긴 머리 젊은이는 “잡지도 해당되나요?”라고 묻더니 잠시 후 “음, 아마 만화책이요”라고 대답한다. 이런 문답도 있다. “최초로 전구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 한 대학생이 곰곰 생각한다. “토머스 에디슨Tomas Edison이요.” 레노가 축하의 말을 건네는데 학생이 덧붙인다. “맞아요…… 연을 가지고 만들었죠.” 레노가 정정해준다. “그건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죠.” 
- 《제1장 지식》 중에서 

몇 주 동안 나는 라디오 인터뷰를 다수 했는데, 청중의 반응에 거듭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15분 정도 논평한 후 청취자와 전화를 연결했다. 전화선을 타고 통통 튀는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청취자와의 대화에 충격을 받아 방송이 끝나자마자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어보았다. 

발신자: 전 고등학교 학생인데요. 맞아요. 저도 책을 읽지 않고 친구들도 책을 보지 않아요. 
진행자: 왜 그런가요? 
발신자: 선생님이 숙제로 지정해준 책 내용은 지루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진행자: 예를 들면요? 
발신자: 어…… 어떤 남자에 대한 책 있잖아요. (침묵) 그, 왜, 있잖아요. 위대했던 남자. 
진행자: 네? 
발신자: 위대한 남자요. 
진행자: 혹시 『위대한 개츠비』를 말하는 건가요? 
발신자: 아, 맞아요. 누가 그 사람에 대해 읽고 싶겠어요? 

방송에서는 폭소가 터졌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여학생이 자신이 독서를 우습게 여긴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자 그토록 열을 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학생은 자신의 반反문학적 취향에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고, 자신이 정신적으로 빈곤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수업이 따분하니 독서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으며, 그토록 지루한 일을 여가 시간에 하라고 강의하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항변하는 듯했다. 독서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물론 이전 세대도 숙제나 과제를 혐오했으며 시대의 지적 흐름에 동참한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책과 담을 쌓은 의사 문맹(글을 읽을 줄은 알지만, 독서는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기 또래에서 이게 당연한 거라고 자랑스럽게 떠들어댄 세대는 없었다. 
- 《제2장 독서》 중에서


미디어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접근성도 발달하면서 멈출 줄 모르는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 혹자는 고작 10대가 이 모든 가능성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여가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인터넷과 비디오게임에 쏟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텔레비전 시청이나 라디오 청취 시간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관련 보고서는 오히려 반대되는 결과를 보여준다. 컴퓨터나 게임을 하는 데 긴 시간을 쏟는 청소년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과 라디오 청취 시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보다 오히려 길었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멀티태스킹이다. 보고서의 결론처럼 '미디어 사용이 미디어 사용을 야기하는' 결과다. 개인 공간에 접속, 피드, 채널이 많고 다양해질수록 이들은 쉽고 빠르게 적응하며 하나를 받아들일 때 다른 하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 추가해간다. 
성인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빽빽한 인터넷망, 동시다발적인 채널의 즐거움을 말이다. 자녀 세대 때 느리고 기본적인 감각 환경에서 자란 성인도 최신 발명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어디까지나 취침 전 신문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 외에 추가적인 일로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르다. 이들은 빠르게 진화하는 멀티미디어 환경 속에서 자랐으며 새로운 발전이 추가되는 족족 각각의 기술을 통합해서 받아들인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때 다른 기술과 경쟁하거나 방해 된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것과 편안하게 어울린다고 느낀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이 수업시간에 말했듯이 말이다. “저는 텔레비전을 켜두지 않고는 숙제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하면 정말 미칠 것 같아요.” 
- 《제3장 영상》 중에서 

메릴랜드의 한 고등학교는 테크놀로지에 쏟아 부은 예산이 엄청나 전국에서 인터넷 환경이 가장 뛰어난 학교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교사와 함께 교실을 둘러보며 학생이 엑셀 파일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가 혼자 교실을 지나칠 때는 똑같은 학생이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인기 뉴스를 읽고 있었다. 『뉴욕 타임스』에 에밀리 누스바움Emily Nussbaum이 쓴 10대 블로거에 대한 글을 보자. “M은 방과 후 집에 오면 즉시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함께한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며 일종의 멀티태스킹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세상을 떠다닌다. 저녁 시간 내내 M은 블로그 독자들의 댓글을 확인하며 반응을 살피고 그들의 관찰에 대한 풍자적인 지지 댓글과 인생에 대한 선문답 같은 글을 적으며 시간을 보낸다.” 누스바움이 묘사하는 또 다른 10대 블로거 J는 뉴욕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J는 온라인에서 울분을 터뜨리며 우스꽝스러운 독설로 자신을 실망시킨 부모, 교사들, 친구들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어이, 여러분! 사람들을 놀리는 건 그만두라고. 정말 형편없는 짓이니까, 특히 자신이 놀림감 되는 걸 싫어한다면 말이지……. 이건 공익광고였어. 이제 당신은 다시 어리석고 위선적인 삶으로 돌아가겠지.” 
더 신중하게 살펴보면 형편없는 문법과 10대 특유의 구어체적인 표현, 편협한 비꼬기가 블로그, 댓글,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에 범람하고 있으며 어휘도 심각해진 상황이다. 어휘 부족은 독해 능력의 향상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작문 실력이 제자리걸음하는 원인이다. 10대 블로그의 글들은 대개 단순한 구문, 소리 나는 대로 적기, 수준 낮은 어법 등에 머물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습관은 고착된다. 
- 《제4장 학습》 중에서 

떠오르는 이 집단은 ‘위대한 차세대’가 아니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지만 그렇지 못하다.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고, 멀티 태스크에 능하고, 또래 집단적 사고를 하는 21세기 청소년은 인류의 위대한 지적 도약, 글로벌한 사고, 네티즌십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린 사용자들이 새로운 수천 가지를 배웠으리라는 점은 의심할 나위 없다. 그들은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하고, 서핑하고, 채팅하고, 포스팅한다. 그러나 그들은 복잡한 글을 분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사실적인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고, 외교정책적인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정확한 철자법도 모른다. 과거에 대한 책임을 인지한 적도 없다. 이는 민주적 기반에 균열을 가져왔으며 청소년이 성인기로 접어들고 시민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이 자주 단절된다는 데서 알 수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또래 집단에의 고착은 계속되며 사회적인 습관도 동일한 수준에 머문다. 물론 취업 후에는 가정과 학교에 있을 때보다 자부심이 낮아지고 자신들에게 인기를 가져다주었던 행동이 더 이상 수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겨우 깨닫는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자리 잡기까지는 수년이 소요된다. 이들은 단편적인 뉴스를 접하고 때로 투표를 하지만 시민 활동은 또 다른 행성의 일이라 여긴다. 어디에 종착하고, 누구와 결혼하고, 얼마나 높은 지위에 올라가든 그들 대부분은 10대와 청년 시절에 구축했어야 마땅한 지적 도구를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20대에 더 좋은 일자리를 얻고 현명한 금융 습관을 쌓을지 몰라도 중요한 지식을 따라잡기는 힘들 것이다. 알리기에리 단테Alighieri Dante와 존 밀턴John Milton을 읽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더 이상 프랑스혁명사나 러시아혁명사를 읽을 시간이 없다. 정치사상은 뉴스 게스트나 신문 기고란을 통해 보는 것이지 과거와 현재의 책을 읽어서 정제된 사상이 아니다. 직장에서 몇 해를 보내는 동안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성숙한 개인 생활을 영위하게 될지 몰라도 문화적 전통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제5장 전통》 중에서 

현재 상태로 보았을 때 앞으로 세계의 지적인 측면은 어둡다. 경제, 기술, 의학, 미디어뿐 아니라 인문 교육과 시민 지식이라는 측면에서도 미래는 암울하다. 청소년의 여가 선호도, 유치하고 덧없는 행동 모두 지성이 나아갈 길을 만드는 데 한몫씩 거들고 있으며 안타깝게도 그 길은 내리막길이다. 대학생에 대한 1970년대식 유머는 여전하다. 대학 2학년생에게 인터뷰하는 이가 물었다. 
“학생의 무지와 무관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몰라요. 신경 안 써요.” 
이러한 농담은 더 이상 우습지 않다. 가장 멍청한 세대는 역사, 대외관계, 비교 종교학, 진지한 미디어와 예술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잘 모른다. 인격 형성기에 편향적으로 치우쳐서 지식을 추구하지 않으며 전통은 그들에게 낯선 외국어일지도 모른다. 공공 도서관에서 대출되는 책은 점점 줄어들지만 대출되는 비디오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점점 많은 아이가 쇼핑몰을 배회하지만 박물관에 가는 아이는 줄어든다. 점심시간의 대화가 이념 문제로 흘러가는 일 따위는 결코 없으며 휴대전화에서 휴대전화로 웹 사진이 끊임없이 돌고 돈다. 
부모와 교사가 여기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양심이 없는 것이다. 이제는 인터넷의 포르노 문화를 비난하는 보수주의자, 젊은이의 표를 얻고자 하는 좌파, 교육과정 향상을 요구하는 교육가뿐만 아니라 모든 30대 이상 어른이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모든 성인은 ‘구식 퇴물’이라는 딱지를 두려워하지 말고, 청소년의 비웃음에 움찔하지 말고, 무지와 무관심에 맞서 그들을 바로잡아주어야 한다. 
청소년은 더 이상 쿨 한 생각을 하거나 옳은 행동을 하지 않으며 도덕적 버팀목을 바꾸어야 한다. 진실을 말하자. 가장 멍청한 세대가 무지를 극복하려면 자신들이 몰두하는 문화가 사소한 갈등으로 이루어진 영역이며, 성인기야말로 시민적·역사적·문화적인 인식의 영역이자 영속적인 사상과 투쟁의 영역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은 다른 모든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역사의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의 시간도 곧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습관은 계속될 것이다. 
- 《제6장 미래》 중에서

출처 : 본문 중에서


5. 출판사 서평


“우리는 위대한 유산을 
영원히 잃어버린 세대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 독서의 종말이라는 우울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우리가 시급히 생각해보야야 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해럴드 블룸(예일 대학 교수, 문학비평가) 

▶ 나쁜 소식을 상쾌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풀어냈으며, 수많은 교육 통념을 통렬히 깨뜨린다. -『뉴욕 타임스』 

▶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가 정보를 접하는 방식이 어떤 문제에 부딪혔는지 날카로운 식견을 보여준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 문화와 기술이 학습과 사고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는커녕 민주주의를 위협할 만큼 무지한 대중을 양산해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 『월 스트리트 저널』 

▶ 청소년이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자기중심적 콘텐츠를 제외한 모든 것에 어떻게 점점 무지해지는지 증명해준다. - 『인디펜던트』 

▶ 당신이 20세 이하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단 한 권의 책이다. - 『USA 투데이』 

‘가장 멍청한 세대’의 탄생 

오늘날처럼 젊은이의 삶이 순조로웠던 시대는 없다. 물질적으로 매우 풍요롭고, 학교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으며, 손만 까딱하면 손쉽게 오락을 접할 수 있고, 엄청난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렇듯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얻으며 세속성과 자율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점점 낮은 연령대로 확산되는 듯하다. 많은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이 지식과 기술은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지적인 습관은 도리어 사라지고 있다. 21세기 젊은이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우선권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1980~1990년대의 경제·디지털 혁명은 기적처럼 손쉽고 빠르게 각종 정보와 상품, 오락과 친구를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젊은이의 정신도 자아에 발맞추어 성장해야 하고, 재미와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는 만큼 지식에 대한 갈망도 커져야 마땅하지만 계몽은 일어나지 않았다. 젊은이에게는 부모 세대보다 훨씬 많은 교육 기회가 주어졌지만, 2007년 설문 조사에 의하면 18~29세 중 56퍼센트가 지식수준이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50~64세는 22퍼센트뿐이었는데 말이다. 다시 말해 젊은 세대가 누리는 이익이 지적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의 지적 능력은 미디어나 전자 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에 능통하고 정신없이 바쁜 고교 졸업반 아이들에게 몇 가지 지적인 질문을 던지면 어떨 것 같은가. 이들은 대체로 체크카드, 휴대전화, 마이스페이스 페이지, 파트타임 일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지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뭐든 잘 알 것 같은 당당함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 필립 로스Phillip Roth가 2000년 『휴먼 스테인』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가장 멍청한 세대’라는 표현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물론 젊은이가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가장 멍청한 세대는 이런 습관을 야단스럽고 지속적인 것으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인류 역사상 물질적 조건과 지적 성취 사이에 이토록 깊은 골을 만든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이토록 많은 기술 향상을 겪고도 이토록 보잘것없는 정신 발전을 이룬 이들도 없었다. 

디지털이 그들을 결속하고 있다 

인디애나주 워소Warsaw의 고등학생 다섯 명을 학기 내내 추적한 <미국의 10대>라는 2008년 다큐멘터리에는 교훈적인 사례가 등장한다. 쉽게 들뜨고 잘 흥분하는 여학생이 한순간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상반신 노출 사진을 보낸다. 그 사진이 인터넷상에서 떠돌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말이다. 다른 여학생 두 명은 그 사진을 손에 넣고 가학적이고 거만한 즐거움에 도취되어 모든 인터넷 채널을 동원해 유포한다. 다음 날 아침 여학생이 교실에 들어섰을 때는 전교생 모두가 사진을 다운받아 
공유한 상태였다. 이 사건은 또래 문화의 위험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교훈을 준다. 또래 사이의 연락은 무한하며, 디지털 도구는 의식주나 공기처럼 일상적이고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특징이다. 10대는 서로 강렬하게 의식하고 사회적 압력을 느낀다. 10대에게 또래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것보다 나쁜 일이 있을까? 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10대는 이런 사회적 압력을 당연하게 여기며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아이가 이런 상황을 진심으로 즐기는 것은 아니다.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교실을 나서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는 걱정스러워한다. 환호성을 지르는 대신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으면 무언가 큰일이 일어났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물론 또래 집단의 압력은 마이크로칩이 발명되기 전부터 오랜 세월 존재했지만, 이메일, 휴대전화 등등의 디지털 환경은 이를 위험 수위까지 몰아가며 언제나 또래와 접속해 있는 네트워크 문화를 구축했다. 커뮤니케이션이 좁은 연령대에 집중된 수평적 형태가 되어가자 부모와 교사는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함몰 사태에 당혹스러워하며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고 있다. 

이 무지와 무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저자는 이처럼 ‘가장 멍청한 세대’의 탄생과 특징을 지식, 독서, 영상, 학습, 전통, 미래 등 총 6장에 걸쳐 상세히 기술한다. 국가 규모의 방대한 조사·연구 결과와 다양한 전문가 의견은 그의 논지를 견고하게 뒷받침해준다. 그는 시대를 잠식하는 무지와 무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적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이르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우선 고급문화를 오랫동안 접하는 것이야말로 취향을 기를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이지만, 팝 문화의 산물이 이토록 끈질기게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그런 취향을 기르기는 어렵다. 그런 폭격에서 일시적으로 도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대중적인 작품을 읽는 것도 고전을 읽는 것만큼이나 좋다. 책은 젊은이로 하여금 숨을 고르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롤 모델을 찾게 하고, 자신의 격동적인 감정을 관찰해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독서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는 알 수 없는 도덕적인 신념을 발견할 수도 있다. 독서 습관이 있는 독자는 점점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파악하는 이해력이 높아지고, 논쟁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과 스타일을 잡아내는 날카로움을 갖추게 된다. 이렇게 청소년기에 담긴 미적 비전을 인식하고 더 나은 날을 보낼 수 있다. 
또한 건전한 사회에는 지식인들의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단, 유명한 지식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사색과 토론을 지속하는 분위기가 정치에 관심 있고 재능 있는 학생뿐 아니라 훨씬 많은 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사상가와 이론가로 이루어진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지식을 갖춘 시민에 의해 번영한다. 그리고 더욱 광범위한 지식이 대중에 확산될 때 더 많은 지식인이 양성될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20년 후 메이저리그급 지식인들을 탄생시킬 일종의 마이너리그 시스템으로서 청년 단체를 양성해야 한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경고할 때, 보통 과학이나 기술의 경쟁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상이나 가치가 아니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엔지니어, 생화학자, 나노역학자와 창업자를 배출할 뿐만 아니라 문화 경험이 풍부한 국민도 길러내야 한다. 정책입안자, 명문장가, 정책가…….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을 길러내는 데는 옳은 행동을 칭찬해주고 잘못된 행동을 질책해줄 멘토, 사교생활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부모, 어려운 단어에 이상한 눈길을 보내는 대신 그들의 지적 능력을 존중해줄 또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가정과 학교, 마을과 시장이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가장 멍청한 세대는 현재 진행형이며, 이를 해결하는 데 민주주의의 존폐가 달렸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들이 상속받은 특권을 누릴 자격이 없는 세대로 기억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위대한 유산을 영원히 잃어버린 세대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출처 : 인물과 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