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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추천도서(22.3~23.2)/2022-12

12월의 추천도서 (3589) 같은 일본 다른 일본

1. 책소개

 

 

진보와 반동의 시계추를 오가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읽어야
비로소 일본 사회의 ‘지금’을 이해할 수 있다

‘혐한’과 ‘반일’을 넘어서, 한일 양국의 현재를 직시하는
미디어 인류학자의 날카로운 시선!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저자 :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에서 학제정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네이버, 다음, 오마이뉴스재팬 등에서 일을 했다. 늦깎이로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뒤, 도쿄대, 간다외국어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2021년 18년간의 일본 생활을 접고 귀국해 현재는 미디어오늘 산하 넥스트리터러시 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세상을 바꾼 미디어』, 『모든 것은 인터넷에서 시작되었다』 등이 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프롤로그 현재진행형의 일본 사회, 이웃 나라의 ‘지금’을 읽는 눈 _004

1부 일본 사회,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일본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젊은이들_ 일본의 젊은 세대는 우경화하고 있나?
일본 시민들은 왜 가만히 있는 것일까?_무능한 정부를 꾸짖지 않는 일본 시민사회
한국에는 금수저, 일본에는 오야가차_사회적 불공정 문제는 한일 공통의 과제
후쿠시마는 잊지 않는다_‘위험사회’의 민낯을 생각하다
‘어떤 집을 살까?’가 아닌 ‘어떤 집에 살까?’_일본의 부동산 사정
‘성차별’인가, ‘성 차이’인가?_성역할 고정관념을 보는 일본 사회의 시각
LGBT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_사회적 소수자의 보편적 인권을 둘러싼 한일 공통의 과제
연애에 시큰둥한 일본의 젊은이들_“연애가 행복의 본질은 아니다”, 변화하는 연애관
일본의 젊은이들은 왜 소비를 멀리할까?_‘제로의 소비문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흐름
중장년이 된 히키코모리_일본이 앞서 경험하는 고령사회 문제를 반면교사로
아톰에서 페퍼까지, 휴머노이드 로봇과 일본 사회_과학기술과 상상력
※ 일본 사회, 올림픽과의 악연

2부 11가지 키워드로 알아보는 일본 문화
소속 의식을 통해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집단주의 문화_다시 읽는 『국화와 칼』
지진을 모르면 일본을 이해하기 어렵다_재난은 그 사회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다
‘타인에게 폐 끼치기 싫다’라는 일본의 거리두기 실천_문화마다 다른 사회적 거리두기
일본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를까?_들켜야 하는 ‘혼네’와 들키기 위한 ‘다테마에’
‘아날로그 원어민’이 주도하는 일본 사회_일본에서 디지털 경제의 정착이 더딘 이유
간토와 간사이, 일본에 공존하는 다른 문화_도쿄와 오사카의 ‘이문화’를 이해하기
노익장의 일본 사회_‘새로움’보다 ‘원숙함’을 높이 평가한다
일본 사회, ‘매뉴얼 왕국’의 명암_‘모노즈쿠리’에는 강점, 코로나 시대에 약점인 매뉴얼주의
‘스미마센’의 화법을 통해 바라본 일본 문화_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자기 결의
최장수 총리에게 건네는 ‘오츠카레사마’_배려의 문화가 정치에는 독이 된다
오타쿠의 본원지, 일본의 마니아 문화_대중문화의 저력은 다양성과 자유로움에서 나온다
※ 일본의 젊은이들과 『82년생 김지영』을 읽다
3부 한국이라는 거울에 비춰본 일본 문화
여배우는 왜 남편의 불륜을 사죄했나?_한국의 ‘우리’와 일본의 ‘우치’
일본의 시계는 느리게 간다_한국의 ‘빨리빨리’ 정신과 일본의 지나친 완벽주의
오모테나시와 정_한국과 일본, 서로 다른 환대의 문화
‘홀로 하기’의 일본 ‘더불어 하기’의 한국_집단주의와 개인주의가 공존하는 일본 사회
일본인에게 ‘성씨’는 무엇을 의미하는가?_한국의 가족과 일본의 가족
삐삐와 포케베루_서로 다른 미디어로 진화한 한국과 일본의 무선호출기
취중진담과 노뮤니케이션_다른 듯 같은 듯 음주 문화의 한일 비교
코로나에 걸린 시마 과장_장수하는 일본의 콘텐츠 요절하는 한국의 콘텐츠
한일 문화 속에서 본 ‘이타적 자살’의 민낯_끊이지 않는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자살에 대한 단상
김치와 기무치_음식 문화는 이동한다
일본의 대학 사회와 연구 공동체_연구 공동체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생각한다
※ 냉면을 찾아서-움직이는 식문화와 모리오카 냉면

4부 국경을 넘나드는 미디어와 한일 관계
혐한의 실체는 무엇인가?_한일 관계를 지배해 온 혐오 담론
일본이 한국을 보는 눈은 어떻게 변했나?_21세기 대중문화 교류로 높아진 인식, 편향된 이미지도 확산
한국이 일본을 보는 눈은 어떻게 변했나?_‘미워도 배워야 하는 나라’에서 ‘가깝고 친근한 관광지’로
혐한 악플의 문화적 기원_때로는 ‘악플’보다 ‘무플’이 더 낫다
‘패전일’이 아니라 ‘종전일’_일본 시민사회의 오랜 숙제, 전쟁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과 ‘FM요보세요’_재해 상황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가짜 뉴스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자이니치_고된 삶 속에서 싹튼 디아스포라의 문화
일본 사회에 불어온 ‘제4차 한류’_〈오징어 게임〉으로 확장된 한류 팬덤
인터넷 시대, 친밀한 한국어와 일본어_일본 특유의 한자 읽기 시스템과 언어문화의 교류
일본 젊은이 사이에 부는 한국어 붐_인터넷 시대의 ‘피진’ 현상
일본을 떠나며_일본 사회에서 외국인으로 살기

에필로그 ‘일본인’ 혹은 ‘한국인’이라는 벽을 뛰어넘기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젊은이들이 권위나 기존 질서에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옹호하는 현상은, 개혁파와 수구파를 구분하는 구시대적 진영 논리에서는 ‘보수화’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정치적 이데올로기와의 결별이 과거의 질서를 지키자는 보수적 의지에 의한 것은 아닌 듯하다. 고달픈 경쟁에서 패배감을 맛보기 일쑤인 현실과 타협한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데올로기 없는 보수화’는 젊은 세대가 우경화하는 징조라기보다는,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성세대의 정치적 감각이 젊은이들에게는 아무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_27쪽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헛발질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일본 시민들은 왜 무능한 정부를 꾸짖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폭주하는 권력을 시민의 힘으로 응징한 경험이 생생한 한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궁금증이다. (…) 이쯤 되면 시민의 인내심도 바닥날 만한데, 시민들이 정부를 꾸짖는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일본의 시민들은 스스로의 생명과 건강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인가? 일본의 시민들은 왜 무능하고 오만한 권력을 묵인하는 것일까?
_28~29쪽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대지진을 직접 경험하는 일본인들은 캉디드의 비관적이지만 세속적인 삶의 전략에 어렵지 않게 공감할 것이다. 실제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실감한다.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집단주의적 결속력이 더욱 강화되는 한편, 외부에 대한 배타적인 시각도 한층 강해졌다.
대지진을 경험한 뒤 캉디드는 종교에 환멸을 느끼고 삶에 대한 낙관주의적 태도를 거두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 사회에서 글로벌한 연대와 개방성을 지향하는 시민사회의 이상주의보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듯이 보이는 배타적인 쇄국주의가 설득력을 얻는 것도 이런 태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비관적인 세계관은 정치적 우경화를 부채질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재난은 사회 구성원의 세계관을 변화시키고, 결과적으로는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_117쪽

즉, 혼네는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두는 속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들켜야 하는 속마음이다. 달리 표현하면 다테마에는 속마음을 감추는 수단이 아니라, 속마음을 들키기 위한 수단이다. 다테마에로 혼네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다테마에로 혼네를 에둘러 드러낸다는 해석이 더 어울린다. 그런 점에서 다테마에와 혼네의 문화는 속내를 감추는 이중성과는 거리가 멀다. 정반대로, 간접적이나마 속내를 분명히 드러내는 능동적인 방법이라고 할 만하다.
_130~131쪽

하지만 도쿄가 일본 사회와 문화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을 타깃으로 하는 ‘혐오 발언’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한국에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사카에서 이런 ‘혐오 발언’을 금지하는 조례를 앞장서 도입했다는 점, 혐오 발언을 한 인물의 신상을 공표하도록 정한 이 조례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며 극우 단체가 제기한 위헌 소송이 최근 기각되었다는 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적인 우경화가 일본 전체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간사이 지방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_ 146~147쪽

오모테나시라는 개념에는 친절을 일종의 ‘기술’로 해석하는 독특한 문화적 코드가 숨어 있다. 손님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아는 스킬, 그리고 손님의 요구에 미리 철저하게 대비하는 준비 정신이 친절을 실천하는 방법론이다. 결과적으로는 손님에 대한 배려와 서비스로 가시화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친절의 실천 기술을 가다듬고 궁극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자기만족적 환대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_205~206쪽

한일 양국에서 혐한이라는 말의 존재감이 커진 경위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했던 1990년대 초반 일본 사회는 한국에 대해 무지했다. 일본 사회가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한반도를 침략했던 과거사를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피해를 주었던 상대국의 현 상황에 대해서도 잘 알 필요가 있다. 한국인에게는 ‘일본 사회가 한국을 잘 모른다’라는 사실 그 자체가 문제로 느껴진다.
_272쪽

한국에서는 의외로 ‘제3차 한류’가 큰 화제가 되지 않았다. 대형 연예 기획사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의 매스미디어도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본 젊은이들의 자발적인 정보 공유로 이 흐름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이전의 한류보다 더 인상적이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한국식 화장과 패션을 찾아다니고 떡볶이와 치즈닭갈비를 즐기는 광경이 꽤 이색적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한일 관계가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에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플랫폼 속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은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꾸준히 키워왔던 것이다.
_327~328쪽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미워도 배워야 할 나라’인가,
‘맛있는 스시를 먹을 수 있는 여행지’인가?

유통기한이 지난 관점을 버리고
일본의 ‘지금’을 직시하면 숨겨진 차원이 보인다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인 저자가 과거에 멈춰 있는 일본 사회에 대한 인상론을 극복하고자, 변화하는 일본의 현주소를 입체적인 시각으로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2019년 12월부터 격주로 일본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안을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담고 있는 이면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단순히 외부자의 시각으로 그때그때의 이슈에 대해서만 다루는 게 아니라, 18년 간 일본에서 살면서 체화한 문화적 맥락을 녹여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이 책에는 ‘도쿄’라는 지역 공동체의 주민으로서, 다른 일본의 대학 사회라는 연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부지런히 참여관찰을 해온 결과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일본 사회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김경화 선생은 “변화하는 일본 사회와 문화의 역동성을 기술하는 데에 최적의 경력과 조건을 갖췄다”(이문웅 서울대 명예교수). 15년이 넘는 일본 생활에서 듣고 보고 경험한 일들, 일본 대학에서 디지털 미디어론을 강의하는 교수로서 대학생들과 나눈 대화, 다양한 연구자료와 인터뷰 등이 그의 통찰력과 결합하여 일본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4부로 구성된 본문 중 1부 ‘일본 사회,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에서는 일본 젊은이들의 사고방식, 한국과 일본이 공통으로 직면한 과제 등을 담았다. 2부 ‘11가지 키워드로 알아보는 일본 문화’에서는 집단주의, 자연 재난, 아날로그, 오타쿠, 매뉴얼주의 등 비교적 한국에 잘 알려진 현상이 현재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기술했다. 3부 ‘한국이라는 거울에 비춰본 일본 문화’에서는 ‘우치’와 ‘우리’, ‘오모테나시’와 ‘정’, ‘홀로 하기’와 ‘더불어 하기’ 등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특징을 비교했다. 4부 ‘국경을 넘나드는 미디어와 한일 관계’에서는 급변하는 정보 환경 속에서 한일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담았다.
이 책은 일본 사회와 문화에 대한 탐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문화가 어떤 얼굴로,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개별 사건들에서 본질을 읽어내는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일본은 물론 우리 사회까지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일본 현지에서 찍은 사진에 다채로운 일러스트가 더해져 이해를 돕는다.

현상 이면의 본질을 읽어내는 세밀한 눈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 친절하다, 내성적이다, 사과를 잘한다……. 한 번쯤 들어봤을 속설이다. 정말 그럴까? 저자는 일본의 어떤 문화적인 특성 때문에 우리가 그런 인상을 갖게 되었는지를 다양한 예시를 통해 설명하면서 오독을 방지한다.
예를 들어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라는 속설은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라는, 일본 문화 특유의 화법과 태도에서 비롯되었는데, 다테마에는 ‘외부에 밝히는 공식적 생각’, 혼네는 ‘진짜 속마음’을 가리킨다. 업무를 마친 상사가 직원에게 회식을 제안했다고 하자. 업무에 시달려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한 직원은 “안타깝지만 업무가 남아서 회식에 갈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했다. 직원은 업무가 남아 있다는 말(다테마에)로 회식에 갈 마음이 없다는 본인의 의사(혼네)를 에둘러서, 하지만 명확하게 표명한 것이다. 이처럼 혼네는 숨겨두는 속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들켜야 하는 속마음이다. 다테마에는 속마음을 감추는 수단이 아니라, 속마음을 들키기 위한 수단이다. 다테마에와 혼네의 문화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이 아니라, 간접적이나마 속내를 분명히 드러내는 능동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일본인이 ‘스미마센’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는 겸손의 정서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스미마센은 감사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으로, ‘남에게 빚지고 싶지는 않다’라는 자기만족적인 생각이 더 강하게 작용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진심을 담은 극진한 접대’를 뜻하는 오모테나시라는 개념 역시 그 속에 숨어 있는 독특한 문화적 코드를 이해하지 않으면, 일본인의 친절에 대해 오해할 수 있다. 오모테나시는 손님에 대한 배려와 서비스로 가시화되지만, 친절의 실천 기술을 가다듬고 궁극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자기만족적 환대의 문화에 가깝다.

한국과 일본, 서로를 거울삼아 비춰보다

저자는 또한 일본과 한국을 서로 비교하여 살펴보는 비교문화론적 관점을 제시하는데, 이를 통해 일본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돌아보게 된다.
일본의 ‘우치’는 가족이나 친구 등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뜻한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우리’와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한국의 ‘우리’는 사적인 교류와 친근함으로 뭉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일본의 ‘우치’는 공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우치’의 잘못은 ‘나’의 허물이라는 공식이 성립해, 남편의 불륜에 대해 아내가 사과하는 뜻밖의 일도 벌어진다. 일본의 ‘우치’는 장벽이 높아서, 결혼이나 입학, 취직, 개업 등의 공적인 계기를 통해서만 ‘우치’ 공동체에 소속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와 ‘남’의 경계선이 변화무쌍한 한국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사적 인간관계를 넓히는 데 소극적이다. 일본인이 내성적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역동성과 인간미가 넘치는 한국 사회에 비해, 일본의 인간관계가 차갑고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은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 정치나 자본 등 권력 근처에 뿌리내린 점을, 일본은 외국인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과 차별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국와 일본의 문화 차이에 따라 같은 기술이 다르게 진화하는 사례도 흥미롭다. 1990년대에 널리 사용된 개인용 무선호출기(한국의 ‘삐삐’, 일본의 ‘포케베루’)는 한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한국의 삐삐는 목소리나 음악 등 소리를 전달하는 시끌벅적한 구술 미디어로 탈바꿈한 반면, 일본의 포케베루는 문자를 매개하는 과묵한 문자 미디어의 길을 택했다. 이는 인터넷 이용에서 한국은 구어 중심, 일본은 문자 중심이라는 차이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 음성이나 동영상을 활용하는 플랫폼이 빠르게 보급되었지만, 일본에서는 문자나 이미지로 소통하는 SNS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양국의 성씨 제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큰 차이가 있고, 이는 가족 개념의 차이까지 빚어낸다. 한국의 성씨는 씨족과 혈통의 계보를 강조하는 ‘속인주의’ 사고방식을 따르는 데 비해, 일본의 성씨는 고향이나 거주지의 특성이 드러나는 ‘속지주의’ 사고방식에 가깝다. 씨족의 계보를 중시하는 속인주의 전통에서는 혈연을 멋대로 바꿀 수는 없으니 성씨는 개인에게 주어진 본질이자 숙명이다. 반면, 속지주의 전통에서 성씨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혈연관계에 배타적으로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개인의 의지에 따라 끊을 수도 있고 새로이 맺을 수도 있는 상대적인 가족 개념인 것이다.

한일 관계를 지배해 온 단어 ‘혐오’.
이를 대체할 언어를 찾다

미디어 인류학자인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가 상대방을 어떻게 보여주는지에 주목한다. 우리는 미디어라는 렌즈를 통과하면서 ‘가공’된 결과로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그에 근거해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디어가 묘사하는 일본은 극우 사상과 배타주의로 얼룩진 사회이다. 일본의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을 불필요하게 부각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저자는 한일 양국에서 ‘혐한’이라는 말의 존재감이 커진 경위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혐한이 한일 매스미디어의 캐치볼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무시할 수 없는 정치 세력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在日特?を許さない市民の?’, 줄여서 ‘재특회’라고 부르는 단체는 자이니치나 한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일삼는 대표적인 혐한 세력이다. 이 단체가 발족한 것은 2006년. 한일 언론이 입을 모아 정체불명의 혐한을 걱정하기 시작한 지 무려 10여 년 뒤의 일이다.”(271쪽)
“언어에는 기묘한 힘이 있다. 우리는 언어가 현상을 기술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일단 언어로 형상화된 현상이 거꾸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혐오라는 언어가 오랫동안 한일 관계를 지배해 왔다. 이제 이를 대체할 언어의 실마리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276쪽)

‘혐오’를 대체할 언어의 실마리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다행히 저자는 우려에 그치지 않고 그 가능성까지 소개한다.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거의 비극을 반면교사로 삼은 일본 시민사회의 노력 역시 존재한다. 바로 ‘FM요보세요’라는 라디오 방송이다. 1995년 1월 한신 대지진이 고베를 강타했을 때, 일본의 시민운동가들은 비영리단체를 꾸리고 ‘FM요보세요’(한국어 ‘여보세요’에서 따온 명칭)라는 라디오 방송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송출한다. 지진 피해를 입은 자이니치(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한국인과 북한 국적의 조선인)들에게 신속하게 재해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인들에게 자이니치 역시 지진 피해자이자 지역 공동체의 일원임을 정확하게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한일 관계가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에도, 일본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자발적인 정보 공유로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꾸준히 키웠고, 그 결과 제3차 한류의 흐름이 탄생했다. 또한 저자는 『82년생 김지영』을 제자들과 함께 읽으며, 한국 사회와는 다른 문화적 배경, 다른 젠더 감수성을 가진 일본의 젊은이들이 공감한 것에서, 평범함 뒤에 숨은 크고 작은 억압에 대항하는 문화적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친일 반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 사회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인류학자가 안내하는 이 흥미로운 여행에 함께할 것을 권한다.

 

출처: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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