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소개

 

남편이 떠난 서가를 서성이며 읽고 쓴 독서에세이!

차마 정리하지 못한 남편의 서가를 돌아보는 『남편의 서가』. 《기획회의》에서 2012년 1월 20일부터 2013년 4월 20일까지 저자가 연재해온 ‘남편의 서가’를 모아 엮은 책으로 출판평론가 최성일의 아내인 저자가 남편이 떠난 6개월 뒤부터 1년 반 동안 쓴 글을 만나볼 수 있다. 출판평론가 남편을 둔 아내가 그와 함께 살면서 겪은 일상과 남편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을 적어 내려간 글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가족의 생활기로도 볼 수 있는 이 책에서 가족의 죽음에 앞에 남겨진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까지 마주하게 된다. 남편을 잃은 저자가 그 빈자리를 채워가는 과정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서른 한 편의 독서일기 속에서 아이들이 죽음을 왜곡하지 않고, 상실을 상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엄마의 모습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떠난 사람을 기리고 상실한 마음을 치유하는 애도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소믈리에 한마디!

저자는 베레나 카스트의 《애도》를 읽으며 저자는 자신의 행위가 고인을 잘 보내려는 나름의 애도 작업임을 확인 받기도 했고, 《일학년이 된 엄마와 아빠》를 통해 1학년 아이의 엄마가 된 자신을 돌아보고 자녀 양육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한밤중에 서가 앞에서 발뒤꿈치를 까딱거리며 책을 훑어보는 자신의 모습에서 남편을 발견하기도 했던 저자가 남편이 두고 간 책을 읽으며 남편을 떠올리고, 아이들과 함께 치유해가는 과정을 통해 애도의 한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출처: 교보문고

 

2. 저자

 

저자 : 신순옥

저자 신순옥은 1970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안양여고를 거쳐 인하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결혼하여 전업주부로 살다가 2011년 7월 남편과 사별했다. 남편을 잃고 6개월이 된 시점에서 격주간 출판전문잡지 <기획회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슬하에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을 두고 있다. 현재 <기획회의>에 ‘남편의 서가’를 연재중이며 <경향신문> ‘오늘의 사색’에 글을 쓰고 있다.

출처: 교보문고

 

3. 목차

 

서문

1장 애도하는 여인
애도하는 여인
아이를 키운다는 것
‘나비를 잡는 아버지’의 변명
‘순옥’과 눈다래끼
엄마는 복도에서 벌 받는 중
우리 가족이 ‘비빔툰’의 애독자가 된 사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무게를 더한 그림책
도서관에서 생긴 일
아낌없는 나무를 다시 생각하다

2장 사별의 고통과 슬픔
깜냥껏 친구를 사귀는 아이들
당신은 누구시길래
학생이란 걸 해야만 할 때
내가 그림책을 읽는 이유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다
아이와 ‘살러 가는’ 여행
할머니들은 열공 중
엄마 하면 생각나는 것들
사별의 고통과 슬픔
빵과 바나나와 감자

3장 재회
고종석 선생님께
남이 뭐라든 제 갈 길을 간 사람
동심 예찬
전철을 탄 엽기과학자
나는 오늘도 일기를 쓴다
대중매체와 덜 친하기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화, 내? 말어?
고맙습니다, 선생님
재회
아빠에게 편지 쓰기

참고 도서

출처: 본문 중에서

 

4. 책속으로

 

이 책을 만나기 전, 나는 남편과 죽음에 집착하는 내가 은근 걱정스럽기도 했고, 내 행동이 지나치게 유별스러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별나다니? 책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를 위해, 얼마 동안 애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원칙도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가 어느 대상에게 감정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는 바로 그만큼 슬퍼해야 한다.” 내 행위가 고인을 잘 보내려는 내 나름의 애도 작업임을 나는 확인받을 수 있었다. ― 23쪽, 「애도하는 여인」중

『천자문』 읽는 재미를 배가하는 김성동의 에세이를 통해 나는 훈장 노릇하는 첫날부터 운명처럼 시인 박정만의 종명시終命詩와 대면한다.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단 두 행의 짧은 시에서 남편의 육성이 묻어난 듯했다. 그러니 내 심장은 콩닥콩닥 뛰고 목소리가 떨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김성동은 무시무종無始無終의 광활한 우주의 단상에 시인의 종명시를 포개놓았다. ― 66쪽,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중

당신이라는 사람이 이 땅에 살기는 한 것일까? 영정 속의 당신이야말로 당신이 이 땅에 살다간 증좌이지만, 나는 당신이라는 사람과 어떤 세월을 엮었는지를 도통 알 수가 없다. 집안에 널린 유품에는 이제 더 이상 당신다운 기품은 없다. 당신은 집안 곳곳에 배인 당신의 기운을 모조리 거둬갔다. 당신은 존재하나 당신은 어디에도 없다. 당신이 저술한 책에서 당신의 이름과 얼굴을 마주치지만 나는 그것들이 내가 아는 당신인지 아닌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당신이라는 사람이 이토록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존재였을까. 살아서 우리가 일군 삶이랄지, 사랑이랄지 하는 속성들이 죽음 앞에서 이렇게 공空으로 돌아가고 속수무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의 부재가 당신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자꾸 캐묻게 한다. ― 111쪽, 「당신은 누구시길래」중

뜻하지 않게 남의 일기를 보고 실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경우도 있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들은 상대가 비밀리에 적은 글이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다. 남편은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내 일기를 훔쳐보고 그것을 내 일기장에 증거로 남겼다. 고백건대 나 역시 남편의 일기를 자주 훔쳐봤다. 나는 안 본 척 시치미를 뚝 떼버리지만, 남편은 몰래 본 것을 마음에 담아두지 못하는 양심적인(?) 사람이다. 아내의 일기장에 ‘일기 봤음’이라는 표시를 해둘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다. ― 212쪽, 「나는 오늘도 일기를 쓴다」중

가끔은 이것 아니면 저것 식으로 명쾌하게 답이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나눗셈의 ‘몫’으로만 떨어지던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머지’가 생기지 않는 나눗셈법을 터득하게 되는 게 아니라 ‘나머지’를 쌓아 두는 창고가 넓어지는 것”이다. 처치 곤란한 나머지가 쌓인다고 한탄하지 말고 때로는 수긍하기 힘든 인생사를 ‘운’으로 돌리는 것도 인생살이의 지혜가 될 수 있으리라. “‘운이 나쁘다’는 표현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일에 실패한 사람,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을 감싸 주는 따뜻한 발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 258쪽, 「재회」중

출처: 본문 중에서

 

5. 출판사서평

 

2011년 7월 2일,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출판평론가 故 최성일. 그의 아내 신순옥은 남편이 남기고 간 책을 차마 버리지 못했다. 『남편의 서가』는 신순옥이 그 책들을 읽고 <기획회의>에 써온 서른한 편의 독서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출판평론가 남편을 둔 아내가 그와 함께 살면서 겪은 일상과 그를 떠나보낸 상실감이 담겨 있다. 저자는 『애도』를 읽으며 상실 후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천자문』『성경』을 읽으며 떠나간 이의 빈자리를 채워간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떠난 사람을 기리고 상실한 마음을 치유하는, 애도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는 보여준다.

출판평론가의 아내, 남편이 남기고 간 책을 읽고 글을 쓰다
출판평론가 최성일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내 신순옥은 남편의 마지막 책이 될 『한 권의 책』이라는 서평집의 서문을 써야 했다. 그녀는 남편이 책에 대해 가졌던 생각, 글을 쓰는 습관 등 곁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만이 가진 기억들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또한 7년간의 투병 과정과 5개월간 지속된 마지막 병원 생활에서 남편이 죽음과 대항해 보여준 의연한 모습에 감사를, 그리고 미안함을 표현한다. 마지막 대목은 대학교 소강당에서의 풋풋한 두 사람의 만남부터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남편과의 인연을 되새기는,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 편지는 한용운의 시를 빌려 “당신은 갔지만, 저는 당신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로 끝을 맺는다. 아내가 쓴 서문은 책을 읽는 이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리고 얼마 뒤, 남편이 글을 기고했었던 출판전문지 <기획회의>에 자신의 이름으로 독서에세이를 연재하게 된다. <남편의 서가>는 남편이 떠난 6개월 뒤부터 1년 반 동안 쓴 글을 묶은 책이다.

故 최성일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아내의 글 솜씨를 칭찬하곤 했다고 한다. 아내는 책이 나왔으면 “옥아, 너 드디어 해냈구나!”라며 남편이 제일 먼저 축하를 해줬을 거라고 말한다. 그녀는 남편이 해마다 보내던 카드에 답장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라 남편이 떠난 다음 글을 쓰게 된 걸 미안해한다.

출판평론가인 남편이 떠난 뒤 남은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책이었다. 아내는 거실과 아이들의 방을 점령한 책을 정리하려다 남편을 두 번 죽이는 일 같아 차마 하지 못했다. 아이들도 “우리 집 책은 아빠 같다”며 책을 정리하는 것을 만류했다. 결국 책을 두 겹으로 꽂을 수 있는 책장을 들여 책을 꽂아나가던 그녀는 『애도』라는 책을 발견하고는 책을 정리하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철퍼덕 앉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연히 집어든 책을 통해 남편과 죽음에 집착하는 자신이 유별스러운 건 아닐까 은근히 걱정했던 저자는 그 또한 고인을 잘 보내려는 나름의 애도 과정이었음을 알게 된다(17쪽, 「애도하는 여인」). 그 후 그녀가 고른 책들은 상실감을 덜어주고, 남편을 비롯해 가족들과 살아온 삶의 시간들을 길어 올리는 매개가 되어 준다.

저자는 다양한 책을 읽으며 남편을 ‘후배오빠’라고 부르며 연애할 때 있었던 자신의 이름에 얽힌 일화(40쪽, 「‘순옥’과 눈 다래끼」) , 아이를 갖게 되고 아이들이 크면서 자녀교육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 늘그막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어머니 이야기(145쪽, 「할머니들은 열공 중」), 병상에 계신 아버지 곁에서 아들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던 일(121쪽, 「내가 그림책을 읽는 이유」) 등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며 경험한 가족과의 일상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또한 남편이 쓴 책을 읽으며, 한 인간으로서 남편의 면모를 조명하기도 한다.

저자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처자식을 먹여 살린 남편의 고충을 절실하게 이해하는 일이기도 했다. 저자는 독서에세이를 연재하면서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글이 잘 안 써질 때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잠을 이룰 수 없을 때가 많았다고 고백한다. 한밤중에 서가 앞에서 발뒤꿈치를 까딱거리면서 책을 훑어보는 자신의 모습에게서 남편을 발견한다. “그도 글에 대한 부담으로 식구들이 잠든 사이 홀로 고뇌를 했던 것일까.”

이 책에는 가족의 죽음에 대면하여 남겨진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가감 없이 드러난다. 어느 날 저자는 아들이 유치원 학예회에서 <아빠 힘내세요>에 맞춰 율동하는 것을 보고 “남편의 빈자리를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니라 엄마로서 아빠의 빈자리를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이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아이 둘과 『천자문』을 몇 달에 걸쳐 읽어나가기도 하고, ‘아빠’라는 단어를 불러보게 하고 ‘아빠에게 편지 쓰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아빠의 죽음을 건강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유도한다. 이처럼 아이들이 죽음을 왜곡하지 않고, 상실을 상실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는 상실감을 훌훌 털어버리고 밝고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엄마의 모습은 누군가의 죽음에 마주한 아이들에게 어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계절은 흐른다. 딸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저자는 남편이 남긴 장서가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문득 깨닫는다. “책만 두고 떠나버린 사람에게 ‘어쩌자고, 어쩌자고.’ 하며 장탄식을 했지만, 결국 남편이 남긴 장서는 나의 밥벌이가 돼주고, 아빠를 잃은 아이들의 상실감을 덜어주고 있다. 가족들에게 살 길을 책에서 찾으란 의미로, 그는 이 많은 장서를 남기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떠난 사람을 기리고 상실한 마음을 치유하는, 애도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는 보여준다.

출처: 북바이북

1. 책소개

 

우리가 ‘공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인간과 인간이 만드는 극적인 변화 『공감의 힘』. 이 책은 ‘공감’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탄생되었고, 어떻게 그 영향력이 점차 증대되면서 널리 퍼져 나갔는지를 탐구하였다. 저자 데이비드 호우는 진화심리학에서 뇌과학을 거쳐 윤리철학과 정신건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는 공감의 중요성을 포착했다. 그 과정에서 공감이 아동발달과 인간관계, 치료, 창조적 예술 및 신경학과 윤리학 등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명쾌하게 제시하였다.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저자 데이비드 호우는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의 명예교수로 아동학대와 방치, 정서지능, 입양, 애착 이론 및 사회복지 등에 대한 연구 활동과 함께 관련 분야에 대한 저술 활동을 펼쳐 왔다. 저서로는 《감성지능형 사회복지사들》, 《일생을 따라다니는 애착 관계》 등이 있다.

출처:교보문고

 

3. 목차

 

01 공감으로의 초대
02 공감이란 무엇인가
03 공감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04 어린이의 공감 능력은 어떻게 발달될까
05 공감하는 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06 공감 능력의 개인차는 왜 발생할까
07 공감이 부재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08 무엇이 그들을 사이코패스로 만든 것일까
09 치료적 관계에 있어서의 공감은 어떤 역할을 할까
10 공감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11 공감 능력은 어떠한 효과가 있을까
12 공감과 도덕, 친사회적 행동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13 아이의 공감 능력은 어떻게 향상시킬까
14 어른의 공감 능력은 어떻게 향상시킬까
15 공감과 사회적 유대감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16 공감은 우리의 삶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까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각주

출처:본문 중에서

 

4. 책속으로

 

*우리는 공감이 일어나는 순간을 인식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한다. 어찌 보면 ‘공감’은 관계 향상에 필요한 덕목 같기도 하지만, 종종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능력이기도 하다. 대략 지난 한 세기에 걸쳐 공감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증대되어 왔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급증하기 시작한 21세기에 들어서는 급기야 공감 능력에 대한 정식 학위까지 생겨났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공감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열성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사람은 타인을 돕는 직업(사회복지나 사회사업 관련)에 종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p.10)

*만약 우리가 공감이라는 작용을 통해서 예술 작품 세계로 들어가는 ‘우리만의 고유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의 이해력은 더 높아지고 감동은 더욱더 깊어질 것이다. 특별히 더 감동적인 예술 작품의 경우, 자신이 본능적인 동시에 정서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몸은 페인트의 흘러내림이나 고통에 찬 얼굴, 버팀대의 팽팽한 장력, 치솟은 뾰족탑에 대해 반응을 일으키고, 우리의 감정 또한 우리가 감상하는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에 공명한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미학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즉 심미적인 대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은 감동에 젖어 든다. (p.19)

*제대로 된 공감과 동정은 감정적 고통을 공유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공감은 우리가 타인의 감정에 공명할 때 일어난다. 반대로 동정은 ‘상대의 감정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상대의 감정적 상태나 조건에 대해 보이는 감정적 반응으로서, 상대에 대한 슬픔의 감정이나 상대의 안녕을 염려하는 마음’14을 말한다. 좀 더 명확한 차이를 말하면, 공감은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고, 동정은 단지 상대에게 내가 네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말해 주는 것과 같다. 즉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동정이라면 공감은 상대로부터 유발되는 것이다. (p.27)

*육아(돌봄)가 아이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공감이 필요하고, 공감을 잘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생존 가능성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요구를 인식하고, 위험을 예측하며 위기를 잘 간파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아플 때, 부모와 떨어져 있을 때 등 그 고통을 경험하는 대로 표현하는 것은 아기만이 아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거나 발견하는 부모 역시 불안과 고통을 느낀다. 부모가 아이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은 아이에 대한 보호, 안전, 생존을 더욱 공고하게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공감은 아이들을 통해 부모 유전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 준다. (p.53)

*모든 성격 요소 중에서 친화성은 공감적 배려, 타인을 기꺼이 돕는 마음을 포함한 친사회적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1친화성과 공감이 연관된다는 것은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이 갈등을 조정하거나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 앞에서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친화성이 낮은 사람은 공감에 서툴고 남을 도우려는 마음도 덜하다. (p.113)

*사이코패스에게는 사회적 두려움이나 동료의식이 없다. 이러한 의식의 결핍은 부주의함과 폭력성, 착취 등의 행동 양식을 낳는다. 그들이 인지적 공감을 갖게 되면 용의주도한 방법으로 타인의 마음을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을 속이거나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등의 부정적인 행위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행한다. 이처럼 사이코패스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하여 설사 사이코패스에게 다른 사람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마음 따위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이코패스에게는 공감뿐 아니라 양심과 죄책감마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그 어떤 처벌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p.144)

*상담사나 심리 치료사들은 오랫동안 그들의 직업 분야에 있어서 공감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협동적 동맹의 핵심 구성 요소로서 공감의 역할에 대해 인식해 왔다. 공감의 중요성을 아는 상담사와 심리 치료사들은 다른 어느 분야의 직업인들보다도 그것을 시험하고, 재해석하고, 운용하고, 실천하고, 평가했다.

출처:본문 중에서

 

5. 출판사서평

 

우리는 왜 ‘공감’에 주목해야 하는가!
우리의 삶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비결
바로 ‘공감’에 달려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공감’
공감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공감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공감이 부재하다면 이 세상은 삭막하고 냉정하며 동정심 없는, 심지어 무자비한 세계로 느껴질 것이다. 물론 ‘공감’이라는 단어를 진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공감의 가치를 실감할수록 더 큰 공감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식견을 가진 사람들은 오늘날 개인적인 고독과 고립에서부터 극단적 경쟁과 갈등, 승자 독식의 사회구조가 불러온 다수의 좌절과 분노, 물질만능주의가 초래한 인간 소외와 단절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적 문제의 밑바닥에는 소통의 부재와 공감의 결여가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다양성과 차별성, 공존과 지속가능성, 통합과 융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21세기에 필요한 리더의 조건에는 그 어떤 덕목보다 소통과 공감 능력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비단 리더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 과거보다 훨씬 더 냉혹해진 생존 게임의 장에 내몰린 우리는 좀 더 따뜻하고 희망적이며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원한다. 어쩌면 그것은 결코 남을 돌볼 틈 없는 숨 막히는 경쟁 사회에서 그나마 인간다움과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일지도 모른다.

인간다움을 정의해 주는 공감 능력에 대한 모든 것!
공감은 우리의 마음이 고통받고 상처받고 분열될 때마다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회복시켜 주는 힘을 발휘한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호우는 공감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탄생되었고, 어떻게 그 영향력이 점차 증대되면서 널리 퍼져 나갔는지를 탐구하였다. 그는 진화심리학에서 뇌과학을 거쳐 윤리철학과 정신건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는 공감의 중요성을 포착했다. 그 과정에서 데이비드 호우는 공감이 아동발달과 인간관계, 치료, 창조적 예술 및 신경학과 윤리학 등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명쾌하게 제시하였다.

인간은 자신을 공감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할 때 고통에 빠진다.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힐링 열풍도 ‘공감’을 찾는 작업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은 삶의 근원인 공감의 본질에 대해 체계적이면서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 공감이란 주제가 그동안 작가와 철학자, 미술가, 교육학자, 심리학자와 사회학자, 상담치료사와 사회복지사, 뇌 과학자와 의료 종사자들에게 왜 그토록 한결같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는지 이해할수록 공감에 대해 더욱더 깊이 빠져들 것이다.

▷▷ 추천사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누군가로부터 진정한 공감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공감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할 때 고통에 빠진다.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힐링 열풍도 ‘공감’을 찾는 작업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은 삶의 근원인 공감의 본질에 대해 체계적이면서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 -최양숙(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 전임상담사) 

출처: 지식의 숲

 

 


 

1. 책 소개

   

 

1959고독이라는 병, 1961영원과 사랑의 대화이후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로 널리 사랑받아온 김형석이 평생에 걸쳐 쓴 글들 가운데 가장 아끼는 25편의 산문을 모아 엮은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젊은 시절부터 마음 한편에서 지울 수 없었던 고독, 먼 곳에 대한 그리움에서부터, 인연, 이별, 소유, 종교, 나이 듦과 죽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오늘을 애써 살아야 하는 이유까지 삶의 철학 전반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을 통해 고생스런 인생이 행복할 수 있는 까닭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1읽어감에 관하여에서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친구들을 하나씩 떠나보내는 마음을 담은 글들을 포함해 상실과 고독, 사랑에 관한 글을 엮었고, 2살아간다는 것에는 인생의 의미, 삶의 과정 자체의 소중함,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지혜 등 그의 인생론 전반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을 담았다. 3영원을 꿈꾸는 자의 사색에는 삶의 여러 물음들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오늘의 기독교에 대한 반성을, 4조금, 오래된 이야기들에는 저자의 젊은 시절의 글들을 포함해 수필가로서 명성을 얻은 이유를 알게 해주는 소박하고 재미있는 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출처 : 교보문고

 

 

 

2. 저자

    

 

철학자, 수필가,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1920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평안남도 대동군 송산리에서 자랐다.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제3공립중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 조치上智 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향에서 해방을 맞이했고, 1947년 탈북, 이후 7년간 서울 중앙중고등학교의 교사와 교감으로 일했다. 1954년부터 31년간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봉직하며 한국 철학계의 기초를 다지고 후학을 양성했다. 1985년 퇴직한 뒤 백수白壽를 맞이한 지금까지 줄곧 강연과 저술활동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철학 개론》 《철학 입문》 《윤리학》 《역사철학》 《종교의 철학적 이해같은 철학서 외에도 예수》 《어떻게 믿을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와 같이 기독교 신앙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백 년을 살아 보니등 서정적 문체에 철학적 사색이 깃든 에세이집을 펴냈다. 특히 첫 수필집인 고독이라는 병은 피천득의 인연의 뒤를 잇는 수필문학99세 의 명작으로 평가받았으며, 이태 뒤에 나온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혼란스러운 시대, 고뇌와 고독에 싸인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등대가 되어주었고, 60만 부 판매를 넘기며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2년 강원도 양구군에서는 그와 그의 오랜 벗 고안병욱 교수의 학문적 성과를 기려 양구인문학박물관 철학의 집을 개관했다.

 출처 : 교보문고

 

 

 

3. 목차

   

 

머리글을 대신하여

 

잃어감에 관하여 _상실론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자연 그리고 친구

황혼의 우정

사랑이 있는 산문

고독에 관하여

 

살아간다는 것 _인생론

무소유의 삶을 생각한다

산다는 것의 의미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아름다운 인연들

여름이면 생각나는 것들

 

영원을 꿈꾸는 이의 사색 _종교론

처음과 마지막 시인

내가 있다는 것

교만의 유혹

어울리지 않는 계산

정의냐 사랑이냐

 

조금 오래된 이야기들 _책 속 수필선

오이김치와 변증론

꼴찌에게도 상장을

한국적이고 서민적인 것

내 잘못은 아닌데

길과 구름과 실존

선비정신과 돈

양복 이야기

철학의 죄는 아닌데

꿈 이야기

정이라는 것

 출처 : 본문 중에서

 

 

 

4. 책 속으로

     

 

그러나 고독은 마음과 더불어 자란다. 마음과 한가지로 깊어지기도 하며 넓어지기도 한다. 정신이 자란다는 것은 이렇게 고독이 자란다는 뜻이다. 키르케고르의 그가 지니고 있는 고독의 척도가 곧 그의 인간의 척도라는 뜻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_52

 

이제 지금까지는 모든 대화나 사귐의 뒷자리에 서서 나와는 상관이 없는 듯이 서성대고 있던 또 하나의 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어머니와 웃고 있을 때도 모르는 체하더니, 애인과 즐기고 있을 때도 얼굴을 돌리고 상관이 없는 듯싶더니, 학문이나 예술을 떠들고 있을 때도 머리를 숙이고 듣고만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친구가 죽었을 때 한번 쳐다보던 그 얼굴, 전쟁이 일어났을 때 물끄러미 내 행동을 살피던 모습, 사랑하던 사람이 운명할 때 나에게 무엇인가를 묻고 싶어 하던 표정을 그대로 가지고 나타났다. _56-57

 

우리는 밤의 암흑을 몰아내기 위해 촛불을 켠다. 초는 불타서 사라지고 만다. 초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초는 빛으로 바뀔 수 있어야 그 빛이 우주에 영원히 남을 수 있다. 그리고 암흑은 그 힘 때문에 자취를 감춘다. _77

 

옛날부터 우리는 육십, 즉 회갑 관념에 붙잡혀 살았다. 육십은 이미 늙어버린 나이이며 칠십은 고희古稀라는 잠재 관념 때문에 회갑만 지나면 나 자신도 늙었다고 생각하며 칠십이 지났는데 누가 나를 인정하며 받아주겠는가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해버리곤 한다. 육십이라고 해서 늙으라는 법도 없으며 칠십을 지냈다고 해서 나 자신을 늙은이로 자인할 필요도 없다. 인생은 육십부터이며 칠십은 완숙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_82

 

죽음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그래서 고통 없는 죽음이 축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죽을 때의 고통은 태어날 때의 고통과 성격이 비슷할지 모른다. 그 고통이 모든 삶의 내용을 망각의 순간으로 바꾸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는 것일까. _98

 

그러나 어쨌든 내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무한의 우주 속에 할딱이는 육체, 끝없는 시간 위의 한순간을 차지하고 있는 내 생명, 가없는 암흑을 상대로 곧 소멸되어버릴 한 찰나의 가느다란 불티같은 내 의식, 이것이 나이다. 내가 이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_129

 

세상에는 질서가 있고 생활에는 의미가 있듯이 산책에도 이치가 있다. 아침 산책은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육체의 건강을 촉진시키는 소임所任을 맡아주고, 저녁 산책은 마음의 내용을 정리하여 육체의 휴양을 채워준다. 사색을 위해서는 오전이나 오후의 소요가 자연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으므로 좋고, 자연의 미를 느끼기에는 해 뜨기 전에 떠나서 아침볕과 같이 돌아오는 길이 좋다. 석양을 받으며 떠나서 황혼에 돌아오는 산책도 자연을 감상하기에 흡족하다. 안개 속 소나무 사이로 흘러드는 아침저녁의 고요, 산 밑이 온통 그림자로 채워지는 부드러운 장막 속에 잠겨보는 심정, 이 모두가 얼마나 아름다운 정서인가! 사람들은 바빠서 산책의 여유가 없다고 한다. 평생 그렇게 마음이 바쁜 사람은 큰일을 남기지 못하는 법이다. _182-183

 출처 : 본문 중에서

 

 

 

5. 출판사 서평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본질적 물음을 마주하게 하는 철학적 에세이

 

올해 백수白壽를 맞은 저자가 가장 아끼는 김형석 산문의 에센스. 1959고독이라는 병, 1961영원과 사랑의 대화이후,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로 널리 사랑받아온 저자가 평생에 걸쳐 쓴 글들 가운데 알짬만 모았다. 젊은 시절부터 마음 한편에서 지울 수 없었던 고독, 먼 곳에 대한 그리움에서부터, 인연, 이별, 소유, 종교, 나이 듦과 죽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오늘을 애써 살아야 하는 이유까지, 그의 삶의 철학전반을 엿볼 수 있다. 개와 고양이와 어린 자녀들이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일화, 함께 수학했던 시인 윤동주 형에 대한 기억, ‘철학 교수라고 좀 별난 사람 취급을 받곤 하는 처지에 얽힌 일상의 가벼운 이야기도 위트 있게 풀어낸다.

1읽어감에 관하여에서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친구들을 하나씩 떠나보내는 마음을 담은 글들을 포함해, 상실과 고독, 사랑에 관한 글을 엮었다. 2살아간다는 것에는 인생의 의미, 삶의 과정 자체의 소중함,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지혜 등 그의 인생론 전반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 실렸다. 3영원을 꿈꾸는 자의 사색에는 삶의 여러 물음들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오늘의 기독교에 대한 반성을, 4조금, 오래된 이야기들에는 저자의 젊은 시절의 글들을 포함해, 수필가로서 그가 명성을 얻은 이유를 알게 해주는 소박하고 재미있는 글들을 모았다.

 

보물단지 속, 오래 아끼던 물건과 같은 25편의 산문

 

내가 쓴 글에 스스로 만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느끼기도 하고 마음의 다짐을 굳히기도 한다. 글은 저자를 떠나면 스스로의 내용을 갖고 다가오는 것이다. 내가 지니고 있던 보물단지 속의 아끼던 물건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마음의 선물로 내놓는 심정이다.”(6-7)

 

1920년생인 저자는 1954년부터 1985년까지 연세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봉직하며 후학들을 길러냈다. 1960년대의 기록적인 베스트셀러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필두로 펴낸 수많은 에세이와 철학 저작은 험악한 세월을 사는 독자들에게 인생의 지침이 되어주었다. 퇴직 이후로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집필과 강연은 계속되었고, 일생 동안 써온 수상과 수필을 엮어 세월은 흘러서 그리움을 남기고(2008)아직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2012)를 펴냈다. 이 두 권에서 김형석 산문의 고갱이라고 할 만한 글들만을 엄선하여 엮은 것이 바로 이 책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이다. 표제작이자 첫 번째 글인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새로 집필해 추가했다. 하나같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들로, 고생스런 인생이 행복할 수 있는 까닭에 대한 사유의 재료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고민

 

내게 남겨진 시간이 길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현재가 최상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통해 행복을 찾아 누리려는 신념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6)

 

소크라테스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지는데, 김형석 교수가 평생 해온 일이 바로 삶의 의미를 검토하는 일이었다. 철학자로서 반세기를 살아오는 동안 저자 자신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사회 현실도 빠르게 변화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의 근본적인 물음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질문은 누구에게나 남아 있다. 나도 같은 문제를 갖고 백수를 맞이하는 오늘까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온 셈이다. 그 열정은 인생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간절해진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물음이기도 하나,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 모두를 염두에 둔 문제의식의 농도가 짙어져갔다. “‘가 아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게되어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고민, 평생을 해왔고, 지금도 씨름하고 있는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향한 고민의 소산이다. 같은 고민을 가진 독자들에게, 노 철학자가 건네는 애정 어린 말들이 소중한 길잡이가 되길 기대한다.

 

 

출처: http://everydaynewbook.tistory.com/2010 [독서 국민 운동 1825 project]

출처 : 김영사



1. 책 소개


파이드라는 의붓아들 히폴리투스에게 연정을 느낀다. 하지만 계모의 마음을 알게 된 히폴리투스의 반응은 냉담하다. 파이드라는 수치심을 못 이겨 자살한다. 그녀가 남긴 편지 한 통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불러 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비극적인 작가”라고 평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다
출처 : 교보문고
2. 저자

저자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4∼BC 406)는 아이스킬로스(Aeschylos), 소포클레스(Sophocles)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원전 534년에 그리스에서 최초로 비극이 상연된 후,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통해 그리스 연극은 전성기를 맞는다. 기원전 3세기까지의 그리스 고대극의 전통은 로마를 거쳐 유럽 전체에 퍼지며 서구 연극의 원류가 되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과정에서 서구 연극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극작가다.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고, 다만 부유한 지주 계급 출신이라는 점과 좋은 가문에서 상당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점 정도만 전해진다. 기원전 455년에 데뷔한 이후 92편에 이르는 작품을 집필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18편뿐이다. 기원전 408년경 아테네를 떠나 마케도니아에 머물렀고 2년 뒤에 사망했는데,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와 〈바카이〉는 이때 집필된 작품이다.
출처 : 교보문고
3. 목차

나오는 사람들 
서막 
제1삽화 
제2삽화 
제3삽화 
제4삽화 
종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출처 : 본문 중에서
4. 책 속으로

테세우스: 파이드라가 죽었는데도 널 그냥 둘 것 같으냐? 
그녀의 죽음으로 넌 저주받았어! 파멸이야! 
어떤 맹세가, 그 어떤 말이 
네놈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느냐? 
그것들이 이 편지보다 
더 신빙성이 있을 수는 없다. 
파이드라가 네놈을 증오했다고 할 테냐? 
계모는 본디 의붓아들을 미워한다고 할 테냐? 
히폴리투스 네놈을 증오하여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하면서 
그녀가 목숨을 건 밑지는 장사를 했다고 할 테냐? 
출처 : 본문 중에서
5. 출판사 서평

영웅 테세우스는 파이드라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이면서 전처소생인 히폴리투스를 외조부에게 맡긴다. 시간이 흘러 히폴리투스는 외증조부의 뒤를 이어 트로이젠을 다스릴 청년으로 성장하고, 테세우스는 고국에서 추방당해 파이드라와 함께 트로이젠을 찾는다. 파이드라는 의붓아들 히폴리투스에게 연정을 느끼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시름시름 앓는다. 유모 편에 파이드라의 마음을 전해들은 히폴리투스의 반응은 냉담하다. 파이드라는 수치심을 못 이겨 자살하고, 이때 테세우스가 외출에서 돌아온다. 히폴리투스가 파이드라를 욕보인 것으로 오해한 테세우스는 포세이돈에게 아들의 죽음을 간청한다. 
히폴리투스에게 비극적인 종말을 안긴 것은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평소 아르테미스만을 숭배하고 아프로디테를 홀대한 것이 화근이었다. 아프로디테는 “나를 존중하는 자, 나도 존중하겠다. 하지만 나를 무시하는 자, 내가 반드시 파멸로 이끌리라”며 에로스를 시켜 파이드라의 마음에 금지된 정념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에우리피데스는 인간의 정념과 억제할 수 없는 폭력에 내재한 비극성을 심도 있게 묘사하는 데 특히 뛰어났다. 

출처 : 지식을 만드는 지식




1. 책 소개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휘페리온의 동경! 

<빵과 포도주>의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서정적 소설『휘페리온』. 집필에서 완성까지 약 7년이 걸린 이 작품은 횔덜린이 남긴 유일한 소설로, 그리스 청년 휘페리온이 독일인 친구 벨라르민과 연인 디오티마와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18세기 후반의 그리스를 배경으로, 휘페리온의 자기 성찰과 의식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고향인 티나 섬에서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서서히 세계의 본성에 대해 묻기 시작한 청년 휘페리온은 아다마스를 만나게 된다. 아다마스는 휘페리온에게 신화, 역사, 수학, 자연, 천문학을 가르치며 고대 그리스의 세계를 이상으로 제시한다. 휘페리온은 아다마스에게 많은 것을 배우지만, 아다마스는 휘페리온에게 혼자 나아갈 길을 찾도록 하고 떠난다. 스승과 헤어진 휘페리온은 더 큰 세계인 스미나르로 나오는데…. 

휘페리온은 편지를 통해 유년기, 아다마스와의 만남, 알라반다와 함께한 그리스 해방 전투, 디오티마와의 사랑과 이별, 알라반다와 디오티마의 죽음 등을 풀어놓으며 자신의 생애를 돌아본다. 특별한 사건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세계에 대한 휘페리온의 동경을 그려내면서, 독일 교양 소설의 새로운 유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출처 : 교보문고

2. 저자


반평생을 정신 착란으로 불우한 생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도 넘은 20세기 초에 비로소 현대적 시인으로 부활한 시인 횔덜린. 릴케와 첼란과 같은 현대 시인들은 그를 자신들의 선구자로 여겼고, 철학자 하이데거는 그를 “시인의 시인”이라고 불렀다. 
1770년 독일 남부의 라우펜에서 태어난 횔덜린은 일찍이 어머니의 뜻에 따라 성직자의 길을 가도록 정해졌다. 튀빙엔 신학교 시절에는 헤겔, 셸링 등과 교유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또한 그 무렵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을 지켜보면서 혁명의 이상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급진적 혁명 세력인 자코뱅당의 공포 정치에는 반대했다. 
1796년 횔덜린은 프랑크푸르트의 은행가인 공타르 가문의 가정교사가 되었는데, 이때 여주인인 주제테 부인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주제테는 이후 횔덜린의 작품에서 ‘디오티마’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여 인간과 자연의 더 바랄 것 없는 조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1802년 가정교사를 하려고 갔던 남부 프랑스 보르도로부터 걸어서 귀향한 횔덜린은 그때부터 정신 착란 징후를 보였다. 그 후 1806년 튀빙겐의 아우텐리트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었다가 이듬해부터 목수인 짐머의 집에 머물며 정신 착란자로 남은 생을 보냈다. 
횔덜린은 신이 사라져 버리고 자연과의 조화가 무너진 자신의 시대를 탄식하는 한편으로, 모순과 대립이 지양된 조화로운 전체, 신성(神性)의 부활, 이상, 무한성에 대한 동경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는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고귀한 신성을 일깨우는 것이야말로 시인의 소임이라 보았고, 이에 인간과 자연과 신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고대 그리스의 세계를 이상으로 삼았다. 
이런 그의 사상은 그가 남긴 유일한 소설인 『휘페리온』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휘페리온』이 나온 뒤 횔덜린의 문학은 가장 넓은 폭과 풍요로운 만개에 도달했다. 또한 『휘페리온』은 그 서정적 문체와 폭넓은 주제로 오늘날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조화, 사랑, 자유 등의 고대 그리스 정신을 동경한 만큼 척박한 현실과는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횔덜린은 무려 37년간이나 정신 질환에 시달리다 1843년 73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디오티마에 대한 메논의 비탄」, 「빵과 포도주」, 「라인 강」 등의 뛰어난 시를 남겼고,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를 독일어로 옮기기도 했다. 

출처 : 교보문고

3. 목차


제1권 
서문 
제1서 
제2서 

제2권 
제1서 
제2서 

 
해설: 문학의 나라에 있는 아직 아무도 발 딛지 않은 땅 
판본 소개 
프리드리히 횔덜린 연보 

출처 : 본문 중에서

4. 출판사 서평


‘궁핍한 시대’에 존재의 시원을 향해 항해한 횔덜린 문학의 원천이자, 
독일 초기 낭만주의가 이상으로 삼았던 “완벽한 소설”의 결정체!
 

괴테, 실러와 동시대인이면서 생전에 그들처럼 인정받지도 못했거니와 반평생을 정신 착란 속에서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시인 횔덜린. 『휘페리온』은 그가 남긴 유일한 소설로, “그리스의 은자”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터키의 압제 아래 있던 18세기 후반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주인공인 휘페리온의 자기 성찰과 의식의 형성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그 기저에는 ‘모순’과 ‘분리’를 지양하고 ‘포괄적인 전체’ 혹은 ‘존재의 시원’에 이르고자 하는 정신이 관류한다. 
『휘페리온』은 집필에서 완성까지 약 7년이 걸렸는데, 이 기간은 횔덜린 자신이 끊임없이 자기를 모색하고 정체성을 발견해 가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은 횔덜린의 자기 형성 과정과도 궤도를 같이한다. 그래서인지 횔덜린은 누이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작품은 나의 일부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휘페리온』이 나온 뒤로 횔덜린 문학은 최고로 만개했다. 「빵과 포도주」를 비롯한 그의 대표적인 시가 모두 이때 나왔다. 그러므로 『휘페리온』은 횔덜린 문학 세계의 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과 자연과 인간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고대 그리스적 세계에 대한 동경의 노래
 

『휘페리온』은 그리스 청년 휘페리온이 독일인 친구 벨라르민과 연인 디오티마와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에서 휘페리온은 황금시대인 유년기, 스승 아다마스와의 만남, 행동주의자 알라반다와 함께한 그리스 해방 전투, 이상적 세계의 상징인 디오티마와의 사랑과 이별, 알라반다와 디오티마의 죽음 등을 겪은 뒤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현재의 심경을 술회한다. 이 작품은 특별한 사건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전일한 세계에 대한 사무치는 동경, 휘페리온 안에 있는 불협화의 해소를 종착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독일 교양 소설의 새로운 유형을 보여 준다. 
18세기 후반 그리스. 고향인 티나 섬에서 평온하고 침해받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서서히 세계의 본성에 대해 묻기 시작한 청년 휘페리온은 아다마스와 만난다. 아다마스는 휘페리온에게 신화, 역사, 수학, 자연, 천문학을 가르치며 고대 그리스의 세계를 이상으로 제시한다. 당대의 철학자 피히테를 연상시키는 아다마스는 모든 개인은 신성(神性)을 가지고 있으며, 높은 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휘페리온은 그런 아다마스를 통해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신’이라는 공식을 배우며, 보다 아름답고 전일(全一)한 세계를 예감한다. 그러나 아다마스는 휘페리온에게 혼자 나아갈 길을 찾도록 하고 아시아로 떠난다. 
스승과 작별한 휘페리온은 더 큰 세계인 스미나르로 나온다. 그는 이곳에서 알라반다를 만난다. 알라반다는 피히테의 영웅적인 주관주의 철학 정신을 지닌 인물로, 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했다. 스승 아다마스가 성찰적 측면에 서 있는 인물이라면, 알라반다는 행동의 측면에 서 있는 인물이다. 휘페리온은 알라반다의 그런 행동욕에 감동을 받고, 알라반다가 속해 있는 네메시스 동맹(Bund der Nemesis)과 함께한다. 둘은 에로틱한 동성 관계로 우정을 나눈다. 하지만 네메시스 동맹 때문에 둘 사이에는 불화가 생긴다. 휘페리온은 행동하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윤리 의식의 결여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알라반다는 휘페리온의 이상주의를 몽상이라고 조롱한다. 
이 무렵 휘페리온은 칼라우레아 섬에서 디오티마라는 여인을 알게 된다. 아다마스와 알라반다가 인간의 지평에서 자유를 지향하는 인물상이라면, 디오티마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 안에서 막힘없는 자유를 구가하는 이상적 인물상이다. 디오티마는 횔덜린이 동경한 그리스 정신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횔덜린에게 그리스 정신이란 모든 대립물을 하나로 조화시키고 이해시키는 능력과도 같다. 휘페리온은 생각 속에만 있다고 여긴 완전함의 실체를 디오티마를 통해 경험하고는 그런 디오티마를 ‘미’라 부른다.
이러한 때 휘페리온은 알라반다에게서 그리스 해방 전투에 참여해 달라는 편지를 받는다. 휘페리온은 자신의 이상을 빨리 실현하기 위해 디오티마와 헤어진 뒤 전쟁에 참여한다. 그러나 전쟁은 참담한 패배로 돌아가고, 동료들의 혁명 의지는 변질하여 제 백성까지 죽이는 지경에 이른다. 전쟁의 참사를 겪으면서 휘페리온은 직접적인 힘으로는 이상을 실현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한편 휘페리온에게 자신이 모든 것일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한 디오티마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고, 이 소식은 그녀의 친구 노트라를 통해 휘페리온에게 전해진다. 
해방 전투에서 좌절을 겪고 알라반다와 디오티마도 세상을 떠난 뒤 휘페리온은 독일에 머물면서 자연과의 내면적 대화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나는 차츰 복된 자연에게 나를 맡기게 되었고 거의 끝을 몰랐다. 자연에 더 가까이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어린아이가 되고자 했고, 거의 의식 없이 마치 순수한 빛살처럼 되고 싶었다! 오 한순간 자연의 평화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느끼는 일, 그것은 생각에 찬 수년보다, 모든 것을 시도하는 인간의 온갖 시도보다 얼마나 더 가치 있는 일이었는가!”(262쪽) 

이제 휘페리온은 사회*정치적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 대신 개인적인 완성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표면적 퇴각이 곧 퇴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삶을 예고하는 것이다. 즉 이제 휘페리온은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자연의 전일성의 관점’에 선다. 신과 인간과 자연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학문과 예술과 종교가 하나로 녹아드는 전일의 세계. 
휘페리온의 이러한 삶의 궤적은 개인사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법칙에 대한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인간은 모두 자연과 근원적인 조화를 이루었던 황금시대에서 떨어져 나와 고통스러운 개별화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연과 반목하는 사이가 되었고, 한때 하나이던 것은 지금 서로 다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과 세계 간의 그 영원한 투쟁을 끝내는 것, 그리하여 양자가 하나의 무한한 동일체로 통합되는 일, 그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횔덜린은 말한다.

 출처 : 음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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