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소개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가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직접 써내려간 에세이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 단순한 자기 삶의 편력이 아니라 다양한 소재들을 자유롭게 이어 나감으로써 훨씬 풍부한 사색을 담은 에세이를 창조했다. 저자가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겪고 관찰한 일들, 즉 그가 살아가는 세계에 관한 묘사로 확대된다. 일류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들이 가득하다.
공연 직전, 대기실의 거울에 비친 자신을 타인으로 인식하면서 시작되어 한 개인의 편력과 피아노 음악의 역사, 세계의 다양한 장소들과 몰개성한 호텔방들을 이야기한다.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개성적이고도 아름다운 공연장들이나 공연이 끝난 뒤의 박수 소리와 닮은 소리를 내는 자갈들이 있는 작은 해변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들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는 과거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피아니스트가 태어난 지점을 살피면서 거기서 일종의 기원을, 본질을 추출해내는데,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자기 삶의 모토를 추출한다.
그동안 피아니스트들의 내면은 여전히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작가들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피아니스트들은 그 내면을 충분히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열렬히 글을 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글솜씨가 좋은 피아니스트들이 여러 명 있지만, 그 솜씨를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거나 충분히 성공적이지 못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 모든 것을 짧은 이야기들의 묶음 속에 담아낸 저자의 에세이는 피아니스트의 내면을 가장 풍부하게 담아낸 기록 중 하나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 알렉상드르 타로 (Alexandre Tharaud)
1968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열네 살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니키타 마갈로프, 클로드 엘페르, 레온 플라이셔를 사사했다. 프랑스 바로크부터 현대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세계 최고의 콘서트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서른 장이 넘는 음반을 냈으며, 매 음반을 녹음하기 전에 몽파르나스 묘지에 있는 샤브리에의 무덤에 가서 꽃을 놓고 온다.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에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역할로 출연했고, 그 영화의 피아노 연주도 담당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시작
욕망
불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아르젠툼 니트리쿰은 시간에게 시간을 내주고, 눅스 보미카는 여름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브리오니아는 겨울로부터 보호해준다. 에파르 술푸리쿰은 폭풍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주고, 스트라모니움은 밤의 악령들로부터 멀어지게 해준다. 아룸 트리필룸은 말에 실체를 부여해주고, 이리스 베르시콜로르는 말의 무게를 덜어준다.
(20~21쪽)
자리를 잡는다. 무대에 적응하고 거기에 짐을 푼다. 밤까지 무대는 내 것이다. 바닥에 길게 누워본다. 마룻바닥 아래엔 공연장의 음향에 아주 중요한 공명상자가 있다. 반쯤 차거나 텅 빈, 건조한 공명상자가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청중은 바닥 아래에 수백 입방미터 면적의 숨겨진 빈 공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다. 그 동굴은 피아노의 공명상자인 음향판보다 음을 현저하게 더 키운다. 무대 아래 허공이 있다. 피아니스트는 떠다닌다. 그가 마룻바닥에서 노를 저어가 압도적인 악기 앞에 자리 잡는 게 보인다. 우리는 그가 바닥 깊이 닻을 내렸다고 믿는다. 아니다. 피아니스트의 주위에는 허공이 있다. 사방에.
(36쪽)
라벨 음악은 꼼꼼한 외과 의사처럼 연주한다. 디테일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그것들은 수년 동안 세세히 검토되고 계량되어 밀리미터 단위로 분할되었다. 하지만 오늘 저녁엔 오직 선線만이 중요하다. 콘서트에서 라벨을 용의주도하게 분석적으로 연주하면 금방 견디기 힘들어진다. (...) 거대한 방주처럼 건축된 그의 작품에서는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도 전체 구조만큼 중요하다. 거대한 대양 한가운데를 항해하는 작은 돛단배 같다. 세세한 세공 작업과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작업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첫 음을 누를 때부터 마지막 음을 겨냥해야 한다. 곡 안의 모든 요소가 서로를 지탱하고있다. 나는 다른 어떤 작곡가보다 라벨을 많이 연습했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는 순간에 내게 중요한 건 그저 프레이즈, 긴 호흡과 관점뿐이다.
(177~178쪽)
퀘벡에 사는 빅토르는 트럭을 몰며 문화생활을 즐긴다. 터미널에서 점심을 먹을 때마다 그는 동료 운전수들에게 녹음된 바로크 음악을 들려준다. 동료들은 별 반응이 없지만 그는 꿋꿋이 계속한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컬럼비아 프레이트라이너 트럭에 앉아 라디오를 95.3 FM ‘이시 뮤지크Ici Musique’ 채널에 고정하고 목청을 다해 노래한다. 음악이 모터 소리보다 크게 울린다. 매연을 후광으로 두른 스카를라티는 아름답다. 빅토르의 체격은 벌목공 같지만 그의 마음은 다감하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클래식 음악을 들었고, 아버지는 프랑스 노래를 들었다. 빅토르는 잘 울지 않는다. 하지만 95.3 FM에서 그의 어머니가 좋아하는 라벨의 음악이나 그의 아버지가 좋아하는 조르주 무스타키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절로 눈물이 흐른다. (...) 빅토르에겐 두 가지 사랑이 있다. 짐을 싣고 트럭을 모는 것과 음악이 모는 대로 실려 가는 것.
(182~183쪽)
나는 한 남자, 한 여자를 위해 연주한다. 나의 피아노 소리는 어떤 특별한 사람을 향해 펼쳐지며, 독주회는 은밀히 헌정된다. 오후, 아니면 무대로 들어서기 몇 분 전에 그 인물이 정해진다. 어느 한 사람을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푸근함을 안겨준다. 어느 지인, 어느 얼굴, 어느 미소, 무의식적으로 툭 떠오르는 남자나 여자. 나는 그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말을 건다. 그 사람이 그걸 알아차릴 때도 있지만, 대개는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없을 수도 있다. 혹은 죽은 이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기꺼이 나의 죽은 이들을 위해 연주한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나는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줄 모른다. 오히려 그들은 내 손가락 아래 또렷이 존재한다. 그들의 부고장이 부케팔로스의 뱃속을 채우고 있다. 그들은 나를 위해 노래하고, 나는 그들이 일하도록 부추긴다. 내가 독주를 할 때, 무대 위에는 많은 이들이 있다. 부재한 이들이 많이 있다.
나는 여럿이다.
(193쪽)
자갈 위를 구르는 파도, 나는 그것을 무대 위에서 받는다. 페로스-기렉의 트레스트리넬 해변 근처에는 성의 뾰족한 탑 뒤로 펼쳐진 바다가 박수갈채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장소가 있다. 바위 사이에 숨은 내포內浦에는 자그마한 자갈들이 깔려 있다. 지름 4센티미터 정도의 동글동글하거나 타원형이거나 세모난 자갈들. 바닷물이 거칠지 않게 자갈들을 굴리면 돌들은 서로 부딪히며 활력을 되찾는다. 그 소리의 풍성함을 간파하려면 그곳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그 소리는 낭랑하고, 탁탁 튀며, 보기 드문 활력을 지녔다. 각자 고유의 울림을 가진 자갈들은 다른 자갈들과 접촉하면서 소리가 끊임없이 변한다. 자그락자그락 구르는 소리 뒤로 펼쳐진 바다는 말이 없다. 박수갈채가 바로 그렇다. 나는 무대에서 제각기 독특한 자갈 같은 손 하나하나가 내는 소리를 듣는다. 그 하나하나의 물질이 옆의 물질과 대화하는 것이다. 독주회는 끝나고 나면 더 방대한 실내악 연주를 시작한다. 파도가 무대 위로 쇄도하고, 수천 개의 자갈이, 맑은 물이 나의 검은 무대 위로 몰려온다.
(205쪽)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오직 피아니스트만이,
그 중에서도 알렉상드르 타로만이 전해줄 수 있는 이야기
-미셸 슈나이더가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에 관해 쓴 책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의 본문은 글렌 굴드가 마지막 실황 공연을 한 날의 호텔방을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그 조용한 방에서 굴드는 음악에 관한 상념에 잠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도입부는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것이다. 굴드는 자신이 왜 공연을 그만두고 녹음에만 집중하기로 했는지에 대해 많은 글을 썼고 음성 인터뷰까지 남겼지만, 그 마지막 공연이 있었던 날 밤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록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의 굴드는 독백을 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걸 들은 적이 없고, 기록에 남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굴드의 가장 내밀한 공간은 비밀로 남겨졌고, 후세의 작가들은 그 공간을 ‘창작’할 수밖에 없었다.
피아니스트들의 내면은 여전히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작가들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피아니스트들은 그 내면을 충분히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열렬히 글을 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글솜씨가 좋은 피아니스트들은 여러 명 있지만, 그 솜씨를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데 사용한 이는 없었다. 혹은 충분히 성공적이지 못했다.
알렉상드르 타로는 이 어려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낸 최초의 피아니스트일 것이다. 공연 직전, 대기실의 거울에 비친 자신을 ‘타인’으로 인식하면서 시작되는 그의 에세이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는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직접 써내려간 이야기다. 그래서 그는 피아노 혹은 피아니스트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자신의 꿈과 몸을 언급한다. 어릴 때부터 겪었던 불면증이 남긴 흔적들이 묘사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복용해 온 알약들의 이름이 마치 시처럼 이어진다.
아르젠툼 니트리쿰은 시간에게 시간을 내주고, 눅스 보미카는 여름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브리오니아는 겨울로부터 보호해준다. 에파르 술푸리쿰은 폭풍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주고, 스트라모니움은 밤의 악령들로부터 멀어지게 해준다. 아룸 트리필룸은 말에 실체를 부여해주고, 이리스 베르시콜로르는 말의 무게를 덜어준다. (20~21쪽)
이러한 시적인 묘사들은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의 이곳저곳에서 아름답게 빛난다. 무명 시절의 타로가 오르세 미술관 지하에서 무성영화에 반주를 했던 에피소드는 환상적인 단편 소설처럼 느껴지고, 세상을 떠난 피아노 선생님의 장례식에서 그가 읽은 추도사는 작은 시처럼 책 속에 삽입돼 있다. 가족을 위해 바리톤 가수의 길을 포기하고 자동차 정비사가 된 아버지가 혼자 방 안에서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는 짧고도 애수 어린 문장들을 통해 전달되며, 야외 공연을 마치고 분장실에서 나왔을 때 저 멀리에서 하얀 고래를 본 이야기는 마치 꿈속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유머도 있다. 공연 중에 들려 오는 기침 소리를 분석하고 분류할 때의 타로는 ‘우아한 유머’가 뭔지 제대로 보여준다.
이 시적인 순간들은 결국 타로가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겪고 관찰한 일들, 즉 그가 살아가는 세계에 관한 묘사로 확대된다. 일류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들이 가득하다. 타로는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개성적이고도 아름다운 공연장들이나 공연이 끝난 뒤의 박수 소리와 닮은 소리를 내는 자갈들이 있는 작은 해변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들을 소개한다. 동시에 그는 과거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조상을 찾듯이 피아노라는 악기의 역사와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의 역사를 언급하며, 이를 통해 피아니스트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를 추적한다. 이 성찰은 간략하고도 핵심적이다. 타로는 피아니스트가 태어난 지점을 살피면서 거기서 일종의 기원을, 본질을 추출해낸다. 그에 따르면 독주 피아니스트는 고독과 노래 속에서 태어난 존재다. 가수를 흉내 내면서 홀로 무대에서 노래했던 19세기의 손가락들. 타로는 이 기원에서 자기 삶의 모토를 추출한다. 한쪽에는 고독과 격리가 있고, 맞은편에는 흥분과 탐구가 있다.
이렇게 한 개인의 편력과 피아노 음악의 역사, 세계의 다양한 장소들과 몰개성한 호텔방들을 한데 담은 이 책은 확고한 주제의식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처럼 줄곧 이어진다. 그 주제란 바로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삶이다. 타로는 단순한 자기 삶의 편력이 아니라 다양한 소재들을 자유롭게 이어 나감으로써 훨씬 풍부한 사색을 담은 에세이를 창조했다. 이는 거의 수필의 전범에 해당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타로는 이 모든 것을 짧은 이야기들의 묶음 속에 담았다. 거울 속의 이미지에서 시작해 꿈속의 이야기로 끝나는 이 작고도 다채로운 에세이는 피아니스트의 내면을 가장 풍부하게 담아낸 기록 중 하나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출처: 「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 」 출판사 풍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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