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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25 1기(13.3~18.2)

9월의 추천 도서(1649)토박이- 리처드 라이트

 


1. 책 소개


미국의 흑인작가 리차드 라이트의 대표적 장편으로 1940년에 발표된 이래 여러 차례 연극과 영화로 각색되어 숱한 화제를 남긴 작품. 한 흑인청년이 백인 처녀를 살해한 사건을 통해 미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집약된 도시 하층민·흑인들의 삶을 응축하여 보여주는 이 작품은 긴박감 넘치는 극적 재미에다 탁월한 구성과 주제의식이 살아있다.


2. 저자

리처드 라이트는 가난한 미시시피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5살 되던 해 아버지로부터 가족이 버림받았다. 라이트는 중학교까지밖에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일반 독자에게 다가간 아프리카 계 미국인 소설가였다. 그의 어려웠던 어린 시절은 최고작 중 하나인 《흑인 소년(Black Boy)》(1945)에 묘사되어 있다. 훗날 그는 인종 차별로 인한 박탈감이 너무 커서, 독서만이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었다고 회고했다.

셔우드 앤더슨, 시어도어 드라이저, 싱클레어 루이스의 사회 비판과 리얼리즘이 라이트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30년대에 라이트는 공산당에 가입했다. 1940년대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그곳에서 거트루드 스타인과 장 폴 샤르트르를 알게 되고 반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그의 대담한 글은 후배 흑인 소설가들이 가야 할 길을 닦아놓았다.

그의 작품에는 단편소설집 《톰 아저씨의 아이들(Uncle Tom's Children)》(1938), 박력 넘치고 잔인한 소설 《토박이(Native Son)》(1940) 등이 있다. 《토박이》에 등장하는 교육받지 못한 흑인 젊은이 비거 토머스는 실수로 백인 고용주의 딸을 죽이게 되고 그녀의 몸을 태운 다음, 자신의 흑인 여자친구가 자신을 배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녀를 살해한다. 비록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 일부는 라이트가 흑인 등장인물을 살인자로 묘사했다며 비난했지만 이 작품은 숱한 논쟁의 주제가 되어왔던 인종 차별을 시의적절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3. 목차


머리말 - `비거`는 어떻게 태어났는가/리차드 라이트

1. 두려움
2. 도주


4. <토박이> 독후감


출처 :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bKss&fldid=Nt0&datanum=740

'토박이'란 어느 지방 혹은 나라에서 오래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뿌리박고 직업을 갖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왔으니  그 지방, 혹은 그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올바른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늘 심부름이나 하는 허드렛일꾼 정도로만 살아야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리처드 라이트의 <토박이>는 바로 그 점을 꼬집은 소설이다. 미국에서 흑인은 이백여년동안 백인과 다름없이 나라를 위해 일하고 봉사해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늘에서 묵묵히 아니 백인의 강압에 의해 소리내지 못하는 침묵의 소수로 살아왔던 것이 20세기 전반까지도 지속되었던 것이니, 라이트는 1930년대의 흑인 실정을 환히 밝혀주는 소설을 썼다.

 

백인들이 보는 흑인은 두 가지로 갈린다(물론 남성에 국한한다. 흑인 여성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착한 니거, 나쁜 니거다. '착한 니거'란 엉클 톰처럼 죽을 때까지 백인에게 순종하는 유순한 니거다. '나쁜 니거'란 툭하면 백인 여성을 강간할 마음을 먹는 본능에 충실한 니거다. 이 두 니거의 공통점은 머리가 나쁘고 정신상태는 미숙하다. 즉 흑인 남성들은 어렵고 복잡한 지적 활동을 할만큼 영리하지 못하다고 못박는다.

 

이러한 백인들의 생각에 일침을 가한 것이 비거 토마스(Bigger Thomas), <토박이>의 주인공으로 그는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에 사는 빈민층 청년이다. 사우스 사이드는 흑인 거주지역으로 백인 임대업자는 다른 곳보다 비싸게 세를 놓고 다른 구역에서는 흑인에게 세를 주지 않는다. 비거는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과 한 방에 사는데 어머니와 여동생이 옷을 갈아입을 때는 비거와 남동생이 고개를 돌리고 비거와 남동생이 옷을 갈아입으면 그 반대다.

 

남을 등쳐먹는 날건달로 살던 비거는 백인 백만장자의 호의로 그의 집 운전수로 취직하고 그날 밤 그의 딸 메어리를 모시고 나갔다가 그녀의 친구인 공산주의자를 만나고 함께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신 다음 집에 돌아온다. 메어리를 부축해 데려다 주던 그는 엉겁결에 메어리를 죽이게 된다. 그는 메어리의 사체를 머리를 절단해 집안 난방로에 넣어 소각한 다음 돈을 내놓으라는 협박편지를 쓴다. 기자들이 몰려들고 우연히 난방로의 재를 치우던 기자가 뼈를 발견하게 된다. 그 집에서 도망친 그는 애인인 베씨가 방해될까봐 죽여버리고 도망치다가 잡힌다. 그는 백인 여성 메어리를 강간하고 죽였다는 제목으로 기소당하고 유대인 변호사 맥스의 변론에도 불구하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비거는 사형당해 마땅한 깡패구나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검사가 노리는 것도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행위이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불쌍히 여겨 운전수로 채용해주었더니 백인 주인 딸을 강간하고 죽이기까지 해? 이런 자는 사회의 악이므로 하루 빨리 제거해야만 안심할 수있다'라는 것이 검사의 주요 논지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비거가 사는 집은 바로 그 백인 백만장자가 세놓은 집이다. 함께 산다고 보아야 마땅한 쥐는 거의 사람을 물어뜯을 정도로 포악하고 난방도 거의 되지 않는 집은 낡아 삐걱거린다. 그 백인 백만장자는 흑인들을 위해 오백만달러라는 거금을 기부한 사람으로 뉴스에서 다룰 정도로 거물인사이다. 그는 또한 흑인들을 위해 탁구대를 기부하기도 한다. 

 

백만장자는 기부로 인해 신문에 실리고 뉴스에 등장하며 사람들에게서 자선사업가로 칭송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흑인에게 도움이 될까. 비거에게는, 비거처럼 사우스 사이드에 사는 흑인에게는 임대료를 내리고(적어도 백인 구역과 동일하게) 겨울이면 난방을 좀 더 해주는 편이 훨씬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그러나 백만장자는 관심이 없다. 그의 소득은 사우스사이드 부동산에서 나온다. 따라서 임대료인하는 소득이 줄어들게 되고, 이런 행위는 신문지상에 실리지 않으므로 실익이 되지 않는 것이다.

 

딸은 비거에게 노조에게 가입하라고 권하지만 비거는 노조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녀와 남자친구는 흑인 구역으로 차를 몰고 가 흑인 식당에서 음식을 함께 먹고 술을 권하지만 비거에게 이런 행위는 몹시 불편하기만 하다. 결국 술에 취한 그녀를 살해하고 그로 인해 그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다. 신문은 그의 행위를 다루기 시작하고 그는 난생 처음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며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신문에 난 자신 관련 기사를 샅샅이 찾아 읽으면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에 관해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백인 유대인 변호사 맥스는 비거가 왜 살인을 하게 되었는가를 조목조목 대신해준다. 일자리가 없어서 혹은 일을 하더라도 허드렛일밖에 할 수 없는 흑인들의 처지, 교육을 받을 돈이 없어서 비행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조건, 사업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형편등을 거론하고 사회가 흑인에게 가해온 압제를 낱낱이 대변해준다. 흑인은 가난하게 태어나 일생토록 뼈빠지게 일하지만 겨우 생계를 꾸려가는 수준으로 살아가다가 역시 가난을 아이들에게 물려준 채 죽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다.

 

비거는 자신의 변호사가 하는 말을 절반쯤 이해할 뿐이다. 그가 자랑스러웠던 것은 백인 변호사가 자신을 위해 변호를 한다는 사실일 뿐, 그는 근본적으로 왜곡된 사회구조,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울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 또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또 하나의 결과이기도 하다. 태어나서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처지를 알지도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죽음의 상태이다.

 

이 사회적 죽음의 상태는 비거뿐 아니라 모든 흑인이 살고 있는 삶이다. 여성의 상태는 더욱 열악해 일하지 않으면 아프고 아프지 않으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는 베씨의 말처럼 평생토록 일과 주인 비위, 흑인 비위를 맞추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비거는 자신이 그동안 욕망을 해소해온 상대, 베씨에게 어떤 사랑도 느끼지 않는다. 남자에겐 여자가 있어야 하니까 베씨를 가졌을 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즉 젊은 흑인 남성에게 흑인 여성은 욕정 해소의 대상이고 위협해 자신의 행동반경으로 끌어들이는 하수인일 따름이다. 금방 사랑을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잠든 베씨를 벽돌로 내리쳐 죽이는 비거의 행동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죄의식으로 메어리를 죽이고 나서 난방로의 재를 치우지도 못했던 것과는 사뭇 딴판으로 흑인 여성은 동일 인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내용은 지금은 진부하게 보인다. 흑인도 생각할 줄 알고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이 특별할 게 무언가. 흑인이건 백인이건 황인이건 인종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인간이 아닌가. 그러나 당시 소설을 읽은 백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흑인들은 보이, 흔히 삼보로 일컬어지는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로만 치부되었기에 복잡한 심리 묘사는 충격이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백인의 흑인에 대한 우월의식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를 유감없이 드러내주었던 것이다. 

 

우리도 사람이다. 우리도 미국인이다 라는 것이 <토박이>의 주제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억압받아 사람답지 못한 대우를 받고 살아왔지만 사실 우리도 백인과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은 <토박이>(Native Son)이다. <토박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어느 평자는 <미국의 아들>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우리 정서에는 <미국의 아들>이 더 실감난다. 그들이 보기에는 <토박이>가 와닿겠지만.

 

우리도 미국인이라는 라이트의 부르짖음은 일종의 저항이기도 했다. 백인의 압제에 대한 항거였던 것이다. 그러나 비거는 특별하지 않다. 우리 사회 어딘가에도 비거가 존재한다. 가난 속에서 태어나 교육 기회를 박탈 당한 채 평생 일만 하다가 죽어가거나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는 인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어떤 존재인지 깨닫지 못하고 그 거대한 권력 구조, 사회 구조를 아무리 이야기해주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소설은 숨돌릴 틈도 없이 진행된다. 비거의 의식상태는 읽는 이를 빨아들여 원서로는 349쪽, 번역서로는 상하 2권, 거의 600여쪽에 이르지만 손 놓을 틈을 주지 않는다. 그같은 매력 덕분에 흑인의 작품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정전 목록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