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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추천 도서(1615)캉디드 외 철학적 콩트-볼테르


책소개

프랑스 계몽 철학사상의 상징 볼테르의 『캉디드』는 낙천주의 신봉자 캉디드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소설은 ‘비록 지금 현실 세계는 괴롭고 암울한 일들로만 가득 차 있다고 해도, 미래에는 분명 즐겁고 희망이 넘치는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 낙천주의 신봉자 캉디드 삶의 여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의 여정 자체가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어리석음에 실소를 자아내게도 한다. 모순된 사회, 부패하고 관용 없는 종교를 신랄히 비판하며 인간 운명은 오직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는 볼테르 철학 사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 소개

저 : 볼테르

Voltaire,본명 :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간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Sceaux)성(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Oedipus)』(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Candide, ou l'Optimisme)』(1759), 『자디그(Zadig, ou la Destinee)』(1748), 『랭제뉘(L'Ingenu)』(1767)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Pantheon)에 안치된다.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 권력이었던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역자 : 고원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사학과 동대학원 서양 중세사 전공.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브로델 연구〉로 박사학위 수여. 경의대학교, 중앙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목차

캉디드 
미크로메가스―철학적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대로―바부크가 손수 쓴 환각 
자디그 또는 운명―동양 이야기 
멤논―또는 인간 지혜 
스카르멘타도 여행이야기―그가 직접 쓴 원고 
캉디드 또는 낙천주의―랄프 박사가 쓴 독일어 문장의 번역 

철학 콩트집 
코시 생크터―위대한 선을 위한 작은 악 
접속곡 
바빌론의 공주 
이성에 바치는 역사적 찬사 

볼테르의 생애와 문학 사상 
볼테르의 생애와 문학 사상 
볼테르 연보

출판사 리뷰

《캉디드》
《캉디드》는 볼테르의 대표작으로 보다 넓고 깊은 의미를 지닌 세계문학 걸작이다. 오늘날까지도 문제작이자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서 연구되고 있다. 이 소설은 ‘비록 지금 현실 세계는 괴롭고 암울한 일들로만 가득 차 있다고 해도, 미래에는 분명 즐겁고 희망이 넘치는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 낙천주의 신봉자 캉디드 삶의 여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의 여정 자체가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어리석음에 실소를 자아내게도 한다. 모순된 사회, 부패하고 관용 없는 종교를 신랄히 비판하며 인간 운명은 오직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는 볼테르 철학 사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캉디드는 판그로스 선생으로부터 늘 ‘세상은 최선으로 되어 있다’고 배운다. 그러나 그 뒤 이어지는 그의 삶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발길 닿는 곳 어디나 추하고 악한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다. 군인은 잔학무도하고 명예란 것을 모르며, 성직자들도 신의 뜻을 저버린 채 몹시 타락해 있다. 엘도라도에서 얻은 막대한 보물들은 덧없는 환상처럼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온갖 자연재해로 거의 죽다 살아나며, 누구나 그를 핍박하고 등쳐먹으려 한다. 그뿐인가? 더없이 순진한 캉디드도 본의 아니게 사람이나 원숭이를 잔인하게 죽이고 만다. 그야말로 이 세상은 저주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과연 판그로스 선생의 말은 옳은 것일까? 캉디드는 회의를 품는다. 비관주의?염세주의자 마르틴의 등장이 그것을 더욱 부추긴다. 우여곡절 끝에 판그로스를 다시 만나고 낙관주의를 버리지는 않지만 그 뒤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낙천주의와 비관주의
캉디드는 온갖 악의 사건을 겪은 뒤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에 들어가는데, 이곳만이 최선으로 되어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나라, 지상에 있는 유토피아다. 또한 그렇게 애타게 찾던 ‘최선의 것’, 베네치아에서 찾은 키네공드 양은 이미 정신적 유토피아와는 먼 존재가 되어 있다. 흉한 몰골의 노예이다. 그럼에도 캉디드는, 반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는 키네공드의 오빠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나머지 반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녀를 버리지 않는다.
이야기 첫머리에서 판그로스 박사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못하도록 교육받은’ 젊은이가 마지막 장에서는 스승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정원의 교훈’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주인공의 성장을 암시한다.
과연 세상을 낙천주의로 바라볼 것인가, 비관주의로 바라볼 것인가? 《캉디드》는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고 독자에게 그 판단을 넘기며 끝을 맺는다. 결국 볼테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검증 없는 낙천주의를 비판하는 것이지 비관주의의 옹호는 아니다. 작은 농토를 경작하면서 캉디드가 한 말이 주는 메시지는, 최선의 세상과 미래에 대한 아직 남아 있는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일합시다. 일을 하는 것만이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캉디드의 또 다른 의미
볼테르는 《캉디드》에서 철학적인 면 말고도 몇몇 다른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먼저 애정소설적인 면이다. 볼테르는 철학적인 요소를 끝까지 밀고 가면서도 그 위에 사랑이라는 그림을 그려 넣어서 독자의 흥미를 유지한다. 다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운명과 사랑이 너무 기구하고 비참한 점은 조금 불만일 수 있다.
다음은 종교에 대한 비판이다. 그 무렵 성직자들은 행정권이나 재판권을 쥐고 탐욕에 빠져 더없이 타락했다. 《캉디드》에서도 성직자들이 사기행각이나 매춘 등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나오며, 이를 통해 그 시대 종교의 부패상을 엿볼 수 있다.
과학에 대한 볼테르 자신의 열성과 애정도 나타난다. ‘원인이나 결정적 이유 없이는 어떠한 일도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라이프니츠의 원리를 수용한 것, 판그로스의 실험물리학 수업, 낙천주의를 증명하려 애쓰는 캉디드의 언행은 그것을 잘 보여 주는 일례들이다.
볼테르의 역사관도 드러나 있다. 그는 정치 부패, 종교 타락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에 빗대어서 비판하고 있다. 당대 종교 지도자나 정치 지도자들은 시민에게 복종을 강요했고 존경받고 싶어 했지만, 실상은 위선자들이었다. 역사적 관점은 볼테르의 모든 철학을 지배하고 있다.
《캉디드》는 사상의 자유를 중시하며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사회 비판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볼테르의 지혜와 통찰을 보여 준다. 볼테르의 철학소설은 이 세상에서 ‘자연적인 악과 도덕적인 악’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변함없이 존재 의의를 지니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미크로메가스》
시리우스 별의 미크로메가스는 한 토성인과 함께 우주여행을 하던 도중 지구에 온다. 지구는 광대한 우주에 비하면 점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하찮은 곳이다. 토성인은 이런 곳에 생명체가 있을 리 없다고 단정한다. 그런데 그곳에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인간이 있었다. 미크로메가스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뜻밖에 인간들이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고 있음을 알고 놀란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물의 상대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모든 것은 작은 것에 비하면 크고, 큰 것에 비하면 작다.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지혜란 있을 수 없다. 토성인의 섣부른 판단이 빗나가는 것을 본 미크로메가스는 로크의 경험론을 바탕으로 하여 만물의 상대성을 확인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백지 책’은 인간의 지혜로는 감히 신의 뜻을 헤아릴 수 없음을 말한다.

《세상 돌아가는 대로》
정령 이튜리엘은 페르세폴리스에 대한 처분을 내리기 전에 먼저 바부크에게 그 도시를 둘러보라고 명령한다. 바부크는 페르세폴리스에서 매관매직, 비참한 배우들, 타락한 성직자, 경박한 문학자, 엄청난 세금 등 수많은 부패와 악습을 본다. 그러나 결국 그 도시가 마음에 들어, 이튜리엘에게 멸망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페르세폴리스는 곧 파리이며, 앞에 든 폐해 또한 그 시대 프랑스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다. 볼테르는 “모두가 선은 아닐망정 그럭저럭 괜찮다”는 결론을 맺는다. 이는 그 자신의 낙천주의와 현실주의 때문일 것이다. 가장 고귀한 것과 하찮은 것을 섞어 만든 조각상은 ‘선과 악의 균형’을 나타낸다.

《자디그 또는 운명》
볼테르의 자전적인 작품이며 ‘행복’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바빌론의 현인 자디그는 왕의 총애를 잃고 쫓기는 몸이 된다. 그를 남몰래 사랑하던 왕비는 그의 탈출을 돕지만 두 사람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그 뒤 자디그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하나의 선이나마 태어나게 하지 않는 악은 없다’는 신념으로 고난을 헤쳐 나간다. 이것은 《캉디드》에 드러난 신에 대한 환멸과 비관주의와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어 꽤 흥미롭다. 또한 자디그가 왕의 총애를 받다가 눈 밖에 나는 장면에서는 베르사유궁전에서 쫓겨나는 볼테르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행복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자디그에게 천사는 “선을 낳지 않는 악은 없다”고 대답한다. 자디그가 두 번이나 이의를 제기해도 천사는 대답하지 않고 천공(굈)으로 날아가 버린다.
볼테르는 자디그의 긴 여정을 통해,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지만, 인간 운명의 실에 분명한 형태로 제시된다고 말하고 있다. 자디그는 수많은 시련을 겪은 끝에 왕비와 결혼하여 왕위에 오르고 이야기는 행복하게 끝이 난다. 볼테르의 기막힌 문학적 상상력과 간결하고도 빠른 리듬의 문체가 돋보이는 걸작이다.

《멤논》
멤논은 완벽한 현자가 되겠다는 꿈을 꾼다. 그는 여자를 멀리하고 술과 음식을 자제하며, 노름이나 말다툼을 그만두고 궁궐생활을 단념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날이 저물기도 전에 아름다운 여인에게 홀려 돈을 뜯기고, 술에 취해 노름에 빠졌다가 싸움 끝에 한쪽 눈을 잃고 궁궐에서 얼간이 취급을 받는다.
천사가 “모든 것은 선하다”고 말하자 멤논은 “잃어버린 한쪽 눈이 되돌아오지 않는 한 믿을 수 없다”며 되받는다. 이 작품을 쓸 무렵 볼테르의 복잡한 심정을 느낄 수 있다.

《스카르멘타도 여행이야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하고 무서운 사실들을 환상과 현실을 뒤섞어 일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늘어놓는다. 주인공에게는 아무런 목적도 야심도 없다. 그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인상 깊게 본 것들을 늘어놓을 뿐이다. 온갖 위기를 넘기기도 하고 깜짝 놀라거나 탄식을 내뱉기도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온갖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는 결혼식을 올리고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든다.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상태임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그 시대에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던 온갖 만행에 대한 볼테르의 비판을 엿볼 수 있다.

《코시 생크터》
코시 생크더 부인은 정절이 지나친 나머지 애인을 비운에 죽게 하고 남편에게 사형 판결을 받게 하지만, 상대의 요구에 맞는 자비심을 보인 덕분에 동생과 아들과 남편을 살린다. 사람들은 이런 여성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이라 여기고, 그녀가 죽은 뒤 성녀로 받든다. 비문에는 이렇게 새긴다. “위대한 선을 위한 작은 악.”

《바빌론의 공주》
바빌론의 왕 벨류스는 아름다운 딸 포르모잔트의 남편감을 찾기 위해 세 왕을 초대한다. 그들은 서로 겨루어서 이긴 사람이 포르모잔트와 결혼하기로 한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아름다운 청년 아마잔이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포르모잔트는 서둘러 떠난 아마잔을 찾기 위해 불사조와 함께 머나먼 여행을 떠난다.

볼테르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두 남녀 주인공은 전 세계를 여행하며 모험을 즐기고 깨달음을 얻는다. 결국 두 사람은 다시 만나 결혼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모든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주제는 《자디그》와 유사하다. 


-YES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