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소개
『신악서총람』은 2015년 발간된 『악서총람』에 이은 장정일의 음악책 서평집이다. 114권의 책을 77편의 서평으로 다룬다. 바흐, 베토벤부터 핑크 플로이드, 데이비드 보위에서 황금심, 조용필을 지나 서태지와아이들, BTS, 십대 래퍼들까지 얽히고설키며 등장한다.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출처:교보문고
3. 목차
책을 엮으며
2016년
188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부근 휴양도시…
호텔 편지지, 휴지 조각, 담뱃갑, 냅킨 등등…
팬덤은 광적인 사람을 뜻하는 fanatic의…
미국의 지배 문화와 대결했던 반문화와…
대중문화 유산에 대한 광범하고 치밀한…
이병주는 1961년 5ㆍ16쿠데타 직후…
한(恨)은 한국 문학 내지 한국 문화를 운운할 때…
2014년 8월 9일이었다.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D그룹의 부장 김병준 씨의 별명은 ‘이거 차리려면…
비닐 레코드 LP를 찾는 사람들에 대한…
광화문에서 열린 제5차 촛불집회 무대…
2017년
우리가 가곡이라고 부르는 장르는…
줄곧 철학과 대중문화 사이를 횡단하며…
믿고 볼 만한 니체의 『비극의 탄생』 번역본이…
클래식과 재즈로 개종을 한 이후…
1960년생 전천후 작가인 지은이는…
미국의 역사가 이민의 역사이듯 디트로이트 역시…
한국 대중음악에 일본이 끼친 영향은…
클래식 음악계와 애호가들 사이에서…
한국은 1987년 대통령 직접 선거를 치름으로써…
이어령은 『오늘을 사는 세대에게』라는…
1982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본격적인 종교개혁 시작일은…
2018년
우리의 친구이자 금세기 최고의…
프랑스에서 1778년에 출간된…
음악은 어느 예술보다 자율적인 듯 보이지만…
여러모로 흥미롭기에 카스트라토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악은 한 번도…
우리는 누군가의 팬이다…
차일디시 감비노의 ‘디스 이즈 어메리카’…
지난 50년간 비평가들의 극찬을…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을 밥 딜런에게…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마흔넷, 그러니까…
실용주의는 미국의 고유한 철학…
슈베르트는 빌헬름 뮐러의 25편으로 된…
2019년
이 노래들은 같은 장르도 아니고…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
영어사전은 tube를 관, 터널, 텔레비전, 빨대로…
소설가이자 작사가, 평론가, 번역가…
1986년에 초간된 『축음기, 영화, 타자기』는…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에 살던 가예츠키 가족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몇 권이라도…
세계적으로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성기는…
시선을 흡입하는 대형 화보가…
조금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
다시 섞다, 믹싱하여 고친 녹음, 믹싱하여 고치다…
『광기와 소외의 음악』은 핑크 플로이드 팬이라면…
부인 이수자 여사가 쓴…
2020년
미국의 소설가 조너선 프랜즌은 래퍼를…
청각장애는 베토벤 생애를 논할 때…
한국에서 거의 처음 시도되는 가사 비평…
지은이와 그의 직업에 관한 호기심 때문에…
코로나 사태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지은이가 각기 다르고 소재도 다른…
맬컴 리틀은 1925년 네브래스카주…
송욱의 시구로 유명한 회사 같은 사회라는…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무엇이 됐든 간에…
1913년 일본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에서…
음악팬에게 특별한 행복을 안겨주는…
랩을 시와 비교하는 논의는 흔하다…
2021년
니콜라스 페그의 『더 컴플리트 데이비드 보위』…
모든 종말은 극적으로 오지 않는다…
미국 작가 가운데 단편소설을 가장 많이…
주인공의 이름 ‘레코스케’는…
읽다가 도중에 책을 덮었다…
1940년대 비밥 운동이 시작되면서…
‘예술가곡’은 시와 음악의 결합으로…
문학평론 가운데서도 시 평론이 특기인…
20대 독신 직장 여성의 성공과 사랑을…
너 아직도 피아노 치니?…
1284년, 현 독일 중북부 니더작센주에…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미래가 점점 다가올수록 우리에게…
2022년
학자들은 본래성이라는 기준으로…
한때 영국과 미국에서는 ‘쿨’이라는…
무려 24인의 저자가 케이팝의 역사를…
나라마다 국가(國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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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책속으로
믿고 볼 만한 니체의 『비극의 탄생』 번역본이 꽤 여럿 있다. 이진우, 박찬국, 김남우 등이 번역한 작업들이 그렇다. 이 목록에 김출곤과 박술이 공동번역한 다 출판사의 책을 더하고 싶다. _76쪽
젊은 사람들에게 트로트의 진가를 왜 모르냐고 다그치는 노인처럼, 아무데서나 힙합을 들이대지 말라. 음악사회학적 진실은 ‘내가 듣는 음악은, 너한테도 좋은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보편 음악은 없다. _84쪽
팝팬 가운데 모타운에서 나온 음반이나 모타운 소속 가수를 꼽아보라면 머뭇거리며 말하지 못할 사람도 많다. 하지만 미러클스ㆍ포 탑스ㆍ템테이션스ㆍ다이애나 로스 앤 더 슈프림스ㆍ마빈 게이ㆍ스티비 원더ㆍ잭슨 파이브ㆍ마이클 잭슨ㆍ코모도어스ㆍ스모키 로빈슨 등 대부분의 미국 흑인 대중 뮤지션들이 모타운에서 한솥밥을 먹었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_91쪽
인간은 항상 완벽한 ‘전체’에 대한 꿈을 꾸지만, 인간의 세계는 항상 어딘가 일그러져 있고 결핍되어 있다. 이처럼 일그러져 있고 결핍된 세계를 억지로 완벽하게 만들고자 할 때 전체주의가 생겨난다. 나치와 공산주의가 그런 것이었다. _107쪽
신교가 평신도들이 함께 부르는 찬송가를 도입한 것은 교회음악의 획기적인 변화다. 이는 구교의 전례 성가가 성직자와 직업 또는 반직업 성가대의 전유물이었던 것과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런 획기적인 변화는 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모양으로, 16세기 말까지 신교 진영(루터교)은 4,000곡의 신곡을 지어 퍼뜨렸다. 매우 흥미롭게도 루터에 관한 모든 문헌은 그가 음악 천재이기도 했다고 알려준다. _123쪽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이 타락하거나 이념과 연관되더라도 음악만은 순수하게 존재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래서 음악이 사회로 퍼져나간다고 믿고 싶지, 사회가 음악을 지배한다고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_135쪽
시가 노래로 불릴 때 가사가 된다면, 반대로 노래로 불리기 이전의 악보는 자동적으로 시집이 되는 걸까? _165쪽
모든 사랑은 우매하게 시작하며, 우매한 사랑은 둘이서 하나 되고자 서로의 살과 영혼을 집어삼킨다. 그러나 지혜로워지고 나서는 집어삼킨 연인의 살과 영혼을 토해낸다. 삼키고 토하는 과정을 죽을 때까지 계속하자. 그런 사랑을 맹서하자. 그러기를 거부하는 사랑, 타자의 살과 영혼을 삼킨 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면역성을 제거한 맹서는 여덟 개의 사지와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된다. _188쪽
스탈린이 죽기 전에 누군가 그에게 형식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_194쪽
인간의 사유는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지배적 기술이 만들어 낸 종합적 효과일 뿐이다. 문자의 독점이 끝나지 않았던 1800년대에는 인간이 사고를 했으나, 타자기와 전기 기술이 만들어 낸 새로운 기술 매체는 인간의 사고와 지각을 바꾸었다. 예컨대 인터넷 시대를 기점으로 우리의 인성이 크게 달라졌다면, 키틀러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_206쪽
찰리 크리스천을 시작으로 브라이언 존스ㆍ제프 벡ㆍ에릭 클랩튼ㆍ피터 타운젠드ㆍ지미 페이지ㆍ지미 헨드릭스ㆍ에드워드 로데윅 밴 헤일런 등이 없었다면 일렉트릭기타는 빗자루와 무엇이 달랐을까. 일렉트릭기타는 빅밴드 일색의 재즈계를 세 명에서 여덟 명까지의 인원으로 편성되는 소규모 편성의 콤보로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_233쪽
한국의 젊은 시인들은 힙합에 아무런 위협감을 느끼지 못한다. 시인들이 고지식하거나 콧대가 높아서가 아니다. 시인들은 새로운 조류에 민감하고 그것들을 기꺼이 자신의 작업이나 방법론에 반영한다. 그런데도 힙합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그 해답은 시인들이 아닌, 한국의 래퍼들이 알고 있다. _252쪽
김민기가 작사ㆍ작곡하여 송창식에게 준 ‘강변에서’(1976)를 처음 들었을 때 소름이 끼쳤다. 한국 가요사에 열여섯 살 난 ‘공순이’가 갑자기 난입한 이 광경은 무어라 형언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 노래의 ‘공돌이’ 버전이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1986)라고 한다면 당신은 웃을 텐가. _262쪽
읽다가 도중에 책을 덮었다. _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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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출판사서평
여러 얼굴의 장정일 가운데
시, 소설, 희곡, 영화가 한 우물에서 나듯 퍼 올리는 장정일의 가장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닥에 끊김 없이 흐르는 단 한 가지의 무언가가 있다면 무엇일까. 『신악서총람』은 작가 장정일의 바탕과 바닥 가장 아래에 위치한 형질이 ‘음악’이라고 말해준다. 『신악서총람』은 2015년 발간된 『악서총람』에 이은 음악책 서평집이다. 114권의 책을 77편의 서평으로 다룬다. 찾아보기에 정리된 인명과 고유명사만도 400여 개에 이른다. 바흐, 베토벤부터 핑크 플로이드, 데이비드 보위에서 황금심, 조용필을 지나 서태지와아이들, BTS, 십대 래퍼들까지 얽히고설키며 등장한다.
한 번도 읽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한 권만 읽은 사람은 없는
카세트라디오에 연결해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을 소원했던 열아홉 소년(『아담이 눈뜰 때』)은 감정으로 변주되는-불협화음과 장식음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음악처럼-가변적인 세계, 악의 없는 거짓말의 세계를 세계의 참다운 일부로 인식하며(『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20, 30대를 써내리다가, 커다란 JBL 스피커 속에서 잠들어 있는 꿈을 꾸며(『독서일기 6권』) 21세기를 맞이했다. 꾸준히 시를 쓰고 희곡집과 소설을 발표하는 와중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채워 넣는 끼니가 있었으니 바로 93년도부터 이어지는 독서일기다.
한 번도 읽지 않은 자는 있어도 한 권만 읽은 애서가는 없다는 그의 독서일기는 1993년부터 2022년까지 시대나 출판시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열두 권째 이어지고 있으며, 2015년에는 드디어 음악책만을 오롯이 따로 챙겨 모아 ‘악서총람’을 엮기에 이른다.
음악 속에 살지만 음악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 작가
재즈, 클래식 애호가이자 음반 수집가로 알려진 장정일은 오디오에도 좁고 깊은 취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그는 그 어떤 음악 관련 글도 쓰지 않는다. 모은 레코드를 소개하지도 작곡가의 에피소드를 전하지도 않는다. 오직 음악 장르, 글의 종류, 출판사나 필자를 가리지 않고 ‘악서’만을 집요하게 찾아 읽고 오선지를 원고지로 옮겨왔다. 그에게 음악은 듣는 것만큼이나 읽는 것이다.
힙합은 물론이고 소설 속 음악, 종교 음악, 북한의 선전 음악, 일본의 소녀가극단까지 종횡무진하는 열람실을 구경하노라면 ‘음악책을 모두 모았다’는 제목이 그리 큰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힙합의 노랫말은 시인가, 래퍼들은 시인일까
이번 독후감들에서 눈에 띄는 주제는 랩과 사회, 힙합과 문학 간의 관계다. 이 주제를 짚어 가장 먼저 언급하는 『세상과 나 사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무거운 유산이다. 아무런 잘못 없이 비무장 상태로 죽임을 당하는 흑인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나라 미국의 시민인 타네하시 코츠는, 어느 날 잠 못 이루는 아들을 향해 ‘검은 몸을 하고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는다. 흑인이 짊어진 상황, 분노와 폭력이 바탕이 되는 이 시작점은 『누가 시를 읽는가』에서 왜 흑인이 랩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들에게 랩이 무엇인지로 이어진다. “나는 힙합이 쓴 시다. 내 이야기는 무너진 사회기반시설 밑에서 펼쳐진다. 나는 어디서든 글자를 발견해내고는 자석처럼 이끌렸다. 사실 그때 몰두했던 것을 청소년 시라고 부른 적은 없다. 내 동네에서는 힙합이라고 불렀으니까. 랩은 십 대였던 나의 분노가 폭력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배출시켜주는 통로가 되었다. 내게 꾸준했던 건 말밖에 없다. 말은 내가 가진 막강한 힘이다. 나는 말로 치유하고, 말로 짓는다.”(249쪽)
그렇기에 빈곤계층일수록 래퍼가 절실했다. 스웨그(swag)는 기술이자 표현이고, 욕설은 밑밥이자 무시당하지 않도록 해주는 힘이 되었다. 장정일은 『가난 사파리』와 『나는 무슬림 래퍼다』를 통해 전 세계를 사로잡은 음악 장르 힙합의 근원과 이제는 막강해진 래퍼들의 세계가 애초에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짚어보지만, 현대시가 퇴조한 까닭으로 리듬 요소의 약화를 꼽은 『힙합의 시학』에 이르러서는, 시대와 조우하고 결국 결별하는 대중음악은 언제나 시와 똑같은 대접을 받아왔다고 곁말을 붙인다.
랩은 시를 대신할 수 있을까? 장정일은 에이드리언 미첼의 언급을 빌려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를 외면한다. 대부분의 시가 사람들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장정일이 독자에게 환기하는 지점은 여기다. 래퍼들이 현대의 보들레르이고 미국에서 래퍼의 역할이 호메로스와 마찬가지라면, 한국에서 랩과 시의 사정은 어떨까? 한국 시인들은 왜 랩에 귀 기울이지 않을까? 한국 현역 래퍼들은 일반적으로 가사(verse)를 쓰며 래퍼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는데, 한국 래퍼들의 가사에는 어째서 여성혐오와 차별이 난무할까? 시인들이 시대의 흐름에 둔감해서 일까? 한국 랩과 힙합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환경이 달라서일까?
음악을 휘두르는 체제일까, 체제 너머의 음악일까
음악과 프로파간다, 음악과 지배체제, 음악과 혁명 등은 장정일이 음악책을 손에 쥘 때 빠지지 않는 열쇳말이다. 자연스럽게 북한의 음악이 등장한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은 파격적으로 전자 음악을 선보였다. 뿐인가! 전자기타와 전자 바이올린, 전자 첼로로 연주하는 음악이 다른 아닌 디즈니의 만화영화 주제곡들이다. ‘모란봉악단’은 자본주의에 반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날로 높아지는 주민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체제를 강화하고 지도자의 입지를 다져야 하는 막강한 책무를 지닌 채 공연을 한다(149쪽). 높은 인기는 남한의 걸그룹과 같은 위상이지만 맡은 책무는 국가의 일급 공무원 수준이다. 남한의 경우는 어땠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이돌그룹을 좋아하고, 대통령의 주변인들이 전 예술 영역에 걸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활용한 사례는 사실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아쉽게도 아직 ‘정치와 음악의 상관관계 연구가 한국에서는 척박하다’고 지적한 『정치와 음악』 저자 김은경은 음악 정책을 통해 박정희 체제를 연구했다. 장정일은, ‘사람들은 음악이 사회로 퍼져나간다고 믿고 싶지, 사회가 음악을 지배한다고 믿고 싶어 하지는 않는’데 저자 김은경이 후자의 입장을 취하며 정치학자의 연구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고 평한다. “독재자일수록 법과 제도로 음악을 통제하려고 한다. 음악만큼 정치를 강하고 유연하게 실어 나를 수 있는 매체도 없기 때문이다.”(139쪽)
지배 이데올로기 안에서 음악의 반작용은 어떨까. 러시아가 빠질 수 없다. 장정일은 혁명적인 작곡가 반열에 언제나 상단을 차지하는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선입견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며, 스트라빈스키가 쓴 『음악의 시학』 한 구절을 떼어 온다. “혁명적이라는 지적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어떤 습속을 깨뜨리는 것만으로 혁명가라는 딱지가 붙을 수 있다면 뭔가 할 말이 있는 음악가, 그 말을 하기 위해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 음악가는 전부 혁명가 소리를 들어야겠네요.” 장정일은 예술과 혁명을 스트라빈스키처럼 깔끔하게 대비할 때 의심해보아야 한다며(15쪽), 러시아혁명의 피해를 크게 입은 그의 개인사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련의 대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궁금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을 펴든 장정일은 이 책이 쇼스타코비치의 전기라기보다는 ‘스탈린 시대에 음악가로 생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답이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강요당한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이 몰입한 현대성을 읽어야 한다고 깨닫는다. 알다시피, 혁명 초기에 불붙었던 예술 실험은 스탈린 이후 ‘형식주의’라는 껍데기를 입었다. “지나치게 가볍고 사소하다는 비판, 지나치게 음울하고 절망적이라는 비판,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비판, 지나치게 감정이 메마르다는 비판도 형식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대중적 곡조를 포함하면 포함했다고, 인민의 음악을 무시하면 무시했다고, 위대한 작곡가들의 옛 방식을 저버리면 저버렸다고, 혁명 전 과거 대가들의 옛 방식을 계승하면 계승했다고 공격받았다.” 스탈린은 도대체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뭐라고 생각한 걸까? 장정일이 스탈린의 대답을 이 책에서 찾아냈다(194쪽).
스트리밍이 대세가 되자 LP가 돌아왔다
재생 기술을 다루는 글은 음악책 카테고리 가운데 빠질 수 없는 분류 중 하나다. 『신악서총람』에는 전자기타의 발전 등 새로운 악기들이 가져온 파장뿐 아니라 녹음과 재생을 다룬 여러 책들이 등장하는데, 특히 독자들에게 키틀러를 흥미롭게 소개한다(205쪽). 매체를 사용하는 인간을 매체보다 우위에 놓은 마셜 매클루언과 정반대 입장으로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라고 말한 키틀러는 슈토크하우젠의 전자음악을 비롯해 외양으로는 반체제처럼 보이는 지미 헨드릭스, 롤링스톤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군사 장비로 개발된 다양한 발명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인간과 동물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전장/전파’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장정일은, “음반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공기의 진동을 통해 영글어지는 시간의 예술이 아니라, 골전도에 직입된 조작 가능한 시간의 계측점이 되었다”고 중얼거리는데, 어딘지 모르게 자조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가 오늘도 기꺼운 마음으로 이십 분에 한 번씩 바늘을 옮기며 음악을 듣기 때문이 아닐까.
숱한 음악의 짝들
디오니소스적 도취와 아폴론적 형식의 대립 또는 변주(40, 145, 371쪽), 빠질 수 없는 『비극의 탄생』(76쪽) 얘기와 칸트의 ‘철학하기’로 김광석을 읽는 김용석의 저술(72쪽)까지, 장정일은 매꼭지마다 음악과 짝꿍을 찾아 읽는다. 이 태도는, 음악은 사회를 반영한다는 사실 위에 ‘음악책으로 사회를 독해할 수 있다’는 그만의 관점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애독자라면 그가 집요하고도 폭넓게 언급하는 무수히 많은 음악책 가운데 태반이 거의 언급 또는 홍보되지 않았음을, 그가 그다지 공개된 적이 없는 서가의 문을 열어주고 있음을 눈치챌 것이다.
출처: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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