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 1825 1기(13.3~18.2)

6월의 추천 도서(485) 멋진 신세계 - 헉슬리


 

1. 책 소개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헉슬리는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위트, 명석하고 이지적인 문체를 통해 현실의 다양한 가치의 혼돈 속에 자아를 해체하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보여준 천재적인 작가이다. 1932년에 발표한 <멋진 신세계>는 야만인 청년을 통해 두 세계, 즉 유토피아 세계와 원시적인 세계를 제시한 작품이다.

문명 비판적 풍자와 도덕적 교훈이 잘 맞물려 현대 문명사회를 희화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진보주의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세기에 쓰인 미래소설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시대. 아픔이나 배고픔 같은 육체적인 고통뿐만 정신적인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런 결핍 없이 원하는 모두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곳, 죽음마저 감미로운 멋진 신세계. 이곳에서는 모두가 행복하다.

하지만 그 행복이 진실일까? 이곳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알파에서 엡실론까지 다섯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 시험관 안에서 자기 계급에 맞게 맞추어져 태어난다. 필요에 의해서 똑같은 일을 하도록 만들어진 수십 명의 쌍둥이들. 그들은 정해진 운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회에 순종하면서 자신이 처한 위치가 다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그러한 가치관이 태어나기 전부터 수면학습이나 전기 자극 등을 통해 몇 백 번씩 반복하여 학습된 것이라면 그 행복을 진실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신세계와 떨어진 원시지역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초대된 원시청년 존은 이들의 행복에 몹시 당황한다. 그는 그들의 가치관에 동의하지 못하며 자신이 불행해질 수 있는 권리를 찾으려 한다.

 

출처 - 알라딘

 

2. 저자 소개

 

올더스 헉슬리

영국 출신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지적 정보와 함께 재치와 풍자로 가득 찬 다양한 방면의 저술 활동으로 유명한 헉슬리는 20세기 관념소설의 큰 줄기를 이룬 대표적 작가다. 야만인 청년을 통해 두 세계, 즉 유토피아 세계와 원시적인 세계를 제시한 작품으로 문명 비판적 풍자와 도덕적 교훈이 잘 맞물려 현대 문명사회를 희화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진보주의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멋진 신세계』라는 미래 소설이 가장 유명하다.

1916년 시집 『불타는 수레바퀴』를 출간한 이래 몇 권의 시집을 더 냈으나, 1921년 『크롬 옐로우』가 인정을 받은 후부터 일생동안 소설 창작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그의 대표작이라고 여겨지는 『연애대위법』(1928)은 다양한 1920년대 지식인들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이 소설로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 밖에도 과학문명에 지배되어 가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멋진 신세계』(1932), 평화운동을 추구하는 작가 자신을 그린 『가자에서 눈이 멀어』(1936), 폭력의 부정을 역설한 『목적과 수단』(1937), 제3차 세계대전을 가상해서 쓴 『원숭이와 본질』(1948) 등의 저서가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어릿광대의 춤(Antic Hay)』, 『하찮은 이야기(Those Barren Leaves)』, 『연애대위법(Point Counter Point)』,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가자에서 눈이 멀어(Eyeless in Gaza)』, 『목적과 수단(Ends and Means)』, 『원숭이와 본질(Ape and Essence)』, 『루당의 악마(The Devils of Loudun)』, 『천재와 여신(The Genius and the Goddess)』, 『아일랜드(Island)』 등이 있다. 

 

3. 출판사 서평

 

20세기에 쓰인 미래소설 중 가장 우수한 작품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헉슬리는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위트, 명석하고 이지적인 문체를 통해 현실의 다양한 가치의 혼돈 속에 자아를 해체하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보여준 천재적인 작가이다. 1932년에 발표한 《멋진 신세계》는 야만인 청년을 통해 두 세계, 즉 유토피아 세계와 원시적인 세계를 제시한 작품으로 문명 비판적 풍자와 도덕적 교훈이 잘 맞물려 현대 문명사회를 희화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진보주의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세기에 쓰인 미래소설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죽음마저 감미로운 멋진 신세계

어느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시대. 이곳에는 아픔이나 배고픔 같은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외로움이나 슬픔 같은 정신적인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고 원하는 모두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곳, 죽음마저 감미로운 멋진 신세계. 이곳에서는 모두가 행복하다.

하지만 그 행복이 진실일까? 이곳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알파에서 엡실론까지 다섯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 시험관 안에서 자기 계급에 맞게 맞추어져 태어난다. 필요에 의해서 똑같은 일을 하도록 만들어진 수십 명의 쌍둥이들. 그들은 정해진 운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회에 순종하면서 자신이 처한 위치가 다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그러한 가치관이 태어나기 전부터 수면학습이나 전기 자극 등을 통해 몇 백 번씩 반복하여 학습된 것이라면 그 행복을 진실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신세계와 떨어진 원시지역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초대된 원시청년 존은 이들의 행복에 몹시 당황한다. 그는 그들의 가치관에 동의하지 못하며 자신이 불행해질 수 있는 권리를 찾으려 한다.

 

출처 - 알라딘 제공

 

4. 책 해설

 

올더스 헉슬리가 예견하고 있는 미래는 과학기술의 지나친 남용으로 인해 인간성이 파괴되는 끔찍스러운 세계이다. 그것은 결코 멋진 세계도 아니고 용기 있는 세계도 아니다. 한 난자에서 180가지의 인간을 생산해내는 공장과 그 아이들을 타율과 강제에 의해 주어진 조건 속에서 교육, 훈련시키는 장면으로 『멋진 신세계』는 시작된다.

실험용 병 속에서 태아가 자라나고 267일 만에 기계적으로 대량생산되는 태아들은 햇볕이 드는 방으로 옮겨져 병마개가 따진 후 유아실로 들어간다. 그 인간생산공장의 모든 작업자들은 소장의 명령에 복종하는 개성 없는 간호원들로서 8개월 된 아이를 꽃과 책으로 향하게 하는 조건부여 작업을 시행한다. 저능의 아이들이 책과 꽃을 미워하게 함으로써 능률과 효과를 극대화시키겠다는 것이 포드라는 절대적인 인물의 철학이다.

총 관리인인 머스타파 몬드는 독재자 포드의 하수인이고, 그 밑에 소장 헨리 포스터와 국장 토마스가 있다. 몬드는 전 세계를 총괄하는 관리인들 중 하나로서 유럽을 담당하고 있다. 이 시대는 포드가 절대자로 취급되어 연도의 지칭도 '포드 탄생 후 몇 년'으로 명명된다. 이런 전체주의적 계급사회에서 가정생활이라는 것은 위험시된다. 또한 인간감정을 최소화시키고 안정적 세계질서를 최고가치로 여기는 사회윤리 속에서 진정한 사랑은 싹트지 못하고 왜곡되고 금기시된다. 두뇌가 우수한 최면교육 전문가로 등장하는 인물인 버나드 맑스는 이러한 병적인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올더스 헉슬리는 이 작품 속에서 '비인간적 기계문명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셰익스피어로 대변되는 인문학정신'이라는 점을 나타내고자 했다. 비록 인간성의 유지와 회복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적 상황을 맞고 있지만, 문학으로 이 끔찍한 기계문명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작가적 소명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몇십 년 후에 닥쳐올지 모르는 이 사회의 주요 지배 원리는 '공공성' '단일성' 그리고 '안정성'이다. 이런 통치이념에 반하는 것은 모두 금지되고 과거의 인간사회의 흔적도 소멸되며 과거의 모든 책들은 금기시된다.

등장인물 중 하나인 레니나의 애정행각은 여러 남자와 번갈아가며 벌어진다. 그녀는 태아였을 당시 병에 알코올이 실수로 떨어져 생김새가 찌그러지고 우울하며 감성이 없고 소심한 성격인 버나드 맑스, 낙천적이고 쾌활하지만 지성만 발달된 오만한 성품의 베니토 후버, 인간생산공장의 공장장 헨리 포스터, 그리고 감정공학 대학의 감성교육 엔지니어이자 글쓰기를 가르치는 알파 프러스의 엘리트인 헬름홀즈 왓슨 등과 수시로 접촉한다.

인간생산공장에서는 인간의 계급이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등으로 정해져 필요한 인간유형이 결정, 생산되는데, 이 신세계의 통치체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반감과 혐오를 가지는 자들은 알파의 계층, 맑스와 왓슨과 같은 두뇌작업자들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과잉상태에 있으며 개성의식이 있고 신세대의 온갖 기상천외한 오락에 취미를 느끼지 못하여 통치체계의 구호와 선전을 만들어 내면서도 그것에 스스로 동화되지 못하는 소외된 유형의 인물들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문학은 풍자와 역설의 문학이다. 이런 현대 문명의 첨단과 종착이 비인간적으로 병적인 도착상태임을 천명하면서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서 어떠한 집착과 강박관념으로부터도 자유롭고 해탈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불교적 동양사상을 제시하는 넓은 세계관을 보이는 데서 그의 문학세계의 위대성이 있는 것이다.

레니나는 내성적이며 사교성이 없는 버나드 맑스를 꺼려한다. 그 이유는 전체주의적 사회에서는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 행복인데 그러지 못하고 자신의 자유를 추구하는 버나드의 자기모순에 대해 그녀는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버나드 맑스는 런던 신생아 부화조절 센터의 소장인 포스터에게 도전하고 저항하며 지적 우월감과 육체에 대한 열등의식의 이중적 갈등 속에서 벽지 아이슬란드로 전출을 당할 위기에 봉착한다. 토마스는 25년 전 뉴멕시코로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서 애인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음이 드러나는데 그 사건이 작품 뒷부분에 나오는 린다라는 여인과 그녀의 아들 존에 관한 이야기로 전환되면서 작가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밝혀진다.

버나드 맑스는 레니나를 데리고 뉴멕시코의 인디언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기괴한 장면에 혐오감을 느끼는 레니나에게 버나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이에게 젖을 주는 모습, 소년을 채찍으로 때려 피를 흘리게 해서 뱀에게 뿌리는 노인, 풍년을 위해 기우제를 올리는 원시 신앙의 축제행사 등을 목격하는 중에 그들은 아주 늙어 흉한 모습을 하고 있는, 25년 전에 포스터의 애인이었던 린다와 그녀의 아들 존을 만난다. 이 부분에서 비인간화된 기계문명적 전체주의적 세계에 대한 대칭으로 인디언 원시인들의 가치윤리관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베타계급의 여인이었던 린다로부터 과거 지나온 인생의 역경과 고난을 듣고, 존으로부터 원주민인 포페가 자기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타당하고 고생하는 것에서 애증의 갈등을 체험한 이야기를 듣는다. 어머니가 자기의 고향의 아름답고 행복한 문명세계에 대해 말할 때마다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존은 어머니가 글을 가르쳐주어 서구 문명세계의 책과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는다.

인디언들의 생식능력과, 불임이 문명으로 여겨지는 서구 문명사회의 갈등구조가 대비되어 존을 혼란시키기도 한다. 어머니에게서 들은 '멋진 신세계'의 서구 기계문명에 대한 동경과 인디언들의 종교, 신화가 가지는 자연적 은밀한 가치의 두 세계관 속에서 존은 성장한다. 그는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으면서 말이 가지는 어떤 마력을 느끼며 어머니와 성관계를 가지고 있는 포페를 살해하려고도 하고 어느 노파에게 질그릇을 만드는 법도 배우면서 행복을 느낀다. 인디언들의 성인이 되는 의식에 참여했다가 백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며 벼랑 끝에서 피를 흘리며 서 있다가 달빛 속에서 시간, 죽음 그리고 신에 대한 어떤 커다란 깨달음에 도달한다.

어려서부터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셰익스피어 작품은 과학기술의 비정상적 과잉발달로 인한 인간성 상실의 비극적 상황을 치유할 수 있는 대칭적 처방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올더스 헉슬리의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적 직관에 대한 철저한 믿음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차단되고 따돌림 받으면서 살아온 존은 버나드 맑스와 비슷한 소외의식의 인물로 그려지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에 빗대어지기도 하는데 런던으로 가겠느냐는 질문에 "오, 멋진 신세계!"라며 경탄하고 레니나에게 어떤 연정을 느끼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 속에서 나오는 남녀간의 욕정과 본능을 연상하면서 누워 잠들어 있는 레니나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기도 한다. 린다와 존을 런던으로 데리고 온 버나드 맑스는 토마스의 과거 비밀을 폭로하여 자기를 벽지로 전출시키려는 소장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토마스는 존이 아버지라고 부르자 당황해하며 어쩔 줄을 모르고 사실관계를 부인하다 다른 사람들의 조소를 받으며 국장직을 사퇴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린다와 포스터의 자연스런 성관계에 의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는 인조인간들에게 유명한 존재가 되지만 린다는 오히려 처량한 신세가 되어 소마를 과잉복용하면서 환각상태에 빠진다. 존을 데리고 와 그를 이용하여 기세를 얻는 버나드 맑스는 존이 문명세계에 대해 경외감이나 존경심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영혼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고 지역 총 지배자인 머스타파 몬드에게 보고한다.

학교를 방문하는 존은 셰익스피어 대신 감정공학이나 죽음 예비교육, 혹은 후각, 시각, 촉각을 살린 음악 교육이 시행되는 것을 본다. 야만인으로 취급되는 존은 레니나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그녀가 육체적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피하고 셰익스피어 작품 속에서 위안을 느낀다. 버나드 맑스가 제멋대로 사람들을 초대하여 자기를 구경시키려고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존에게 레니나는 후각, 촉각, 시각의 효과가 생생하게 연출되는 영상물과 감성공학의 연회장에서 사랑을 고백하려고 하지만, 대중들에게 막강한 호소력을 지닌 인기가수에게 레니나가 끌려 나가자 버나드 맑스는 낙심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자기가 로미오이고 레니나가 줄리엣이라고 여기면서 자기 위안을 얻는 존은 왓슨과 친해진다. 왓슨도 『로미오와 줄리엣』이야말로 탁월한 감성공학의 산물이라고 공감을 표시하는데, 이는 셰익스피어로 대변되는 문학의 본연적 가치와 힘이 첨단생명공학에 비해 얼마나 더 큰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레니나는 또 소장 포스터와 관계를 가지면서 존을 생각하다가 어느 병 속에 태아에게 주사약을 주는 것을 잊어버려 결국 그 아이가 22년 8개월 4일 후 어떤 질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

여러 남자들과 관계를 갖지만 만족을 얻지 못하고 원시인인 존만을 애타게 원하는 레니나는 결국 그를 찾아가 구애하고, 존은 남자가 결혼하려면 사자나 늑대의 가죽을 여자에게 주고 관계를 갖는다는 인디언 관습을 말하면서 그녀의 육체적 접근은 거부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싯귀절을 읊어대며 자신을 잔인하게 때려 상처를 입히는 광란적인 심리상태를 보인다. 이는 자기 어머니의 성관계를 목격한 뒤 생긴 성혐오증에 따른 심리적 자학증세인지도 모른다. 그는 44세의 나이로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는 어머니 린다를 찾아가 옛날 일을 회상한다.

그의 뇌리에는 어머니가 들려주던 문명화된 저 다른 세계의 아름다운 공상의 이미지가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었지만 어느새 포페와의 추악한 장면들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는 모순적 애증의 심리상태에 빠진다. 포페에 대한 질투심에 린다를 마구 흔들어 숨을 못 쉬어 죽게 만든 후 존의 울부짖는 통곡이 병원에서 평안한 죽음의 현장 교육을 받으러 온 아이들과 간호원들을 놀라게 만든다.

어머니가 죽은 뒤, 일과를 끝마치고 소마를 배급받기 위해 병원 현관에 모여 웅성대는 똑같은 모습의 인조인간 162명에게 존은 소마는 행복을 주는 약이 아니라 독약이라고 외쳐댄다. 그는 자기가 그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기 위해 왔다며 노예가 되기 싫으면 인간성을 회복하고 진정으로 멋진 신세계를 건설해야 한다고 부르짖다가 대중의 분노를 사 공격을 받고 폭동진압 경찰에 체포되어 맑스, 왓슨과 함께 서유럽 통치자 몬드에게 끌려간다.

몬드와의 대화에서 존은 문명이 좋은 점도 있고 아름다운 점도 있지만 자신은 그것이 싫다면서 셰익스피어의 시가 감정공학의 어느 첨단 예술보다 더 훌륭하다고 말한다. 그에 대해 몬드는 행복은 안정 속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하층 계급일수록 만족해하고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자기가 시행한 두 실험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하나는 사이프러스 섬에서 22,000명의 최고급 부류의 알파형들을 정착시켜 농업과 기타 산업에 종사시켰으나 결과는 실패였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아일랜드에서 150년 전에 행한 실험으로 노동시간이 짧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는 너무 많은 여가는 소요와 불안을 야기시켜 해롭고 과학이나 예술은 행복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독재자적인 가치관을 표명한다.

그의 논리에 의할 것 같으면 행복이란 진리보다 더 다루기 어려운 것이고, 지식과 진리가 최고의 선으로 여겨졌던 과거와 달리 새로운 세계의 통치철학은 진리나 미로부터 안락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는 행복이 우선하는 통치질서의 기본이념은 무한한 과학탐구의 자유가 통제되어 유토피아의 세계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탄저병 폭탄이 나왔던 9년 전쟁 후 행복을 위해 예술, 과학, 종교가 희생되었으며 이제 모든 것은 쾌락을 주는 인기가수의 위력에 달려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 존은 사람이 늙어갈수록 종교적 감정이 더해지고 종교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항상 젊음의 욕망이 좌절되지 않고 오락의 대체물이 있으며 소마에 의한 쾌락이 보장된 현대의 사회질서 속에서 신이 있겠느냐는 몬드의 질문에 아마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존은 인디언 원주민의 마을에서 공동사회로부터 차단되는 고독한 생활을 했지만 런던에 와서부터는 공동생활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고독해질 수 없는 역전된 상황에서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그는 『리어왕』을 인용하면서 "문명인은 불쾌한 것을 참을 필요가 있으며 자기 부정과 순결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존은 불편한 삶을 원하고 신과 시를 원하며 자유와 선과 죄 그리고 위험을 원한다면서 문명사회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다.

맑스와 왓슨, 그리고 존은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이 문명세계를 떠나게 해달라고 몬드에게 청원한다. 더 이상 뭇사람들의 노리개나 실험대상이 되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존은 언덕 위의 등대 옆에 숨어, 잠도 자지 않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인디언 원주민의 수호신들과 예수에게 기도하면서 자기수련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고독한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문명생활에 오염되지 않고 숲 속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하면서 그는 기쁨을 얻는다. 불쌍했던 어머니도 생각하고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뉘우치면서 자신을 마구 채찍질하면서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사흘째 되는 날,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한다. 어머니의 모습과 겹쳐 그의 머릿속에는 그가 매춘부라고 욕을 했던 레니나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것에 고통을 느낀 그는 가시덤불에 넘어져 허우적대면서 실성한 것처럼 자신을 마구 때린다. 망원렌즈로 촬영된 이 광경이 '서레이의 야만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흥행에 성공을 거두자, 사람들은 떼를 지어 그에게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들로부터 온갖 야유와 조롱을 받으면서 존이 원숭이 취급을 받는 중에, 레니나가 헬리콥터를 타고 와서 애원하듯 그에게 접근하지만 그는 채찍을 휘두르며 거절하고 자신을 마구 후려친다. 그러자 그곳에 있는 모든 군중들이 그를 따라 서로를 때리면서 야단법석의 노래와 난장판을 치른다. 자정이 넘어 모두가 떠나간 뒤 소마를 먹고 관능의 발작 상태에 지쳐 잠들어 있던 존은 깨어나 "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외치다가 그날 저녁 천장에 목매어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멋진 신세계』에는 문학과 과학의 화합적 절충과 조화를 작가 정신으로 하고 있는 올더스 헉슬리의 문학관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몬드가 작가의 한 측면을 대변하고 있다면 존도 다른 대칭적 측면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인디언의 자연 환경 속에서 셰익스피어의 정신을 교육받은 존은 예술의 순수성을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상상력의 자의적 파괴를 상징하는 자살을 기도하는데, 그의 자살은 기계문명과 인간성 보존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점을 나타낸다. 이 작품의 내용은 작가가 600년 뒤를 예견하고 쓴 것이지만 실은 100년 뒤에도 가능한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는 자신의 외증조부인 매슈 아놀드의 주장, 즉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상상력, 그의 본연성과 가능성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문학적으로 실현시킨 것이다. 이것은 과학이 모든 것의 만병통치약이라 주장했던,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인 토마스 헉슬리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철학자는 통치자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플라톤이 주장한 것에 대해 올더스 헉슬리는 예술가, 특히 문학가가 새로운 세계질서의 주동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작가정신을 이 작품 속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지식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