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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25 1기(13.3~18.2)

6월의 추천도서(1575)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2 - 백선엽




1. 책소개


한국전쟁 대승을 이룬 백선엽 장군 회고록

한국전쟁에서 기념비적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승의 장군' 백선엽의 6ㆍ25 이야기『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제3권 ‘완결’. 대한민국 최초 4성 장군 백선엽이 우리 세대에 전하는 치열하면서도 고통스러운 한국전쟁에 대한 1,128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전쟁터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솔직한 모습들을 통해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승리했으며, 어떻게 패배했는지를 사진과 함께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2. 저자


저자 백선엽은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1920년 11월 23일 태어났다. 1940년 3월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재직하다가 봉천군관학교에 진학하면서 군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6?25전쟁에서 기념비적인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승(大勝)의 장군’이다. 전쟁 초기 인민군의 공세에 밀려 대한민국이 경남과 경북 일부만을 남겨두고 있던 낙동강전선에서 1사단을 지휘하며 대구 북방의 다부동전투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 전투는 북한군의 예봉을 꺾고 국군이 공세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한 승리였다. 김일성 치하의 북한 수도인 평양에 처음 입성한 군대도 그가 이끈 1사단이다. 6?25전쟁 중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전쟁 영웅들을 만나 미국의 선진화된 군사지식을 익혔다. 이후 두 차례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하면서 국군의 실력을 키우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가 기라성 같은 여러 장군 중 ‘6?25전쟁의 영웅’으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이유다. 휴전회담 초대 한국대표, 한국군 2군단 재창설 등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이행했다. 이 공로로 그는 한국군 역사상 첫 4성 장군에 오른다. 그의 나이 33세 때다. 예편 후 중화민국, 프랑스, 캐나다 대사 등 외교관을 지냈고, 70년 대 초반에는 교통부 장관으로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의 토대를 만들기도 했다. 1971년부터 1980년까지는 충주, 호남 비료 사장과 한국종합화학 사장을 역임하며 이 땅에 화학공업이 뿌리내리는 기반을 닦았다. 현재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과 한국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6?25전쟁의 교훈과 의미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3. 목차



4. 머리말



5. 책 속으로


6. 출판사 서평


“전쟁이 터졌다. 전선으로 함께 가자!” 
- 파란 심장을 가졌던 그들,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의 전투를 기억하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따스한 인정이 넘치던 한반도는 차갑게 식어버린 파란 심장만이 존재할 뿐이다. 누구도 다른 생각할 것 없이,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내가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쓰러지는 전투에서 과거의 형제와 민족을 고려할 시간도 없었다. 6ㆍ25 발발부터 다부동전투, 1ㆍ4 후퇴, 그리고 반격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의 주요 전투를 생생하게 증언해 화제를 모은 백선엽 장군의 <나를 쏴라> , 그 후속권 <나를 쏴라2>가 출간됐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 
-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전쟁, 그것을 좌우하는 별들과 전쟁 기술을 기억하다
 
<나를 쏴라2>는 1ㆍ4 후퇴와 반격, 그리고 휴전협정의 막전막후 등 한국전쟁의 중후반기를 백선엽 장군의 증언으로 풀어낸다. 아울러 한국전쟁 전후, 극심했던 좌우익의 대립 속에서 벌어졌던 빨치산 토벌 작전, 여순반란사건과 제주4.3사건 등 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을 오가며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의 원인과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국전쟁 당시 대령 신분이었던 백 장군은 전쟁이 끝날 무렵 3성 장군이 된다. 이 기간 동안 백 장군은 국지적 
인 전투에서 전쟁의 승패를 가를 대규모 전투를 몸소 진두지휘했다. 또한 휴전협상 테이블에 한국대표로 참석해 
한국전쟁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런 그가 한국전쟁의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평화’와 ‘화해’의 소중함이었다. 

“살생은 끊임없는 보복을 불러온다. 
한쪽이라도 먼저 원초적인 보복과 살육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 동족상잔의 아픔, 이데올로기의 비국이 부른 전쟁 터에서 평화를 노래한다.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빨치산 토벌을 위해 지리산을 헤매던 저자와 한국군은 이데올로기가 부른 전쟁터에서 이유없이 죽어가야 했던 수많은 생명들을 목격한다. 이들의 죽음은 60년이 지난지금도 한국전쟁이 국가에, 국토에, 가정에, 개인에 남긴 흉터가 아픈 기억과 함께 남아있다. 
어린 자식을 등에 업고, 손에 끌며 고향을 등졌던 어머니,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남편을 포탄이 넘나드는 곳으로 보냈던 부인, 아무것도 모르고 펜 잡을 손으로 총을 들었던 학도병, 매캐한 담배연기를 마시며 내려오는 적군을 맞이했던 군인. 이 모든 이의 마음속은 모두 같았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는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니깐. ‘왜 전쟁을 해야 할까. 나는 이곳에서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전쟁은 끝날 수 있을까.’ 인민군, 중공군도 아닌 끝이 없는 암흑 속을 걸어가는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이 이들을 정복했을 것이다. 각기 다른 곳에서 두려움에 맞섰던 선대의 숭고한 희생, 그 상처 많은 사람들의 전쟁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전쟁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지킬 것 이며, 내 앞에 나타난 적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앞으로 닥칠지 모를 유형과 무형의 싸움에서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전쟁은 참혹함을 남기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 람에게는 많은 교훈을 남긴다. 
6ㆍ25를 내 기억이 닿는 한 모두 적으려는 이유다.” 

사람들은 내게 “백 장군은 어떤 사람이냐”, “그는 어떻게 싸웠느냐”를 묻는다. 이틀이 멀다하고 그의 사무실 등을 찾아가 만나서 들은 
노(老) 장군의 진면목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 
그래서 매번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그래도 축약과 직설을 좋아하는 게 지금의 세태라면 나의 한마디 대답은 이렇다. 
“그는 명장이다.” 


- 출처 : 독서국민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