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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추천도서(22.3~23.2)/2022-6

6월의 추천도서 (3396) 이탁오 평전

1. 책소개

 

이탁오를 읽기 위해
요시다 쇼인의 몸과 정신을 관통하다

 

글항아리에서 미조구치 유조의 『이탁오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탁오李卓吾(본명 이지李贄, 1527~1602)는 명나라 말엽의 사상가로서 일체의 기성관념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다 감옥에서 스스로 목을 그어 생을 마친 시대의 이단아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나온 평전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국 사상사학자인 고 미조구치 유조 교수의 저작으로 강연을 바탕으로 한 원고를 일본 슈에이샤에서 1985년에 묶어낸 대중 교양서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평전의 틀을 깨고 있는 작품이다. 보통 평전이라 하면 대상 인물의 일대기와 주요 변곡점, 주변이나 사회와의 갈등, 그것을 넘어선 업적들을 드라마적으로 다루기 마련인데, 미조구치는 그러한 평전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서 이탁오에 대한 조망을 시도했다. 그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이라는 일본 막부 말기의 광인狂人을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요시다 쇼인이 누구인가! 우리에게 그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해 메이지 시기 국수주의자들을 제국 침략자들로 변모시킨 정치적 흐름의 출발점에 서 있는 인물로 인식되어 있다. 특히 우리와 악연이 깊은 조슈번에 소속되어 병학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존왕파로 길러낸 교육자로서, 일본으로부터의 침략과 병탄의 근대사를 공부할 때 여러모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요시다 쇼인이라는 존재로 인해 이 책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내러티브 구조를 띠게 된다. 즉, 1858년의 요시다 쇼인이 감옥에 갇혀 우연히 이탁오의 『분서』를 읽게 되고, 거기서 자기와 똑같은 인물을 발견한 뒤 삶과 죽음에 대한 커다란 깨달음을 얻으며, 이탁오는 쇼인이라는 이 문제적 인물의 짧은 30년의 생애에서 마지막 1년을 강렬하게 타격한 원천으로 재조명된다. 책의 서두가 쇼인이 투옥되는 장면에서 시작해 그가 감옥 안에서 자신을 배신한 친구들에게 절교의 편지를 쓰고 점점 고독한 순교자가 돼가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기 때문에 과연 이 책이 이탁오를 다룬 게 맞나 싶을 정도인데, 읽다보면 쇼인은 저자가 발휘한 ‘차력술’의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요시다라는 광적인 행동파를 통해야만 이탁오라는 관념적 사상가의 면모가 더 확실히 부각되고, 둘의 차이가 일본과 중국의 철학적 전통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차력술借力術이란 약이나 신령의 힘을 빌려 몸과 기운을 굳세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저자 : 미조구치 유조 (溝口雄三)


1932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고, 중국 사상사를 전공했다. 도쿄대학 중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나고야대학 대학원을 거쳐 규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 문학부 중국철학과 교수와 다이토분카대학 교수, 도쿄대학 명예교수를 역임했다.
평생 중국 연구에 천착하며 근대성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전개한 그는 일본 학계와 지식층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던 마루야마 마사오의 중국관에 의문을 제기하며, 중국 사상사도 내재적인 근대화에 의해 스스로 발전 가능한 역사였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 했다. 이런 와중에 주목한 것이 명나라 말엽의 사상가 이탁오다. 그 외 루쉰이나 인민문학 등에도 주목했는데, 문학작품 연구를 통해 사상 연구로 지평을 전환한 것은 그의 독특한 연구 이력이다. 미조구치는 타계 전까지 동아시아 지식인 교류를 선도하며 중국의 근대 사상사 연구자인 왕후이, 쑨거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지은 책으로 『방법으로서의 중국』 『중국사상문화사전』 『중국의 충격』 『중국 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 『중국의 공과 사』 『중국의 사상』 등이 있다. 『방법으로서의 중국』은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 근대성에 대한 해명을 통해 동아시아적 탈근대론을 구축하고자 한 선구적 중국 연구자의 선언이다. 중국 근대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평가를 비판한 『중국의 충격』 역시 잘 알려져 있으며, 공저자이자 책임편집으로 참여한 『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은 내재적인 중국 사상사를 제언한다.

출처:교보문고

 

3. 목차

 

머리말

제1부 요시다 쇼인과 이탁오
1. 하나의 만남
2. 참다움과 거짓
3. 광기와 우둔함
4. 지기를 찾아서 1: 나를 이기는 친구
5. 지기를 찾아서 2: 나를 알아주는 주군
6. 죽음이라는 글자 1: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7. 죽음이라는 글자 2: 어떤 회심

제2부 이탁오, 그 사람과 사상
1. 76년의 생애 1: 개처럼 산 50년
2. 76년의 생애 2: 박해받은 70대
3. ‘무無’와 ‘참다운 공眞空’
4. 두 개의 양명학
5. 이탁오 그 후

맺음말
옮긴이의 말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그는 이단異端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이단’은 역사의 본류를 무시하거나, 외면하거나, 비협조적인 것을 뜻하지 않는다. 혹은 역사의 본류와는 동떨어진 다른 어떤 곳에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정통을 걸어간 이단’이라는 이 책의 부제에 잘 나타나 있듯이, 역사의 본류를 걸어간 것을 전제로 한 이단이다.
역사의 본류를 걸어간 사람이 어떻게 이단이라 불리며, 대체 정통을 걸어간 이단이란 어떤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 차차 설명하기로 한다. 여기서는 그가 이단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본류를 추동해간 사람 중 한 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_11~12쪽

사실 쇼인은 그 자신의 스타일로 이탁오의 세계에 빠져들어 얻어낸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있었다. 쇼인은 역사나 전환과 같은 문제, 그리고 유교가 어떤 것인가 하는 복잡한 문제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한 문제는 사물이나 사건을 외부에서 바라볼 때 등장하기 때문이다. 쇼인은 이탁오를 바깥에서 바라보지 않았다. 갑자기 내면으로 파고 들어갔다. 300년이라는 시간 간극에 대한 생각도 없었고, 이탁오가 외국인이라는 의식도 없었다.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서 마음으로 소통하고 있었던 것이다._14~15쪽

쇼인은 이탁오를 읽은 것이 아니라 이탁오에게 자신의 심정을 가탁했다. 달리 말해 이탁오의 문장을 통해 자신을 읽은 것이다. 말하자면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 자신과 대화함으로써 마음의 빈자리를 메워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탁오와의 만남이었다. 그가 가장 원했을 때 가장 원하던 것을 만난 셈이다. 그것이 이탁오였다고 할 수 있다._42쪽

쇼인의 국제 인식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정확했는지, 후대 사람들이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자신에게 그러한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1860년대 초 아시아의 위기감을 쇼인과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을 논할 자격은 없을 듯싶다. _61쪽

문제는 우리가 현재로부터 과거를 돌아보아, 쇼인에게 미래를 향한 역사의 예지능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판정하는 데 있지 않다. 그러한 판단은 현재를 등에 업고 편안하게 과거를 추측하는 것으로 나태하고 교만한 생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_62쪽

문제는 그에게 ‘참다움’이 너무나 감성적이고 직감적, 감각적이었다는 점이다. 요가책을 둘러싼 그의 행동을 만약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본다면, 그가 차례로 자기편 사람들을 배제해나간 결백증은 소아병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에게는 정치적인 조직자로서의 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그는 도저히 고고로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는 원래 정치적 행동에 매진할 인재가 아니었던 것이다._65쪽

그럴 수밖에 없음에도 사람들은 공자의 언행 하나하나를 ‘흔적’으로 정형화한다. 우리 모두가 각자 서시의 찡그린 얼굴을 모방하고 감단의 걸음걸이를 모방하여 추종한다. 그 결과 슬프게도 추한 모습 위에 다시 추한 모습을 더하며, 형식만 남고 가치는 사라진 기성 질서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의 걸음걸이조차 잊어버렸다. 이탁오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_98~99쪽

"보라, 스승을 넘어서야 비로소 도를 전수할 수 있다."
스승 쪽에서 본다면, 자신을 넘어선 이야말로 계승자로 삼을 수 있다. 제자 쪽에서 본다면 스승을 넘어서지 않으면 계승한 것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을 언어로 표현한다면 ‘멋진’ 일이라고 할 수 있으나, 당사자의 내면에 들어가 상황을 살펴본다면 실은 각자 자신의 존재를 걸고 벌이는 사투가 아닐 수 없다._112쪽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역사의 본류를 추동해간 이단아 두 사람
·『분서』를 읽는 또 하나의 방법
·죽음에서 어떻게 삶의 무게를 발견하는가
·‘참다움眞’의 스펙트럼은 얼마나 넓어질 수 있는가

주인공이 2명인 평전, 파괴적 혁신

국내에 이미 이탁오 평전은 2~3종이 나와 있다. 그중 널리 읽힌 건 2005년에 나온 돌베개판 『이탁오 평전』 으로 중국 언론인 옌례산이 이탁오의 생애 전반을 따라가며 시대와의 불화를 그려낸 책이다. 반면 미조구치 유조의 평전은 이탁오의 삶의 궤적을 조망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그의 개성을 극대화해 그를 중국의 어떤 시기를 대표하는 상징적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 즉, 이탁오라는 인물의 카리스마와 내면적 고투를 심층적으로 깊게 응시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미조구치의 안내를 받아볼 만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평전의 틀을 깨고 있는 작품이다. 보통 평전이라 하면 대상 인물의 일대기와 주요 변곡점, 주변이나 사회와의 갈등, 그것을 넘어선 업적들을 드라마적으로 다루기 마련인데, 미조구치는 그러한 평전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서 이탁오에 대한 조망을 시도했다. 그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이라는 일본 막부 말기의 광인狂人을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요시다 쇼인이 누구인가! 우리에게 그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해 메이지 시기 국수주의자들을 제국 침략자들로 변모시킨 정치적 흐름의 출발점에 서 있는 인물로 인식되어 있다. 특히 우리와 악연이 깊은 조슈번에 소속되어 병학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존왕파로 길러낸 교육자로서, 일본으로부터의 침략과 병탄의 근대사를 공부할 때 여러모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요시다 쇼인이라는 존재로 인해 이 책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내러티브 구조를 띠게 된다. 즉, 1858년의 요시다 쇼인이 감옥에 갇혀 우연히 이탁오의 『분서』를 읽게 되고, 거기서 자기와 똑같은 인물을 발견한 뒤 삶과 죽음에 대한 커다란 깨달음을 얻으며, 이탁오는 쇼인이라는 이 문제적 인물의 짧은 30년의 생애에서 마지막 1년을 강렬하게 타격한 원천으로 재조명된다. 책의 서두가 쇼인이 투옥되는 장면에서 시작해 그가 감옥 안에서 자신을 배신한 친구들에게 절교의 편지를 쓰고 점점 고독한 순교자가 돼가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기 때문에 과연 이 책이 이탁오를 다룬 게 맞나 싶을 정도인데, 읽다보면 쇼인은 저자가 발휘한 ‘차력술’의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요시다라는 광적인 행동파를 통해야만 이탁오라는 관념적 사상가의 면모가 더 확실히 부각되고, 둘의 차이가 일본과 중국의 철학적 전통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차력술借力術이란 약이나 신령의 힘을 빌려 몸과 기운을 굳세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요시다 쇼인을 빌려 이탁오를 보다

평전은 대상 인물과의 비평적 거리가 필수적인 글쓰기 장르다. 그런데 미조구치 유조는 평전을 집필하면서 이 비평적 거리라는 장애물을 돌아갔다. 즉, 이탁오의 내면으로 침투하는 데 있어 요시다 쇼인이라는 도구를 빌린 것이다. 왜냐하면 쇼인은 자신을 이탁오와 동일시했기 때문에 둘 사이엔 거리라 할 게 거의 없었다. 읽는 구절마다 “와, 이건 바로 나야”를 외치는 감옥 안의 쇼인은 이탁오라는 거울 앞에서 정의를 위해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며 죽음으로 나아가는 영웅서사시의 주인공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 이런 쇼인이라는 장치가 있었기에 저자는 마치 쇼인의 몸을 통해 자신이 이탁오가 된 것처럼 느낄 수 있었고, 그 날것의 감각에서 두 인물의 공통점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즉, 평전 집필자가 비평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자칫 사실에만 치중하고 날것의 시대성을 놓치는 피치 못할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대개의 평전이 사실 기술자와 인물 평설가를 오가며 사실과 평가가 따로 노는, 혹은 지나치게 현재적 입장에서 역사적 인물을 괴팍하게 요리하는 과잉 재현의 함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동시에 요시다 쇼인과 이탁오의 차이점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두드러지면서 자연스럽게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 벌어지며 비평 대상과의 적절한 거리를 회복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두 명의 주인공이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동시에 사건을 펼치는 듯한 SF적 드라마를 쓴 저자의 시도가 단순히 형식상의 새로움과 흥미성을 넘어 진정한 주제적 탐구의 여정으로 독자의 내면에 강렬한 풍경을 심어줄 수 있는 원인이다.
사실 비교사상사가로서 유럽과 동양을 오랜 시간 같은 조망대에 올려 유럽과 중국의 사회적 전개가 어떻게 다른지를 천착해온 저자의 비교사적 방법론이 평전에도 똑같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이번 『이탁오 평전』이 저자에게는 그다지 크게 파격적인 변신은 아니며, 이탁오 연구를 통해 문학연구자에서 사상사가로 본격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고 하겠다.

“쇼인은 이탁오를 바깥에서 바라보지 않았다. 갑자기 내면으로 파고 들어갔다. 300년이라는 시간 간극에 대한 생각도 없었고, 이탁오가 외국인이라는 의식도 없었다. 이러한 쇼인의 안내를 받아 우리도 이탁오의 내부로 들어가보자. 우선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공감해보자. 반대로 위화감으로 남는 부분도 있다면, 그것을 확실히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 바깥에서 조감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와 안에서 살펴볼 것이다. 마치 색유리로 만든 커다란 돔을 안에서 올려다보면서 그 천장의 구조와 색채를 보는 듯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_ 15쪽

평전으로서 이 책을 읽는 묘미는 역시 긴박한 시대에서 요시다 쇼인이 벌인 대활극이 어떤 전개와 결말을 보여주는지 책의 시작부터 흥미진진하게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1858년 제자들과 함께 고위 관료 마베 아키카쓰에 대한 테러 공격을 세웠다가 이게 미리 누설되는 바람에 잡혀 들어갔다. 이른바 ‘마베 요격책’ 불발 사건이다. 1858년은 미일수호통상조약 조인을 둘러싸고 일본 내부의 국론이 둘로 나뉘어 있던 때다. 쇼인은 미국이 점차 일본의 민중, 지식인 등을 포섭해 일본을 미국의 속국으로 만들 것이라는 판단 아래, 미국과 협약 자세로 나가는 막부에 대해 일왕을 중심으로 뭉쳐 강제로라도 이들을 막아야 한다는 존왕파 편에 서서 자기 나름의 계책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독선, 아집, 미치광이, 어리석음의 총체

쇼인이 1858년 가을 성급하게 마베 습격안을 내놓은 이유는 인근의 여러 번에 소속된 무사들이 막부의 다른 고위 관료인 이이 나오스케를 습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조바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막부에서는 점점 거칠게 항의하는 무사들의 움직임에 위협을 느껴 전국적인 체포 작전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안세이 대옥’이다. 테러리스트 쇼인의 출사표는 이 움직임의 와중에 던져졌지만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자신의 입으로 번의 상관에게 계책을 상의하고 허락을 얻어 실행하려다 발각된 터라 그 순진함은 자객으로서는 기본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
쇼인은 투옥 후에도 좌절하지 않고 또다시 일을 꾸몄다. 오하라 서하책과 후시미 요가책 등이 그것이다. 후시미 요가책은 조슈번의 번주가 참근교대를 위해 에도로 가는 기회를 이용해, 후시미에서 매복해 있다가 그의 가마를 돌려 교토로 이동시킨 뒤 거기서 오하라 등 근황파의 귀족들과 회담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것은 가담했던 제자 중 한 명이 막부에 알려 무산되었다. 쇼인은 어떻게든 바깥의 제자와 친구들을 이용해 막부에 타격을 입히거나, 존왕파의 세력을 늘리려 했다.
그러나 이 일련의 소동은 저자에 따르면 어른스럽지 못한 미친 계획이었다. 너무나 직접적이고 주관적이었으며 대국을 보지 못한 편집광적인 정열이었다. 저자는 가까운 제자들도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을 만큼 비약이 심한, 독선적인 논리에서 어떻게 ‘진실과 거짓’이라는 테마가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진실과 거짓은 감옥에서 계책을 세우는 동안 쇼인이 읽은 이탁오의 『분서』, 그중에서도 「동심설」에 나오는 핵심 개념이다. 쇼인은 그것을 읽고 동심은 참다움이라고, 후천적으로 오염이 없으며 선천적으로는 아주 맑고 순수한 마음이라고 파악했다. 그 반대편은 악이다. 그에게 악은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이고, 선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쇼인의 독선적인 논리에 회부해보면 존왕의 길이 선임을 알면서도 거기 동참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악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탁오의 저작을 찬찬히 읽어보면 이탁오가 주장한 ‘동심’이란 결코 맑고 순수한 어떤 것이 아니라 본성에 충실하다는 개념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감옥에서 쇼인은 이탁오를 제대로 꼼꼼히 읽은 게 아니라 책 속에 나오는 몇몇 단어(특히 ‘지기知己 같은)에 과도하게 몰입해 자신을 거기에 가탁하는 데 가까웠다. 달리 말해 이탁오의 문장을 통해 자신을 읽은 것이다.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그 자신과 대화함으로써 마음의 빈자리를 메워간 것이다. 그가 가장 원했을 때 가장 원하던 것을 만난 셈이다.
물론 지금 쓴 것처럼 쇼인이 광적이고 모자란 존재였던 것만은 아니다. 일본의 미국 속국화에 대해 그가 그린 시나리오는 치밀했고, 메이지 유신이 없었다면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었던 내용이다. 저자는 쇼인이라는 과격한 존재를 너무 단순화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의 과격함이 갖는 역사적 맥락을 도출한다. 그것은 일본이라는 쇄국적 번영 국가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외세의 위협 앞에서 크게 당황한 상황이 그 첫째이고, 또 다른 것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지식인이 처해 있는 위상의 문제였다.

쇼인과 이탁오의 건널 수 없는 차이

쇼인은 철저히 조슈번의 번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즉, 그가 존왕양이를 외치며 외세 배격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려 했지만 그 행동 범위는 결코 번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잘못된 시대적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건의하고자 했고, 그 방법으로 목숨을 건 폭력까지 불사했던 것이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계책은 허술했지만 그의 행동 논리는 당시의 신분질서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고 매우 현실적 목표 아래에 있었다. 그에 비해 이탁오는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도道’라는 이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구하려는 관념적 실천자였다. 비록 주자학의 교조는 거부했지만 크게 보아 유학의 틀 안에서 자신의 독자적 행로를 모색했던 사상가다.
말하자면 이탁오도 유학이라는 커다란 지배 이념 안에서 자신의 독자성을 모색했고, 쇼인도 메인스트림 내부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여기서 우리는 둘 다 ‘정통’이라는 틀 안에서 일시적으로 ‘이단’으로 여겨졌지만, 후대에는 결국 ‘정통’으로 대접받게 된다는 공통점을 읽을 수 있다. 이탁오는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만 그의 사상은 잊히지 않았다. 양명학의 큰 흐름에서 후대에 계승되었다. 요시다 쇼인의 사유 또한 국익 우선주의라는 흐름에서 제국주의적 사유로 계승되었다. 비록 그것이 평화와 거리는 멀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따로 또 같이 ‘정통을 걸어간 이단’이더라도 이탁오와 쇼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다.
차이점은, 이탁오의 경우 지기와의 사이에 고정된, 개인적인 관계는 없었던 반면 쇼인의 경우 번주를 포함해 그 관계가 대부분 고정적이었으며 개인적이었다는 점이다. 이탁오의 교류는 어디까지나 강학講學이라는 기회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강학의 목적이 달성된 뒤에는 그 이상의 특별한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없었다. 반면 쇼인과 번주 다카치카의 사이는 특히 유대감이 강한 군신관계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한 관계를 전제로 비로소 ‘지기의 군주’가 성립된 것이다. 다른 지인들과의 관계도 그랬다. 스기조, 신사쿠, 겐즈이 모두가 조슈번의 번사라는 틀 안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쇼카 학당의 제자나 처남, 매제 관계 등이 있어 특정한 개인적인 관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탁오에게는 ‘도道’라는 것이 이념적이었다. 획득해야 할 것은 질서 이데올로기였다. 반면 다른 한쪽은 존왕양이였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정치체제의 변혁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특히 후자는 일의 성패가 무엇보다 문제시되었다. 전자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상의 변혁에 그치며, 창조라고 하더라도 전통의 계승 속에서 이뤄진다. 개인의 책임이 추궁되는 문제는 아니다. 자신의 도달점은 항상 다음 시대의 출발점이라는 의미에서 거기에는 개인이 존재할 수 없다. 혹은 의지와 그것의 계승뿐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 하나의 행동은 그것을 일으킨 사람의 책임을 동반한다. 방법이 달라지면 다른 행동과의 사이에 적대적인 대립을 낳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체적인 전략이나 전술상의 목표를 가진 정치 행동이기 때문이다.

왜 한쪽은 관념이고, 한쪽은 행동인가

왜 이탁오는 관념이고 사상인데 쇼인은 행동이고 폭력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의미심장한 분석을 내놓는다. 중국은 오랜 사상적 전통 속에서 도통을 구축한 나라였다. 도통은 계승과 변혁의 변증법 속에서 구축된다.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사조가 새로운 해석의 형태로 변화하고 축적되어온 역사가 매우 유구하다는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 도통을 벗어나기란 무척 어렵다. 이탁오는 이 도통 속에서 변혁가의 역할을 택했다.
반면 일본에는 그러한 도통이라는 게 없다.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주자학에 문제가 있으면 고학古學으로, 고학이 싫으면 국학國學으로, 국학이 지겨워지면 심학心學으로 등등 그릇 자체를 바꿔가면서 변모했다. 하나의 그릇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도통 안에서는 변혁이 필요 없다. 따라서 소위 이단의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참고로 말해보자면 일본에서의 변혁은 그 때문에 이탁오와 같은 사상활동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쇼인에게서처럼 구체적인 정치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통례다. 양국의 역사에 보이는 이러한 차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이 차이는 당연히 이탁오와 쇼인이 주장하는 각각의 ‘도’의 차이로 나타난다.
‘지기’라는 두 글자에 대한 쇼인의 생각은 쇼인의 것이지, 이탁오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탁오의 문장에 대해서 쇼인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공감했음은 틀림없다. 거기서 우리는 이탁오와 쇼인이라는 두 ‘어리석은 사람蠢愚’ 사이의 불가사의한 연결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의 ‘지기’ 그리고 ‘도’가 그렇게 다른 것이었음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출처: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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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탁오 평전:정통을 걸어간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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