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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추천도서(23.3~24.2)/2023-4

4월의 추천도서 (3695) 다 떠난 바다에 경례

1. 저자

 

저자  : 오승철

 

서귀포 위미에서 태어나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겨울귤밭」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있다. 시조집으로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오키나와의 화살표』 『터무니 있다』 『누구라 종일 홀리나』 『개닦이』 등 5권을 펴냈고, 단시조 선집으로 『길 하나 돌려세우고』,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사고 싶은 노을』 8인8색 시조집 『80년대 시인들』 등을 냈다. 중앙시조대상, 오늘의시조작품상, 한국시조대상, 고산문학대상 등을 받았다.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의장을 지냈다.

 

출처:본문중에서

 

2. 목차

 

1부 서귀포를 찾아서

고추잠자리. 22·12
다 떠난 바다에 경례·13
그리운 관명·14
칠십리·15
축하하듯·16
서귀포 칠십리·17
서귀포 동문로타리 닭내장탕·18
서귀포 칠십리를 찾아서·19
오조리 포구·20
사천 년 물질을 마치는 저 바다에 무엇을 바치랴·21
서귀포극장·22

2부 물질 끝낸 바다에 경례

서귀포 한쪽·24
쌍계암 목불의 말씀·25
아리랑 아리랑 이쿠노아리랑·26
사천 년 해녀물질 끝나는 바다에서·27
모슬포 절울이오름·28
탄불에 끓는 바다·29
그리운 삼포·30
2022년 첫눈·31
모슬포 오일장·32
남극노인성·33
발자국의 시·34

3부 펏들펏들 떠도는 눈

밥 한술만 내밀어도·36
새연교·37
슬픔으로 먹는다. 꿩·38
까투리가 꺼벙이에게·39
돌담올레 오조리·40
나이 85세쯤에 들었다는 말·41
꿩과 고추잠자리를 그만 울리라는 농담에 대해·42
대평 말의 길·43
우성강을 건너다·44
저 말이 가자 하네·46
똥막살이와 장끼·47
어 어 어·48

4부 입술에 묻은 ‘쌍시옷’

낙장불입 3·50
제주 버섯마당·51
혼자 우는 오름·52
바람이 끌고 온 석굴암 단풍아·53
어떤 축제·54
긁다 만 부스럼같이·55
눈물 창창·56
망오름에 누워있어도·57
섬벌초·58
방아깨비 내 고향·59
명치鳴雉동산·60
붉은오름 하르방산·61
한림항엔 그리움이 없다·62

5부 게미용 점방 불빛

그리움만 도려내지·64
콩당당복닥·65
돌레방석·66
자녀 셋을 완판했으니·67
하늘 밥상·68
꺼져간다. 봉분들·69
망아피 할망·70
치매예방교육·71
첫 경험·72
까투리·73
애벌레 풍경소리·74
종달·75

해설 | 박진임_황혼 혹은 여명, 그 어스름한 길의 순례자·76

 

출처:본문중에서

 

3. 책속으로

 

고추잠자리. 22

- 그래, 그래 알겠더냐
날아보니 알겠더냐

- 그래, 그래 알겠더냐
매운맛을 알겠더냐

한 생애
그리움으로
붉어보니 알겠더냐


다 떠난 바다에 경례

둥실둥실 테왁아
둥실둥실 잘 가라
낮전에는 밭으로 낮후제는 바당밭
누대로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한다

그만둘 때 지났다고 등 떠밀진 말게나
반도의 해안선 따라
바다 밑은 다 봤다는
불턱의 저 할망들도
한때 상군 아니던가

한 사람만 물질해도 온 식구 살렸는데
어머니 숨비소리
대물림 끊긴 바다
숭고한 제주 바당에 거수경례하고 싶다


그리운 관명

건들지 말아야 할 건 건들지 말아야지
멀쩡한 세상 한켠 뭘 자꾸 훔쳐보나
기어이 동티난 게지 멱살 잡고 가는 눈발

이 섬의 구석구석은 신의 영역이지만
귀신들도 딱 한번 줄행랑칠 때있다
“어사또 출두야” 같은 관명이란 말 앞에선

새마을 기 펄럭펄럭 재래식 변소개량
누가 내 가슴에도 관명이라 붙여다오
하룻밤 하룻밤이라도 너 없이 살고 싶다.


칠십리

세상에 등 내밀면 안마라도 해주나
해마다 점점 낯선 서귀포 솔동산길
찻집에 몰래 온 섬도 뿔소라로 우는 저녁


축하하듯

어느 마을에나 정자가 있고 공론의 장이 있다
서너 명만 모여도 웃음꽃은 피어나고
망오름 장끼소리도 까딱하면 소환된다

하루는 어머니도 이 논의 속에 올랐다지
저 하늘 별 하나 더 늘었을까 줄었을까
가신지 얼마쯤 돼야 고향에 별로 뜰까

하늘은 하늘대로 우릴 내려 보나보다
하늘나라 입학을 축하하는 것인지
가끔은 마을 밖으로 별똥별도 쏘아댄다


서귀포 칠십리
- 〈서귀포 칠십리〉란 노래를 작사한 조명암에 대해

그게 어디 숫자여?
부르고픈 이름이지
백 리는 너무 멀고
오십 리는 좀 짧다고?
‘서귀포 칠십리’란 말 내뱉고 간 사람아

어디서 어디까질까, 서귀포 칠십리는
섬들을 한 바퀴 도는 그 거리가 그쯤이겠고
이 땅의 그리움 찾아 나선 길도 칠십 리

그래! 어떻던가 거기에는 있던가
삼팔선 넘어서면 칠십 리 더냐, 천 리 더냐
사람아, 칠십리란 말 흘리고 간 사람아


서귀포 동문로타리 닭내장탕

어느 도시에도 찾기 힘든 닭내장탕집
무김치 너댓 개면 접시가 넘치지만
그 식당 아줌마 볼도 김치처럼 물이 든다

닭장에 갇히거나 아파트에 갇히거나
닭의 길, 사람의 길, 그게 그걸 테지만
아리랑 아리랑 같은 구불구불 닭내장길

무김치와 닭내장탕, 아줌마와 사십 년 간판
궁합도 저리 맞아야 세상맛을 아는 걸까
주문을 넣기도 전에 보글대는 저 냄비


서귀포 칠십리를 찾아서
- 이제하

서울에서 가장 먼 땅 무얼 찾아왔을까
총각 서정주나 월북 작가 조명암이나
칠십리 돌아선 길섶 무얼 찾아 왔을까

무얼 찾아 왔을까 어떤 사내 또 왔네
성산포 변두리 마을 거기서 더 변두리
다 낡은 창고를 고쳐 갤러리로 꾸몄네

무얼 찾아 왔을까 찾아내긴 한 것인가
동숭동 마로니에에서 ‘모란동백’이나 부를 일이지
밀썰물 다녀가듯이 무얼 채우고 비우는가


오조리 포구

가을 햇살 몇 줄기 갯벌로 기어 나와
보글보글 밥을 짓는 오후 네 시 오조리 포구
비린내 폴폴 날리듯 달랑게 같은 저녁이 온다

그렇게 어느 길목 돌아 나온 갯메꽃처럼
통통통통 발동선도 오늘 밤 바다에 들면
저마다 꽃이 아니랴 우성강 갯메꽃 아니랴

온종일 발길들도 뜸하디뜸한 바닷가
그리운 그 이름마저 뱉지 않고 그냥 가리
자리젓 고린내 같은 고백 한번 없이 가리


사천 년 물질을 마치는 저 바다에 무엇을 바치랴

세계 최강 제주해녀라는

그런 말 하지 마라

살기 위한 몸부림

자맥질일 뿐이다

꽃 대신

눈물이라도

뜨겁게 바치고 싶다

 

출처:본문중에서

 

4. 출판사서평

 

그래도 한 조각 남은 그리움은 끝내 오승철 시인의 가슴을 떠나지 않고 있다. 오래된 발자국처럼, 몸의 주름처럼 남은 세월의 흔적이 그리움을 배태하는 까닭에 그러하다. 그러나 그 그리움은 쉽게 더듬어 찾아낼 수 있는 그리움이 아니다. 누빔 조각보로 단단히 동여맨 듯 깊이 감추어져 있다. “더 못 버텨” 결국은 모습을 드러내게 될 때까지 시인은 시치미 떼고 더러 부정하는 듯한 모습만 보여준다. 꽁꽁 묶어둔 그리움의 단서를 찾아보자.

망오름 앞뒤로 품은

내 고향과 가족묘지

허랑방탕 꿩 한 마리

산소에 뭣하러 왔나

아버지 어머니 생각

더 못 버텨 내리는 눈

- 「2022년 첫눈」

둥실둥실 테왁아
둥실둥실 잘 가라
낮전에는 밭으로 낮후제는 바당밭
누대로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한다

그만둘 때 지났다고 등 떠밀진 말게나
반도의 해안선 따라
바다 밑은 다 봤다는
불턱의 저 할망들도
한때 상군 아니던가

한 사람만 물질해도 온 식구 살렸는데
어머니 숨비소리
대물림 끊긴 바다
숭고한 제주 바당에 거수경례하고 싶다

-「다 떠난 바다에 경례」

허랑방탕 꿩 한 마리가 되어 오래되고 정든 장소에 날아가 앉아보는 일, 그 모습 앞에 서설이 내린다. 떨치고 가려는 순례자의 길에 기어이 첫눈이 내리는 날, 못 이기는 체 옛 생각에 젖어 들면 또 어떠랴. 오랜 기억을 다시 노래하면서 새로이 갈 길을 재촉하면 또 어떠랴. 「붉은오름 하르방 산」 에서는 “삐걱삐걱 돛단배 얻어 탄 내 오대조” 구절에서 보듯 바다를 배경으로 사라져 간 선조들을 호명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선조의 삶을 노래하면서도 그로써 제주 사람들의 집단 기억을 텍스트에 확정하고 있다. “위미리 어부들은 좀 일찍 세상을 뜬다” 구절로 텍스트의 도입을 삼고 있어 개인의 기억이 곧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의 역사임을 증명하고 있다.
「다 떠난 바다에 경례」에서는 어머니의 숨비소리를 기억함으로써 제주 해녀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낮전에는 밭으로 낮후제는 바다밭/ 누대로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한다”고 노래하여 한편으로는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아온 제주 여성의 삶을 기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세월의 변화와 함께 소실되어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더 나아가 방아깨비 내 고향에 이르면 제주 사람들의 이산을 그려내는 것을 볼 수 있다. “멍석윷 흩뿌린 길을 숙명처럼 끌고 가네” 구절에서 보듯 가장 적확한 이미지를 골라내어 헤어지고 떠나간 사람들의 삶을 추억하며 기린다. 그리고 마침내 지나온 삶의 여정을 그윽한 눈길로 돌아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 지나온 길 모두가 아리랑길 아니던가”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씩 돌아보면서 오승철 시인은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순례자의 길이 끝나기 전에 그가 스쳐 가는 모든 풍경들이 모두 각각의 텍스트를 이루며 새로운 삶의 철학들을 독자에게 일깨워 줄 것이다. 삶에 대한 강한 긍정과 예술의 가치에 대한 더 강렬한 확신, 그리고 삶과 예술 모두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채 오늘도 순례자는 걷고 있다. 눈을 들어 바라보면 하늘의 빛은 여전히 어스름할 터인데 어스름한 그것은 여명인가 황혼인가….

 

출처: 다 떠난 바다에 경례출판사 황금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