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소개
2. 저자
저자 : 프랭크 브루니
30년 이상 저널리스트로 명성을 쌓아온 프랭크 브루니는 25년 동안 《뉴욕타임스》 간판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백악관 담당 기자, 이탈리아 로마 지국장을 역임하고, 음식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그동안 아동 학대와 미국 대선, 국제 정세부터 미트로프를 묶을 때 기왕이면 토르티야 칩을 쓰면 좋은 이유에 관해서까지 다정하고 위트 있는 시선으로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주목받는 글들을 써왔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신했던 저자는 쉰두 살이 되던 어느 날, 느닷없이 뇌졸중으로 인해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어간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오랫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간과해왔던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나아가 자신이 마주한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현실을 깊게 성찰하는 동시에 아버지의 알츠하이머병, 친구의 파킨슨병, 오랜 연인과의 이별 등을 통해 앞으로의 인생을 위한 지혜와 품위를 배운다.
저자는 시력 상실을 겪은 지 4년 뒤인 2021년에 듀크대학교의 교수직을 수락하며 15년 동안의 맨해튼 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하고 조용한 채플힐로 사는 곳을 옮겼다. 현재 공공 정책과 언론 미디어에 대한 강의를 맡고 있으며,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기고가로서 주간 뉴스레터와 에세이를 싣고 있다. 아울러 반려견 리건과 매일 산책하면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쁨과 경이를 충만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1장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2장 내 세계는 흐릿해졌지만 동시에 예리해졌다
3장 완벽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4장 나는 다행스러운 것들을 부둥켜안았다
5장 기꺼이 바늘꽂이가 되리라
6장 나의 슬픔을 목도한 이들은 자신의 불행도 열어 보여주었다
7장 그들은 기쁨을 향해 몸을 돌린다
8장 주어진 조건을 살아낼 용기
9장 나는 아무것도 뒤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10장 모든 틈새를 알아가는 사치
11장 언제나 무슨 수가 있지
12장 부서져 열린 마음에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13장 나이 듦이 주는 평온의 시간들
14장 별은 아무리 오래 바라봐도 질리지 않았다
감사의 말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치료법은 없습니다.” 박사는 말했다. 처음에는 대답의 내용보다 박사의 말투와 목소리의 톤이 내게 더 파고들었다. 거기에는 상대방에게 위로를 전하는 마음과 상대방을 진정시키려는 차분함이 정교한 비율로 혼합되어 있었다. 경악이 쏙 빠진, 지독한 불운에 대한 인정이었고 앞서 만난 동네 안과의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던 행위의 음성화된 버전이었다. 박사의 어조는 내게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도 된다고 알려주는 한편 그럼에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너무 충격을 받지는 말라고 권하는 듯했다. 박사의 어조는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나는 박사에게 거의 그렇게 말할 뻔했다. _p.24
달리 말해 이 시험은 비관론자라면 참여할 만한 일이 아니었고, 내 안에 비관론은 차고도 넘쳤다. 나는 화창한 날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비가 내리리라고 확신했고,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를 단칼에 거절하리라고, 궁극적으로는 거절하리라고 생각해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간절히 바랐던 승진이나 프로젝트가 결국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거라고 확신했으며, 설사 내게 주어지더라도 나중에는 물러나야 할 거라 생각했다. 사실 나의 경험은 이 어둠을 떠받치지 않았다. 유리한 일과 불리한 일, 뜻밖의 행운과 실패가 뒤섞인 내 삶에는 분명히 좋은 일도 많았다. 사실, 과분하게 많았다. 하지만 언제나 최악을 준비하는 것은 특이하고 그리 자랑스럽지 않은 나의 타고난 성벽이었다. _p.29
아버지의 일을 내가 관리한다고? 아버지를 내가 지원한다고?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버지는 늘 말수가 적고 거리감이 있었지만 동시에 내게 바위 같은 사람이었다. 나의 바위였다. 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 화려하고 비싼 식당에서 밥을 사주며 내 삶의 이정표가 된 일들을 축하해주고, 모기지나 세금 같은 복잡한 문제에서 당신의 사업 감각을 활용해 조언을 해주며, 내가 금전적으로 어려울 때 언제라도 은행이 되어주고 내가 잘 곳이 없을 때 호텔이 되어주겠다고 말해주어야 할, 그리고 언제나 그렇게 말해온 존재였다. 내게 아버지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온도를 결정적으로 몇 도 낮춰주어야 할 존재였다. _p.97
뇌졸중을 겪고 안개 같은 시야를 경험하며 한동안 내면의 날씨를 감당할 방법을 모색하다 이 근본적 진실을 새로이 음미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앞으로 매끄럽게 나아가는데 나만 삐걱거리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감당하고 있다는, 남들은 토끼풀에 안착했는데 나만 가시덤불에 들어섰다는 믿음. 자기 연민은 대개 이러한 망상에서 나온다.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실은 모든 사람이 언제라도 강렬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고통을 헤쳐나가기 위해 과거에도 노력했고 현재에도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_p.152
어머니는 수차례의 항암치료로 머리가 많이 빠지자 재미 삼아 가발을 사러 다녔다. 치료 때문에 몸이 쇠약해지거나 속에 탈이 나면 몇 시간 쉬었다. 하지만 낮잠을 자고 움직일 기력이 생기면 곧바로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다시 일어날 기력이 조금이라도 있는데도 스스로를 망가뜨리게 내버려둔다면 암이 두 번 이긴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암에게 이중의 승리를 안겨주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그 누구보다 단호했다. _p.193
이 모든 것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도보로 불과 몇 분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그저 거기에 있었기에 나는 손을 내밀어 붙잡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붙잡지 않았다. 그저 운동을 하러 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한 바퀴를 돌고 올 뿐이었다. 아니면 셰익스피어 공연을 보기 위해 델라코트 야외 극장까지 직진하거나, 어퍼웨스트사이드와 어퍼이스트사이드를 연결하는 우묵한 도로를 따라 달리는 택시 안에서 잠깐씩 내다본 것이 전부였다. 나는 센트럴 파크를 탐험하지 않았고 센트럴 파크의 풍부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모든 덤불과 그 모든 초원과 그 모든 구릉과 그 모든 우묵과 그 모든 광장과 그 모든 기념비와 그 모든 구석과 그 모든 틈새를. _p.277
“버지니아 노포크에서 살 때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냄비 하나를 ‘후려치기 전용’으로 사용했어.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거나 분노가 치밀거나 그냥 지금의 기분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몰래 뒷마당으로 가서 그 냄비로 땅바닥을 내리쳤어. 물론 에릭이 없을 때만 냄비를 휘둘렀지. 후련한 기분이 들었어. 나는 그 냄비 덕분에 더 좋은 아내가 되고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전반적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어. 내 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짐을 지우거나 남편을 닦달하는 대신 나는 찰진 흙바닥과 찌그러진 냄비를 얻게 되었지.” _p.288
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스무 해 넘는 세월 동안 아버지의 약해진 정신이 아버지에게 비범한 친절을 베푼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별다른 기복 없이 평범하고 좋았던 결혼 생활을 평생의 로맨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로맨스로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이 동화 같은 이야기의 모든 장과 중요한 장면을 원하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슬픔에 대한 답이었다. 나는 우리가 차에 앉아 있던 그 시간에 아버지가 그 장면 중 하나를 재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인생의 말년에 나를 충분히 편안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을 충분히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느끼는 감정이 비애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감사였다. _p.298
마지는 가장 최근에는 호수에 다녀왔다고 했다. “카약을 탔어. 난생처음 카약을 탔다니까.” “정말이요? 여든여섯에 카약을 탔다고요?!” “그래, 여든여섯에 카약을 탔어.” 마지가 말했다. “좋으셨어요?” “아, 굉장히 좋았지. 나는 수영을 잘해. 평소에 자주 하거든. 모든 것이 순조로웠어. 헌데 마지막에 부두에 도착하니 몸을 일으키지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근처에 있었던 10대들에게 조언을 구했지. 결국 카약에서 나갈 유일한 방법은 배를 뒤집어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그냥 내가 배를 뒤집었어. 그러고는 헤엄쳐 나왔지.” “언제나 무슨 수가 있어요, 그렇죠?” 내가 말했다. “언제나 무슨 수가 있지, 맞아.” 마지는 미소 지었다. _p.331
파우치는 신문 기사에 자신이 어떻게 언급되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미국 국민이 최대한 빨리 이 사태를 종결지을 수 있게 할지를 자문한다고 말했다. 파우치는 팬데믹에 관한 중요한 논문을 써서 유명 의학 저널에 게재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미국 전체가 이 위기를 성공적으로 넘길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중요한 것은 찬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옳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었다. 파우치의 허영심은 썰물처럼 서서히 빠져나갔다. 아니면 적어도 더 건설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나이가 들수록 이 모든 것은 나에 관한 일이 아니게 됩니다.” 파우치는 말했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분투하는 것은 갈수록 덜 중요해지고 내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고 거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해방되는 것보다 더 원대하고 좋은 일이었다. 그것은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_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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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출판사서평
★★★★★ 『파친코』 이민진 강력 추천!
★★★★★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퍼블리셔스위클리》의 압도적 찬사!
막대한 삶의 허기를 용기 있게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브루니는 상실을 강건한 지혜로 바꾸어낸다.
_이민진ㆍ소설가, 『파친코』 저자
프랭크 브루니는 회복탄력성을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재주를 가졌다.
_앤드루 솔로몬ㆍ심리학자, 『부모와 다른 아이들』, 『한낮의 우울』 저자
“일어나는 사람들은 일어나겠다고 결심한다.
그들은 기쁨을 향해 몸을 돌린다.”
예기치 않은 절망을 담담히 안고 가는 낙관에 대하여
“차라리 그냥 머리에 총을 쏘세요.” 브루니는 진심이었다. 시력 상실이 주는 혼란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치료약 개발을 위한 임상 시험으로 다달이 오른쪽 눈에 주사를 꽂아 위약을 투여하고, 잊을 만할 때마다 해야 하는 세 시간 동안의 고통스러운 시력 검사를 감내하면서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다 이윽고 일주일에 두 번씩, 여섯 달 동안 허벅지와 배에 스스로 주사를 놓아야 하는 순서가 오자 항복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죽는 게 나아 보였다. 하지만 결국 주사기를 들었다. 기꺼이 바늘꽂이가 되었다.
사흘 뒤 나는 왼쪽 허벅지에 주사를 놓았고 그로부터 나흘 뒤에는 배의 오른쪽에 놓았다. 이때는 조금 더 따끔했다. 그다음에는 다시 양쪽 허벅지에 번갈아 놓았다. 2주 만에 45분이 5분으로 줄었다. 그로부터 몇 주 지나 다시 2분으로, 심지어 1분으로 단축되었다. 나는 거의 자동 운전 모드로 순식간에 일을 마쳤다. 치실을 쓸 때처럼 꼼꼼했지만 단시간 내에 끝냈다. […] 이상하게도 나는 주사 놓는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 시간들은 내가 정복한 두려움이었다. 그 시간들은 삶에 독특한 리듬을, 특별한 투지를 부여했다. 내 친구들은 소울 사이클 수업을 마스터했다. 나는 주사기를 마스터했다. _p.132
어떤 경험을 뒤로 미루는 것은 종종 그것을 결코 경험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시간에 관해 늘 응석을 부리고 어리석으며 교만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음에’, ‘시간이 나면’이라는 말로 마주할 수 있는 기쁨과 기회, 혹은 겪어야 할 절망의 순간조차 늦추곤 하지만 늘 그렇듯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자로서 오랫동안 쌓아온 탄탄한 커리어, 어떠한 주제로도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10년 된 남자친구, 주말마다 디너 파티에 참석할 만큼 충분한 인맥들까지…… 프랭크 브루니 역시 지금 누리는 부러울 것 없는 일상과 여유가 이렇게 갑자기 끝나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직업적으로 나는 성공한 사람이었다. 비록 어떤 원대한 야망들은 실현되지 않았고, 주위 친구들처럼 미친 듯이 돈을 많이 벌어서 집을 두 채씩 갖고 있거나 신형 자동차를 몇 대씩 사들일 형편은 아니었지만 내 삶에 만족했다. 30여 년간 언론계에 종사했고 그중 20여 년 이상을 《뉴욕타임스》에서 일하면서 세상의 많은 것을 보았고 사치스러운 모험들을 감행했다. 칼럼을 쓰고 텔레비전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이따금 부업으로 강연도 했다. 동네 식료품점에 갈 때면 사람들이 알아보고는 듣기 좋은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제나 입고 있는 헐렁한 티셔츠에 그보다 더 헐렁한 운동복 바지나 늘상 매달고 다니는 약 8킬로그램에 달하는 여분의 살이 몹시 의식되었다. 하지만 대개는 이러한 만남이 자랑스러웠다. _p.52
브루니는 기꺼이 교훈이 되기로 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밝혀가면서 이 책을 집필한 이유는 어느 누구도 상실과 고통 그리고 괴로움 없이, 상처받지 않은 채 인생을 살아낼 수는 없다는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브루니는 이렇게 공평하고도 존엄한 삶의 이치에 경의를 표하며, 자신의 불행만 조명하는 대신 느닷없는 고통들을 겪으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소개한다. “슬픔과 공포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의식적이고 구체적인 걸음을 내디딜 것인가.” 《워싱턴포스트》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이 책은 인간에게는 평생 동안 끊임없이 변화의 역량이 있음을 상기시킨다”라고 강조했다. 브루니는 “우아함을 잃지 않고 우리를 빛과 어둠 사이의 순례길로 안내하며(《오프라데일리》)” 예기치 않은 삶의 시련과 고통, 하루하루 덮쳐오는 노화,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을 유머를 잃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한 사색을 펼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이 어떻게 해서
실은 거의 모두 좋은 일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는 ‘상실’이라는 기회
나의 슬픔을 드러내면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불행을 열어 보여주었다. 내가 마음을 열면 세상도 내게 열린다. 저자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새삼 깨달았고 마침내 멈춰 서서 돌아볼 줄 알게 됐다. 비로소 삶을 재정비하는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과거에 하지 않았던 질문을 하고, 완전히 새로운 정서적 해협을 항해하고, 친구들과 지인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당대의 주목받는 정치인이나 연예인과 매일 만나다시피 하고 그들을 기사화하며 살아왔던 저자는 이제는 장애나 질병을 겪고 있거나 황혼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마치 늘 가던 길만 다녀 15년이 지나도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던 센트럴 파크처럼 언제나 주위에 있었지만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던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인생의 지혜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센트럴 파크의 경이로움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도 누누이 열거해온 것이니까.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듯 빛나는 것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지만 나는 다른 데 열중해 있거나 정신이 팔려서 또는 심지어 게을러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센트럴 파크는 그 완벽한 상징이었다. 많은 사람이 공공장소로서 모두에게 공짜인 센트럴 파크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특별한 것이 되기에는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센트럴 파크는 귀중한 것이 되기에는 너무나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래서 센트럴 파크는 다음에 즐겨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다음 날, 또는 다음 주, 아니면 다음 달에. _p.280
“2시에 아스파라거스.” 곁에 앉은 이가 말했다. “6시에 소고기.” 이것은 후안 호세가 포크를 어디로 옮겨야 접시 위의 음식에 닿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다. 그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증거는 그것이 유일했다. 10대 후반에 ‘마흔에 시각장애인이 된다’라는 말을 듣게 된 후안 호세는 현재 유엔에서 멕시코 상임 대표를 맡아 직업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다. “눈에 해변의 모래가 몽땅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온 시력 상실에 대한 ‘공포’는 결과적으로 무엇도 극복할 수 있는 ‘의지’가 되었다. 마치 사람들이 키가 더 컸거나 더 날씬했으면 하고 외모에 아쉬움을 갖는 것처럼 실명은 그에게 그런 것이 되었다. 자신의 실명에 관해 아이가 웃으면서 농담을 할 때 스스로 제법 잘 살아왔다고 여기게 될 만큼. 이 책에서는 이외에도 청각장애인이자 시각장애인으로서 10년 이상 라인댄스 수업을 맡으며 “어둠에 굴복하는 대신 춤을 추기”를 선택한 70대의 매리언, 시각장애인으로 컬럼비아주 연방 순회 항소 법원의 판사를 25년 이상 맡아온 일흔다섯의 테이틀처럼 각자의 ‘상실’을 딛고 ‘가시덤불’을 껴안고 기쁨이 이끄는 대로, 행운에 집중해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팔로마가 다섯 살일 때 자주 하던 장난이 있어요. 나와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다 갑자기 ‘거기 발 조심해!’라고 외치는 거죠. 실은 아무것도 없는데.” “짓궂네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니요.” 후안 호세가 내 말을 바로잡았다. “아름답죠.” “어째서 아름답죠?” 내가 물었다. “내가 성공했다는 뜻이니까요.” “아이가 이 문제를 가볍게 여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요? 그걸로 장난을 칠 만큼?” “네. 정확히 그겁니다.” 후안 호세는 빙긋 웃었다. _p.118
우리가 인생의 고비에 지지 않고, 버티고, 이겨내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정하고 위트 있는 문체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저자 프랭크 브루니는 끊임없이 이러한 질문들을 던진다. 즐거웠던 순간들은 돌아보면 너무나도 짧고, 그때는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시기인지 결코 알지 못한다. 커리어를 잇는 일도, 부를 쌓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는 차오르는 희열과 감동을 느꼈던 ‘즐거운 기억’만이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경험을 쌓는 것조차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만약 타인의 어깨에 진 짐을, 그들이 억누르는 두려움을, 그들이 감추는 흉터를 잠깐만이라도 알아봐준다면 우리는 각자가 경험하는 불운과 모욕감에 덜 사로잡힐 것이라 저자는 확신한다. 이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견고한 힘이 된다.
슬픔과 공포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의식적이고 구체적인 걸음을 내디딜 것인가
앞으로의 인생을 위한 지혜와 품위를 배우다
뇌졸중 이후 저자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곱씹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행동했다. 수차례 발을 헛디뎠고 적잖이 넘어졌지만 어떻게든 눈이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다. 매번 어머니가 골랐을 만한 길을 택했다. 수차례의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지자 재미 삼아 가발을 수집하고 끝까지 가족들을 위한 식사를 직접 차려내길 고집했던 브루니의 어머니는 점점 수척해졌다. 결국은 음식 포장해오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좋아하는 TV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못한 채 잠들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엄청난 의지력과 행운으로 첫 손녀가 태어나는 것을 볼 정도로 사셨다. 그러자 어머니는 두 번째 손주가 태어나는 것도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을 이뤘다. 어머니는 손자가 태어나고 일주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손자의 이마에 입 맞출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았다. 달달 떨리는 연약한 두 팔로 아기를 안을 수 있을 만큼 오래.
어머니는 계속해서 골프를 쳤다. 계속해서 요리했다. 내가 집에 오래 머무르는 기간에는 언제나처럼 아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전부 준비하고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 데려갔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런 것을 요구한 적이 거의 없지만 말이다. 가발을 쓰든 쓰지 않든, 머리가 곧든 항암치료로 구불거리든, 어머니는 똑같았다. 어머니의 라자냐는 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고, 부드러웠으며, 양이 엄청나서 두 번째 먹고, 세 번째 먹고, 네 번째 먹어도 여전히 냉장고에는 식은 라자냐가 있었다. 암이 어머니를 여위게 하는 동안 어머니는 우리 모두를 살찌웠다. _p.193
또한 저자에게 아버지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온도를 결정적으로 몇 도 낮춰주는 존재”였다. 그는 모기지나 세금 같은 복잡한 문제에 섬세한 조언을 해주는 역할부터 삶의 이정표마다 축하를 잊지 않는 역할까지 해내는, 경외의 대상이자 바위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시력이 나빠질 즈음 여든을 넘긴 아버지는 노인성 치매를 진단받았다. 아버지는 더는 ‘나의 바위’가 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닥친 일을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이후 코로나로 봉쇄가 시작되고 여든넷의 아버지는 집에 머물러야 했다. 아버지의 기분 전환을 위해 저자는 아버지의 차를 몰고 과거로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가 자랐던 집, 부모님이 처음 살았던 집, 규모를 키워 이사한 다음 집을 순례했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10대 때 살던 집에 가보고 싶어 하셨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를 데리러 가고 데려다주었던 곳이었다. 저자는 아버지가 그 집을 보며 어머니와 함께한 순간을 재현하는 장면을 보았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아버지와 내가 그때 누린 것과 같은 순간들은 활짝 피어나는 순간 꽉 붙잡아야 했다. 그날의 드라이브가 빛났던 이유는 단순히 내가 행복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행복을 알아보고, 적절한 이름을 붙여주고, 거기에 오래 머무르고, 기념품처럼 간직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필요할 때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새롭게 떠올릴 수 있도`록 잘 간직했기 때문이었다. _p.295
시력 상실을 계기로 새로운 모험을 갈망했던 저자는 듀크대학교 교수직을 제안받으면서 15년 동안 살던 맨해튼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한적하고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 채플힐로 이사했다. 등이 굽은 채 휠체어를 탄 노인들의 모습을 여러 번 바라보며 처음에는 슬픔을 느꼈지만 점점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어떠한 평화를 느꼈다. 왠지 지금이 더욱 살아 있고, 삶에 더 조응하고 있고, 삶을 잘 음미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렇게 마치 시력을 잃지 않은 사람처럼 낙관적인 태도를 고수하던 저자는 책의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상황이 생각보다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삶의 요구와 기쁨으로부터 물러나기를 거부하고”, “수없이 많은 닫힌 문을 밀어젖히고 통과”하고 있는 브루니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우리 자신은 조금도 통제력이 없으면서도 막대한 통제력이 있다”는 삶의 역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마침내 걸음걸이가 느려졌을 때,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지난 세월을 돌아봤을 때 정말로 원했지만 아직 하지 못한 일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출처: 「상실의 기쁨」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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