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 1825 1기(13.3~18.2)

4월의 추천도서 (1505) 죽음의 한 연구 - 박상륭

 


 


1. 책소개

 

기독교,불교,연금술,설화 등의 우주관을 공통된 구조로 보면서 죽음을 통해 불멸적인 인신의 구극을 완성하는 고행의 과정을 서사적으로 구현하는 장편소설.


출처 - 예스 24 제공

 

 

2. 저자소개


박상륭

생존작가로서는 전례 없었던 1999년 예술의전당의 '박상륭 문학제', 평론가 김현이 "이광수의 '무정'이후 가장 잘 쓰인 작품"이라고 격찬했던 『죽음의 한 연구』, 심지어 '박상륭 교도(敎徒)'라고까지 불리우는 일군의 독자들. 소설가 박상륭 앞에 붙는 레테르이다.

박상륭은 1940년 8월 26일 전북 장수군 장수면에서 9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태임을 하기에는 늦은, 어머니 나이 마흔다섯 살 때, 그는 태어난다. 허리굽은 촌로인 어머니가 거무스름하게 탄 얼굴로 학교에 오면 어린 박상륭은 수치심을 느껴 숨곤 했다. 나중에 이런 것은 어머니 콤플렉스의 변용으로 작용해 박상륭 소설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장수의 대농으로 꼽히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유복한 환경에서 책과 더불어 유년기와 초년기를 보낸다. 그는 어릴 적에 유교적 전통 속에서 한학을 익힌 아버지로부터 동양학을 배우고, 천자문을 읽을 무렵에는 아버지가 읽어주는 두보의 시에 귀를 기울이며 자란다. 게다가 형과 누이들도 모이면 문학 이야기를 하는 등 어릴 적부터 박상륭은 문학적 분위기에 둘러싸여 자연스레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다.

장수국민학교를 거친 그는 1956년 장수중학교를 졸업하는데,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가 심장 마비로 숨진 것도 같은 해의 일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박상륭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준다. 부유하던 집안도 많이 기울어 박상륭은 이윽고 농고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 이 무렵 박상륭은 5백여 편이나 되는 습작시를 써대는데, 이것은 문장의 기본기를 다지는 훌륭한 훈련이 된다. 장수농고에 입학한 박상륭은 계속 시 쓰기와 책읽기에 몰두하며 문예부에서 활동한다. 1959년 1회로 장수농고를 졸업한 그는 이태 뒤인 1961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다. 스물 세 살 때 「사상계」에 「아겔다마」가 입상해 등단하고, 이어 「장끼전」,「강남견문록」등을 발표한다. 1969년 캐나다로 이민가 서점 노스셔 북스(North shore Books)를 경영하기도 했으며 1969년 영구 귀국하였다.

박상륭 소설은 인류의 '원형'을 찾아가는 기나긴 도정이면서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라는 형이상학적인 관념성을 소설작업의 일관된 주제로 삼고 있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일상 어법을 깨뜨리는 난해하고 유장한 문체와 철학적 사유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작가는 "저는 글쓰기를 통해 종교나 샤머니즘과는 다른 어떤 '원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이겠지요."라고 말한다. 박상륭의 소설은 "명민한 자아 의식, 언어 구축, 영적 직관을 각기 확보하고 있는 우리 문학의 근대적 탈근대적 성과물"(김정란) 또는 "종교 인류학의 시각으로 근대의 뿌리를 우리 문학 안에서 찾으려는 여행"(김인환)으로 이해된다. 흔히 그의 소설은 「뙤약볕」,「남도」연작,『죽음의 한 연구』를 포괄하는 장타령 시리즈인 「각설이」연작 등의 형태로 나오는데, 달리 찾을 수 없는 주제 의식을 앞세운 형이상학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어떤 작가의 세계와도 비교되지 않는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다.

기독교, 불교, 연금술, 설화 등의 우주관을 공통된 구조로 보면서 죽음을 통해 불멸적인 인신의 구극을 완성하는 고행의 과정을 서사적으로 구현하는 장편소설인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격인 4부작 『칠조어론』은 무려 17년에 걸쳐 완성한 노작이다. 1998년에 첫 산문집 『산해기』를 출간하여 독특한 형식과 문장으로 주목받았으며, 같은 해에 1994년부터 발표한 중단편 8편을 묶은 창작집 『평심』이 출간되었다. 1999년 4월에 박상륭문학제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으며, 『평심』의 표제작 「평심」으로 제2회 김동리문학상을 받았다. 이외의 작품으로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열명길』『아겔다마』『소설법』등이 있다. 최근작으로는 2008년 5월에 출간된『잡설법』이 있다.


■ 작가 한마디


소설이 아님에도 그 허구적 인물이나 배경, 사건과 같은 설정을 좇다보면 소설이 아닌 것도 아니지요. 그러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나는 그것을 최초로 쓰인 잡설이라고 불렀으면 합니다.


출처 - 예스 24 제공

 


3. 책 속으로


어떤 종류로든, 스님도 머지 않아, 혹간 스님 자신도 모를, 어떤 타의로부터 말입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실 때가 올지도 모릅지. 소승에게는 말입지, 이 세상 산다는 일이 말입지, 누군가가 배후에서 철사줄을 놀리고 있는 그런 말입지, 무대에 선 한 꼭둑각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말입지, 그 철사줄을 끊고 말입지, 그 꼭둑각시가 무대 아래로 내려서려고 한다면입지, 그건 꼭둑각시의 죽음과 연결되는 것입지. 꼭둑각시의 자유와 초월은 말입지, 철사줄에 계속 붙들려 매어져 있을 때라야만 말입지, 가능한 것일지도 모릅지. 거역이나 반항도 그렇습지, 철사줄을 쥐고 있는 누군가가 말입지, 왼손을 쳐들라고 하는데입지, 꼭둑각시 당자가 왼발을 쳐들 수 있는, 그런 말입지, 거역과 자유도 말입지, 그 철사줄과의 연결 아래서 가능된다는 말입습지.--- 본문 중에서


신은, 유토피아나, 위대한 사회를 살기에 걸맞도록 사람을 지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도록 지은 것일 것이라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사람을 그렇게 설계하기 위해, 신은 뭘 끙끙대고 고심했어야 할 필요도 없었음이 분명한게, 그가 사람의 코에다 '숨'을, 또는 그의 '뜻'을 불어넣고 있었을 때, 그 '뜻'을 '욕망'의 모양으로 슬쩍 바꿔놓기만 했으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밑에 구멍 뚫린, 저 '욕망'의 주머니를 뽑아내보라, 그러면 유토피아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알게 될 것을,....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인세의 종말이기도 할라.)--- p.15


공문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떻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도 모인다.--- p.9


"...해골 속에 뿌리내린 나무란 죽은 속에서의 생을 표상하는 비유이며, 불멸성이란 그래서 자기 자신이 죽음이면서 삶이 되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 자기의 불멸성은 인신의 상태에 이른 인간을 지칭함에 다름아니다...그 자기의 불멸성이 죽음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죽음은 새로운 삶을 가능케하는 자리인 것이다. 짜라투스트라에 의해 전율로서 설파되었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들에 의해 열광적으로 신앙되었던 그 죽음의 제단 위에 선 인신을 죽음의 한 연구는 실재하는 주인공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주인공이 자신의 각본에 의해 냉정하게 자기를 죽임으로써 자신이 인신임을 입증한다. 그 완성의 과정은 필연적이다."--- 김현씨의 평론 중에서


출처 - 예스 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