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책소개

“내 여성적이고 시적인 욕망이 모국어의 공백들 속에서 이행할 때,
비로소 내 한 편의 시가 펼쳐진다.”
“나의 시는 ‘시하고’ 있다고. 나는 시로서 ‘당신하고’ 있다고.”
김혜순 읽기를 위한 가장 정밀한 저술
김혜순 시 세계를 온전히 감각하는 가장 긴밀한 동행
김혜순 시학의 핵심을 이루는 열아홉 가지 키워드로 문학의 시작점을 묻다
“김혜순의 연설(「Tongueless Mother Tongue」)은 현대문학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학 텍스트 중 하나에 속한다. 이는 고트프리트 벤의 1951년 뷔히너상 수상 연설 「시의 문제들Probleme der Lyrik」, 그리고 파울 첼란의 1960년 같은 상 수상 연설 「자오선Der Meridian」과 함께 거명되고 읽혀야 마땅하다.” _베아테 트뢰거(평론가), 《데어 프라이타크》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2019),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2024), 독일 국제문학상(2025)을 잇달아 수상하며 말 그대로 세계인이 함께 읽는 이 시대 가장 뜨겁고 급진적인 언어 미학을 구축해온 김혜순 시인이 자신만의 언어와 감각이 발생되고 다시 발명되는 시작(詩作)의 내밀한 과정을 핵심 주제별로 구성한 『공중의 복화술- 문학은 어디서 시작할까?』(2026)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2002)과 『여성, 시하다』(2017),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2019)에 이어 시와 글쓰기에 관한 글들을 모은 네번째 책으로, 2020년 가을부터 2년 남짓 문예지 『악스트Axt』에 연재한 산문 13편과 2022년에서 2025년 사이 국내외 강연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표한 산문들 가운데 6편을 추려 묶었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김혜순
1979년 『문학과지성』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또 다른 별에서』(1981),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1985), 『어느 별의 지옥』(1988), 『우리들의 음화』(1990),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1994), 『불쌍한 사랑 기계』(1997),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2000), 『한 잔의 붉은 거울』(2004), 『당신의 첫』(2008), 『슬픔치약 거울크림』(2011), 『피어라 돼지』(2016), 『죽음의 자서전』(2016), 『날개 환상통』(2019),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2022),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2025), 시 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2016), 산문집『여자짐승아시아하기』(2019),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2002), 『여성, 시하다』(2017), 인터뷰집 『김혜순의 말』(2023), 합본 시집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2025) 등을 펴냈다. 1989년부터 2021년 2월까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재직하며 수많은 시인·작가를 배출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명예교수이다.
김수영문학상(1997), 소월시문학상(2000), 현대시작품상(2000), 미당문학상(2006), 대산문학상(2008), 이형기문학상(2019),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19),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2019), 스웨덴 시카다상(2021), 삼성호암상 예술상(2022),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2024, 시 부문), 독일 국제문학상(2025) 등을 수상했고, 영국 왕립문학협회 국제작가(2022),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AAAS) 회원(2025)으로 선정됐다. 주요 시집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 스웨덴어, 폴란드어, 덴마크어 등으로 번역되어 세계 곳곳에서 읽히고 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서문 005
(복화술) 공중의 복화술 013
(목소리) Tongueless Mother Tongue 027
(슬픔) 슬픔의 형국에서 049
(침묵) 상실의 환유 065
(불안) 불안의 것 077
(죽음) 죽음의 엄마 091
(다시쓰기) 무한한 포옹 111
(딸꾹질) 딸꾹질 전문가들 125
(반복) 반복의 영웅, 반복의 거지 141
(미장아빔) 무한의 미장아빔 157
(방언) 옹알이는 메아리 171
(동물) 반인반수한다는 것 185
(고백) 고백할 수 없는 고백 199
(고통) 고통의 메뉴 217
(덩어리) 퀸콩의 미묘 235
(사이) 희 251
(시간) 빛 속에서 빗속으로 283
(사막) 꿈의 정오 295
(받아쓰기) 받아쓰다 317
수록 작품 발표 지면 331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산다는 것은 경험을 연속하는 것이다. 생명체인 나는 나를 둘러싼 것들과 상호작용한다. 나에게는 자연세계와 연결된 짐승으로의 몸이 있고, 이와 연결된 상상하는 몸이 있다. 상상적 경험이 지각 경험을 가만두지 않는다. 변용이 시작된다. 나는 시간이란 상상적 경험으로의 이행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나의 경험에 개입하면 감각 경험은 환원될 수 없는 모습으로 창발한다. 나는 이것을 쓴다. (「공중의 복화술」) #복화술
문학작품은 사건의 대칭적 자기에서 잔상, 혹은 장면의 내부를 구축한다. 문학작품의 내부에는 복화술사가 산다. 복화술은 속임수다. […] 소설은 현실이라고 지정된 것에 대한 거짓말이고, 시는 언어라고 지정된 것에 대한 거짓말이다. 이 거짓말의 나선을 타고 문학의 복화술이 움직여 가는 거다. 그러니 이 거짓말의 끝에 위로가 있을 리가 없다. 실패와 불행과 자기 지우기가 있을 뿐이다. […] 글쓴이의 얼굴이라는 그 가면, 그 가면 뒤의 얼굴, 자신의 뒤통수를 돌아보려는 지난한 뒤돌아보기, 거짓말을 가리기 위한 기교와 수사와 패러디가 있을 뿐이다. 문학은 거룩하지 않다. 실패다. 패배다. 언어로 그린 그림도 아니다. 언어로 그린 비참도 아니다. 단지, 절망이 기교를 낳은 것이다. 절망이 복화술을 창안해낸 것이다. 작가와 독자 그 사이, 피차 위로가 있을 리가 없다. […] 팽팽한 대칭 세계가 있을 뿐이다. 둘의 줄넘기가 있을 뿐이다. (「공중의 복화술」)
문학의 복화술은 흉내 내기가 아니라 맞물려 서로를 잉태하기이다. 복중의 내적 독백으로 짐승하기이다. 내적 독백으로 상상적 경험의 극점에 이르기이다. 상상하기에 이은 신체화하기이다. (「공중의 복화술」)
역사의 잉여로서 언어 속에 겨우 숨어 있는 유령에게는 언어를 몸에 묶지 않고도 외치는, 침묵, 한숨, 비명, 기침, 딸꾹질 소리, 신음 소리 같은 목소리가 숨어 있다. 역사 쓰기에서 압살된 유령, 역사의 공백에서 우글거리는 유령, 여자들의 말속에 숨은 유령. (「Tongueless Mother Tongue」) #목소리
시는 일종의 무언의 대화이고, 다수가 웅얼거리고, 중얼거리고, 요동하는 일종의 소음이다. 이럴 때 시인은 분열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정동으로밖에는 그 ‘목소리’를 견디어낼 수 없다. 나는 그 중에서도 여러 번 내쫓김과 죽임의 세계를 거쳐 온 여성시는 자율적인 주체가 아닌 물질이며 신체인, 다양한 기관들의 응집체, 자신의 몸처럼 여러 기관들을 주렁주렁 매단 결집체, 그 기관의 유령들이 모두 중얼거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해왔다. 이런 시를 읽는 독자는 자신의 자아의 장소에서 나아가 그 의미의 공백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Tongueless Mother Tongue」)
글을 쓰는 사람은 선험적으로 자신의 소멸을 경험한다. 이럴 때 무한은 항상 불안과 함께한다. 우리는 불안에서 태어나 불안에서 죽는다. […] 내 고통은 무한을 응시한답시고 멍 때리고 산 자에게 내려진 형벌이다. 살아 있는 자로서 죽음을 구성하려 시도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연속적인 살아감을 혼란스러워했기 때문이다. (「불안의 것」) #불안
엄마는 창문, 창문은 햇살, 햇살은 손잡이, 손잡이는 발자국, 발자국은 대문. 내 그리움은 끝없이 유예된다. 내 그리움이 끝이 다음 대상으로 옮겨간다. 지구를 한 바퀴 돈다. (「상실의 환유」) #침묵
여성적 글쓰기의 대표적인 특징은 ‘관계’다. 그중에서도 여자와 여자의 관계, 엄마와 딸의 관계, 죽은 엄마와 딸의 관계다. 엄마가 딸이 되고, 딸이 엄마가 될 때까지 밀고 나가는 관계다. 시를 쓰는 동안 엄마는 엄마를 잃고, 딸은 딸을 잃는다. 결국 시는 정체성 상실을 문자화한다. (「죽음의 엄마」) #죽음
나의 시 쓰기의 기반은 죽음이다. 부재가 반, 존재가 반인 그런 시 쓰기. (「죽음의 엄마」)
여자들의 받아쓰기는 흉내 내기를 거쳐 전복적 다시쓰기, 아이러니적 전도의 다시쓰기, 횡단하는 이행으로서의 다시쓰기로 이어진다. […] 다시쓰기는 태어남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폭력을 비난하고, 억압과 침묵을 뒤집어엎고, 제국주의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원전을 희롱하는 직접적인 패러디를 넘어선 다시쓰기가 있을 수 있겠다. 나는 다시쓰기는 다시쓰기라는 쓰기 그 자체가 화자가 아닐까, 그것이 주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바리의 노 젓기 같은 말하기, 침묵한 자가 침묵으로 말하는 것, 부재한 자가 부재로 말하는 것. (「무한한 포옹」) #다시쓰기
춤이란 기존의 육체의 조건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정상과 비정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자세를 발견하는 것. 내 몸을 내가 시간 속에서 파괴해보고, 넘어지게 하는 것. 나는 이것이 춤하기와 시하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상적이라고 명명된 언어 사용에 대해 다른 기준을 적용해보는 작용이 문학언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문학은 차별의 시선에 대한 심한 딸꾹질일 것이다. (「딸꾹질 전문가들」) #딸꾹질
문학의 수행이라는 것은 작품의 경과가 아니라 끝없이 이 반복하는 나날의 공고한 감옥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일 것이다. 자신을 탈옥을 욕망하는 수레바퀴에 올리는 행위일 것이다. 그렇게 이 반복으로부터 나를 떼어내보는 일일 것이다. 재현의 중지, 리얼리티를 초과하는 나의 탄생. 동일성과 총체성을 독려하는 세력에 대한 위반의 글쓰기. (「반복의 영웅, 반복의 거지」) #반복
문학은 늘 타자에 대해, 타자를 쓴다. 나는 타자로 구성된, 유동하는 정체성을 보유한 채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를 타자를 씀으로써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장려한다. 나에게 부과된 정체성을 의심하고, 그 정체성에 항의한다. 나는 나에게서 타자를 살려내려 하면 할수록 글쓰기가 불가능해진다고 엄살을 부린다. 그래서 재현 자체의 불가능성을 넘어서 재현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나의 여성적 타자로서의 경험이 그렇게 한다. 그래서 나의 타자는 상징이나 은유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여자짐승은 나라는 타자의 타자인 것. 불쌍한 것. 나는 내 글쓰기로 이 여자짐승을 구성해간다. 나의 시 한 편 한 편이 이 여자짐승 하나의 발가벗은 알몸을 구성하기에 이르도록 한다. 나의 글쓰기는 나라는 인간으로서의 동물, 그것과의 경계를 넘어, 우리의 멸종을 넘어 우리의 시간 아래 살아 있는 이 여자짐승의 관계 그물에게로 간다. 동물의 입 없는 육체로 말하는 불가능성을 향해 간다. 그 ‘감’, 그 ‘함’이 나의 글쓰기가 아닐까. (「반인반수한다는 것」) #동물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고통이란 일종의 아직 남아 있는 건강이다. 나는 나와 고통 사이에서 고통한다. 고뇌한다. 그러므로 상상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내 안의 여자짐승사물물질이다. […] 여자짐승사물은 글쓰기를 통해 구성될 존재이며 어떤 진실이다. 결핍이 아니다. 나는 여자짐승사물의 날개가 이마를 두드리면 새하는 생각, 발바닥을 간질이면 물고기하는 생각, 두통을 심하게 하면 무기물이라는 생각. 이것은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다. 재현이 아니다. 여자짐승사물은 홀로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존재하는 존재니까. (「고통의 메뉴」) #고통
덩어리는 명사가 아니라 조사야, 전치사야, 접속사야, 관계사야. 부사가 내뿜는 기운이야. 네 말 이전이야. 덩어리는 질료도 형상도 아니야. 모국어 속에서 우리는 깨졌어. 망가졌어. 구겨졌어. 부패했어. 뭉그러졌어. 나는 함몰에 이은 응축이야. 구체야. 덩어리는 떨림과 억울과 말할 수 없음과 실패로 뭉쳐진 비유기적인 것. […] 어느 한순간도 동일한 모습의 덩어리는 없어, 반복은 없어. 나는 질료적 생성이야. 나는 매일매일 저 산처럼 저 하늘처럼 그 모습이 다르게 변하는 여자야. […] 퀸콩이 손바닥 위에 불쌍한 ‘저 자신’을 올려놓고 바라보는 눈길, 골똘히 세심하다. 이 세심함을 무엇이라 할까. 정동이라고 할까. 미묘함이라고 할까. 비밀이라고 할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이 미묘함, 이 덩어리의 미묘가 나를 쓰게 하는 걸까. (「퀸콩의 미묘」) #덩어리
이미지는 틈이다. 구멍이다. 작은 구멍, 큰 구멍이다. 글을 쓸 때의 나는 나의 바깥, 이미지에 유배된 존재이다. 이미지는 시인이 머무는 자발적 인질의 감옥이다. 시인의 실존은 그 틈, 사이에의 영어(囹圄)에 해당한다. 이 이미지 감옥의 시인에게는 분노의 총알이 하나 박혀 있다. 이 감옥, 주변, 빈틈, 구멍을 하나의 세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투쟁(하기)이 필요하고, 이 투쟁이 바로 글쓰기가 된다. (「희」) #사이
시 한 편 안에 고정된 형식이 있다 말할 수 없다. 시는 무엇에 관해 말하기보다 한없는 리듬의 직조. 포옹하자마자 다시 풀어지는 우리 만남의 직조. 시여! 사라지는 도형의 몸이여! (「꿈의 정오」) #사막
끝없이 파괴된 글쓰기 주체는 이제 텅 비어버린다. 문법은 깨지고, 문장은 파편화된다. 서사는 중단된다. 움켜쥐고 있었던 한 움큼의 모국어마저 죽는다. 상실과 애도의 받아쓰기는 쓰는 자의 고백 서사마저 부순다. 대신 고통의 전면 배치다. 모국어의 유언이다. (「받아쓰다」) #받아쓰기
이 죽음이라는 무의미 앞에서 내 모국어는 의미를 잃고 내팽개쳐진다. 모국어가 내팽개쳐지자 모국도 내팽개쳐진다. 다행이다. 나의 시의 모국이 없어서. 모국 대신 모국이라는 기표의 환유만 있어서. 모국어로 모국에 들어가는 의미망의 고속도로가 없어서. 아아, 내 앞엔 이별의 대륙이 놓여 있을 뿐. 작별의 공동체가 있을 뿐. (「받아쓰다」)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시학Poetics’이라 명명된 이 책에서 김혜순 시인은 “한 시인이 어떤 ‘사이’를 통과해 한 편의 시에 이르는, 그 과정”(「희」)을 진술한다. 올해로 시작(詩作) 47년의 삶을 쓴 그의 시가 과연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찾아 도래하고 여전히 새로운 창발을 거듭할 수 있는지 그 글쓰기의 원천과 상상적 경험의 시적 신체화에 관해 산문의 구체성으로 밝혀내고 있다. 산문의 틀을 취하고 있으나 “웅얼거리고 중얼거리는 비결정적인 것들을 언어로 구축하려는 욕구”(「불안의 것」)의 문체는 숨길 수 없이 시인 고유의 리듬, 그것이기에 축약을 허락하지 않는 글마다 비탄과 격정, 길항과 확산을 오가는 열정적인 목소리로 가득하다. (여성)시에 숨어든 유령화자(“사라지고, 버려지고, 다치고, 죽어서 유랑하는 다른 유령들을 부르는 목소리, 이 목소리는 언어 이전인 것./ 「Tongueless Mother Tongue」), 그 발화의 복수성을 발견하고 여성시의 형식을 규명하려는 욕망이 강렬하고도 황홀한 언어에 ‘들려’, “존재를 부재에, 부재를 존재에 투척하는 시 쓰기”(「죽음의 엄마」)의 방법론에 대해 설파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한없이 우아하고 또 웅장하다.
특히 2023년 베를린 시 연설의 키노트(기조연설)로, 연설 직후 해외 외신들이 앞다투어 “현대문학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학 텍스트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고트프리트 벤’과 ‘파울 첼란’의 기념비적 연설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이란 찬사를 보낸 「Tongueless Mother Tongue(혀 없는 모국어)」와 202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을 수상한 시집 『날개 환상통(Phantom Pain Wings)』에 작가 에세이로 수록되어 여러 언어권에서 읽히고 있는 산문 「공중의 복화술(Bird Rider)」 등 김혜순 시학의 정점이라 평가받는 죽음 3부작을 관통하는 주요 시론이 빠짐없이 담겼다. 이러한 구성에 힘입어 몸의 내밀함과 죽음의 무한한 포옹, 목소리와 복화술, 타자의 윤리와 동물성, 반복과 리듬, 부재와 상실의 환유, 불안과 고통, 고백적 글쓰기와 문학의 정치성, 정상성을 되묻는 몸짓으로의 딸꾹질과 침묵, 시간과 사이, 받아쓰기와 다시쓰기 등 김혜순 시학의 핵심을 이루는 키워드와 표상들이 선명하게 각인된다. 그간 우리가 읽어온 김혜순 시의 내외부적 맥락까지 두루 살필 수 있는 이 책이 시집과 시론의 유기적 결합을 의식하며 김혜순의 시 세계를 깊고 풍부하게 감각하는 다시없이 좋은 기회라 하겠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쓰이고 발표되는 동안 김혜순 시인은 인간의 존재 방식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팬데믹의 위협 속에서 재난과 봉쇄가 무한 반복되는 나날을 견뎌야 했고, 호스피스 병동을 오가던 엄마의 죽음을 겪고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어둠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고 술회한다.
나는 알고 있었다. 기도할 때 터져 나오는 이 목소리가 여성성, 부정성, 미신성, 기복성, 반합리성으로 규정받고 있다는 것. 그러나 내가 들은 이 목소리는 통역이 불가능한 것. 언어가 아닌 것. 어쩌면 해방인 것. 신체적, 감정적 이완인 것. 한없이 언어를 열고 나가는 것. 죽음 직전의 옹알이. 재잘거림. 언어의 카타르시스. […] 엄마의 기도가 계속됨에 따라 우리의 마지막은 아주 조금씩 유예되었다. (「옹알이는 메아리」) #방언
몸을 지배하는 극심한 불안과 신경증이 겹친 고통으로 점철된 이즈음의 삶과 사유가 죽음 3부작 중 한 권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2022)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 정황이 산문 여러 편에 실렸다. 자연스럽게 “사물과의 작별, 세계와의 작별을 통해 잔혹한 죽음들과 맞서는, 선험적이면서 아찔하고 아득한 죽음을 구축하는 것이 아마도 시일 것”이라는,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무는 ‘죽음의 시학’이 이 시기에 정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죽음의 엄마」 「사이」 「꿈의 정오」 「받아쓰다」). 그에 앞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쓰기 시작한 ‘시하고’ ‘새하는’ 시집 『날개 환상통』(2019)의 집필 배경(「공중의 복화술」 「희」)과 시집 『슬픔치약 거울크림』(2011)에 수록된 장시 「맨홀 인류」가 완성되기까지, 기성 질서와 폭압적 시선에 저항하고 전복하려는 내밀한 몸의 경험들(「딸꾹질 전문가들」),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2019)의 연장선상에서 “전 지구로 인간이라는 고통이 퍼져”나가는 이때 “내 안에 우글거리는, 여자짐승으로의 타자성”에 대한 첨예한 인식과 통찰 또한 다채롭게 서술되고 있다(「반인반수한다는 것」 「고통의 메뉴」 「퀸콩의 미묘」 「희」).
전염병은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대답이 있는 세계를 우습게 여겼다. 바이러스는 우리의 재현 체계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품은 비밀을 벌거벗은 숫자로 만들었다. 전염병의 세계에서 나의 바이러스 감염과 신경증이 나를 사막 쪽으로 더욱 몰아갔다. 어떤 힘이든 그 힘의 언어를 해체하는 곳. 내 고통과 광기만이 진짜인 곳. 사막에서 고통과 광기는 힘껏 날갯짓했고, 독립된 하나의 에너지였다. 죽음의 연속성만이 이 고통과 광기를 길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죽음만이 리얼리즘이었다. (「꿈의 정오」) #사막
익히 알려진 그날의 사건, 그러니까 시인이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던 1970년대 말, 긴급조치 9호 치하에서 군부의 검열과 폭력으로 인해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수치를 안고 “내가 쓰기를 허락하지 않아 쓸 수 없는 것. 그래서 구멍인 거기. 비밀인”(「고백할 수 없는 고백」) 그 사건을 일곱 편의 시로 남겼다가 그중 여섯 편을 시집 『어느 별의 지옥』(1988; 1997; 2017)에 수록한 사정을 밝히며(「Tongueless Mother Tongue」), ‘고백적 글쓰기’는 대신 말하기가 아닌 ‘다시쓰기’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문학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스토리는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전신에 퍼진 수치와 고통의 미묘함을 말로 표현하기란 얼마나 불가능한가. 육체적 고통의 대신 말하기는 가능하기나 한 걸까? 제3자의 고백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 고백적 진술은 ‘사건’이 제공한 에피소드에 살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글을 써나가는 자신을 위험의 표징으로 삼는 것이다. 고백은 고백이라는 언술 방법의 진실을 믿는(척하는) 사람의 글쓰기 방법이 되기 쉽다. 그래서 고백적 진술은 글 쓰는 자의 정당성과 상처를 증명하려는 도구가 되기 쉽다. 그리하여 펜을 가진 자, 끝없이 사건 속에서 다치고 죽은 자를 위해 대신 말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에서 거듭 자신을 돌려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건과 독자를 회유하게 된다. 그들의 침묵을 깨트려주고, 그들의 말을 대신 들려주고, 그들을 어루만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자신이 대신 위로해준다는 나르시시즘에 복무하게 된다. (「고백할 수 없는 고백」) #고백
2021년 30년 넘게 시 창작 강의를 했던 서울예대를 퇴임한 시인은 자신의 시집이 번역되어 소개되는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에서 낭독과 강연으로 새로운 낯선 독자들의 질문에 여전히 답하는 중이다. 시인은 학생들과 함께 시를 읽고 토론하기 위해(“묘사의 숨은 형식들, 구조의 시점들”로 옮겨 말한 ‘감각하기’를 강조하며) 각기 다른, 시에 대한 정의와 시론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자신만의 시학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껏 출간한 15권의 시집에서 프랙털 도형처럼 끝없이 변용, 생성되며 움직여온 김혜순의 시적 언어는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그리고 ‘여성이 시를 한다는 것은?’ 하고 시인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변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책의 부제 ‘문학은 어디서 시작할까?’라는 질문 역시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닐까. 197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시인이 품고 탐색해온 이 커다란 화두는 오랜 시간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마주했던 질문이기도 할 터다. 여기 『공중의 복화술』에 담긴, 슬프고도 담대하고, 우아하면서도 명쾌하게 쓰인 16편의 산문들은 그러한 문학의 시작점, 문학의 새로움이 발생하는 진원지를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거둔 우리 시대 소중한 지적 자산이자 성취라 하겠다.
이 글들이 문학적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긴 목록을 작성하고, 하나하나 써나가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학교 수업에서 목격한, 글을 시작하고 싶으나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요’라고 말하던 학생들에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으며 누구나 자신 안에 싱싱한 새로움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문학의 새로움이란 곧 글 쓰는 자신이라는 말을. 인간 각자가 경험하고, 품고 있는 감정과 생각, 그 모든 것이 신선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영감이니 재현이니 그런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각하기를 어떤 고정관념에 함몰시켜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서문」에서
“만일 죽음에 모국어가 있다면, 그것은 산 자들의 세계에서는 분명 시로써 울려 퍼질 것이다. 우리 인간은 언제나 모국어라는 표현의 한계에 갇혀 있지만, 모든 언어 이전에는 죽음의 보편언어가 있다. 김혜순의 시는 이 죽음의 언어를 한국어라는 시어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2025 독일 국제문학상 심사평
“김혜순의 시는 놀랍도록 독창적이고 대담하게, 전쟁과 독재의 여파, 가부장제 사회의 억압, 아버지의 죽음과 같은 삶의 고통, 이를 극복하는 의식을 대안적 상상의 세계로 반영한다.” ―2024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 선정의 말
“김혜순은 여성이 몸에 실재하는 감정과 정체성에 충실하면서, 다정함과 격분이 공존하는 목소리로 악몽과 어둠을 관통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적 황홀을 보여준다.” ―2021 스웨덴 시카다상 선정의 말
출처: 「 공중의 복화술 」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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