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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추천 도서(670)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 토마스 만



 

 

 

1.책소개

 

책소개

독일 시민계급의 영혼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 토마스는 심미적이고 데카당스한 충동을 지닌 반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시민 생활에 대한 동경 또한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예술 의지에서 나오는 데카당스한 측면을 시민적 삶이 지닌 미덕들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이 극복 의지는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발현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그에게 긴장과 압박감을 더해 준다. 결국 그의 내면에 들끓는 데카당스한 욕망과 시민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점점 더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그의 모습은 점차 시민이 아닌 시민의 역을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으로 전락해 간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2.저자소개

 

토마스 만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98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985년에서 198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2일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식 참석차 독일 여행 중 발병하여 취리히로 되돌아와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출처 - yes24 제공

 

3.목차

 

1부... 7
2부... 67
3부... 121
4부... 225
5부... 329
6부... 403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4.출판사 서평

 

시민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싹튼 원초적 갈등을 형상화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소설
시민적 삶과 예술가적 삶의 이원성은 만이 주로 다루는 주제의 하나이다. 이 작품에서도 시민성과 예술성은 첨예하게 대립을 이루고 있다. 작가에게 예술가적 의식은 <상인 세계의 미덕들, 성실성이나 정직성, 시민적 계급의식, 정치적 보수주의 등의 특징들>과 대립되는 것이다. 건강한 시민 의식을 소유하여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요한 부덴브로크(1대), 그를 잇는 인물 장 부덴브로크(2대)가 시민 세계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이들을 통해 성숙한 시민의식은 토마스(3대)에 이르면 혼란을 맞이하게 되고 하노(4대)에 이르면 파멸을 맞게 된다. 토마스와 하노를 통해 누대에 축적된 시민적 질서는 마감되고 가문이 몰락해 가는 것이다.

토마스는 심미적이고 데카당스한 충동을 지닌 반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시민 생활에 대한 동경 또한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예술 의지에서 나오는 데카당스한 측면을 시민적 삶이 지닌 미덕들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이 극복 의지는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발현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그에게 긴장과 압박감을 더해 준다. 결국 그의 내면에 들끓는 데카당스한 욕망과 시민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점점 더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그의 모습은 점차 시민이 아닌 시민의 역을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으로 전락해 간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과된 시민적 생활 방식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토마스는 죽음을 예감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건강한 시민 의식은 막을 내리고 쇼펜하우어에서 니체까지 이어지는 능동적 니힐리즘의 정신적 지류가 소설의 후반부를 지배한다.

아버지 토마스가 자신의 예술가성을 억압해 시민적 이상에 도달하려는 삶을 살았던 반면, 아들 하노는 자신의 예술가적 기질과 동경을 억제하지 않는다. 하노의 예술가 기질은 일상 생활에서도 그대로 표출된다. 그는 학교에서도 시민적 사업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나 성향을 키우지 못한다. 특히 그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비극적 음악, 화음을 벗어나는 모순 기법 등에 열광한다.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성질상 <도취, 망아, 몰락으로의 욕구, 에로틱 및 방종>과 연관되어 있다. 그를 통해 몰락에 대한 예감이 분명해진다. 그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예술가로서의 삶이며 그곳을 향한 출구가 요원함을 깨달았을 때 하노는 쉽게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그럼으로써 부덴브로크 가의 남자는 모두 사라지고 도시 귀족적 시민 계급의 몰락이 예견되고 있다.

가족사 소설의 테두리를 뛰어넘은 사회 소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까지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인물, 토니--토마스의 여동생--를 통해 가족의 출생, 세례, 결혼, 이혼, 죽음, 상업적 성공 및 실패 등의 요소를 완벽에 가까운 묘사로 재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가족 소설의 모델에서 보자면 여타의 소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가족 소설의 테두리를 벗어나 사회 소설이라고 평가받는 데에는 1848년 3월 혁명과 자본주의의 확장과 더불어 위협받는 시민성의 문제를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그려낸 데 있다.

실제로 이 소설이 처음으로 출간되었을 때 뤼벡 시민의 커다란 반발을 샀는데 그 까닭은 혁명을 일으킨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에 대해 부덴브로크 영사(2대)가 취한 보수반동적 입장이 뤼벡의 유산자 계급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또한 하노를 통해 묘사되는 학교 장면은 프로이센적인 교육방식의 문제점을 독일 소설 가운데 최초로 신랄하게 꼬집음으로써 이후 학교 교육이 개선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출처 - yes24 제공

 

5. 추천평

 

1835년 강건하고 낙천적인 요한 부덴브로크(1세)는 두번째 부인 안토아네트와 함께 새로 입주한 멩 가의 집에서 가족 및 친지와 함께 파티를 연다. 그 자리에 아들인 요한 부덴브로크 영사(2세),그의 아내 엘리자베트 영사 부인,그들의 세 자식들인 토마스,크리스찬,토니, 그리고 빈곤한 방계 친척인 클로틸데 등이 참석한다. 이어서 영사의 막내딸 클라라가 태어난다.

부인 안토아네트가 사망하자 요한 부덴브로크는 급격히 몸이 쇠약해져 사업에서 손을 떼고 1842년에 사망한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부터 영사는 장남 토마스를 회사일에 참여시킨다. 그는 약간 섬세하고 예술적인 면이 있지만 건강한 시민 의식을 갖고 있다. 반면에 경솔한 성격의 크리스찬과 고상한 척하는 허영심을 지닌 토니는 부모에게 여러 가지 걱정을 끼친다. 그래서 영사 부부는 그녀를 일년 동안 바이히브로트의 기숙사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토니가 기숙사에서 돌아온 직후 함부르크 출신의 그륀리히가 부덴브로크 가에 나타난다. 멋쟁이에다 알랑거리는 말을 잘하는 그는 영사 부부의 호감을 산다. 영사는 그륀리히가 토니한테 청혼한 사실을 알자 그와 혼인을 맺는 게 득이 될 것 같아 토니에게 결혼할 것을 강권한다. 하지만 토니는 결정을 못 내리며 망설인다. 그녀는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트라베뮌데의 슈바르츠코프 댁에 머물다가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체험하며 달콤한 몇 주를 보낸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충직한 수로 안내인의 아들로, 의과 대학에 다니는 모르텐이다. 그는 혁명에 열광하고 구제도의 타파를 역설하는 진보적인 학생이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그륀리히가 찾아와 훼방을 놓는 바람에 토니의 사랑은 깨지고 만다. 결국 토니는 한편으로는 절망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한 가문 의식 때문에 구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거기에는 그륀리히와 결혼함으로써 자신이 고상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들어 있다. 약혼식과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러진다. 결혼한 지 일년 후 함부르크에 사는 그륀리히 부부 사이에 딸 에리카가 태어난다.

하지만 곧 그륀리히는 엉터리 사기꾼임이 드러난다. 그가 완전히 파산하자 영사는 딸 토니와 손녀 에리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토니는 이혼한다. 토니는 이러한 모든 일을 겪으며 슬퍼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가문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이혼 후에 그녀와 아버지의 관계는 좀더 긴밀해진다. 지나친 긴장으로 몸이 쉬 늙어버린 영사는 몸이 병약해져 1855년에 심장발작을 일으켜 죽고 만다.

그후 그의 아들 토마스가 회사를 떠맡으면서 분위기가 쇄신된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지런한 그는 모든 일에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반면 그의 동생 크리스찬은 점점 더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며 경거망동한다. 그는 잠시 회사일에 참여하지만 토마스에 의해 곧 쫓겨나고 만다. 그러는 사이에 진지하고 신심이 깊은 소녀로 자란 클라라는 목사 티부르치우스와 결혼한다. 그러나 클라라는 결혼 생활에서 아이를 얻지 못한 채 몇 년 후에 뇌막염으로 죽고 만다.

토마스는 신경이 예민하고 예술가적인 천성을 지닌 게르다 아놀트선과 결혼한다. 토니도 꾸밈없고 소박한 뮌헨 남자 페르마네더와 다시 결혼한다. 하지만 그는 일해서 성공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면서 집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려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인물임이 밝혀진다. 두번째 결혼도 실패로 끝낸 토니는 에리카를 데리고 친정으로 되돌아온다. 에리카는 화재 보험 회사 사장인 바인센크와 결혼하지만 그마저도 불행하게 끝난다. 바인센크는 횡령죄로 몇 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풀려나서는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토마스와 게르다 사이에는 섬세하고 병약한 기질의 요한(하노)이 태어난다. 그러는 사이에 토마스는 시의원이 되어 어부 골목에 호화스런 새 집을 건축하고 창사 백주년을 축하한다. 하지만 지나친 긴장과 부담감으로 그의 몸은 망가져 일찍 늙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과 성공에 대한 회의에 사로잡혀 사업에서 많은 손해를 본다. 그의 아들 하노도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극도로 섬약하고 민감해서 그를 실망시킨다.

토마스의 어머니 엘리자베트는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힘들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의 유산 중 상당한 몫이 클라라의 남편,티부르치우스에게로 넘어가고 부덴브로크 상사는 악화일로를 걷는다. 마침내 멩 가의 집마저 신흥 가문으로 부상한 유능하고 자유주의적인 외지 사람 하겐슈트룀한테 팔린다. 한편 크리스찬은 점점 더 내적인 문제에 깊이 빠져들다가 사업을 망치고 빚만 잔뜩 진다. 그는 어머니가 사망하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알리네 푸보겔과 결혼하나 푸보겔은 정신 질환이란 병명을 들어 그를 정신 병원에 수용한다. 이러한 모든 일로 극도의 부담감과 긴장에 시달린 시의원 토마스는 1875년 치과에서 이를 뺀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쓰러져 인생을 마감한다.

그의 유언에 따라 회사는 청산 절차를 밟고 그의 미망인 게르다는 어부 골목에서 살지 않고 좀더 아담한 집으로 이사 가서 하노와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하노 또한 1877년 열네 살의 나이에 티푸스로 죽고,이로써 부덴브로크 가의 남자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그후 게르다는 아버지가 사는 암스테르담으로 쓸쓸히 떠난다.

 

출처 - yes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