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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추천 도서(19.3~20.2)

12월의 추천도서(2494) 선월

 

1. 책소개

 

人生如船 인생은 배와 같아

隨緣得처 인연에 따라 달을 얻고

-선월(船月)의 한국어판 출간에 즈음하여

 

중국과 한국은 서로 인연이 깊은 나라입니다.

순망치한의 판도가 이렇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67년 전에 일어났던 마음을 놀라게 하고 넋을 뒤흔든 역사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연이 있었으므로 곧 이 서로 호응하였고, 다시 물 위에 쓴 일기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과 인연이 있습니다. 이 인연은 이 소설을 지어야겠다는 충동이 생겨나기 10년 전, 20년 전아니 아마도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어서 시작을 알 수 없습니다. 이 인연은 매우 깊고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세기의 교차로에 서서 내일을 바라보니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0}득합니다. 눈 안 가득 들어오는 것은 새로운 태양, 그리고 햇빛을 받아 꽃망울을 터트린 무궁화입니다!

이것은 중국과 한국 두 나라 국민의 무궁하고도 두터운 우정입니다! 저 는 마치 인민문학출판사에 계시는 훌륭한 스승과 좋은 친구들의 기쁨과 위안 의 찬탄을 듣는 듯합니다. 돌아보면, 북경 천안문 상공의 비둘기들이 날아다니는 푸른 하늘과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구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무궁화는 한 중 양국의 우정의 미래가 끝없이 찬란하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한국의 범우사 윤형두 사장님이 한국어판의 출판이라는 방식으로 손을 내밀어 저와 악수할 때, 저는 그 뜨거운 진심을 뚜렷하게 느꼈습니다.

지금, 남호의 마름향을 가득 실은 이 작은 배는 마침내 인민문학출판사와 범우사라는 두 개의 커다란 노를 저어 한국의 서울에 들어왔습니다. 뱃전의 밝은 달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하늘에 하나의 달이 떠 있고, 물 속에 또 하나의 달이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비추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선조들이 글자를 만들 때에 일찌감치 붕우(期友)’ 속에 새겨놓은 의미를 묵묵히 문득 깨닫습니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는, 아무래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민문학출판사가 저의 작은 배에 달을 싣고 출항하여 촘촘하게 수로가 짜 여진 강남을 떠나 대운하를 따라 뭇 사람들이 주시하는 북경으로 항해하게 해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범우사가 저의 작은 배를 이어받아 바다를 건너 먼길을 떠나 꽃씨와 우리들의 오랜 우정 그리고 문화를 싣고 무궁화가 활짝 핀 곳으로 항해하게 하여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일찍이 존경하는 김신선생님을 본보기로 삼아, 한 양국의 우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미력을 다하는 4민간대사가 되겠노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야만 비로소 아래와 같은 저의 창작 초심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후인들로 하여금 역사에 보답하게 하라.

역사로 하여금 미래를 말하게 하라.

 

1999128

중국 가흥 월수리에서 저자

출처 : [선월]

 

2. 책머리에

 

황아주 (黃亞洲) 중국 작가

 

하련생(夏輩生)이 가흥의 남호에서부터 몰고 온 이 배에는 아주 무거운 것이 실려 있음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다.

남호는 배가 출발한 지점이다. 나는 건륭황제의 용선(龍船)이 여덟 차례나 남호를 유람했으며, 더구나 여섯 번이나 남호의 연우루(烟雨樓)에 머물렀던 것을 말하지 않겠다. 19218월초 유명한 아름다운 배가 남호 수면 위에서 의연하게 커다란 노로 중국역사를 다시 썼던 일을 말하지 않겠다. 나는 또 그 아름다운 배가 지나간 지 14년 후에 한국 임시정부의 수뇌들이 남호의 수면 위에 비밀스럽게 배를 몰아, 배 위에서 광복의 노선을 어디로 몰아갈지를 고심하고 토론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겠다. 나는 다만 하련생이 금세기 마지막 해에 남호에서 몰아온 이 문학이라는 가벼운 배의 그 우미한 자태, 그 유연한 모습이 우리를 얼마나 놀랍고도 기쁘게 했는지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가벼운 배라고는 말했지만 그 무게는 너무나 기초가 튼실하며 묵직한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이 묵직함의 근원을 따져보면 약 3년 전 항주 서자호반의 어느 오후부터 천천히 빚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련생은 그날 가흥에서 총총망망히 왔는데 그것은 마치 남호에서 가져온 작은 노가 결국은 서호 물 전체를 휘젓게 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1921년 남호의 그 저명한 배를 묘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국부(國父)이신 김구선생이 가흥지역에서 피난생활을 하며 역사와 맞서 투쟁했던 정황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소설이 될 새싹을 틔울 마음은 없었다. 하련생은 그날 오후 내내 흥분하여서 자신의 피가 끓어올라 물결치어 감동케 하는 것은 오로지 남호의 잔잔한 물결뿐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와 고봉(高條)그리고 하련생 셋은 이리하여 손을 잡고 김구선생 및 모든 한국 혁명지사들의 진지한 열성에 대해 20회 분량의 텔레비전 연속극 극본 김구를 썼었다. 그런데 이 연속극을 촬영하는 동안 하련생은 또 그녀의 세밀한 문학적인 필치로장편소설의 양식으로, 다시 한 번 부드럽고 유연하게 이 일련의 감동적인 역사를 묘사해 낸 것이다.

이런 집착은 나를 감동시켰다. 그녀의 창작은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소산이라고 하였다.

정말 그렇다.

그녀가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은 단지 그녀가 오랫동안 남호의 호반에서 생활하고 일을 했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 일단의 멀고도 침울했던 남호의 풍운시기가 그녀의 마음의 문을 격동시켰던 것이다. 또한 그녀의 큰형부가 한국지사의 후예로 그 가족의 정이 더욱 그녀로 하여금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서 거부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녀가 거부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은 한국혁명지사들이 빚어낸 이 세월이 몹시 중요한 역사적 함의를 담고 있으며, 이 일단의 그냥 홀려버릴 수 없는 엄숙함과 신성함은 창작으로 일생을 추구하는 중국 작가를 몹시도 격동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책임감과 사명감이다. 사명이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인데, 작가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하련생은 책임감이 강한 작가다. 우리는 중국 아동문학의 수상자 명단에서 여러 번 그녀의 이름을 보았다. 이 소설 속에서 우리는 또 그녀가 아동 문학작품에서 중대한 역사를 제재로 한 문학작품으로 도약했음을 기뻐한다.

그녀의 성공적인 이번 도약은 우리가 가졌던 느낌을 실증하는 것이니즉 우리 절강성 작가협회는 정중히 그를 계약작가로 초빙하였고 그녀의 창작계획을 중점 육성하였던 것은 정확하고 적확한 판단이었다.

하련생으로 볼 때 어쩌면 이것은 문학상의 도약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면 어린이와 같은 행복은 본래 어떠한 민족이라도 자신이 종사하는 혁명의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동문학 창작에서 추구한 미적 감각과 중대한 제재 속에서 탐구한 역사적 미는 본질적으로는 일치하는 것이다.

이 작품을 다 읽고 난 후 내가 얻은 미적인 감각 역시 농후한 것이었다. 김구선생의 민족해방사업에 대한 필생의 추구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느꼈으며, 한국 혁명지사의 헌신을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느꼈고 작가의 이 모든 것에 대한 서술과 묘사 속에서 또한 나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아름다움의 근원은 역시 절강 가흥 남호다. 남호와 연결된 모든 맑고 깨끗하고 빛나는 역사는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배, 그 배도 영원할 것이다.

 

19997월 항주(抗州)에서 

출처 : [선월]

 

3. 목차

 

한국어판 서문 5

책머리에 | 황아주 7

1장 새가 물어온 운명의 점괘 15

2장 초여름밤의 첫번째 벼락 62

3장 하늘에 반짝이는 별 117

4장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인 168

5장 발자국 속에 피어난 꽃송이 219

6장 전화위복의 북두칠성을 찾아 279

7장 빙설로얼어붙은나날 341

8장 비 오는 아침의 만남 401

9장 나룻배의 눈물은 강물로 흐르고 466

10장 부서지는달빛 529

후일담 I 무궁화가 활짝 필 때 589

작가의 말 591

역자후기 595

출처 : 본문 중에서

 

4. 책속으로

 

주요등장인물

김구 (金九) 중국 가명 (장쩐치우). 왕사장으로도 불림.

주아이빠오 (朱愛寶) 처녀 뱃사공. 김구를 사모함.

추씨댁 (始氏 ) 추푸청 집안

추푸청 (格輪成) 가흥 유지. 추어르신으로도 불림. 상해 법과대학 총장.

김구의 도피생활을 적극 도와줌

션슈잉 추푸청의 아내. 큰마님으로도 불림

추펑장 추푸청의 장남. 큰도련님으로도 불림.

주자뤠이 (朱佳器) 추평장의 아내. 추씨댁 아씨로도 불림.

주씨댁 주쟈퀘이의 친정.

주노파 (朱老裝) 아이빠오의 어머니. 추씨댁 부엌에서 일함.

아꿰이 추푸청 집안의 요리사. 아이빠오를 짝사랑함.

아병 추푸청 집안의 인력거꾼.

천씨덕 천퉁셩 집안

천퉁성 추푸청의 양아들. 김구의 도피생활을 도와줌.

쉬슈성 (許秀生) 천퉁성의 아내.

꿔천 천퉁성의 큰아들

꿔워 천퉁성의 작은아들.

꿰이롱 천퉁성의 양아들.

냥냥친마 꿰이롱의 외할머니.

메이즈 아이빠오의 여동생. 본명 아이쥔.

벙어리 본명 라오민 아이빠오를 짝사랑함.

란화 아주머니 쫑즈 가게 주인

샤즈충 (俊子史) 란화아주머니의 아들. 바보.

아시앙 아이빠오의 친구. 젊은 과부. 쫑즈를 만들어 팜.

시아오쑨즈 (小順子) 약국 약사. 메이즈와 결혼함.

시아오싼즈 (小三子) 아이빠오의 동네 친구.

쓰꾸냥 아이빠오의 친구. 물고기를 팜.

야마다 (山田) 김구를 추적하는 일본 순사.

라이꺼우즈 (韻街子) 골동품 장수. 일본 경찰의 첩자.

 

어쩌면 이 세상에 글자도 모르는 여인이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경험을 일기로 써놓았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무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읽을 수 없는 일기다.

일기는 처녀뱃사공이 들고 있는 노로 흐르는 물 속에 쓴 것이다. 이 물은 대운하를 따라 유유히 흐르고 흘러…… 지금까지 이미 반세기 동안을 흐르고 있다.

물 속에는 작은 범선이 있고, 그리고 배와 같은 둥그런 달님이 있다.

배와 달서로 함께 있으면서도 o}무런 말이 없다.

도장으로 아니면 날짜도장으로 물결마다 마다 자신의 진정을 써서 가득한 물 속에 찍었던 것이다. 이 물은 깊고도 0}득하게 밤낮으로 멈추지 않고 흐르고 또 흐른다.

물결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알고 있을까?

그렇다. 물결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알고 있다.

결국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읽을 수 있으며또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곁으로 흐르지 않겠는가? (p13)

 

1장 새가 물어온 운명의 점괘

운명이라는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저 점치는 새가 물어오는 점괘같은 것이 아닐까?

내가 어머니 아버지를 알아보기도 전에 나의 운명은 이미 길고 검은 부리의 점치는 새가 물어 온 그 점괘 위에 그려져 있던 달님과 작은 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느 날 나는 이 점괘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아주 어렸을 때인데 벙어리가 경영하는 찻집에서였다. 나는 직접 어떤 소경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점쳐주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가 우야땅이란 곳의 빤따오 굴에 사는 작은 신선이라고 불렀다. 그는 정말 신이었다.

그가 손 안에 움켜 쥔 종이 점괘에는 본래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고 뒷면에는 푸른 색의 팔괘도만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입 속으로 뭔가를 중얼대며 뾰족한 부리를 가진 새에게 쌀 몇 알을 먹이면, 그 새는 소경이 높이 치켜 든 종이점괘를 세 번 돌고 나서는 그림이 그려진 패를 물어오는 것이었다. 신선은 종이점괘에 그려진 그림을 쓰다듬으며 끊임없이 뭐라고 중얼거린다. 뭐라고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저 듣고 있던 사람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맞아라고 하면서 기꺼이 동전을 꺼내어 사례를 하는 것만 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차탁자보다도 키가 작았다.

내가 흥미를 느낀 것은 소경신선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작은 새였다. 그 새는 예쁘지는 않았지만 무척 총명하였다. 소경신선이 끊임없이 중얼대는 틈을 타서 나는 몰래 쌀 몇 알을 새에게 먹이고 물도 주었다. 작은 새는 파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나를 보고 웃었다. 정말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 웃는 게 어찌나 신비스럽던지… … 그리곤 옆에 놓아 둔 종이패 안에서 한 장을 꺼내다가 나에게 주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받기도 전에 소경은 점괘를 낚아챘다. 순간이지만 나는 거기에 배와 달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소경은 종이 점괘를 만지작거리며 아가씨는 우연히 귀인을 만날 운명인데, 그렇지만… … 이상한 탄식이 목구멍에서 끓어 나오면서 그의 말을 가로 막아버렸다.

나는 정말이지 장님이 어떻게 내가 아가씨인 것을 알았을까 궁금하였다. 설마하니 종이패를 낚아채 갈 때 내가 늘어뜨린 댕기라도 만졌단 말인가? (중략—〈물 위에 쓴 일기중에서 (p15)

 

5장 발자국 속에 피어난 꽃송이

꿈은 자주 혼란스러워졌다.

달은 늘 잿빛 먹구름에 덮여 있었고, 배는 몹시 흔들렸다.

바람결에 휩싸여 들오리가 산마루에서 한 무리씩 날아가는 소리, 조심하지 않아 그물에 걸려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이 소리를 들으면 나는 두려워진다.

 

깨어나라, 늘 온몸은 식은땀에 젖고 … …

깨어 있어 정말 좋구나!

깨어 있어 맑은 햇살 아래서 그 얼굴을 볼 수 있구나.

네가 마주하여 확실하게 보기 어려운 그 얼굴. 그러나 그가 홀로 무언가를 생

각할 때, 나는 얼굴 가득히 쓰여진 이야기를 자세히 살핀 적이 있다.

나는 무척이나 이 이야기를 읽어내려 했고, 그 뒤 그 이야기를 한 땀 한 땀 구두밑창에 누벼서 어떤 꽃이 피어날까 보고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가 이런 이야기를 읽어내기도 전에, 그가 먼저 내 작은 종이점괘를 읽어버렸다.

응과정(魔棄頂)의 운주암(雲軸座) 점괘는 무척 영험하다. 내가 점괘를 뽑았는데 거기에는 글자가 빼곡이 쓰여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점괘를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점괘를 풀이할 줄 아는 늙은 비구니를 찾아가 묻고 싶었지만, 그가 가로막았다.

그가 손아귀에 작은 종이점괘를 감추었으니, 그 점괘를 읽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물 위에 쓴 일기중에서 (p219)

 

무슨 일인데요?” 아이빠오는 정면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흥분한 기색이 얼음이 된 것처럼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그는 죽었어요. ” 눈물 가득한 음성 이 노인의 장작처럼 마른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뭐라고요? 지금 그가 죽었다고 했어요?” 아이빠오는 펄쩍 뛰며 그에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 마세요! 그 사람은 죽지 않았어요! 어젯밤에도 그가 꿈속에 나왔단 말이에요. 그 사람은 달빛 아래 서 있었어요. 그는 웃고 있었단 말이에요!”

노인은 눈물을 빗물처럼 쏟으며 말했다. “아가씨, 내가 이 사실을 말하면 아가씨가 매우 괴로워할 거라는 것을 알아요. 그렇지만 이건 진짜요. 그는 귀국한 다음에 암살당했소. 바로 올해 여름에 말이오.”

믿을 수 없어요! 믿을 수 없어요!” 아이빠오는 갑자기 폭발한 것처럼 손을 마구 휘저으며 발을 마구 구르며 가세요! 가요! 여기서 거짓말하지 세요! 그는 죽지 않아요! 죽지 않아요! 영원히 죽지 않아요!”라고 소리쳤다.

노인은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갑자기 엄청난 힘으로 밀어내자 배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쩔 도리 없이 노인은 신발상자를 등에 메고 절룩절룩 걸어갔다. 멀리 걸 어간 후에도 그는 그녀가 배 위에 꿇어앉아 하늘과 땅이 진동하도록 우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난 믿을 수 없어 ! 그는 죽지 않아! 영원히 죽지 않아!”

마치 온 하늘 가득 춤추는 나비처럼 눈꽃이 다시 소리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p588)

 

후일담 무궁화가 활짝 필 때

햇빛은 대운하의 물비늘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금빛 파도 속에서 작은 배가 흘러가고 있었다.

뱃머리에는 낡은 남색 옷을 입은 여인이 꿇어앉아 있었다.

그녀는 정성을 다해 빗질을 하여 머리 한 올 삐져나오지 않게 곱게 뒤로 말아올렸다. 말아올린 머리 위에는 비취로 장식한 비녀가 꽂혀 있었고, 가운데가 끊어진 반쪽 옥팔찌가 꽃혀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 반쪽 옥팔찌는 마치 밝은 달과 같았다. 그리고 비스듬히 꽃힌 은비녀는 마치 달배의 노처럼 보였다! 옷깃에는 포도 모양의 단추가 잘 여며져 있었다. 잘 기운 소매의 팔꿈치와 이미 횐색으로 바랜 작은 꽃무늬가 수놓인 옷은 그녀의 그리 풍만하다 할 수 없는 가슴 위에서 깨끗한 하늘처럼, 작은 횐색꽃이 가득 피어난 푸른 풀밭처럼 자연스럽고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 눈물 자국도 없었고, 더 이상 가슴 아픈 표정도 보이지 않았으며, 더 이상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눈꽃이 자유롭게 휘날렸다. 마치 꽃을 찾아 다니는 나비처럼 가벼이 그녀의 머리 위에, 얼굴 위에, 어깨 위에, 등 위에. 그리고 발 디딜 땅 위 그 어디든지 쌓였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평온한 얼굴로 무언가 하고 있었다. 눈 속엔 미소를 머금은 채.

그 미소는 햇빛과 물빛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그녀는 선실 속에 있던 신발들을 모두 꺼내어 커다란 눈으로 보고 또 보더니 한 짝씩 한 짝씩 물 속에 던져 넣었다. 그녀 마음 속의 작은 배가 태양이 떠오르는 곳으로 홀러가도록, 마치 커다란 배가 사람 인자 모양을 그리며 떠가듯이 이상적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도록. ‘작은 배들은 금빛으로 빛나는 물 위에 차츰차츰 발자국을 그리며 송이송이 선명한 붉은 꽃으로 피어났다.

햇빛이 매우 눈부셨다.

발자국 속에 핀 꽃송이들은 정말로 붉디붉었다!

그녀가 최후의 작은 배를 강 위로 띄웠을 때 흩날리는 눈꽃은 이미 그녀의 온 몸을 덮어 마치 눈사람처럼 만들었다. 이때서야 그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꽃을 알아본 것처럼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두 손을 벌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하얀 눈송이들을 받았다.

그녀의 눈 속에 비추던 미소도 이미 사그라졌다.

달빛도 부서졌어? 맞아, 부서졌어, 부서졌어……정말로 달도 부서졌어!”

그녀는 이렇게 반복하여 물어보고 또 반복하여 대답했다. 정말로 달빛은 부서졌다고!

하늘에 있는 것, 물 속에 있는 것 모두 그녀의 마음 속에서 부서져 사그러 들었다.

하늘을 온통 뒤덮으며 내리는 차가운 눈으로 부서져 내렸다. 그녀는 자기의 손바닥도, 자신의 작은 배도 너무 작아서 부서져 내리는 달조각들을 모두 받을 수가 없음을 알았다. 그녀는 손을 벌렸다. ‘달조각들은 분분히 강 속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눈빛이 이 횐 조각들을 따라 흔들리면서 갑자기 입가에 미소를 띠더니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그녀는 금빛으로 빛나는 물결 속에서 마치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처럼 깡충깡충 뛰었다. 무성한 숲 사이로 나무 가지가지마다 모두 금빛이었고 그 위에는 선홍빛 꽃들이 피어있었다. , 그것은 그녀가 매일 밤 생각하곤 했던 무궁화였다! 꽃봉오리 속에서 모자를 쓰고 장삼을 입은 남자가 웃으면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가까이, 더 가까이…….

, 장선생님!

그녀는 마음 속에서 기쁘게 소리쳤다. “나는 당신이 돌아올 줄 알았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대가 나를 위해 평생 배를 저어주겠다고 했었잖소.”

그녀는 나는 듯이 앞으로 달려갔다… ….

무궁화가 활짝 피었다.

달은 천천히 떠올랐다. 둥글고 밝고 크게 ! (p589)

출처 : 본문 중에서

 

5. 작가의 말

 

시간의 수레바퀴가 벌써 반세기나 돌았다.

1980년대 말 나이가 칠순에 가까운 한국의 삼성장군 김신은 부친이 남긴 보은의 유언과 이미 출판된백범일지를 들고 여러 번 가흥을 방문해서 추푸청 선생의 후손과 주아이빠오의 뒷소식을 찾아보았다.

특별한 인연으로 나는 기자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먼지 쌓인 지난날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여정에 동참하였다. 김신선생의 근 10년에 걸친 노력으로 한국정부는 추푸청선생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였고, 그 기념식은 가흥에서 정식으로 거행되었다.

김신선생은 또 이미 강서성(江西省) 남창(南昌)으로 이주한 천퉁성의 아들 천꿔천과 아직도 가흥 엄가빈에 살고 있는 흉터쟁이쑨꿰이롱도 만나보았다. 그는 매번 방문할 때마다 아버지가 책 속에 나를 근 5년 간 돌봐주는 동안 그녀와 나는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저절로 부부와 같은 감정이 생겨났다고 한 처녀뱃사공바로 주아이빠오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뒷소식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나는 삼탑만의 달빛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가 위에서 처녀뱃사공이 물 위에서 쓴 일기를 읽게 되었다. 그래서 세월 속에 깊숙이 묻혀 있던 이야기를 이렇게 건져내었다.

 

이 책을 다 쓰고 난 뒤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세상에는 하늘에서 정한 거

부할 수 없는 수많은 운명이 있다는 것을.

내가 어렸을 때 큰언니가 군대에서 우리 여섯 형제자매의 형부를 선택한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우리들이 20년 동안 큰오빠로 부르던 형부가 갑자기 80년대의 어느 날 자신은 한국인이며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했던 것도 역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심지어 형부가 오랫동안 감추었던 자신의 신세를 얘기하게 된 것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 때문이었다형부의 부친과 백부는 모두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선생을 따라 항일 광복운동과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혁명지사였으며, 임시정부가 중국에서 유랑했던 시기에 부친이 병이 나서 중국에서 돌아가시자, 자신은 남경의 고아원에서 자란 고아라고 했다.

1987년 형부가 귀국하여 한국정부가 그의 부모에게 내린 건국훈장을 받은 후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가게 됐을 때 나의 언니를 데려간 것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계속해서 앞서 일어났던 일들과 그 뒤에 벌어졌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더욱더 거부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바로 이미 반세기 이전에 김구선생이 가흥에 맺어놓은 풀 수 없는 인연이다. 이는 내가 우리 형부를 알기 20여 년도 전의 일이다. 그리고 형부의 부탁을 받아 나는 1989년서부터 김구선생의 아들을 안내하게 되었다바로 일찍이 한국 공군참모총장, 교통부장관, 국회의원과 독립운동기념관 이사장을 맡았던 삼성장군 김신선생이 가흥에 수차례 방문했었다. 따라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은 방문에 동행할 때마다 매번 나에게 감동을 선사하였던 것이다.

감동은 바로 나에게 힘을 주는 원천이었다.

나는 여러 번 역사를 들추어보았다. 그리고 고희의 노인이 물방울과 같은 은혜라도 마땅히 바다처럼 갚으려는마음속 깊은 정성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그 후 역사의 단층 밑에 깊이 묻혀 있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끌어낼 때마다, 이미 한 작가 내심의 진동은 창작의 충동을 야기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상, 감정, 이념, 깨달음 등을 이미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응결시켜놓았다.

분명히 이것은 매우 무거운 역사소설의 소재였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의 글 솜씨를 생각해보았다. 이전에 나는 보고문학과 아동문학, 텔레비전 드라마 등을 써서 이미 10여 권의 책을 내었지만, ‘소설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문외한이었으므로 끊임없이 망설여졌다. 그래서 쓰는 것쓰지 않는 것그리고 써야만 하는 것사이에서 나는 오랜 시간 망설였다.

나는 망각의 방법을 택하여 그냥 놔두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놔두어도 없어지기는커녕 도리어 마음속의 부담감이 날로 커져만 갔다. 이 이야기가 마음속에 이미 깊이 박혀있는지라 그것을 도저히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도망갈 방법을 모색했다. 2년 전 절강성의 장편소설 창작계획회의에서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이 소재를 선택할 것을 추천하였고 무상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주겠다고 제의하였다. 그때의 생각으로는 더욱 현명하고, 더욱 진지하고, 더욱 능숙한 소설가가 이 소재를 발굴하여 창작해주기를 바랐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처럼 무거운 역사제재를 내 첫 번째 장편소설의 소재로 삼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변함없이 진실한 내 친구는 무정하게도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넣었다. 친구의 진실 어린 격려와 올바른 지적은 마치 커다란 강물이 내가 도망갈 출로를 차단하는 것 같았다. 격려와 기대로 거의 불타고 있는 듯 한 두 눈을 바라보면서 나는 고개를 젓거나 혹은 내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게라고 말할 만한 용기 마저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결국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된 것 이다.

아마도 이러한 막다른 골목 때문에 나는 온몸을 다해 바로 역사 속으로, 이야기 속으로, 살아 있는 인물들의 인연의 실타래 속으로, 그리고 무한한 비참함과 끝없는 비장미가 담긴 비극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걸음씩 따라가다보면, 충만하게 차오른 감정은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는 기묘한 시공간으로 멈추지 않고 나를 이끌어갔다. 나는 이건 분명히 소설의 시공간인데 하고 생각했다. 이 시공간 속에서 나는 내가 누군지 잊어 버렸고, 무얼 하고 있는지도 잊어버렸다. 나는 다만 이 시공간의 분위기 속에 충만히 젖어들었고 이 인물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서 호흡하였다.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이들의 호흡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고,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이 몇십만 자의 소설은 단숨에 완성되었다.

결국 내가 느낀 것은 소설창작도 다른 문학창작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특수한 의미의 광합성작용을 거친다는 사실이다. 이번 광합성작용에서 산소는 바로 내가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요인들이었다.

따라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저 감사드릴 뿐이라는 것이다.

역사가 나에게 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감사드린다!

친구가 나에게 준 거부할 수 없는 믿음과 지원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나에게 준 거부할 수 없는 커다란 사랑에도 감사드린다!

19995

절강 가흥 월수리에서 (p591)

 

역자 후기

이 소설은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과 중국인 처녀뱃사공 주아이빠오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이다. 일생을 민족의 자주 독립을 위해 헌신한 김구 선생에게 사랑이란 단어는 어쩌면 어울릴 것 같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일경의 눈을 속이기 위해 시작한 험난한 피신생활 속에서 5년 간의 부부행세는 인간 김구에게 한 여인과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인간적인 모든 것을 상상하며 가정해 볼 수 있는 것이 소설의 특권이리라.

이 소설은 1932429일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폭발 후 김구 선생이 일본의 체포령을 피해 절강(所江) 가흥(_ 지역에서 피신하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백범일지>에도피신과 유랑의 나날폭격 속의 남경생활이라는 제목으로 그때의 상황이 간단히 묘사되어 있는데이 사실을 골격으로 하여 작가는 장편소설로 재구성하였다.

작가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김구 선생의 경호인으로 활동하여 뒤늦은 1987년 한국정 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은 사람의 아들이 바로 작가의 형부이다. 이 형부로부터 맺어진 김구 선생과의 인연으로1989년 이후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장군이 가흥을 방문할 때 작가가 여러 차례 동행하게 된다. 이러한 만남과 인연을 통해 역사적 이야기가 하나의 소설로 탄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소설의 각 장() 첫부분에는 글을 모르는 주아이빠오가 강물에 노로 쓴 허구의 일기인물 위에 쓴 일기가 제시되어 앞으로 전개될 내용의 단서와 복선을 암시해주고 있다. 소설 곳곳에 자주 점패를 등장시켜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을 나타내고또 김구 선생의 회상을 통하여 독립운동가로서 고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소설 전체에는 김구 선생의 긴박한 피신생활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번역하면서 작가가 김구 선생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한 점을 엿볼 수 있었으며역자들 역시 이러한 부분을 고려하여 번역하는 데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이 작품은 중국인의 시선으로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으며, 역사의 격동기를 살아나간 한 시대 인간들의 모습이 세밀화처럼 묘사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할 것이다. 다만 독자 여러분들께서 이 작품이 소설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가흥 지방의 특수한 지리적 환경과 선상생활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번역하여 아쉬우며, 미흡한 부분에 대해선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질정을 바란다.

촉박한 시간 가운데 꼼꼼하게 교정을 담당해주신 편집부와 번역의 기회를 만들어 주신 윤형두 사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199912

역자 일동

(p595)

출처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