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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추천 도서(19.3~20.2)

12월의 추천도서(2492) 윈스턴 S. 처칠

1. 저자

 

저자 : 강성학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에서 2년간 강사를 하다가 미 국무부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생으로 도미하여 노던 일리노이 대학교(North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1981년 3월부터 모교의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평화연구소 소장, 교무처장 그리고 정책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자는 1986년 영국 외무부(The British Foreign and Commonwealth Office)의 펠로우십(Fellowship)을 받아 런던정치경제대학(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의 객원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1997년에는 일본 외무성의 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의 펠로우십을 받아 도쿄대학의 동양문화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 그리고 2005년 말과 2006년 봄학기에는 일본 와세다 대학의 교환교수를 역임하였으며, 2017년부터 2019년 봄학기까지 극동대학교 석좌교수였다. 또한 제9대 한국 풀브라이트 동문회 회장 및 한국의 영국정부장학수혜자 모임인 한국 셰브닝 동창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동안 한국국제정치학회 상임이사 및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유엔체제학회(KACUNS)의 설립 사무총장과 제2대 회장을 역임하였고 이것의 모태인 미국의 유엔체제학회(ACUNS)의 이사로 활동하였다.


저서로는 2011년 영국에서 출간한 영문저서 《Korea’s Foreign Policy Dilemmas: Defining State Security and the Goal of National Unification》(425쪽. 2017년 중국 사회과학원 출판사가 번역 출간함)을 비롯하여 1995년 제1회 한국국제정치학회 저술상을 수상한 《카멜레온과 시지프스: 변천하는 국제질서와 한국의 안보》(688쪽)와 미국의 저명한 외교전문지인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 그 서평이 실린 데 이어 1999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한 《이아고와 카산드라: 항공력 시대의 미국과 한국》(807쪽) 등이 있다. 이 외의 저서로는 그의 최대 야심작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러일전쟁의 외교와 군사전략》(781쪽) 및 《소크라테스와 시이저: 정의, 평화, 그리고 권력》(304쪽), 또 한동안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던 《새우와 고래싸움: 한민족과 국제정치》(402쪽)가 있다. 또한 2007년 대한민국 학술원의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인간神과 평화의 바벨탑: 국제정치의 원칙과 평화를 위한 세계헌정질서의 모색》(756쪽), 《전쟁神과 군사전략: 군사전략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논문선집》(446쪽, 2014년 일본에서 번역 출간됨), 《평화神과 유엔 사무총장: 국제평화를 위한 리더십의 비극》(328쪽, 2015년 중국에서 번역 출간됨), 《무지개와 부엉이: 국제정치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논문선집》(994쪽)을 비롯하여 지난 33년 간의 교수생활 동안에 총 33권(본서의 말미 저서 목록을 참조)에 달하는 저서, 편저서, 역서를 냈다. 저자는 한국 국제정치학자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연구주제인 “전쟁”, “평화”, “한국외교통일” 문제들에 관한 각기 집중적 연구결과로 볼 수 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인간神과 평화의 바벨탑》 그리고 《카멜레온과 시지프스》라는 3권의 저서를 자신의 대표적 “학술저서 3부작”으로 꼽고 있다. 아울러 2013년 《평화神과 유엔 사무총장》의 출간으로 “인간神”, “전쟁神”, “평화神”이라는 일종의 “神”의 3위일체를 이루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서 그리고 한국지정학연구원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활동의 일환으로 그는 나라와 문명을 위기에서 구한 역사적으로 위대한 정치지도자들(윈스턴 처칠 등)의 리더십을 논의하는 셋토네(매월 셋째 주 토요일 4시) 심포지엄을 주관하고 있다.

출처 : 교보문고

 

2. 책속으로

 

[저자 서문]
“선했건 악했건, 20세기의 모든 거대한 인물들 가운데 처칠이 인류에게 가장 소중했고 또 가장 호감 가는 인물이다.”
- 폴 존슨(Paul Johnson)

1965년 1월 25일 윈스턴 처칠(Winston S. Churchill)의 서거 다음 날 정치철학자 리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가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자신의 강의시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칠의 죽음은 정치학도들에게 자신들의 한계, 자신들이 하는 일의 한계를 건전하게 상기시킨다. 폭군은 자기 권력의 정상에 서있다. 꿋꿋하고 장엄한 정치가와 미친 폭군 간의 대조, 즉 가장 간결한 이 장관(spectacle)이야 말로 인간들이 언제든지 배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교훈들 가운데 하나였다. 너무도 위대해서 비극이라고 부를 수 없는 처칠의 실패에 의해서 알게 되는 교훈도 못지 않게 계몽적이다. 히틀러에 대항한 인간의 자유를 위한 처칠의 영웅적 행동은 처칠의 잘못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탈린이나 그의 계승자들에 의해서 제기되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증대하는 데 기여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의미한다. 처칠은 그리스와 미주리 주의 플턴(Fulton)에서 공개적으로 그리고 가장 현저하게 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의 행동과 연설보다 전혀 덜 중요하지 않은 것은 그의 글쓰기, 특히 무엇보다도 그의 〈말보러〉(Marlborough)라는 작품이다. 이것은 우리의 세기에 쓰여진 가장 위대한 역사에 관한 작품이다. 이것은 모든 정치학도들에게 필독서가 되어야 할 정치적 지혜와 정치적 이해의 무진장한 광산이다.
처칠의 죽음은 우리 학문의 한계를 상기시키고 또 그와 함께 우리의 의무를 상기시킨다. 우리에게 우리 자신과 우리의 학생들에게 정치적 위대성, 인간적 위대성, 인간적 탁월성의 정점들을 상기시키는 것보다도 더 높고 또 더 절박한 의무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과 타인들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훈련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위대성과 비참함, 그들의 탁월성과 그들의 타락, 그들의 고결함과 그들의 승리, 그리고 그리하여 제아무리 현란해도 평범한 인물을 진정한 위대성으로 결코 착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처칠의 위대성에 관한 성격이 이런 언급보다 더 간결하게 서술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사회과학이 되어버린 현대 정치학은 처칠 같은 위대한 정치지도자에 관해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는다. 정치적 영웅들은 너무도 우연적인 것이라서 정치과학(Political Science)의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역사학에서도 위대한 영웅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맑시즘과 프랑스 아날학파(Annales School), 소위 민중사관의 헤게모니 하에서 인간 개인은 아무리 위대해도 보다 큰 사회적 패턴 속에 포함시켜 버리거나 아주 낮은 차원에서만 개인의 역할을 인정한다.
오늘날 몰가치적 사회과학의 폭군적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볼 때 “위대한 처칠의 연구”는 문제가 많은(?) 주관적 의견이며 편협한 가치 판단일 뿐이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은 대학 교육에서 처칠 같은 위대한 인물에 관해 배울 수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비록 “역사의 영웅”(the Great Man) 이론이 오늘날 심히 격하되었다고 할지라도 때로는 개인이 아주 중요하다. 처칠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고 또 생각하는 가에 대해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비록 그가 번영하는 자유주의의 서방세계를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야만적 나치즘으로부터 구원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대에 사람들은 일종의 종교적 메시아 같은 위대한 정치지도자, 정치적 영웅을 그리워하는 법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도 어려운 시대 속에서 영웅의 등장을 염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웅적 정치지도자의 출현이 거의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친숙한 정치지도자들은 일반적으로 영웅이 아니라 슈퍼스타(superstar)가 되기를 갈망한다. 슈퍼스타는 인정받으려고 애를 쓰는 반면에 영웅은 홀로 간다. 슈퍼스타는 합의를 열망한다. 그러나 영웅은 자기가 가져오는 것을 과업으로 보는 미래의 판단에 의해 자신을 정의한다. 슈퍼스타는 지지를 끌어내는 테크닉에서 성공을 추구하지만 영웅은 자신의 내적 가치들의 성장으로 성공을 모색한다.
그러므로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가 지적했듯이, 우리 시대는 윈스턴 처칠 같은 정치지도자를 마주치기가 어렵다. 널려 있는 슈퍼스타 같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영웅적 정치지도자를 만나려면 역사 속으로 들어가 역사적으로 공인된 영웅인 처칠을 찾아가야만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매우 뛰어난 천재는 이미 난 길을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천재는 새로운 개척자이다. 그러나 영웅은 남들이 늘 하는 일을 아주 탁월하게 해내는 인물이다. 정치지도자가 늘 행하고 또 해내야 할 일은 모든 정치지도자가 직면하는 보편적인 과업이다. 그래서 천재에겐 스승이 없지만 영웅에겐 스승이 있다. 처칠은 우리에게 바로 그런 스승이 될 수 있다. 본서는 바로 그런 마음으로 작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본서의 주인공인 위대한 정치가 처칠을 통해 한국인들의 영웅에 대한 갈증이 간접적으로 어느 정도 해소되길 기대한다.
1919년 6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종결짓는 베르사이유 조약(the Treaty of Versailles)의 서명을 세계가 기록하던 바로 그날 전후세계에 대한 염려와 소련식 볼셰비즘의 성장을 두려워한 윈스턴 처칠은 러시아의 내전에서 차르 지지자들인 백색군대(the white army)를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의 북방에 영국, 미국 그리고 일본의 군대들을 착륙시키는 동맹의 작전을 역설했다. 처칠은 베르사이유 조약을 ‘기이하고 괴물같다’고 부르면서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독일을 너무 지나치게 약화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칠은 볼셰비키들이 해체된 독일을 차지하려고 투쟁하면서 유럽에 치명적 힘의 진공상태를 남기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볼셰비즘이 그것의 “요람에서 질식되는 걸” 보고 싶어했던 처칠은 베르사이유 조약을 전후 세계를 재창조할 잃어버린 기회로 보았다.
처칠은 1930년대 초부터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정치운동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는 히틀러와 나치즘이 잠재하고 있는 위험성을 보았다. 그리고 1933년 처칠은 다가오는 위험을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한 첫 번째 정치가였다. 1934년 2월 7일 처칠은 1920년대의 예산삭감으로 크게 축소되었던 영국 공군의 재건을 홀로 외롭게 역설했다. 같은 해 처칠은 국제연맹의 갱신을 촉구했다. 그러나 히틀러에 대한 처칠의 경고는 대체로 무시되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에 여전히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하여 영국은 나치스의 군사적 행진을 방관했고 처칠의 지각 있는 경고를 무시해버렸다. 처칠은 이 1930년대의 시기를 황야에서 헤매던 시기, 즉 황야에서 외로운 늑대처럼 홀로 울부짖던 시절로 묘사했다.
당시 영국에서 그는 유일하게 통찰력 있는 예언자였지만 트로이의 비극적 카산드라처럼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영국인들은 1938년에 출간된 처칠 연설문집의 제목(While England Slept)처럼 ‘환상적 평화의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잠자는 영국인들을 깨우고 방황하는 영국민들에게 그의 제2의 연설문집의 제목처럼 “피와 땀과 눈물”(Blood, Sweat and Tears)로 호소하여 히틀러와 단호히 맞서 히틀러와 나치스의 야만으로부터 서구문명과 민주주의를 구원한 처칠은 현대 리더십 연구의 선구자인 제임스 맥그리거 번즈(James MacGregger Burns)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소위 “변환적 리더십”(transforming leadership)의 화신이었다.
21세기의 문턱에서 영국 자유민주당(과거 노동당) 정치인이며 직업적 역사가인 로이 젠킨스(Roy Jenkins)는 8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처칠의 정치적 전기를 펴냈다. 그리고 그 두꺼운 전기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글래드스톤(Gladstone)이 작은 차이로 더 위대한 인간이고 분명히 인류의 보다 비범한 표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칠의 전기를 쓰는 과정에서 나는 내 마음을 바꾸었다. 그의 모든 특이성, 그의 탐닉, 그의 간헐적인 유치함뿐만 아니라 옳든 그르든, 성공적이든 비성공적이든 간에 그의 인생 보다도 더 큰 그의 천재성, 그의 고집과 그의 개인적 능력을 고려하여 이제 나는 처칠을 영국의 수상관저를 차지한 가장 위대한 인간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그러나 처칠은 단지 영국의 역사에서 최고의 정치지도자요 영웅으로 머물지 않았다. 지난 2003년에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6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19세기 이후 유럽 위인들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 윈스턴 처칠이 1위를 차지하였다. 이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서구문명과 자유민주주의를 야만으로부터 구원한 20세기 최고의 정치지도자이며 세계사적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처칠이 리더십을 발휘하던 시기에 국제사회에서 영국의 위상을 고려한다면 그는 이미 세계 최고의 정치지도자였으며 동시에 최고의 전쟁지도자였다. 그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소련의 스탈린 원수와 함께 히틀러의 나치즘과 일본의 군국주의와 싸워 승리를 거두었지만 소련과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윈스턴 처칠이 홀로 싸우며 견디어 낸 한참 후에, 즉 소련은 독일의 침략을 받고 난 후에 그리고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받은 후에, 그들에겐 무조건 수행할 수밖에 없는 전쟁을 치렀다.

출처 :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