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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추천 도서(19.3~20.2)

10월의 추천도서(2430)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1-와다 하루키

 

1. 책소개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비교하고 연구한 전쟁사학의 결정판!

러일전쟁에 관해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조사한 전쟁사학의 결정판 『러일전쟁』 제1권. 저자는 이 책에서 러일전쟁의 성격을 조선을 지배하고 정복하려 한 일본이 러시아와 맞닥뜨려 전쟁으로 몰아간 뒤 조선을 일본의 것으로 한다는 점을 러시아로 하여금 인정하게 한 전쟁이었다고 정의한다.

저자는 전쟁의 가장 큰 결과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말살하고, 조선 전역을 식민지 지배한 것이라고 밝힌다. 전쟁의 명칭은 ‘러일전쟁’이지만 전쟁의 본질은 조선을 차지하기 위한 ‘조선전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러일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을 샅샅이 훑으며, 이를 통해 10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따로 떼어 해석할 수 없으며 이 전쟁은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단일 범죄임을 밝혀낸다.

일본이 전쟁을 기획, 모의하고 마침내 실행하는 현장을 마치 동영상을 틀어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이제까지 밝혀진 것과 달리 러시아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제시하며, 일본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범죄였다는 증거를 장장 1,300여 쪽에 걸쳐 입증한다.

출처 : 교보문고

 

2. 저자

 

와다 하루키는 1938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한 후 1998년까지 도쿄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교수 및 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도쿄대학교 명예교수, 도호쿠대학교(東北大?) 동북아시아연구센터 방문교수다. 러시아사·소련사, 조선사·현대북한사 등 동북아국제관계사가 주요 연구분야다. 1974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민주화운동일본연대회의(韓國民主化運動日本連帶會議)와 연대위원회(連帶委員會)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아시아여성기금의발기인, 운영심의회위원, 이사, 전무이사,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2016년부터는 북일국교촉진국민협회(日朝?交促進國民協會)의 이사 및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니콜라이 러셀: 국경을 초월한 나로드니키』(1973),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1992), 『역사로서의 사회주의』(1994), 『한국전쟁』(1999), 『북조선』(2002),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2004), 『한일 100년사』(2015), 『동북아시아 영토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2013), 『북한 현대사』(2014), 『‘평화국가의 탄생: 전후 일본의 원점과 변용』(2015), 『스탈린 비판 1953-1956년』(2016),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2016),『러시아혁명, 페트로그라드 1917년 2월』(2018), 『아베 수상은 납치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2018) 등이 있다.

출처 : 교보문고

 

3. 목차

 

러일전쟁 1
기원과 개전

17 ㆍ 러일전쟁 주요 인물들
35 ㆍ 한국과 북한의 독자들에게 | 와다 하루키
39 ㆍ 와다 하루키 전쟁사학(戰爭史學)의 위용 | 이웅현

제1장 러일전쟁은 왜 일어났는가ㆍ
53 ㆍ 시바 료타로(司馬遼太ㆍ)의 견해
61 ㆍ 『고무라 외교사』(小村外交史)와 『기밀 일러전사』(機密日露ㆍ史)
63 ㆍ 비테의 『회고록』을 둘러싼 상황
69 ㆍ 전쟁 체험기의 산(山)
71 ㆍ 러시아군 공식 전사와 시만스키 조서(調書)
74 ㆍ 일본의 공식 전사와 비밀 전사
76 ㆍ 러시아 혁명 후의 연구
83 ㆍ 구미와 한국에서의 연구
86 ㆍ 일본의 연구
91 ㆍ 나의 러일전쟁 연구 역정(歷程)

 

(하략)

출처 : 본문 중에서

 

4. 책속으로

 

■ 민비 살해의 참극을 목격하고 증언을 남긴 러시아인이 있다. 세레진-사바친이다. 그는 1883년에 상하이에서 조선으로 임시 고용되어 온 외국인이었는데, 마지막에는 건축가로서 고종을 위해 일했다. 1888년에 왕과 왕비가 거주하는 건청궁 안에 2층짜리 양옥인 관문각(觀文閣)을 건축했다. 인천의 만국공원 안에 있는 제물포 클럽의 건축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신문 『달료키이 크라이』(Далёкий край)에 익명으로 조선으로부터의 통신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세레진-사바친은 건청궁 내의 국왕과 왕비의 거실로 통하는 문에 모여든 사람들 속에서 평복을 한 여러 명의 일본인을 보았다. 그들은 왔다 갔다 하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왕비의 거실이 있는 구내는 일본인들로 꽉 찼다. 20명 내지 25명 정도였다. 그들은 평복차림이었고, 칼도 지니고 있었다. 일부는 칼을 빼들고 있었다. 그들을 지휘하고 있던 것은 긴 칼을 지닌 일본인이었다. 아마 그들의 대장이었을 것이다. 일부 일본인들은 궁전 구석구석까지, 또 다른 건물 내부도 분주하게 찾고 있었다. 다른 자들은 왕비의 방에 난입해 거기 있던 궁녀들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고 창에서 끌어내 떨어트려서는 땅에 질질 끌고 가면서 무언가 추궁했다.” “나는 원래 장소에 머물면서, 일본인들이 왕비의 어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일본인이 한명의 궁녀를 잡아채어 집 안에서 끌어내 계단 아래로 질질 끌고 내려갔다.” 293-294쪽

■ 보가크는 1895년 이전 극동에 존재하는 유일한 주재 무관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가 관찰해야 하는 대상에는 청국, 일본, 조선이 포함되어 있었다. 톈진에서 그가 보낸 보고 가운데 최초로 공표된 것은 1893년 5월 28일(16일)자의 보고였다.
“현지에서 수취한 최초의 정보에 따르면 [동학농민] 운동은 주로 선교사 특히 미국인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최신 정보에 의하면 전혀 그렇지 않고, 조선의 쟁란은 훨씬 더 넓은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졌다. 문제의 소요는 이미 금년 초에 서울에서 감지되었다. 나중에 분명해진 바에 의하면 이는 동학당이라는 결사(結社)를 필두로 한 몇 개인가의 비밀결사의 소행이었다. 동학당은 불과 4, 50년 전에 창립되었을 뿐이지만, 회원은 이미 20만 명 가까이에 달한다.
보가크는 일본의 움직임에도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1880년대 중반에 조선을 병탄하려는 기세였지만 청국의 개입으로 톈진조약이 체결되어 일본의 움직임에는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 진출은 멈출 줄을 몰랐고, 이 분야에서 방곡령사건(防穀令事件)이 발생, 일본의 보상요구로 조?일 사이에는 긴장감이 팽배했다. 일본에서는 의회의 다수파와 유력 신문들 모두가 정부의 대 조선 정책이 저자세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조선에서 청국의 영향력을 일소하라고 요구하며, 러시아에 대해서는 “북쪽에서 밀고 내려와 조선 왕국을 병탄하려고 준비하는 허수아비이자적”이라고 보고 있다.
발생한 소요사건에 대해서 조선 정부는 “고도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탄압할 힘이 없기 때문에 청국의 리훙장에게 원조를 요청하고 있다. 보가크는 입수된 정보만으로는 아무것도 결론 지어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본질적으로 이 모든 사정은, 어느 정도
악화된다면 조선문제의 발생, 보다 정확히 말해서 조선문제의 재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그러한 종류의 일이라는 점만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가크의 분석은 선견지명을 보여주고 있었다. 1894년 초부터 동학농민운동은 본격화했고, 조선문제는 정말로 전 극동, 동북아시아의 초점이 되어갔다. 196-197쪽

출처 : 본문 중에서

 

5. 출판사서평

 

전쟁사학의 결정판

러일전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은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20세기 세계사의 대사건이었다. 대한제국은 전쟁 직후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받았고 그때부터 국권 침탈까지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일본에서는 제국주의 국민이 탄생했고 러시아에서는 혁명의 열기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간 러일전쟁에 관해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비교하고 연구한 책은 없었다.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이라 불리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의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는 러일전쟁에 관해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조사한 최초의 책으로 전쟁사학의 결정판이다.
와다는 러일전쟁의 성격을 ‘조선을 지배하고 정복하려 한’ 일본이 러시아와 맞닥뜨려 전쟁으로 ‘몰아간’ 뒤 “조선을 일본의 것으로 한다는 점을 러시아로 하여금 인정하게 한 전쟁이었다”(36쪽)라고 정의한다. 그는 전쟁의 가장 큰 결과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말살하고, 조선 전역을 식민지 지배한 것이다”라고 밝힌다. 전쟁의 명칭은 ‘러일전쟁’이지만 전쟁의 본질은 조선을 차지하기 위한 ‘조선전쟁’이라는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에게 보내는 준엄한
경고장이자 단죄의 논고(論告)

이 책을 읽은 한국과 북한의 여러분이 일본제국주의의 교묘한 행보에 관해서, 일본의 침략 때문에 망국의 위기에 떨어졌던 자국의 행보에 관해서 보다 깊이 생각해준다면 기쁘겠다._37쪽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는 각주를 2,402개나 넣을 만큼 사료를 철저하게 고증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재구성한 서사극(敍事劇)이다. ‘사건’ 중심의 서술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역사의 지류가 ‘어떻게’ 러일전쟁으로 흘러가게 되었는지 밝힌다. 러시아, 일본, 조선, 중국,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그리고 태국 등 9개국에서 700여 명에 이르는 인물이 등장해 사실 관계를 고증한다. 와다는 러일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을 샅샅이 훑는다. 이를 통해 10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따로 떼어 해석할 수 없으며 이 전쟁은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단일 범죄임을 밝혀낸다.
청일전쟁은 ‘제1차 조선전쟁’, 러일전쟁은 ‘제2차 조선전쟁’이었다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하는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1, 2는 이 두 차례의 조선전쟁이 한반도 비극의 출발점이 되었음을 명쾌하게 규명하면서, 비극의 서막을 연 역사 법정의 피고(被告)는 반성해야 한다고 준엄하게 질타한다.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는 일본이 전쟁을 기획, 모의하고 마침내 실행하는 현장을 마치 동영상을 틀어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이제까지 밝혀진 것과 달리 러시아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제시했고 일본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범죄였다는 증거를 장장 1,300여 쪽에 걸쳐 입증한다.

출처 :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