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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추천 도서(20.3~21.2)

9월의 추천도서(2748) 도덕의 궤적

1. 책소개

인류가 도덕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원동력은 세속적 힘, 바로 과학이다!

과학적 회의주의 잡지 《스켑틱》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과학의 전사를 자처해온 마이클 셔머가 밝혀낸 진화하는 도덕의 원리를 담은 『도덕의 궤적』. 현재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그 역사상 가장 도덕적으로 진보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도덕적 진보는 과학과 이성을 통해 이루어졌고, 앞으로 이를 통해 인류가 더 도덕적으로 진보한 세계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를 향한 권리, 여성의 권리, 성 소수자의 권리, 그리고 동물의 권리에 대한 간략한 역사를 살핀 뒤 인간의 본성과 도덕의 진화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이성, 합리성, 경험주의, 회의주의, 즉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모든 방법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도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저자 :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제이 굴드 등과 함께 과학의 최전선에서 사이비 과학, 창조론, 미신에 맞서 싸워온 대표적인 회의주의자이자 무신론자이다. 주로 과학적 회의주의의 관점에서 사이비 과학과 종교에 대한 비판적 연구와 활동을 한다. 1997년 과학주의 운동의 중심인 스켑틱소사이어티Skeptics Society를 설립하고, 회의주의 과학저널 《스켑틱skeptic》을 창간하여 현재까지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고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신학자가 되기 위해 페퍼다인대학교에서 기독교 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곧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꾸고, 통계학 강의를 들은 뒤 “과학 언어 중 하나를 습득했다”며 회의주의적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후 풀러턴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실험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과학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여 년 동안 옥시덴탈칼리지,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글렌데일칼리지에서 심리학, 진화론, 과학사를 가르쳤다. 현재 미국과학및건강위원회(ACSH)의 과학고문이며, 채프먼대학교의 겸임교수이자 프레이덴셜펠로우로 있다.
마이클 셔머는 활발한 강연 및 저술, 대중 매체 활동을 벌이며 사이비 주장을 펼치는 심령술사, 창조론자, 사이비 역사학자, 컬트 집단 들을 고발해왔다. 과학과 이성, 더 나아가 인류를 위협하는 세력들에 정면으로 맞서며 미국 사회뿐 아니라 세계에 회의주의적 시각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 온 그는 과학계의 전사라 할 수 있다.
《스켑틱》을 비롯해 다양한 잡지에 기사를 쓰거나 학술논문을 발표했으며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의 컬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주로 인간의 신앙과 행동의 진화에 관한 책을 10여 권 썼으며,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왜 다윈이 중요한가》, 《믿음의 탄생》, 《진화경제학》, 《과학의 변경지대》 등이 우리나라에 번역·출판되었다.

출처:교보문고

3. 목차

프롤로그

1부 과학, 도덕의 진보를 이끌다
1장 도덕과학을 향해
2장 전쟁, 테러, 억지의 도덕
3장 왜 과학과 이성이 도덕적 진보의 원동력인가
4장 왜 종교가 도덕적 진보의 근원이 아닌가

2부 세계, 과학과 더불어 진보하다
5장 노예제도와 자유의 도덕과학
6장 여성 권리의 도덕과학
7장 동성애자 권리의 도덕과학
8장 동물권의 도덕과학

3부 미래, 인류는 더 도덕적인 존재가 될 것인가?
9장 도덕적 퇴보와 악의 경로
10장 도덕적 자유와 책임
11장 도덕적 정의: 응보와 회복
12장 프로토피아: 도덕적 진보의 미래


참고문헌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나는 감응적 존재의 생존과 번성을 도덕을 논하는 출발점이자, 도덕이라는 체계를 세우는 근본 원리로 삼는다. 도덕은 과학과 이성에 기반을 둔 체계이고, 자연법칙과 인간 본성에 근간을 둔 원리들?실험실과 실제 세계에서 검증할 수 있는 원리들?에 기초한다. 따라서 내가 말하는 도덕적 진보란 감응적 존재의 더 나은 생존과 번성이다. _ 27쪽 1 도덕학을 향해

전쟁의 기원 및 원인과 관련해서도 우리의 사고를 흐리는 신화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은 태어날 때는 비교적 비폭력적이며, 국가 이전에는 사람들이 평화로웠고 타인들 혹은 환경과 비교적 조화롭게 살았다는 신화다. 하지만 여러 계통의 과학적 조사에서 나온 증거들을 종합하면, 인간의 선사시대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아무리 좋게 봐도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_ 136쪽 2 전쟁, 테러, 억지의 도덕

역사시대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선사시대 사회들도 폭력 발생률에서 큰 차이를 보였지만, 국가 이전 사회와 국가 사회에서 폭력적인 죽음을 맞을 확률을 통계적으로 비교하면 그 차이는 분명한 수준이 아니라 끔찍한 수준이다. 전투에서 도륙당하고 서로에게 살해당하는 비율의 측면에서 선사시대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훨씬 더 살인적이었다. …… 거대한 리바이어선이 군대의 숫자와 전쟁 사망자 수를 높게 끌어올릴 수 있다 해도 역사에서 한 개인이 생존하고 번성하기에 가장 안전한 시점을 골라야 한다면, 전쟁 사망률만 놓고 볼 때 현재보다 더 나은 시기는 없다. _ 140-143쪽 2 전쟁, 테러, 억지의 도덕

서양에서 과학은 마녀의 인과론이 허위임을 폭로했고, 그런 동시에 다른 미신적이고 종교적인 생각들을 계속해서 허물어뜨렸다. 우리가 여성들을 마녀로 낙인 찍어 불태우는 행위를 삼가는 이유는 정부가 그것을 금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마녀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따라서 마법을 이유로 누군가를 불태운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 도덕적 쟁점이었던 것은 과학과 이성에 기반을 둔 자연주의적 세계관에 의해 우리의 의식 밖으로, 그리고 양심 밖으로 밀려남으로써 이제는 쟁점 자체가 되지 않는다. _ 173쪽 3 왜 과학과 이성이 도덕적 진보의 원동력인가?

결국 무엇이 노예제도의 폐지를 초래했을까? 토머스에 따르면, “프랑스와 프랑스를 뒤따른 나라들에 ‘계몽주의’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사상과 감정의 거대한 물결은 (르네상스와 반대로) 노예제도에 적대적이었다. …… 도덕적 진보를 이루어내는 것은 무기의 힘보다는 생각의 힘이다. 노예제도 같은 개념은 조금씩 서서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좋은 일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일로, 거기서 다시 의심스러운 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로, 부도덕한 일로, 불법인 일로, 그리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에서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로 바뀐다. _ 304-305쪽 5 노예제도와 자유의 도덕과학

지난 몇 백 년 동안의 추세는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권리와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과학·기술·의학 분야에서 일어난 발견 및 발명은 정치, 경제, 사회적 진보를 가능하게 했고, 이로 인해 여성들은 생식에 대해 더 많은 자기 결정권과 통제권을 가지게 되었음은 물론 삶의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은 권리와 기회를 누리게 되었다. 이는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이끌어냈다. 다른 권리 혁명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미 탄력이 붙었으므로 여성의 권리는 앞으로도 거침없이 확장되어갈 것이다. _ 346쪽 6 여성 권리의 도덕과학

두고 보라. 백인 기독교인들은 과거에 그들이 박해한 집단들『여성, 유대인, 흑인』을 대하는 태도를 결국 바꾼 것처럼 몇 년 내, 길어도 10년 내에 게이와 레즈비언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것이다. 그것은 성경 구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와서도 아니고, 신에게 새로운 계시를 받아서도 아닐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억압받는 소수가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위해 싸우고 억압하는 다수 가운데 깬 사람들이 그 대의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러고 나면 기독교 교회들이 뒷북을 치며 동성애자들의 인권 해방이 자신들 덕인 양 행세할 것이다. _ 371쪽 7 동성애자 권리의 도덕과학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도덕적 세계의 궤적은 길지만 결국 정의를 향해 구부러진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마이클 셔머
진화하는 도덕의 원리를 밝혀내다!
“인류는 과학과 이성을 통해 도덕적으로 진보해왔으며,
앞으로 더 진보하게 될 것이다!”

베스트셀러《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의 저자이자 과학적 회의주의 잡지 〈스켑틱〉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과학의 전사를 자처해온 마이클 셔머는 《도덕의 궤적》에서 과학과 이성을 통해 인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왔고, 앞으로 더 도덕적으로 진보한 세계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성과 계몽의 시대 이후, 사상가들은 사회적·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식적으로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했다. 이성은 과학적 실험과 분석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시민권, 시민 자유 그리고 법에 따른 평등한 정의, 열린 정치와 국제 경제, 자유로운 시장으로 정의되는 근대 사회를 창조하였다. 지금 우리는 역사적으로 어느 인간 사회도 누린 적 없는 권리와 자유, 해방, 교양, 교육, 번영을 누리고 있다. 셔머는 이 책에서 자유를 향한 권리, 여성의 권리, 성 소수자의 권리, 그리고 동물의 권리에 대한 간략한 역사를 살핀 뒤 인간의 본성과 도덕의 진화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이성, 합리성, 경험주의, 회의주의, 즉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모든 방법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도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과학, 도덕의 진보를 이끌다
뉴스를 보고 있다 보면 우리 인류는 도덕적으로 진보하고 있기보다는 퇴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일같이 강도, 살인, 강간, 사기 등 수없이 많은 사건이 일어난다. 분명 인류는 도덕적으로 진보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깐 시선을 뒤로 옮겨보자. 1965년 3월 21일 앨라배마주 셀마로 말이다. 마틴 루터 킹과 그가 이끄는 8,000명의 시위대. 여기에서 마틴 루터 킹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거짓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도덕적 세계의 궤적은 길지만 결국 정의를 향해 구부러집니다.” 결국 이 연설은 1965년 8월 6일 존슨 대통령의 투표권 법안 서명으로 이어졌다. 도덕적 세계의 궤적이 또 한번 정의를 향해 구부러진 순간이다. 자, 이제 다시 한번 시선을 넓혀보자.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 수준으로 말이다. 그럼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바로 현재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그 역사상 가장 도덕적으로 진보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스켑틱〉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과학의 전사를 자처해온 마이클 셔머는 놀랍게도 이 책에서 이러한 도덕적 진보가 과학과 이성을 통해 이룩되었고, 이 둘을 통해 앞으로 인류가 더 도덕적으로 진보한 세계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성과 계몽의 시대 이후, 사상가들은 사회적?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식적으로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했다. 이성은 과학적 실험과 분석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시민권, 시민 자유 그리고 법에 따른 평등한 정의, 열린 정치와 국제 경제, 자유로운 시장으로 정의되는 근대 사회를 창조하였다. 지금 우리는 역사적으로 어느 인간 사회도 누린 적 없는 권리와 자유, 해방, 교양, 교육, 번영을 누리고 있다.
인류의 도덕은 과학과 이성의 힘으로 더욱 진보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마이클 셔머는 먼저 도덕과 진보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먼저 셔머는 도덕을 ‘감응적 존재의 생존과 번성’으로 설정한다. 감응적 존재란 감정, 지각, 감각, 반응, 의식이 있어서 느끼고 고통받을 수 있는 존재를 말한다. 여기에 ‘더 나은 상태나 조건으로의 진전’으로 진보의 개념을 설정한다. 따라서 도덕의 진보라는 것은 ‘감응적 존재의 더 나은 생존과 번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우리 인류는 어느 정도 도덕 감각을 타고나며, 이미 오래전부터 추상적 추론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씨족 공동체가 마을이 되고, 군장국가와 도시국가를 지나 민족국가의 형태로 사회 집단이 커짐에 따라 인류의 도덕은 조금씩 세련화되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비교적 완만하고 느리게 진행된 도덕 진화는 최근 200~300년 사이 급격하게 가팔라졌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 때문일까?
마이클 셔머는 그것이 바로 180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몽적 인본주의와 뒤이어 일어난 과학혁명이었다고 말한다. 이 시대에 확립되어 발전한 과학적 합리주의가 윤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을 끌어올림으로써 지금과 같은 도덕적 진보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황금률로 대변되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 원리는 과학적 합리주의를 통해 점점 정교해지면서 오늘날 도덕의 영향권을 동물로까지 확장했다.
셔머의 주장은 과학이 ‘가치를 결정’하고 도덕의 방향을 정했다는 것이 아니다. 셔머는 과학을 “일련의 논증을 통해 추론한 다음 경험적 입증을 통해 그 결론이 참임을 확인”하는 절차로 정의한다. 따라서 세계와 자연, 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과학과 이성의 기준에 따라 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도덕의 진화에 속도가 붙었다는 것이다.
메뚜기 떼가 몰려오거나 전염병이 도는 것은 새로 이사 온 불길한 이웃이나 마녀 때문이 아니다. 가뭄이나 홍수의 원인은 신의 분노 탓이 아니다. 인종 간의 차별은 불합리하며 노예제도는 인간의 본성을 위배한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지녀야 하며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 최근 이런 생각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법으로 정해서도, 종교인이 교화해서도 아니다. 바로 과학과 이성의 논증에 따른 생각이다.
도덕의 궤적이 정의뿐 아니라 진리와 자유를 향해 구부러져 왔음을 증명하기 위해 마이클 셔머는 이 책을 썼다. 이 책을 쓰기 위해 732편의 문헌을 참고한 셔머가 내린 결론은 간명하다. 한 종으로 인류는 점점 더 도덕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으며, 그 원동력은 종교적 힘이 아니라 세속적 힘, 바로 과학이다.

종교는 도덕적 진보의 근원이 아니다
과학혁명부터 계몽 시대까지 이성과 과학은 미신, 교조주의, 종교적 권위를 서서히, 하지만 체계적으로 대체하였다. 종교에 대해 언급하면서 셔머는 단순히 종교는 수많은 폭력과 전쟁, 범죄의 원인이었다고 밝히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종교성과 각종 사회적 조사 결과를 비교함으로써 종교가 한 사회의 도덕적 진보에 그다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증명한다.
이 책 4장에 있는 7개의 그래프는 2000년 기준 GDP 2만 3000달러를 넘는 17개 나라를 대상으로 종교성과 각종 사회 지표를 비교한 것이다. 여기서 가장 종교성이 짙은 나라로 드러난 미국이 사회적 건강도는 가장 낮고, 연간 10만 명당 살인율은 가장 높으며, 10만 명당 수감자 수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수준이다. 자살률은 종교가 사실상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보이고, 십대 임신율도 압도적으로 높다. 낙태율과 이혼율 가장 높지만 여성 인권의 신장과 관련하여 기타 선진국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노예제도와 관련하여 종교, 특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수억 명이 강제 노역에 혹사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수천 년 동안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수많은 성경 구절에서 기독교의 신은 노예제도를 당연시한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1452년에 “사라센 사람과 이교도, 그밖에 신자가 아닌 모든 …… 사람의 인신을 영구적인 노예 상태로 전락시킬 수 있도록 승인하는” 교황 칙서를 발표했다.
이성과 계몽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메노파교, 퀘이커교, 감리교 같은 진보적인 자유주의 기독교 교파들이 노예제 폐지론을 제기했다. 이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규범들에 굴하지 않고, 노예제도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며 노예제 폐지 운동에 앞장섰다. 이들의 운동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의문의 여지없이 동료 기독교인이었다.
여성의 권리와 관련하여 종교는 오랫동안 여성을 가계를 잇는 출산의 도구이자 재산으로만 취급했다.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하고 사회적 진출을 이끌어내는 데 종교는 오히려 방해 요인이었다. 남성이 장악하고 있던 종교는 언제나 여성의 신체와 생식권을 통제하려 했다. 지금도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피임, 낙태를 죄악으로 여기며 여성에 대한 통제권을 틀어쥐고 있다.
종교인들은 ‘자연의 섭리’나 ‘우주의 질서’ ‘신의 뜻’을 빌어 동성애를 금지하고, 동성애자를 처벌한다. 이들은 이슬람과 기독교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전통적 가정’의 붕괴를 걱정하고 인구의 소멸(?)을 걱정한다. 종교인들은 청소년 동성애자의 높은 자살률을 근거로 동성애는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청소년 동성애자의 자살 수치를 끌어올리는 주범은 바로 종교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버림받았다거나 저주받았다며 자살을 선택한다.
“선의를 가지고 주를 찾는 동성애자를 내가 무슨 권리로 심판합니까?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소외시켜서는 안 됩니다.” 2013년 7월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중략)

출처: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