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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추천 도서(19.3~20.2)

8월의 추천도서(2374) 괴테와 톨스토이 - 토마스 만

1. 책 소개

 

토마스 만(Thomas Mann)의 <괴테와 톨스토이>(“Goethe und Tolstoi”, 1922)가 신동화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과 함께 또 발자크와 스탕달이 주고받은 문학적 대화를 모은 <발자크와 스탕달>이 출간되었는데 도서출판 b에서 기획한 ‘예술과 인간의 깊이’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일명 ‘와(and)’ 시리즈이다. 수준 높은 예술가들의 상호 대조를 통해 독서의 깊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토마스 만은 독일문학을 세계적인 끌어올린 휴머니스트 작가다. 그가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함께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를 비교 분석하는 비평이 바로 이 책이다. 1921년 고향 뤼베크에서 “독일-스칸디나비아 관계의 장려와 강화”를 위한 ‘노르딕 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괴테와 톨스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나중에 수정과 보충을 거쳐 1925년에 에세이집 <노력들Bem?hungen>에 수록되었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유명한 논문 <소박 문학과 감상 문학에 대하여>에서 자연과의 일치 속에서 현실을 모사하는 이른바 ‘소박 문학’과 자연과 분리된 상태에서 사색을 통해 이념을 표현하는 ‘감상 문학’이라는 이 두 갈래의 문학 경향을 제시했다. 간단히 압축하자면 ‘자연적’ 문학과 ‘정신적’ 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실러는 이러한 분류를 바탕으로 괴테를 소박한 작가로, 자신을 감상적 작가로 특징지었다. 러시아 문학에도 유사한 대립쌍이 존재한다. 이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듯 러시아 비평가 드미트리 메레시콥스키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에서 ‘육체의 관찰자’인 톨스토이와 ‘영혼의 환시자’인 도스토옙스키를 대비한 바 있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토마스 만은 ‘괴테와 실러’,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이 두 쌍에서 ‘괴테와 톨스토이’, ‘실러와 도스토옙스키’를 새로운 쌍으로 묶고 각각 ‘자연의 아들들’, ‘정신의 아들들’이란 호칭을 부여한다. 그중 자연의 아들들, 즉 ‘괴테와 톨스토이’가 이 에세이의 제목이자 주제이다. 
토마스 만은 괴테와 톨스토이를 통해 인문성(휴머니티), 다시 말해 인간답고 고귀한 문화의 문제를 다룬다. 자연은 엄청난 생명력과 구체성을 가지지만 그 자체로는 거칠고 야만적이다. 정신 역시 무한한 창조력과 가능성을 가지지만 그 자체로는 형태가 없고 공허하다. 그리하여 자연의 아들들과 정신의 아들들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각각 반대편을 동경하며 서로를 향해 나아가려 노력한다. 이 노력 자체, 이 운동 속에서 토마스 만은 진정한 인간과 문화를 본다. 

“정신과 자연이 동경에 부풀어 서로를 향해 가는 길에서 이루어지는 고차원적 만남,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연의 아들들과 정신의 아들들의 예술적 작업은 하나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반대 방향의 두 가지 길이자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하고 우월한 것이냐를 두고 가치 판단이 가능할 텐데 토마스 만은 특유의 아이러니한 태도로 청자(독자) 각자에게 판단을 맡긴다. 
토마스 만은 이 에세이에서 정신을 향한 자연의 아들들의 노력을 다루면서 여러 일화와 증언을 통해 괴테와 톨스토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여준다. 괴테와 톨스토이에게는 자연과의 일체성, 육체에 대한 흥미, 신과 같은 면모, 고백적이고 자서전적인 작품 경향, 교육에 대한 지대한 관심 등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토마스 만에 따르면 괴테는 자신의 자연성을 바탕으로 절제와 체념을 통해 보다 높은 차원의 문화에 이른 반면, 톨스토이는 자신의 자연성을 부정하고 극단적인 기독교와 도덕주의에 경도된 까닭에 괴테와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결국 토마스 만이 자신의 문학적 모범이자, 더 나아가 인문성의 이상적 전범으로 삼는 것은 괴테이다.

 

[옮긴이의 말] 
<괴테와 톨스토이>는 1920년대 당시의 사회 정치적 상황과 긴밀히 결부된 텍스트이기도 하다. 원래 토마스 만은 독일 교양 시민계급의 대표자로서 문학과 예술의 정치화를 반대하고 서구의 문명에 맞서 독일의 독자적 문화를 강조하는 등 보수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1차 세계대전 때는 전쟁을 지지하고 빌헬름 2세 체제를 옹호하며 국수주의자의 면모를 보였고, 현실 참여적이고 진보적인 작가인 형 하인리히 만과 격렬한 논쟁을 벌인 끝에 에세이 <한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Betrachtungen eines Unpolitischen>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고 전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이 세를 불려 나가는 등 파시즘이 발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2년경부터 토마스 만의 정치적 견해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로 기울기 시작한다. <괴테와 톨스토이>의 뒷부분에서 우리는 토마스 만의 변화한 입장을 엿볼 수 있다. 토마스 만은 훗날 나치 독일에서 벌어질 일을 예견하듯 야만적 파시즘의 대두를 경계하면서 그에 맞서려면 “카를 마르크스가 프리드리히 횔덜린을 읽”어야 한다고, 다시 말해 독일의 인문적 전통을 새로이 강조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그 중심에는 물론 괴테가 있다. -(옮긴이 후기에서)

출처 : 교보문고

 

2. 저자

 

(Thomas Mann, 1875-1955) 
독일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 <키 작은 프리데만 씨>,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트리스탄>, <마의 산>, <요셉과 그의 형제들>,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파우스트 박사> 등 다수가 있다.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출처 : 교보문고

 

3. 목차

 

우열 문제 ─12 
루소 ─24 
교육과 고백 ─29 
미숙함 ─42 
순례지 ─48 
병 ─56 
발병 ─62 
조형과 비판 ─73 
정사 ─87 
자유와 고귀함 ─92 
귀족적 우아함 ─109 
회의 ─130 
자연과 국민 ─144 
공감 ─182 
고백과 교육 ─203 
교육 ─208 
마지막 단상 ─243 

옮긴이의 말: <괴테와 톨스토이>에 대하여

더 읽을거리 ─255

출처 : 본문 중에서

 

 

4. 책 속으로

 

정신의 아들들에게 주어진 감상적 명령이 ‘육체화!’인 것처럼 자연의 총아들에게 주어진 감상적 명령은 ‘정신화!’입니다. 이미 말했듯 괴테와 톨스토이는 이 명령을 수행하는 솜씨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고된 탈자연화 작업은 비록 정신화된 야성에 지나지 않으나, 괴테의 장엄한 문화와 견주어도 여전히 감동적이고 존경할 만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세상에 손쉬운 일이란 없다는 점입니다. 수고 없는 자연, 그건 조야합니다. 수고 없는 정신은 뿌리 없이 공허합니다. 정신과 자연이 동경에 부풀어 서로를 향해 가는 길에서 이루어지는 고차원적 만남,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181쪽) 

결정이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유익하고 생산적이며 따라서 예술적인 원칙을 우리는 유보라 부릅니다. 우리는 음악에서 계류음의 고통스러운 희열로서, 즉 ‘아직 아니’라는 우울한 희롱이자 영혼의 절실한 망설임으로서 유보를 사랑합니다. 이 망설임은 자기 안에 충족, 해소, 조화를 지니면서도 잠시 동안 그것을 거부하고 미루고 내주지 않으며 황홀경에 빠져 조금 더 지체하다가 결국 항복하고 말지요. 우리는 정신적인 면에서는 아이러니로서 유보를 사랑합니다. 진심이 없지는 않으나 교활하고 애매한 태도로 대립관계 속에서 유희하며 한쪽을 편들거나 결정을 내리기를 특별히 서두르지 않는, 양쪽을 향한 아이러니로서 유보를 사랑합니다. 큰 문제, 인간의 문제를 다룰 때는 모든 결정이 성급하고 예비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을 거라고, 결정이 아니라 조화가 목표라고, 그리고 이 조화는, 만약 대립이 영원한 것이라면, 무한 속에 존재할 것이며 아이러니라 일컬은 저 유희적인 유보는 계류음이 해소를 지니듯 자기 안에 조화를 지닌다고 추측하면서 말이죠. 앞서 우리는 이 ‘무한한’ 아이러니를 입증했습니다. -(243~244쪽)

출처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