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소개
자본주의를 초월한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
좋은 사회를 향한 진지한 대화 『리얼 유토피아』. 세계적인 석학 에릭 라이트 박사의 십 수 년에 걸친 프로젝트 결과물로 ‘리얼 유토피아’의 길로 안내하고 있다.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는 자본주의의 쓰러짐을 응시하면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과 전망, 그리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공한다.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 존재해온 권력ㆍ특권ㆍ불평등 구조가 낳는 문제점을 파헤치고, 그 대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의 여러 가지 핵심들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중심축은 ‘좋은 사회를 향한 열망’과 ‘민주주의’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사회제도의 여러 영역들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소개했다. 현재 사회구조에 절망하거나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 그러면서 정당하고 인간적인 삶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출처 : 교보문고
2. 저자
저자 에릭 올린 라이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를 졸업했다(Social Studies). 1976년 버클리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y)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6년부터 현재까지 위스콘신-매디슨 대학(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계급 분석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2012년 미국사회학회장을 맡았다. 주요 저서에 『Classes』(London: Verso, 1985), 『Interogating Inequality』 (London: Verso, 1994), 『Class Counts: Comparative Studies in Class Analysi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Deepening Democracy: institutional innovations in empowered participatory governance』 (London: Verso, 2003) (공저)가 있다.
출처 : 교보문고
3.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들어가는 글
1. 서론: 왜 현실 유토피아인가
2. 해방적 사회과학의 과제
진단과 비판
실행 가능한 대안들
변혁
PART I DIAGNOSIS AND CRITIQUE 진단과 비판
3. 자본주의의 무엇이 그렇게 나쁜가
자본주의의 정의: 간결한 설명
자본주의에 대한 열한 가지 비판
PART II ALTERNATIVES 대 안
4. 자본주의의 대안을 생각함
자본주의의 대안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 역사적 궤도의 이론
자본주의의 미래에 관한 마르크스 이론의 부적절함
5. 사회주의 나침반
사회주의의 “사회적”을 진지하게 취급함
개념적 어휘의 명료화
사회주의 나침반: 사회권력 강화의 경로
결론: 세 가지 회의적인 주석
6. 리얼 유토피아 I: 사회권력의 강화와 국가
민주주의의 세 가지 제도적 형태
직접민주주의: 새로운 형태의 권력 강화된 참여적 통치
대의민주주의: 두 가지 제안의 스케치
결사체민주주의
민주주의와 사회권력의 심화
7. 리얼 유토피아 II: 사회권력의 강화와 경제
사회적 경제
무조건적 기초소득
사회적 자본주의
협동조합적 시장경제
포괄적 체제 대안의 두 모델
결론: 사회권력 강화의 확장적 의제
PART III TRANSFORMATION 변혁
8. 변혁이론의 요소들
사회적 재생산
한계, 틈, 모순
의도되지 않은 사회 변화의 기초적 동학과 궤도
변혁 전략
9. 단절적 변혁
핵심적인 질문과 기본적인 가정들
단절적 변혁과 이행의 저점
대답
10. 틈새적 변혁
틈새적 ‘전략’이란 무엇인가
틈새적 전략은 어떻게 해방적 사회 변혁에 기여할 수 있는가
단절로 가는 경로를 닦기
자본주의의 엄격한 한계를 침식시키기
틈새적 전략과 국가
11. 공생적 변혁
계급타협
공생적 전략의 논리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공생적 변혁
12. 결론: 유토피아를 현실로 만들기
옮긴이의 말
색인
출처 : 본문 중에서
4. 책 속으로
이상과 같은 내용이 내가 말하는 “현실 유토피아”의 예들이다. 이것은 용어상 모순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유토피아는 공상이며,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실행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평화와 조화의 인간적 세계를 그리는 도덕적 설계이다. 현실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공상을 피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제도를 실용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아주 실제적인 제안이다. 우리는 유토피아적 꿈에 탐닉하는 대신, 우리 스스로를 실제 현실에 맞추어야 한다.
“현실 유토피아”라는 개념은 꿈과 실천 사이의 이 긴장을 받아들인다. 이 개념의 기초를 이루는 것, 그리고 실천적으로 가능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과 무관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우리의 전망에 의해 형성된다는 믿음이다. 자기달성적인 예언은 역사에서 강력한 힘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순진한 낙관주의일지 몰라도, “뜻”이 없이는 많은 “길”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억압이 없는 사회제도를 창조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가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은 억압을 줄이는 급진적 사회변화에 필요한 정치적 의지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의 일부이다. 사람들에게 현 상태에서 탈출하는 여행을 떠나라고 권유하려면 유토피아적 이상에 대한 생명력 있는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비록 실제로 도달하는 목적지가 유토피아적 이상에 못 미칠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모호한 유토피아적 공상은 우리를 미혹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여행이 실질적인 목적지가 전혀 없는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쁘게는 어떤 예상되지 않은 나락에 빠지는 여행이 될 수도 있다. 해방을 위한 인간의 투쟁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와 마주칠 수도 있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와 마주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현실 유토피아”가 필요한 것이다. 인류의 현실적 잠재력에 기초해 있는 유토피아적 이상이 필요하며, 중간역이 있는 유토피아적 목적지가 필요하며, 우리의 실천적 과제―사회변화의 조건을 다 갖추지 못한 세계를 항해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_ “왜 리얼 유토피아인가” 중에서
평등한 접근권의 개념부터 확실히 하자. 이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소득을 얻거나 동일한 물질적 생활수준을 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번영에 “필요한 수단”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일정 정도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이 모든 사람이 양질의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수단에 접근할 때 반드시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또 급진 평등주의적 견해가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번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회적?물질적 자원에 평등하게 접근하지 못해서 사람들이 번영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뿐이다.
여기서 제안하는 번영 개념은 특정한 방식의 번영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삶”에 대한 다양한 문화적 관념 가운데 어떤 범주의 사람들은 번영의 조건들에 원천적으로 평등한 접근권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데 반대한다. 어떤 문화가 특정한 소수민족집단, 인종집단, 계급집단에 대해 그들은 자신의 인간적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물질적 사회적 수단에 접근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 문화는 부정의하다. 여성에 대한 최고 형태의 번영이 남편의 욕구에 봉사하는 세심한 아내가 되고, 아이들을 잘 키우는 헌신적인 어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문화 역시 이 사회정의관을 위반한다. 여성들은 분명 헌신적인 어머니이자 세심한 아내로서 번영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이러한 역할을 강요하고 소녀들이 다른 능력과 재능을 발전시키는 것을 제한하는 문화는, 번영하는 삶을 살기 위한 물질적 사회적 수단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위반한다. 이러한 문화는 여기서 제안하는 기준에 따르면 부정의를 지지한다.
자유에 대한 이 평등주의적 이해는 개인적 권리와 자율이라는 핵심적인 자유주의적 이상들을 인정한다. 즉 개인들이 외적 강제에 종속되는 정도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이상들을 인정한다. 이 이해가 표준적인 자유주의적 정신과 다른 이유는,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힘에 대해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평등주의적 원칙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는 타인에 의한 강제로부터 평등하게 보호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는 필리페 반 파리스가 말하는 “만인을 위한 ‘참된’ 자유”와 상응한다. 참된 자유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중요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의 인생계획에 따라 행동하는 데 필요한 기본 자원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예비적으로 언급해야 할 다른 두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자본주의 비판자들은 때로 동시대 세계의 모든 심각한 문제와 해악―인종주의, 성 차별, 전쟁, 종교적 근본주의, 동성애 혐오 등등―을 자본주의의 결과물로 다루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 이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오늘날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악의 뿌리가 아니다. 다른 인과적 과정들도 인종주의, 종족적 민족주의, 남성 지배, 대량학살, 전쟁, 그리고 기타 중요한 형태의 억압을 부추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에 의해 발생되지 않은 억압의 경우에도, 자본주의는 여전히 그것과 관련되기도 한다.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자본주의는 성 차별의 근원적 원인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양질의 공공 육아 서비스에 충분한 자원을 배분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성 차별을 극복하기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비판에서 결정적인 과제는 자본주의 특유의 메커니즘에 의해 직접적으로 발생되는 해악들을 확인하고, 자본주의가 간접적으로 억압의 축소를 방해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에 대한 이 열한 가지 비판 가운데 다수는 흔히 “사회주의적”이라고 불렸던 20세기의 경제체계, 혹은 내가 제5장에서 “국가주의적”이라 부르게 될 경제체계에도 적용된다. 예컨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하나(명제 6)는 자본주의가 환경에 해를 입힌다는 것이지만, 우리는 소련 국가주의 경제의 권위주의적 중앙계획체제 역시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본주의의 유일한 대안이 국가주의―생산수단이 국가에 의해 소유 통제되고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를 통해 조정되는 경제구조―라면, 환경 측면에서의 자본주의 비판은 힘을 약간 잃게 될 것이다. 내가 제5장에서 주장하겠지만 다른 대안이 있다. 이는 곧 국가와 경제 모두에 대한 유의미한 민주적 통제라는 생각에 근거한 사회주의 개념이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이러한 구조를 가진 경제는 아래의 열한 개 명제들에서 논의되는 해악을 완화할 수 있는 우리의 집단적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_“무엇이 그리 나쁜가?” 중에서
자본주의에서 자본 소유자는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의존적인 처지에 묶어 두는 데 적극적인 경제적 이해를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이 자본 소유자에게 경제적 권력을 부여한다. 다음이 이에 대한 논증이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이윤 추구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체제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개별 자본가들이 엄청난 개인적 탐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이윤 극대화 문화로 인해 자본가들이 자기이익을 점점 더 외골수로 추구하고, 이는 “탐욕”과 아주 닮아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이것은 자본주의적 경쟁의 동학이 낳은 결과이자, 기업들이 이윤의 개선을 끊임없이 시도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쇠퇴를 감수해야 하는 압력의 결과이다.
자본주의 기업들의 이윤 추구는 피고용자의 노동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자본주의 기업은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그들로 하여금 생산수단을 사용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게 한 다음 이것을 판다. 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총비용과 이것들이 팔리는 가격의 차이가 이 기업의 이윤이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은 노동과 관련해 이중의 문제에 직면한다. 한편으로 노동의 고용은 임금 형태를 취하는 비용이며, 자본가들은 이 비용을 (모든 생산비용처럼) 가능한 한 낮추고 싶어 한다.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임금 비용이 낮으면 낮을수록 이윤은 더 높다. 다른 한편,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가능한 한 열심히, 가능한 한 부지런히 일하기를 원한다. 노동자들이 더 많은 노력을 지출하면 할수록, 일정한 수준의 임금에 대해 더 많은 것이 생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수준의 비용에 대해 더 많이 생산되면 될수록 이윤은 더 높다. 따라서 자본가들의 경제적 이익―그들이 통할統轄하는 이윤―은 노동자들로부터 가능한 한 적은 비용으로 가능한 한 많은 노동을 추출하는 데 달려 있다. 이것이 대체로 “착취”가 뜻하는 바이다.
물론 개별 자본가들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책정할 수 없고, 노동의 강도를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동시장의 조건에 제약되고, 또 노동자들의 다양한 저항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기에게 유리한 노동시장 조건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노동시장인가 하면, 노동의 풍부한 공급을 보장하는 동시에 노동 강도 강화 압력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능력은 약화시키는 노동시장이다. 특히 다수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바람에 임금이 낮추어지거나, 실업률이 높아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을지 근심하게 되면, 자본가들에게 이익이 된다. 바꾸어 말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취약성을 증가시키는 데 집착한다._“착취” 중에서
생산과정에서의 기술 변화는 자본주의적 경쟁의 내재적 결과이다. 왜냐하면 기술 변화는 자본가들이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핵심적인 방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생산성 향상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정한 수준의 산출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투입이 더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큰 성취들 가운데 하나로, 이러한 경제활동 조직 방식을 옹호하는 모든 사람들이 강조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자체는 낡은 기술을 가지고 있고 일자리 기회가 적은 사람들을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 신흥 일자리로 이동시키는 메커니즘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쫓겨난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과제는 아주 힘겨운 과제이다. 이러한 노동자들 다수는 비교적 나이가 많고, 자본주의 기업들은 나이 많은 노동자들의 인간자본에 투자할 인센티브를 가지기 힘들다. 대개 새로운 일자리 기회는 쫓겨난 노동자들의 거주지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이러한 일자리로 이동하는 데 따른 사회적 혼란의 비용은 상당하다. 그리고 자본주의 기업들은 부적절한 기술을 가진 노동자들에게는 연령에 관계없이 효과적인 훈련을 제공하는 데 주저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새로 훈련된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그들의 인간자본을 다른 기업들로 옮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의 기술 변화가 종종 새로운 기술을 요하는 고생산성 일자리를 창출하고, 또 적어도 이 새로운 일자리의 일부는 파괴된 일자리보다 더 나은 보수를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일자리 파괴ㆍ창조 과정 속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이들 가운데 다수는 어떤 새로운 기회도 활용할 수 없다. 기술 변화는 새로운 기회뿐만 아니라 주변화도 낳으며, ‘이를 상쇄하는 비자본주의적 과정이 부재할 때’ 주변화는 빈곤을 낳는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 내재해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비자본주의적 제도들이 부재할 때 이 같은 주변화는 인간의 고통을 영구화한다._“기술 변화” 중에서
경쟁과 인간의 번영 사이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한편으로, 경쟁―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과정 때문에 사람들은 시간, 정력, 자원을 투자해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킨다.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나아지려는 욕망이 재능을 발전시키는 유일한 동인은 아니다. 사람들은 기술의 숙달에서 나오는 성취감과 충만감, 그리고 그 기술을 발전시킨 후 이를 발휘하는 데서 나오는 성취감과 충만감에서도 동기를 얻는다. 그렇다 해도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킬 때 이를 보상해 주는 것은 경쟁이라는 강력한 힘이다. 따라서 일정 정도의 경쟁은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의 번영을 자극한다. 다른 한편, 경쟁은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상대적’ 지위의 관점에서만 평가하는 성취 문화를 강조한다. 성취는 한 사람의 잠재력 실현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것으로 정의된다. 가장 치열한 경쟁―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이 말하는 “승자독식” 경쟁―에서는 꼭대기에 단 한 명의 승자만이 있고, 그가 사실상 모든 상을 독차지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패한다. 이와 같은 치열한 경쟁은 인간의 번영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가장 명백한 사실이지만, 승자독식 경쟁에서는 일단 한 사람이 현실적으로 이길 확률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낙담하고 아예 포기해 버리기가 아주 쉽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치열한 경쟁체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자”가 될 것이다. 이에 따른 자존심과 자신감의 상실은 번영의 심리적 조건을 와해시킨다. 더욱이 자본주의에서 재능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자원의 배분은 일차적으로 경제적 투자로 간주되고, 투자는 예상되는 경제적 수익에 의해 평가된다. 이 때문에, 재능 육성 자원은 가장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심하게 편중될 것이다. 시장에서는 결국, 재능이 덜한 사람들의 재능을 발전시키는 데 많은 자원을 할애하는 것은 나쁜 투자일 것이며, 따라서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재능을 발전시키는 수단에 접근할 기회가 대체로 더 적어진다. 이 역시 인간 번영의 보편화를 가로막는다.
따라서 경쟁 그 자체는 인간 번영의 조건이 보편화되는 데 긍정적인 효과와 동시에 부정적인 효과를 낸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클 것인지,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클 것인지는 경쟁의 강도에 좌우된다. 또 번영을 촉진하는 다른 메커니즘들이 경쟁과 균형을 이루는 정도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경제가 순전히 자본주의적 기초 위에서 조직되면 될수록, 즉 시장 경쟁과 사적 소유가 자원의 배분을 좌우하면 할수록, 이 균형이 성취될 확률은 더 적다._“파괴적 경쟁” 중에
출처 : 본문 중에서
5. 출판사 서평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을 주축으로 했던 사회주의가 와해되자 푸른 별 지구는 몇몇 정치경제 독재의 징후를 외면한 채 자유와 자본의 향기에 취했다.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 바람이 개인의 일상까지 잠식했고 사람들은 어느 새 불평등한 노동환경, 열악한 삶의 조건, 불공정한 사회구조 따위를 잊은 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1%의 간증을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창의성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 뭔가 될 것이다”는 환상 아래 자본주의 경제구조 아래 “살아남기” 위해 몸을 바쳤다. 그러나 지구별에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을 “선택받은 생명체”라고 느끼지 않는다. 현존하는 위치가 아메리카이든 유럽이든 아시아이든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어, 자 힘을 내고 더 해봐”라고 말하는 1%의 누군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좋은 사회, 정직하고 공평한 삶을 향해 달리던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줄곧 그들만의 성취를 축하하던 ‘다보스포럼’조차 2012년 벽두부터 그동안 누적되어온 소득 분배의 불공평과 불공정한 금융구조 때문에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고 지적했다.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를 지지했던 전 세계 저명한 기업가와 경제학자들이 이런 경고를 한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세계적인 석학 에릭 올린 라이트 박사는 십 수 년에 걸친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리얼 유토피아Envisioning Real Utopias』를 통해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답하고자 한다. 이 책은 자신의 지적ㆍ정치적 좌표와 관계없이 “현재 사회구조에 절망하거나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 그러면서 “정당하고 인간적인 삶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진정한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과 국가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역할에 관한 깊고 뜨거운 논의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는 친절하고 정교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왜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인가?
시대의 끝자락에 이르면 늘 충돌이 생긴다. 희망과 절망, 작용과 반작용, 몰락과 부흥 같은 상반되는 개념들이 서로 입지를 굳히기 위해 아우성을 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유사 이래로 인간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분석과 예견에 의존할 뿐이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시도와 도전은 불가능하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명제를 차치해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좌파든 우파든, 진보이든 보수이든―많은 지식인들이 ‘자본주의’라는 거인의 쓰러짐을 응시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사회주의의 몰락보다 더 처참한 결과를 예견하는 자본주의의 끝에 세울 마땅한 대안과 전망, 그리고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에릭 올린 라이트 박사의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는 이 같은 고민에 대한 진지한 응답이다. 그는 작금의 문제가 우리에게 “좋은 사회에 관한 생각이 결여”되어 있다거나 “자본주의 속에서의 삶을 개선시킬 건설적 정책 개혁에 관한 생각이 결여”되었기에 발생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변혁에 관한 전반적인 전망”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해서 그것을 선뜻 제시할 수 없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는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생각을 탐구하면서 자본주의 체제 아래 존재해온 권력·특권·불평등 구조가 낳은 문제점을 파헤치고, 그 대안을 심도 있게 논의한다. 하지만 거대하고 공정한 체제를 설계하자면서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정식을 제시하거나, 현행 관행을 살짝 고치면 금방이라도 낙원이 성취될 것 같은 섣부른 기대를 조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의 여러 가지 핵심들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중심축은 “좋은 사회를 향한 열망”, 그리고 “민주주의”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고 사회제도의 여러 영역들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위험한 자본주의를 버려라
각종 수수료 수입 등 불공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독점한 금융기관의 횡포, 자만과 독선으로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의 탐욕,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교육제도, 편 가르기와 편들기에 바쁜 정치권의 행태는 전 세계 젊은이들로 하여금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the Wallstreet)’와 같은 시위를 일으키게 만들었고,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인들에게 ‘국가부도’라는 굴욕을 안겨주었다. 시선을 국내로 돌려도 절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크고 작은 정치권의 비리, 특권과 특혜 의혹을 둘러싼 지난한 논쟁, 저축은행 사건 등 금융권에 대한 가중된 분노, 88만원 세대로 일컬어지는 청년실업, 1~2인 빈곤층 가구 확대와 같은 불균형한 사회구조적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방관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위기론”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뾰족한 대안이 없다. 자본주의의 근본 원리를 통째로 바꿀 수도 없다. 다만 현재의 자본주의가 타고난 의미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인간 삶의 번영에 기여하기는커녕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으니 이제 대대적인 정비와 수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할 따름이다. 오랫동안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저자는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공정한 인간의 삶과 행복한 삶을 위한 사회적 실행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고려한 평화와 조화의 세계를 그린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런데도 저자가 굳이 유토피아라는 단어 앞에 “리얼”을 붙인 것은 그만큼 현실 세계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싶었거나 이상과 현실 간의 메울 수 없는 간극을 강조하고 싶었던 때문일 터이다. 이제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수많은 제도―불공정하고 불필요한―들을 실용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아주 실제적인 제안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유토피아적 “꿈”에 탐닉하게 만들었던 자본주의의 불완전함을 과감하게 버리고, 스스로 실재하는 “현실”에 맞춘 이상적인 제도들을 말이다. 따라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순진한 낙관주의일지 몰라도 뜻이 없이는 많은 길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저자의 말은 우리에게 크나큰 일침이 된다.
“리얼 유토피아 구상”은 간극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이다
이 책은 “리얼 유토피아” 개념을 구현하는 대안들을 체계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일반 틀을 정교화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면서 냉소적으로 비웃는 다양한 사고思考와 현실을 반박하고자 했던 진지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해방적 사회변화를 위한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저자는 먼저 제1장에서 ‘포르토 알레그레 시를 통한 참여적 시예산 편성의 가능성, 위키피디아와 같은 자발적 무보수 지식공유, 기업과 노동자의 함의를 담아낸 몬드라곤, 인간 삶의 번영에 기초가 되는 무조건적 기초소득’ 을 예시한다. 그리고 제2장에서 리얼 유토피아 구상 문제를 “해방적 사회과학”이라는 더 넓은 틀 안에 자리매김 하면서 논의한다. 이 틀은 세 가지 과제들, 즉 진단과 비판, 대안의 정식화, 그리고 변혁 전략의 정식화를 중심으로 구축된다. 이 세 과제들은 이 책의 세 가지 주요부의 의제를 규정한다. 이 책의 제1부(제3장)는 자본주의에 대한 기본 진단과 비판으로, 이는 현실 유토피아적 대안의 탐색을 고무한다. 다음 제2부는 대안의 문제를 논의한다. 제4장은 대안에 대한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을 재검토하며, 왜 이 접근법이 불만족스러운지를 보여주고, 제5장은 대안적 분석 전략을 정교화한다. 이때 근거가 되는 개념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국가와 경제에 대한 사회의 권력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6장과 제7장은 “사회 권력화”라는 개념에 비추어 제도적 설계를 위한 일련의 구체적인 제안들을 탐구한다. 마지막 제3부는 변혁의 문제―이 현실 유토피아적 대안들이 실현될 수 있는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로 전환한다. 따라서 제8장에서 사회변혁 이론의 중심적 요소들을 펼쳐낸 다음 제9장~제11장에 걸쳐 세 가지 다른 전반적인 해방적 변혁 전략―단절적 변혁(제9장), 틈새적 변혁(제10장), 공생적 변혁(제11장)―을 검토한다. 그리고 제12장에서 핵심적인 주장들을 일곱 가지 교훈으로 추출함으로써 그동안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진행되었던 일련의 논의를 매듭짓는다.
출처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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