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6년 추천도서(26.1-)/2026-07

7월의 추천도서 (4869) 읽지 않는 사람들

 

 

 

1. 책소개

 

“오늘도 당신은 읽는 시간을 아낀 대신 인간 지능을 상실했다”

오직 기계만이 읽고 쓰는 텍스트포칼립스 시대,
그럼에도 읽는 인간으로 남아야 하는 이유에 관한 지적 선언문

지난 5,000년간 인간은 유일한 ‘읽는 종’이었다. 인간의 뇌와 공감력, 비판적 사고를 진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자 인지 능력의 핵심인 읽기는 지적 문명의 발전에 있어 가장 거대하고 견고한 기둥으로서 자리를 지켜왔다. 그리고 오늘날, 이 기둥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바쁜 인간의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대신 읽어주는’ AI는 단 몇 년 사이에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학생들은 과제물 읽기를, 직장인들은 문서 읽기를, 연구자들은 자료 읽기를 AI에게 맡긴다. 기계가 작성한 언어가 표준이 되고 인간의 것은 예외가 되는, ‘텍스트포칼립스(Textpocalypse)’ 세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추적과 연구를 이어온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은 한 가지 질문에 봉착한다. ‘AI가 읽는 동안, 인간은 무엇을 하는가? 혹은 무엇을 하지 않는가?’ 『읽지 않는 사람들』은 그 답을 찾는 치열한 여정이자 ‘그럼에도 직접 읽어야 하는 이유’에 관한 지적 선언문이다. 이 책에서 배런은 ‘읽는 인간’의 탄생에서 출발해 읽기 지능의 역사와 인간 사고의 미래를 문명사적 시선으로 탐색한다. 나아가 단호히 경고한다. AI에게 읽기를 내어 주는 만큼 인간의 삶은 텅 비어갈 것이라고. 효율성이란 명분 아래 생각의 외주화가 당연시되는 지금, 읽기 능력을 손에서 놓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묵직하게 일깨우는 이 책은 읽기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출처: 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나오미 배런 (Naomi S. Baron)

 

언어와 기술, 인간 사고의 관계를 연구해온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읽기와 학습’ 분야의 최고 권위자.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을 비롯해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이탈리아 등 세계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하거나 방문학자로 활동하면서 각국의 읽기와 쓰기에 관한 여러 연구를 수행했다. 주요 연구 주제로는 컴퓨터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 글쓰기와 기술, 언어의 습득과 구사, 인간의 멀티태스킹 행동 등이 있다. 구겐하임 펠로 및 풀브라이트 펠로로 선정됐고, 미국기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미국 아메리칸대학교의 언어학 명예교수이다.
우리가 읽고 쓰고 생각하는 방식에 기술이 어떻게 관여하는지 3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연구하고 있다. 특히 빠르고 간편하게 대량의 정보를 소비하는 오늘날, 인간이 왜 ‘깊이 읽기(deep reading)’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지 집요하게 추적해 왔다. 스크린 중심의 환경에서 읽기 능력이 약화되는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한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생성형 AI의 등장이 인간의 쓰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쓰기의 미래』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읽지 않는 사람들』에서는 ‘읽는 인간’의 탄생부터 생각의 외주화가 일상이 된 현재까지, 읽기 지능의 역사와 인간 사고의 미래를 문명사적 시선으로 탐색한다. 읽기가 인간의 뇌와 공감력, 비판적 사고를 어떻게 진화시켜 왔는지 보여주며, 그 능력을 손에서 놓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다. 기술이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는 시대, 읽기의 가치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출처: 본문중에서

 

 

 

 

 

3. 목차

 

추천의 글
한국어판 서문: 우리가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

서론 인간이 AI에게 넘겨준 것
AI의 읽기와 인간의 읽기는 무엇이 다른가 | AI와 인간이 소설을 읽을 때의 차이 | 맹목적 노력 절감과 인지적 구두쇠 | 그럼에도 ‘인간이 만든 것’ | 누가 이익을 보는가 | 인간 vs AI 읽기

1부 읽는 종의 탄생
1장 읽기란 무엇인가
어떤 매체로 읽을 것인가 | 얼마나 길고 복잡한 텍스트인가 | 글의 질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어떤 유형의 읽기인가

2장 독자란 누구인가
히틀러도 아이젠하워도 독자였다 | 나이 들수록 읽지 않는 사람들 | 독서의 기원과 현재

3장 무엇을 읽고 있는가
무료 공공도서관의 탄생 | 읽을 자유와 그 적들 | 0과 1의 세계에 존재하는 글들 | LLM은 늘 배가 고프다 | 저작권법의 탄생 | AI 저작권 분쟁의 전선 | 법적 공방이 계속되는 사이 | 도서관을 어떤 자료로 채울까

2부 인간은 왜 읽는가
4장 판단하기 위한 읽기
AI는 진실을 말하는가 | 인간을 평가하는 AI | AI가 읽기 업무를 대신할 때 | 효율성과 사회적 윤리의 교차점에서

5장 의무적 읽기: 학교와 직장
“읽어야 할 책, 요약해 드립니다” | 정보 과잉과 환각의 문제

6장 자발적 읽기
즐거움을 위한 독서 | 학습을 위한 자발적 독서 | 자기 이해와 성장을 위한 독서 | 공감의 문제

7장 사회적 연결로서의 읽기
“내 편지 받았어?” | 사회적 독서란

결론 AI를 읽기에 활용한다는 것
읽기 능력은 쓰지 않으면 잃는다 | 우리의 일자리는 위협에 빠질까 | 내일의 도서관 | 미래의 독자 | 파우스트적 거래

감사의 말
옮긴이 해제: AI 시대, 누구도 방관자로 남을 수 없다

 

출처: 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읽기 능력을 갖춘 사람은 무지부터 지루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퇴치하는 데 도움이 되는 특별하고도 진정한 광선검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읽기는 (순수한 즐거움은 말할 것도 없고) 학습의 핵심 원천이다. 읽기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믿을지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읽기는 우리의 뇌를 단련시키고, 결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죽었거나 허구인) 존재들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연결될 기회를 제공한다. (19p)

AI는 인간이 읽고 쓴 결과물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적어도 구성의 질 면에서는 그렇다. 이 점이 왜 중요할까? 대신 읽어주겠다는 AI의 유혹에 빠지는 순간 우리의 읽기 능력이 약화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27p)

읽기는 인간의 발명품 중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눈부신 신기술로 가능해진 맹목적 노력 절감의 이름으로 그 본질적 가치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 (51p)

봇들은 뇌 썩음의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 뇌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문제는 AI의 생산물이 우리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이다. 자극을 줄까? 아니면 무력하게 만들까? (71p)

현대의 젊은이들은 문해력에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고 독서량도 적다고들 한다. 하지만 지금의 어른들이 젊은 세대의 독서 부족을 불평한다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 될 수 있다. (93p)

인공지능인 LLM은 무엇을 먹을까? LLM은 AI 개발자들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먹는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은 어디에서 비롯할까? (138p)

공정 이용과 LLM 훈련을 둘러싼 공방은 단순한 법정 싸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읽기 도구인 AI가 결국 우리 인간이 소비할 자료를 어디서 끌어올 수 있는지에 대한 핵심을 건드린다. LLM 데이터세트는 점점 우리의 새로운 도서관이 돼가고 있다. (157p)

수천 명의 지원자가 같은 일자리나 정원이 소수인 명문대에 지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누군가는 이 모든 자료를 다 읽어야 한다. 이때 AI가 해결사가 될 수 있을까? 비즈니스 세계와 교육계가 직면한 과제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176p)

대학 지원서의 서술형 영역을 AI가 쓰고 읽는 지금의 추세는 나를 상당히 심란하게 만든다.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쓰는지, 그것이 어떻게 읽히는지에 대해 점점 더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초현실적 게임을 하고 있다. (189~190p)

바로 AI가 우리 대신 일할 때 저지르는 실수로부터 배우라는 것이다. AI가 길을 잃을 가능성이 큰 지점과 그 방식을 알아차려야 한다. 차를 운전하면 아이나 개가 도로로 튀어나올까 봐 늘 경계하게 된다. 어떤 신호등의 노란불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 그리고 속도위반 단속 구간은 어디인지도 알게 된다. (238p)

그 과정에 AI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살펴보자. 더 행복감을 주는가? 더 오래 살도록 도움을 주는가? 두뇌 발달을 돕는가? 스트레스를 줄여주는가? 트라우마, 우울증, 기타 정신 질환 문제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주는가? AI는 그 과정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일까? 어떤 것(여기서는 특정 유형의 읽기)은 반드시 몸소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252p)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AI를 문학 읽기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279p)

이제 AI가 쓰고 읽을 수 있게 됐으니, 나타날 수 있는 결과를 저울질해 볼 필요가 있다. AI는 우리가 글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방식을 지원하게 될까, 아니면 이 인간적 소통 방식을 비인격화하게 될까? (284p)

우리를 대신해서 일해 주겠다는 기술의 유혹은 무시하기 어렵다. 미키처럼 우리도 자문한다. 왜 그 많은 일을 내가 직접 해야 하지? 바로 여기에 우려할 점이 있다. 개인적 글쓰기를 통한 소통은 단순히 편지나 이메일의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다. 동시에 그것은 개인 간 연결 통로이기도 하다. (293p)

비록 인간이 쓴 글과 AI가 작성한 글을 우리가 구분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여전히 인간 대 인간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332p)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독서 플랫폼을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데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목격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이 든다. 이미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 더 많이 읽게 되는 식으로 말이다. 어떻게 하면 비독자를 독서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335~336p)

점점 더 AI를 활용해 대신 읽게 할수록 우리는 분석적 읽기 근육을 사용할 기회를 잃게 된다. AI에 의존해 대신 판단을 내리게 하면서도 아직은 의사 결정을 광고나 직감에 따른 반응에 맡기는 수준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읽기 도구로서 AI가 지닌 잠재적 가치를 폄훼하지는 말아야 한다.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더 큰 사회적 선에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350p)

‘기술적 효율성’과 ‘진보’에 반대하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유혹들은 읽기가 인간에게 주는 혜택이 막대하다는 잠재적 인식을 흐려버린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끔은 크루아상의 유혹에 지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결국 우리는 인간이니까.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361p)

 

출처: 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기자 김지수·응용언어학자 김성우 강력 추천!
※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美 UCLA 교수의 찬사
※ 세계적인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이 경고하는 ‘읽는 종’의 종말

“쓰는 이도 읽는 이도 기계가 된 시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묻는 책”
- 송길영(마인드 마이너, 『시대예보』 시리즈 저자)

“‘읽는 인간’은 텍스트포칼립스 세상의 가장 찬란한 별종이 될 것이다”
- 김지수(기자, 『의젓한 사람들』 저자)

“단단하고 사려 깊은 독자로 성장하고 싶은 이들에게
기술에 휩쓸리지 않고 나아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책이다”
- 김성우(응용언어학자,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저자)

“인간이 5,000년간 쌓아온 읽기 지능이
한 세대 만에 사라지고 있다”
AI에게 내어준 읽기, 맹목적 효율 추구로 인지 빈곤에 처한 우리들

매년 6월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은 최근 Z세대를 중심으로 한 ‘텍스트힙’ 열풍을 타고 해마다 전년의 오픈런과 매진의 기록을 경신하며 역대급 흥행을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38.5퍼센트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문화체육관광부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 열 명 중 여섯 명 이상이 1년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그 소수의 ‘읽기’마저 인간의 몫이 아니게 돼 가고 있다. 우리가 읽고 쓰고 생각하는 방식에 기술이 어떻게 관여하는지 30년이 넘도록 치밀하게 연구해온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 박사는 어느새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한 읽는 AI, ‘읽기 봇(Reader Bot)’이 인간의 읽기를 대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묻는다. “AI가 읽는 동안, 인간은 무엇을 하는가? 혹은 무엇을 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서 출발한 책 『읽지 않는 사람들』에서 배런 박사는 먼저 읽기의 정체부터 파고든다.
“읽기 능력은 인간이 가진 특별하고도 진정한 광선검이다.” 배런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읽기 능력은 무지부터 지루함까지 모든 것을 퇴치하는 인간만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즐거움과 학습의 원천인 읽기는 텍스트를 통해 의미를 구성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며 스스로 판단에 이르는 능동적이고 총괄적인 인지 과정이다. 인간의 뇌 구조는 읽기를 통해 진화했으며, 인간은 그런 읽기를 도구 삼아 사회적 유대를 맺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지난 5,000년간 유일한 ‘읽는 종’으로서 지적 문명을 구축해 온 인류 앞에 읽기 봇이라는 뜻밖의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추론과 결정에 들이는 노력을 최소화하는 데 AI만큼 적합한 동료가 있을까. 정보와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AI에게 읽기를 맡긴 다음 그만큼의 시간을 절약했다고 자축하며 더 열렬한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가 되기를 자처한다. 인지적 구두쇠란 정신적 노력을 최대한 아끼려는 인간의 본능을 가리킨다. 그런데 읽기 능력은 자전거 타는 능력과 달라서, 한번 익혔다고 영영 남는 것이 아니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능력이다. 문제는 AI가 이 오래된 본능을 전례 없는 강도로 부추긴다는 데 있다. 매번 깊이 읽고 따지는 대신 AI가 내미는 가장 빠른 지름길과 그럴듯한 요약에 기대다 보면,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는 사고의 근육은 조용히 약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표면의 정보를 더 많이 접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맥락 속에서 읽고 해석하는 능력, 즉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빠졌는지를 가려내는 힘을 잃어 간다. 인지 빈곤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지금 우리는 인류 최초로 인간 지능이 퇴보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인간의 읽기는 AI의 읽기와 어떻게 다른가?”
읽기 공백과 생각의 외주화 현상 앞에
세계적인 언어학자가 던지는 중대한 질문

문자 체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읽기는 꽤 오랜 시간 귀족과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사수해야 할 기득권이었으며, 값비싸고 희귀한 사치품이었고 때로는 차별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20세기에 이르러서도 하와이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읽고 쓸 줄 아는 필리핀 일꾼들을 채용하지 않았다. 읽기 통제의 시대를 지나 불어닥친 독서 열풍은 엄청났다. 사람들은 기차에서도 전쟁터에서도 병원에서도 책을 찾았다. 최초의 공공도서관이 세워지고 도서 큐레이션 서비스가 새로운 사업 모델로 떠올랐다. 한때 소수의 특권이자 차별의 도구였던 읽기가 마침내 만인의 것이 되면서, 인류는 ‘지식의 민주화’라는 거대한 자산을 손에 넣었다. 누구나 텍스트 앞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의미를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야말로 근대가 일군 가장 값진 성취였다.
이 찬란했던 전성기를 뒤로하고, 이제 읽기의 위기는 통계적으로 입증된 추세가 됐다.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및 성인 문해력 추산 데이터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성인의 절반은 문해력이 중학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그중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읽기와 쓰기조차 어려운 기능적 문맹 인구가 4,300만 명에 이른다(2장 ‘독자란 누구인가’ 중에서). 더 뼈아픈 것은 독서량의 하락세가 가장 가파른 집단이 다름 아닌 대학 졸업자라는 사실이다. 이 추세가 가속화하는 데 AI가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자명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읽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앞다퉈 기술에 의존하고 직장에서는 보고서와 계약서를 요약봇에 넘기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AI에게 책과 자료를 대신 읽히며 과제를 처리한다. 방대한 데이터세트를 장착한 AI는 그에 화답하듯 인간의 읽기 영역을 거침없이 뒤흔든다. 여기에는 AI 학습을 둘러싼 저작권 분쟁(오픈AI가 유튜브 영상 100만 시간 분량을 무단 전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이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양 지어내는 ‘환각(hallucination)’ 문제도 뒤따른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AI의 읽기 방식과 인간의 읽기 방식 사이에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AI는 의미를 생성하지 않는다. 그저 통계적 예측을 실행할 뿐이다. 마치 여러 천 조각들을 이어 붙여 옷을 짓듯, 입력된 정보 속 패턴을 파악하고 가장 확률이 높은 단어들을 추출하여 엮는다. 반면, 인간 읽기의 궁극적 목적은 언어적 의미를 도출하는 것이다. 눈앞의 텍스트뿐 아니라 지금껏 읽은 다른 텍스트나 가본 장소, 나눈 대화, 혹은 삶의 경험을 끌어와 의미를 찾는 능력은 인간만의 고유한 재능이다.
오늘날 AI가 인간이 읽고 쓴 결과물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글을 만들어 내고 있는 상황에서 배런 박사는 우리가 AI의 읽기 결과물을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읽기가 선택적으로 생략 가능한 일이 돼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읽기를 건너뛰는 것은 단지 한 단계를 생략하는 일이 아니라, 의미를 구성하고 판단에 이르는 사고의 과정 전체를 통째로 AI에 넘기는 일이다. 읽기를 외주화한 인간은 머지않아 판단마저 외주화하게 된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할지조차 스스로 정하지 못한 채, AI가 건넨 결론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데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력서 평균 검토 시간, 7.4초.
과연 AI의 판단을 믿을 수 있을까?”
읽기 현장에 밀려드는 기술의 향연과 편향 사고 문제

창의적 글쓰기에 관한 한 연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AI가 생성한 글을 ‘인간이 썼다’고 속여 평가하게 했을 때보다 ‘AI가 썼다’고 밝히고 평가하게 했을 때의 점수가 평균 6.2퍼센트 낮았다. 정작 AI 자신은 AI가 쓴 글을 더 선호하는데도 말이다(1장 ‘읽기란 무엇인가’ 중에서). 연구자들은 이를 인간이 글에서 찾는 '진정성'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했다. 읽기란 정보를 옮기는 기능을 넘어, 그 너머의 사람과 의도를 향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 배런 박사는 인간의 읽기를 그 목적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판단을 내리기 위한 읽기와 학교나 직장에서의 의무적 읽기, 즐거움이나 성장을 위한 자발적 읽기, 사회적 연결을 위한 읽기이다. 저자는 이 네 가지 읽기 현장 각각에 AI가 어떻게 파고들고 있는지를 차례로 들여다보며, 우리가 어디까지 맡겨도 되는지를 질문한다.
2018년, 채용 담당자들이 각 지원자의 이력서 검토에 쓴 평균 시간이 고작 7.4초에 불과하다는 한 통계가 나왔다. 그들에게 주어진 인력과 시간에 비해 검토해야 할 지원서 수가 너무나 많은 탓에 벌어진 일이다(4장 ‘판단하기 위한 읽기’ 중에서). 이후 수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AI라는 해결사가 한 줄기 빛처럼 떠올랐다. 출판이나 언론, 법률 등 읽기가 주요 업무인 지식 노동자들은 읽기 봇과 경쟁하는 상황에 놓였다. 읽기 봇이 노동을 덜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일자리 상실의 위험으로 바뀐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타당성과 정확성, 편향성 등의 문제들이 줄줄이 뒤따른다. 실제로 한 AI는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무슬림 대통령’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거짓 정보를 사실처럼 내놓았는데, 그 출처를 추적해 보니 어느 책의 장 제목에 붙은 물음표 하나를 읽어내지 못한 결과였다(4장 ‘판단하기 위한 읽기’ 중에서). AI에게 읽기를 맡기는 순간, 인간이라면 한눈에 걸러냈을 편향과 오류가 그대로 ‘사실’이 되어 흘러나온다.
2024년 기준 미국 대학 입학처의 82퍼센트가 입학 전형에 AI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4장 ‘판단하기 위한 읽기’ 중에서). AI가 대신 써 준 자기소개서를 또 다른 AI가 대신 읽고 평가하는 풍경이 이미 현실이 된 것. 과연 이 선발 과정이 공정하다는 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인간이 창작하고 AI가 평가하는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AI를 활용한 동료 평가를 금지한 미국 국립보건원, 한 권의 책을 15분짜리 ‘핵심 아이디어’로 바꿔주는 요약 플랫폼, AI의 읽기 결과물을 ‘듣게’ 해준 구글의 오디오 개요 기능, 클로드를 이용해 소설을 읽는 아이들, 연구 자료를 수집하는 AI 문헌 조사 에이전트, 자동으로 완성되는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 등 이 책에 담긴 풍부한 사례들은 눈부신 기술의 발전에 대한 놀라움을 자아내는 동시에 인간의 읽기가 설 자리가 이토록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서늘한 두려움을 안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직접 읽고 언제 ‘읽기 봇’에게 맡겨야 할까?

“해리 포터를 ‘직접’ 읽은 아이들의 공감 지수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높다?”
텍스트포칼립스 세상의 다음 숙제, 공감과 고립
그리고 다시 읽어야 할 이유에 대한 지적 선언문

읽기, 특히 문학작품 읽기가 인간의 공감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여러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 해리 포터 시리즈를 활용한 연구에서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세 연령대 모두에서, 영웅 해리에게 자신을 투사한 독자가 악당 볼드모트에 매료된 독자보다 이민자·난민·성소수자처럼 낙인찍힌 집단을 향한 편견이 낮았고, 그 변화가 현실의 행동으로까지 이어졌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문학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공감 능력 테스트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결과가 보고되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6장 ‘자발적 읽기’ 중에서). 읽기는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반응하는 데 분명히 기여한다. 이 두 이야기가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인간 읽기는 인간 사회를 맺고 유지하는 방식과 깊이 얽혀 있다. 배런 박사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를 한 번 더 당부한다. “읽기는 개인에게 가치 있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되는 길을 보여주기도 하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읽기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가치 있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읽기 봇과 공존하는 미래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논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읽어야 하는 이유와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메릴랜드대학교의 영어학 교수 매슈 커셴바움은 “기계가 다른 기계에 텍스트를 무한히 생성하도록 촉진해 인간의 주체성이나 의도가 빠진 합성 텍스트만이 넘쳐나는 세상”에 관한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이를 가리켜 ‘텍스트포칼립스(Textpocalypse)’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우려는 당장 인류가 맞닥뜨린 현실의 문제가 됐다. “AI 생성 텍스트가 인간의 글을 질식시키고, 사람들이 기계와 인간의 글을 구분조차 하지 않게 되면 ‘기술을 지배하는 소수가 정신을 지배하는 정보 불평등 사회’가 될 수 있다(역자 해제 중에서).” 따라서 우리는 “우리 각자가 '어떤 독자가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 읽기 능력을 손에서 놓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묵직하게 일깨우는 이 책은 읽기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전환점이자 ‘그럼에도 직접 읽어야 하는 이유’에 관한 지적 선언문이 될 것이다.

 

출처: 읽지 않는 사람들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