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소개
『안티-오이디푸스』와 함께 들뢰즈, 가타리의 <자본주의와 분열증> 시리즈를 이루는『천 개의 고원』이 번역되어 나왔다. 리좀, 전쟁기계, 영토화, 탈영토화, 재영토화,… 서양 철학 세미나나 현대 프랑스 철학 개론서 등에서 이런 개념들을 들어본 독자들이라면 우선 이 책이 반가울 것이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했던 개념들의 출전을 우리말로 읽어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역자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여러 개이지만, 즉 그 폭이 넓기 때문에 한 가지라도 독자가 파고 들어갈 여지가 있는 반면, 실제로 읽어내기에 만만치는 않다. 비교적 읽기 쉬운 대목도 있고, 섣불리 도전했다가 책장을 덮어버리게 될 부분도 있으므로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자기에게 맞는 부분을 찾아 조금씩 정복해 나가라는 것이 역자의 조언이다.
전부 15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음악, 미술, 문학론, 국가론, 정신분석비판 등 그야말로 철학, 과학, 예술의 모든 분야가 총망라되어 있다. 푸코를 신뢰하는 독자라면 "언젠가 21세기는 들뢰즈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는 그의 말을 믿고 한번 도전해 보자. '천 개의 고원 중 내가 오를 수 있는 고원은 몇 개나 될까?'라는 자세로.
2. 저자 소개
Gilles Deleuze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소르본느 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소르본대학, 리용대학, 벵센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실존주의를 비판하고 헤겔적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에 도전했다. 1995년 갑작스럽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은 책으로 <니체와 철학>(1962), <칸트의 비판철학>(1963), <베르그손주의>(1964),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1968), <차이와 반복>(1968), <안티 오이디푸스>(1972), <천 개의 고원>(1980), <감각의 논리>(1981), <영화1. 운동-이미지>(1983), <영화2. 시간-이미지>(1985), <푸코>(1986),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1988),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 등이 있디.
파리 북서부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청년사회주의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대학에서는 의학과 철학을 공부하였고, 그후 제도적 정신요법의 토대를 실천적이고 이론적으로 생산했던 보르도 정신병원에서 의사로 일하였다. 가타리는 1953년 이래 라캉이 주도하던 세미나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68운동 과정과 그 이후에 라캉의 정신분석이 새로운 흐름을 반동적으로 회수해 가는 것을 보고, 정신분석이 지닌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감지하면서 라캉에게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입장을 차지하게 되었다.
1969년 들뢰즈를 만난 이후 가타리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종합을 시도하였고 비라캉적인 용어들을 가지고 사회정치적 무의식에 관한 이론을 구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횡단성 개념을 통해 구조주의를 공격해 나갔고 점차 분열분석방법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실천을 모색해 나갔다. 68년 혁명 이후 대중의 다양한 욕망분출에 주목하고 기존의 정치가 가졌던 억압적 방식을 비판하고 욕망의 미시정치를 제기하였으며, 국가 장치를 중심으로 한 혁명적 실천을 기계적 작동과 욕망해방이라는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려고 하였다. 가타리는 이러한 분자혁명아린 상을 1980년대 이후 생태학과 카오스모제라는 생선론으로 전개해 나갔다.
저서로는 『정신분석과 횡단성』, 『분자혁명』, 『기계적 무의식』 ,『인동의 세월』, 『분열분석적 지도제작』, 『세가지 생태학』, 『카오스모제』등이 있다.
3. 책 속으로
역자 서문 - 연애에 관하여
이탈리아어 판 서문
머리말
1. 서론 : 리좀
2. 1914년 - 늑대는 한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
3. 기원전 1만년 - 도덕의 지질학(지구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4. 1923년 11월 20일 - 언어학의 기본 전제들
5. 기원전 587년 및 서기 70년 - 몇가지 기호 체제에 대하여
6. 1947년 11월 28일 - 기관없는 몸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 0년 - 얼굴성
8. 1874년 - 세개의 단편소설 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9. 1933년 - 미시정치와 절편성
10. 1730년 - 강렬하게-되기,동물-되기,지각 불가능하게-되기
11. 1837년 - 리토르넬로에 대해
12. 1227년 -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13. 기원전 7000년 - 포획 장치
14. 1440년 - 매끈한 것과 홈이 패인 것
15. 결론 : 구체적인 규칙들과 추상적인 기계들
도판설명
해설 : 방법에 대한 주해
주요 용어 대조표
4. 출판사 서평
들뢰즈와 가타리의 이 책은 '안티-오이디푸스'와 함께 현대 서구 철학의 이정표를 세운 명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국내에 널리 소개되고 있는 두 사람의 사상은 지난 90년대 한국 지성계를 풍미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극단적인 모습과 함께 그것의 한계와 탈출구를 동시에 보여주는 점에서 철학사적으로 독창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안티-오이디푸스'가 아직도 ‘안티’, 즉 반(反)의 ‘부정적 비판’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면 생물학과 지질학, 분자생물학, 위상 기하학부터 시작해 인류학과 고고학의 최신 연구 성과까지 인간의 지성이 구축할 수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새롭게 ‘긍정적으로 종합’하고 있는 이 '천 개의 고원'은 지난 20세기의 인문학의 온갖 모험이 서로 소통하고 접속하고 교통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철학이나 인문학 하면 언뜻 떠올리기 쉬운 방법론(methodology)이나 이데올로기(ideology) 비판 또는 어떤 이론을 구축하는 것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저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우리의 모든 사유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사유하는 방법에 대한 사유(noology)를 겨냥하고 있다. 즉 방법을 정교하게 구축하는 대신 그러한 방법론이 어떤 근거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질문하며, 이념의 논리(즉 ideo-logy)를 찾거나 이를 비판하는 대신 그러한 이념이 어떤 근거에서 발생하는 지를 고고학적으로 탐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전부 15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음악, 미술, 국가론, 문학론, 정신분석비판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일관되게 저자들은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여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아마 이 책의 서론으로 두 저자의 이론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1장의 '리좀'부터 읽기 시작하면 이들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전인미답의 사유의 길을 열어나가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의 비유를 빌리자면 이제까지의 서양의 사유는 일종의 장기 게임과 비슷한 것이었다. 즉 각각의 개체는 특정한 이름이 부여되어 ‘주체’가 되지만 이 주체는 실제로는 가는 길과 역할이 고정되어 있는 노예와 비슷했으며, 게다가 장기의 모든 게임은 국가의 왕을 지키는 것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논리를 ‘나무형 사유’라고도 부르는데, 뿌리와 줄기가 가지와 잎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러한 국가형 사유 모델이 지난 2000년 동안 서구의 현실과 사유를 동시에 지배해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학은 항상 감성-오성-이성으로 연결되어 일직선으로 상승되어야 하며, 이것은 정치에서도 그대로 복제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철학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현인 왕(또는 철학자=왕이라는 이미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양의 사유 방식은 항상 기호학을 법칙으로 하는 위계적이고 중심적이며, 천상적인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궁정의 게임인 장기와 달리 동양의 재야 선비들의 게임인 바둑은 모든 돌=주체가 평등하며, 따라서 왕도 신하도, 주체도 객체도, 또 이미 정해져 있는 길도 없는 유목적 사유의 전형을 보여준다. 즉 최근의 인터넷처럼 모든 돌이 동일한 주체로서 다양한 연결로와 교통망을 통해 평등하게, 또 계속 새로운 사유를 함께 만들 나가며 여기저기서 즐거움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중심도, 주체도, 위계도 없는 사유의 전형인 셈이다. 그리고 장기가 기호학의 법칙을 추구한다면 바둑은 다양한 연결선들의 봉쇄와 차단과 연결과 접속(저자들은 조금 어렵지만 이것을 영토화, 탈용토화, 재영토화 등의 개념으로 부르고 있다)으로 짜여지는 거대한 네트(net)적 사유의 창조 행의 자체인 것이다.
최근 우리는 중심과 질서가 없어져 간다는 비탄조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있지만 두 사람은 이러한 상황을 새로운 창조와 변신의 기회로 멋지게 전환시켜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의 생각은 질서냐 아니면 무질서냐, 또는 국가냐 아니면 아나키냐 하는 대립축으로 문제가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비질서들’의 접속들이 새로운 시대의 모럴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지를 금방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말은 1장의 리좀 대 나무부터 시작해 주체와 다양체, 매끈한 것과 홈이 패인 것, 국가의 포획 장치 대 유목민의 전쟁 기계 등의 새로운 대립쌍으로 변주되면서 기존의 모든 인문학과 사회과학, 고고학, 생물학의 성과들을 재검토하는 멋진 시험지가 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인 푸코는 “언젠가 21세기는 들뢰즈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은 푸코의 그러한 평가가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반증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게다가 다양한 반체계적, 반-시대적 사유들의 접속을 추구하고 있는 이 책은 인터넷과 함께 네티즌의 시대가 열린 지금 우리에게 우리가 열어나가야 할 정신적 지도를 너무나 정확하게, 또 흥미진진하게 그려주는 점에서 바로 시대의 철학을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의 지적 모험을 이렇게 요약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자본주의라는 질서에 대해 저항이 또 다른 질서에 대한 꿈을 낳았으나 또 다른 질서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절망이 무질서로의 급경사(예를 들어 68 운동과 모든 ‘질서’를 거부하는 ‘안티 오이디푸스’)로 이어졌으나 저자들의 말대로 자본주의의 성벽은 워낙 강고한 것이었다(70-90년대 서구의 저항 운동의 침체).
하지만 이제 이들은 네트워크의 시대를 맞이하며 질서도, 그렇다고 또 다른 질서도, 또 무질서도 아닌 무수한 비질서들의 공존과 접속이라는 새로운 사유를 극한까지 밀고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과학에서도 이들은 ‘비정확한 것’의 제거를 위한 기준과 공리론을 중심으로 하는 다수자 과학, 또는 왕립 과학이 아니라 ‘비정확하지만 엄밀한 과학’을 추구하는 유목 과학, 또는 소수자 과학을 추구한다. 앞의 과학은 모든 것을 질서지우고, 서열화하지만 후자의 과학은 다양한 근접한 사유들의 공존과 접속을 겨냥한다. 아마 이만큼 우리 시대의 사유의 풍경과 나아갈 길을 흥미있게 제시하고 있는 철학책도 드물 것이다. 비정확하지만 엄밀한 것에 기반한 비질서의 유목적 사유들과 표준, 기준, 공리를 기반으로 한 왕립 과학의 대결이라는 틀.
‘인문학의 위기’ 운운하는 이 부박한 시대에 두 사람의 이 책은 인문학적 사유가 얼마나 아름답게, 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에 까지 울려 퍼질 수 있는 멋진 방법들을 보여주는 점에서도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과 충격을 던져주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특징을 한가지 더 들자면 그 동안 각 번역본마다 다르게 번역되어온 두 사람의 주요한 개념어들을 완벽하게 한글화시켜 놓았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역자는 plan de consistence라는 핵심적인 개념을 ‘고른판’이라는 말로 하부지층, 상부지충, 메타지층 등으로 추상적으로 번역되어온 개념들을 밑지층, 윗지층, 사이지층 등으로 완전히 한글화시켜 놓았다. 아마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지난 90년대 동안 꾸준히 소개되어 왔지만 막상 좋은 한국어 번역은 만들어내지 못한 우리의 번역 작업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출처 - YES 24,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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