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소개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
생의 마지막까지 지켜낸 한결같은 시의 불꽃
‘국민시인’ 신경림이 남기고 간 숭고한 노래들
“그는 한결같이 곧은 자세, 낮은 목소리로 우리를 위로했다. 앞으로 이와 같은 국민시인이 다시 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2024년 5월 22일, 한국문학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작은 거인’ 고(故) 신경림 시인이 타계했다. 1956년 등단 이후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그들과 함께 걸어온 시인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시인이 세상을 향해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바로 이번 유고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시인의 1주기를 맞아 출간되는 이번 시집은 생전 마지막으로 펴낸 『사진관집 이층』(창비 2014) 이후 11년 만의 신작이다. 그사이 잡지나 신문 등에 소개된 시는 물론, 발표하지 못한 유작까지 모았으며 총 60편의 작품을 도종환 시인이 엮어냈다. 작품들은 삶과 죽음, 사람과 자연 같은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유의 포근한 언어 덕분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번 시집을 통해 우리 시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시를 쓴 신경림이 마지막으로 남긴 깊은 생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신경림 (申庚林)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와 동국대에서 공부했다.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 등이 추천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농무』 『새재』 『달 넘세』 『남한강』 『가난한 사랑노 래』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낙타』 『사진관집 이층』 등과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산문집 『민요기행』 『시인을 찾아서』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시카다상, 만해대상, 4·19문화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민족예술인총연합 의장, 동국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2024년 타계했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제1부
고추잠자리
해 질 녘
당신은 시간을 달리는 사람
숨어 있는 것들을 위하여
꽃밭에서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소요유(逍遙遊)
꽃, 꽃
황야
월야(月夜)
월야 2
그해 초여름
새떼
새떼
귀로(歸路)
제2부
고비에 와서
고비로 가는 길
별이 보인다
별을 찾아서
다시 길로
그리운 나의 신발들
눈이 온다
눈 오는 날
서설(瑞雪)
하얀 점묘
큰 느티나무
올가을에도 둔주(遁走)는
그대 있어 우리들 내일이 춥지 않고
한그루 백양나무를 위하여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눈보라 치기 전에
제3부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들국화
훨훨 새떼가
비대면 시대의 여행
밤은 길고 길지만
꽃구경
미세먼지 뿌연 날
병중(病中)
허공
봄
올해의 꽃구경
둔주(遁走)
동행
룩소르의 달
여우와 하룻밤을
제4부
그날, 아아 그날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제주,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이여
송(頌) 중앙탑
우리는 지금
씨앗처럼 나무처럼 열매처럼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달은 달리고 싶다
원무(圓舞)
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서
내 고장을 푸르게, 이 나라를 아름답게 , 온 세상을 즐겁게
낯선 삶 속에서 우리들 귀는 깊어지고
당신의 부활, 그 찬란한 부활
당신이 꿈꾸던 나라, 당신이 죽어서도 꿈꾸던 나라로
해설|도종환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흙먼지에 쌓여 지나온 마을
멀리 와 돌아보니 그곳이 복사꽃밭이었다
어둑어둑 서쪽 하늘로 달도 기울고
꽃잎 하나 내 어깨에 고추잠자리처럼 붙어 있다
-「고추잠자리」 전문
복사꽃 살구꽃이 피어 흐드러지고 안개를 뚫고 햇살이 스민다. 나는 먼 나라, 더 먼 나라로 가는 꿈을 꾸면서. 당신과 함께 나의 스물에.
종일 나는 거리를 헤맨다. 문득 기차를 타고 가다가 산역에서 내리기도 하고. 모차르트를 듣고 트로츠키를 읽는다. 당신의 눈빛에서 꿈을 놓지 않으며. 당신은 나를 내 나이 서른으로 이끌고 가고.
세상은 어둡고 세찬 바람은 멎지 않는다. 나는 집도 없고 길도 없는 사람. 달도 별도 없는 긴 밤에, 빈주먹을 가만히 쥐어보면 문득 내 앞에 나타나는, 당신은 나의 마흔에서 온 사람.
-「당신은 시간을 달리는 사람」 부분
바위틈에도 돌 틈에도 숨은 것들이 있다.
나무 사이에도 담벼락 사이에도 있다.
꽃들이 숨어 있고 풀들이 숨어 있고 돌들이 숨어 있다.
바람을 피해 햇살을 피해 숨어 있을까, 아닐 게다.
숨어 있어 아름답고 보이지 않아 더 아름답다.
-「숨어 잇는 것들을 위하여」 부분
밝은 눈과 젊은 귀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흐린 눈과 늙은 귀에 비로소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그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끝내는 날이 될지라도.
-「소요유(逍遙遊)」 부분
소백산 풍기로 별을 보러 간다
별과 별 사이에 숨은 별들을 찾아서
큰 별에 가려 빛을 잃은 별들을 찾아서
낮아서 들리지 않는 그들 얘기를 듣기 위해서
별과 별 사이에 숨은 사람들을 찾아서
평생을 터벅터벅 아무것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서
작아서 보이지 않는 그들 춤을 보기 위해서
멀리서 큰 별을 우러르기만 하는 별들을 찾아서
그래서 슬프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별들을 찾아서
흐려서 보이지 않는 그들 웃음을 보기 위해서
-「별을 찾아서」 부분
그리운 것이 다 내리는 눈 속에 있다.
백양나무 숲이 있고 긴 오솔길이 있다.
활활 타는 장작 난로가 있고 젖은 네 장갑이 있다.
아름다운 것이 다 쌓이는 눈 속에 있다.
창이 넓은 카페가 있고 네 목소리가 있다.
기적 소리가 있고 바람 소리가 있다
-「눈이 온다」 부분
어린 시절 나는 일없이 길거리를 쏘다니기도 하고
강가에 나가 강물 위를 나는 물새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카사블랑카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바이칼호의 새떼들 울음소리를 듣기도 했으니까
다 늙어 꿈이 이루어져
바이칼호에 가서 찬 호수에 손도 담가보고
사하라에 가서 모래 속에 발도 묻어보고
파리의 외진 카페에서 포도주에 취하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행복했다, 밤마다 꿈속에서는
친구네 퀴퀴한 주막집 뒷방에서 몰래 취하거나
아니면 도랑을 쳐 얼개미로 민물새우를 건지면서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부분
여름이 오고 다시 겨울이 가고
이렇게 세월은 흐르는 동안 우리는
땅에 튼튼히 뿌리박은 고목이 되었다
철따라 꽃과 잎과 열매를 자랑하기도 하고
추운 겨울날 눈비를 맞받아 이겨내면서
꿈 많은 아이들을 별나라로 이끌고
지친 이웃을 위하여
그늘이 되어주었다
봄이 오고 다시 가을이 가고
이제 우리들 모두 여기
나무처럼 서 있다
빨간 열매로 열린 우리들의 삶
되돌아보면서
씨앗으로 모였던 옛날을 그리면서
씨앗처럼 나무처럼 열매처럼
-「씨앗처럼 나무처럼 열매처럼」 부분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신경림 시인에게 배워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도종환 시인(해설 부분)
가려진 아름다움을 찾아서
마지막까지 사라지는 것들의 편에 선 신경림
시인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밝은 눈으로 시를 썼다. “꽃 뒤에 숨어 보이지 않던 꽃이 보이고, 길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인다”(「해 질 녘」)라는 그의 시적 통찰은, 평생을 어두운 곳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하고 지켜온 그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시인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새로운 것을 찾아, 생명의 별을 찾아 길을 나섰다. 그러나 시인이 찾는 별은 크고 우뚝한 별이 아니다. “별과 별 사이에 숨은 별들”이다. “큰 별에 가려 빛을 잃은 별들”이다. “낮아서 들리지 않는” 존재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서, “작아서 보이지 않는” 그들의 춤을 보기 위해서, “흐려서 보이지 않는”(「별을 찾아서」) 그들의 웃음을 보기 위해서 간다. 그런 까닭에 그의 시는 늘 깊고 진실된 울림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이 서로 어우러져”(「월야(月夜)」)야 한다는 생각, 더럽고 슬픈 것조차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삶과 존재를 향한 무한한 연민과 애정으로 빛난다. “머지않아 가마득히 사라질 것이어서 더 아름답다”(「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역설적인 고백을 통해, 신경림 시인은 독자들에게 삶의 유한성을 긍정하고 현재를 충만히 살아갈 것을 당부한다.
“나는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끝내는 날이 될지라도.”
-「소요유(逍遙遊)」 부분
생의 끝에서도 시는 계속된다
신경림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
시인은 생의 마지막까지 길 위를 걸었다. 병상에서도 길과 사람들을 생각하며 행복하다고 했던 시인은 “빛보다 그늘이 더 빛난다”(「다시 길로」)는 삶의 깊은 진실을 끝없이 찾아 나섰다. “흙먼지에 쌓여 지나온 마을”이 돌아보니 “복사꽃밭이었다”(「고추잠자리」)라는 회고는, 고단한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의 탁월한 시선을 증명한다. 이번 유고 시집은 신경림 시인이 남긴 소중한 유산이자 한국문학이 오래도록 간직해야 할 값진 보물이다. 특히 병상에서 쓴 시들은 생의 끝자락에서 더욱 깊어진 성찰과 순한 연민의 정서를 진하게 담고 있다. 고통과 회한 속에서도 끝내 삶을 긍정했던 시인의 태도는 존재에 대한 겸허하고 단단한 고백이 되어 독자에게 다가온다.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라는 말은 시인이 남기고 간 유언에 그치지 않는다. 언제나 우리 곁에서 살아 있을 위로이자 격려다. 생명이기에 눈물도 있고 땀도 있으며, 그 모든 흔적이 모여 존재의 깊이를 이룬다는 믿음. 신경림의 시는 바로 그 믿음 위에 놓여 있다. 시인이 떠난 자리에 남은 이 시집은, 작고 하찮은 것을 끌어안는 따뜻한 시선과 굽힘 없는 시적 태도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허세도 장식도 없이, 한평생 낮은 곳을 향해 있었던 그의 언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과 조용한 응시를 남긴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짧은 문장이 지닌 울림이 그 어떤 정치적 슬로건이나 도덕적 선언보다 깊고 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신경림이 남긴 마지막 시들은 이제 독자들이 완성시킬 몫이다. 이 시집을 통해 우리는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흔들리면서도 다시 걷고, 슬퍼하면서도 다시 사랑하게 된다. 그것이 신경림이라는 시인이 남긴 가장 인간적인 유산일 것이다.
한편 1975년 출간 이후 한국 민중시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신경림의 첫 시집 『농무』의 특별한정판도 동시 출간된다. 50년 가까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수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전해온 『농무』는 신경림 문학의 출발점이자 정수로, 이번 유고 시집과 나란히 놓일 때 더욱 큰 울림을 전한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가 시인이 남기고 간 불꽃이라면, 『농무』는 그가 평생 추구해온 시의 뿌리다.
출처: 「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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