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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추천도서(23.3~24.2)/2023-5

5월의 추천도서 (3721) 칠층산

1. 저자

저자 : 토마스 머튼

 

1915년 1월 31일, 프랑스 남쪽 프라드에서 태어났다. 무명 화가였던 영국 태생의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938년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1939년 컬럼비아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화려한 작가 생활을 했다. 그는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였으나 대학 시절에는 2차 세계 대전의 불씨를 안은 불안한 시대적 상황 안에서 당시 젊은이들이 겪어야 했던 회의와 좌절에 빠져 무신론자가 되기도 했다. 시를 쓰고 재즈에 열광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내밀한 변화를 겪던 그는 1938년 전격적으로 회두하여 가톨릭으로 개종, 1940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하여 1968년 태국 방콕에서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칠 때까지 수사ㆍ영성 작가ㆍ사회정의 수호자로 살았다.

1948년 자전적 일기 『칠층산』을 시작으로 70여 권의 책을 출간하여 20세기 가톨릭 영성 작가로 자리 잡았으며, 1963년 종교와 관상 기도 연구에 대한 기여로 ‘평화상’을 비롯하여 여러 상을 받았다. 침묵과 고독과 자연 속에서 기도하고 명상하며 관상하고 하느님께 나아간 토머스 머튼의 작품은 30여 개 나라에서 번역되었다. 국내에도 『칠층산』『가장 완전한 기도』『명상이란 무엇인가』『구원의 빛』『침묵 속에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마음의 기도』『양심, 자유 그리고 침묵』『고독 속의 명상』『선과 맹금』『침묵 속의 만남』『신비주의와 선의 대가들』『새 명상의 씨』『영적 지도와 묵상』『묵상의 능력』『삶과 거룩함』『평화론』 『토머스 머튼의 단상』을 비롯한 다수의 서적이 소개된 바 있다.

 

 

옮긴이: 정진석 추기경

 

1931년 12월 서울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4년 가톨릭대학 신학부에 입학, 1961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서 교회법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0년 최연소 주교로 서품되었다

 

이후 28년 동안 청주교구장을 지냈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했다. 2006년 3월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서임되었고, 2007년부터 임기 5년의 교황청 성좌조직재무심의 추기경 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교회법 권위자로서 15권에 달하는 교회법 해설서를 집필했고, 이 밖에도 수많은 저서와 번역서가 있다.

 
2021년 4월에 선종함.​
 
 
● 저서
 

《장미꽃다발》, 《라디오의 소리》, 《라디오의 메아리》, 《목동의 노래》, 《교계제도사》, 《교회법원사》, 《말씀이 우리와 함께》, 《말씀의 식탁에서》, 《간추린 교회법 해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공동 편찬),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해설》, 《전국 공용 교구 사제 특별 권한 해설》, 《교회법 해설》, 《우주를 알면 하느님이 보인다》, 《구세주 예수의 선구자 세례자 요한》, 《모세(상)-민족 해방의 영도자》, 《모세(중)-율법의 제정자》, 《모세(하)-민족 공동체의 창설자》, 《희망을 안고 산 신앙인 아브라함》,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한 성왕 다윗》,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 《안전한 금고가 있을까》, 《가라지가 있는 밀밭》, 《닫힌 마음을 활짝 여는 예수님의 대화》, 《정진석 추기경의 행복 수업》, 《그분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습니다》, 《질그릇의 노래》, 《나를 이끄시는 빛》, 《성숙한 신앙생활》

출처:본문중에서

 

2. 목차

 

머리말
독자에게 알리는 글

제1부
보물섬 찾기 놀이 / 박물관의 성모님 / 지옥의 써레질 / 장터의 아이들

제2부
큰 값을 치르고/ 모순의 바다

제3부
자북磁北 / 진북眞北 / 잠자는 화산 / 감미로운 자유의 맛

후기 - 고독하고 가난한 이의 묵상
옮긴이의 말

 

출처:본문중에서

 

3. 책소개

 

*추천평

 

- 토머스 머튼의 「칠층산」을 읽다 보면 우리 삶을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살아온 숱한 사연들이 나의 인생 이야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이야기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전원 신부)

- 머튼의 삶의 원동력은 하느님을 향한 열망이었습니다. 「칠층산」은 현대 사회의 외로움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속에 하느님에 대한 열망을 일깨울 것입니다.
(오방식 목사)

- 우리 시대의 절박한 영적 표징을 삶의 여정 가운데 온전히 보여주었던 사람. 관상과 실천, 아시아의 종교 심성과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를 통합하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토머스 머튼. 「칠층산」은 그가 겪은 고뇌의 갈피를 통해 영적 회심에 이르는 길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한상봉(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

- 토머스 머튼의 고백록인 「칠층산」을 읽는 독자는 어느덧 자신이 진리를 향한 내적 여정을 따라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삶의 또 다른 지평에 서서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영성을 배운다. 평신도는 내면의 수도복을 입고, 수도자는 내적 자유를 체험한다. 다종교 시대의 영성을 새롭게 연 머튼에게서 우리는 완전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향만 교수)

- 「칠층산」은 하느님께 나아가 하느님 안에서 온전히 죽어 하느님과 하나 되려는 한 영혼의 절실한 희구와 머나먼 여정을 기록한 책으로서 우리 모두로 하여금 저자와 같은 절실한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장은명(번역가)

 

- 오래전인 1975년 5개월가량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머튼의 「칠층산」을 접하고 깊은 감명을 받으며 단숨에 읽었습니다. 문필가로서 그곳 지성인 사회에서 자자한 명성을 누리며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다가 느닷없이 트라피스트 봉쇄 수도원에 입회한 머튼의 행적에 매우 놀라고 궁금해하던 수많은 사람의 의문을 풀어준 이 책은 계속해서 그의 다른 저서들과 지인들의 관련 서적을 찾아 읽게 했습니다. 그 뒤로 오늘날까지 머튼은 미래 인류사회와 전 그리스도교계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가톨릭 영성가로 제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심상태(몬시뇰.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한국토머스머튼연구회 대표)

 

ㆍ 다시 읽고 싶은 명작 3번째 책.

ㆍ 손에 잡기 쉬운 아담한 크기의 양장본으로, 두고두고 읽을 수 있도록 튼튼하게 제본되었으며 책 끈이 있어 편리하다.
ㆍ 1998년에 나온 원서 개정판을 바탕으로 하여 낸 개정판으로서, 칠층산에도 등장 하는 머튼의 친구 중 하나인 로버트 지루의 머리말과, 국제 토머스 머튼 학회 설립회장 윌리엄 H. 섀넌의 ‘독자에게 알리는 글’이 새로 첨가되었다. ‘독자에게 알리는 글’은 독자들이 「칠층산」을 좀 더 편안하게 접하고 머튼이 열정적으로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한 이야기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영성가로서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토마스 머튼 수사가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조금도 숨김없이 기술하고 날카롭게 분석한 감동적인 자서전. 그의 앞길을 가로막던 유혹과 장애에 대한 묘사, 좌절과 실의 속에 방황하던 어두움과 수도원의 황홀한 내적 삶이 담긴 이 자서전은 아름다운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토머스 머튼은 1915년 1월 31일 프랑스 프라드에서 뉴질랜드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둘 다 화가였던 부모님 중 어머니는 머튼이 여섯 살 때, 아버지는 열여섯 살 때 돌아가시고 나서 머튼은 부모도, 고국도, 신(神)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된다. 이따금 종교적 충동을 느끼기도 했으나 그의 생활을 바꿀 정도로 영향을 끼칠 수 없었고, 대학에 들어가 뜻 맞는 친구들과 주로 문학적 활동을 하면서 지내던 중, 에티엔 질송의 「중세철학의 정신」이란 책을 읽다가 자존성(自存性)이란 단어를 통해 새로운 하느님의 개념에 눈뜨게 된다. 이 체험 이후 그는 자신의 삶의 모든 면 안에 하느님의 존재를 차츰차츰 발견해 간다. 처음으로 참례한 미사에서 받은 느낌을 묘사하며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기도 하고, 좀 더 후에는 수도 성소를 느끼게 되어 암중모색해 가면서 내면 여행을 예리한 시선으로 분석하고 털어놓는다.

 

저자가 성소를 찾는 과정에서 찾아가는 수도원과 자연의 풍경 묘사가 내면 묘사와 오버랩되는 장면들은 참으로 의미 추구하는 인간의 행로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결국 하느님의 새로운 개념에 대한 체험은 그를 아주 멀리까지 몰고 가, 결국 트라피스트회 수사가 되기에 이른다. 이 책은 머튼의 하나뿐인 동생 존 폴이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는 것으로 끝난다.

 

 

출처: 「칠층산」 출판사 바오로딸

 

                      독후감

가톨릭 문화산책 <6> 발행일 1991-11-17 제1780호, 16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의「칠층산」 (The Seven Storey Mountain) 1948년에 출간된 자서전으로 흔히 아우구스티누스의「참회록」에 비견되는 영신생활의 기록이다. 자서전은 대개 사람의 만년에 집필되지만 머튼의 경우는 33세에 출간되었고 이후에 평신도와 수도자를 위한 방대한 양의 신앙서적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례가 된다. 그러나「칠층산」의 의의는 23세에 가톨릭에 입교하고 3년후에 트라피스트회에 입회한 젊은 지성인의 정신사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다.

회심(回心) 주제는 그리스도교 문학의 중심 주제일 뿐만 아니라 머튼의 경우 세속적 가치가 팽배한 20세기 문명속에서 우여곡절을 통해 신앙의 빛을 찾았던 만큼 회심의 과정은 더욱 극적이며 감동적이다. 가톨릭 가문에 태어난 사람들이나 성년에 이르러 입교하는 사람이나 삶의 어떤 단계에서 지성과 감성에 근거해 뚜렷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칠층산」의 감동력은 회심을 겪은 이들에게는 친밀한 공감을 느끼게 하고 영적인 확신을 찾아 방황하는 이들에게는 적지않은 감화를 줄것이다.

평신도와 수도자들을 위해 그의 많은 신앙서적에도 금세기 문명과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지만「칠층산」은 성소(聖召) 응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의 세목이 자상히 제시되어 있기에 구체적인 감동을 준다. 프랑스와 영국과 미국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머튼의 삶의 여러 단계는 금세기 전반(前半) 시대적 분위기로 실감을 주며 영혼의 성장과정을 소묘했다는 점에서는 교양소설을 읽는 친근미를 느끼게 한다.

1938
가톨릭에 입교하기까지의 가족사(家族史) 회심과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미국인인 모친은 1921 위암으로 사망하고 뉴질랜드 태생이며 화가였던 부친은 뇌에 악성 종양이 생겨 1930년에 사망하였다. 머튼과 세살 터울 남동생 폴을 보살펴 주던 외조부와 조모는 각각 1936, 37년에 사망하였다. 모친은 퀘이커 교도였고 부친은 종교적 영성과 훈화로 머튼에게 감화를 주었으나 특정 교회의 성원은 아니었다. 머튼의 입교와 이은 트라피스트회의 입회는 종교적 시인들과 신학 서적의 탐독과 로마 성당 순례 등의 복합적 영향에 말미암은 것이지만 조실부모의 시련도 은연한 계기가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종교적 성향을 키워 시인으로는 윌리엄 블레이크, 제랄드 맨리 홉킨즈, 리처드 크래쇼, 단테 등이다. 「칠층산」의 제목은 단테의 「신곡(神曲)」에서 따온 것으로 연옥의 칠층 정죄산(淨罪山) 뜻한다. 일곱 가지의 죄는 「교만, 인색, 음욕, 분노, 탐욕, 질투, 게으름」으로 머튼의 회심이 20세기 문명을 가득 채운 세속적 병폐와 개인적 삶의 실체험에 근거한 윤리적 결단임을 말해 준다. 독자적으로 철학서를 읽은 한편 쟉크 마리땡의「예술과 스콜라철학」, 에띠엔느 질송의 「중세철학」등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유년기와 가족사와 케임브리지, 콜럼비아 대학의 교육과정을 서술하는 머튼의 자서전은 입교 수도자의 시점(視點)에서 구성하고 회상한 것이지만 회심에 이르기까지의 단계를 자세히 추적하되 철학적ㆍ이념적(理念的) 고찰이나 분석보다는 체험적ㆍ감성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성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에서 보는 시간(時間) 대한 철학적 분석같은 순간은 비교적 드물고 유리적 파단과 감성적 열기가 주조를 이룬다.

매우 존경하였으며 많은 감화를 부친의 사망을 회고하며 다음의 구절은 뜨거운 부자간의 정을 견실한 신앙으로 긍정한 것이다. 『나는 어느 날엔가는 살아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를 다시 것을 희망하는 까닭이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그분의 은총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을 구분 자신의 부활의 영광 안에서 살아나게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영혼과 육신은 그분의 신적(神的)상속의 영광에 참여케 권능을 가지고 계심을 나는 믿는다』

은총에 대한 정의도 간결하며 정곡을 찌른다. 『은총은 무엇인가? 이는 하느님의 생명으로, 인간이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생명은 사랑이다』믿음의 은총, 치유의 은총을 기구함은 결국「하느님의 생명」을 구하고 의지하는 일인 셈이다. 2 세계대전으로 위기에 이른 서구문명을 유념함에 있어서도 특정한 세력이나 계급에 책임을 돌리는 대신 개개인의 윤리적 죄에 연관시켜 생각한다. 현대의 혼돈과 폭력과 공허에 맞선 기도의 힘을 묵상함에 있어서도 신령한 섭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드러낸다. 그들의 기도의 (그들의 기도소리 속에 힘을 감추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성령) 탐욕과 허욕과 살인과 색욕과 온갖 죄로 가득 더러운 세상을 내리치려는 하느님의 팔을 놀랍게도 붙잡고 있는 것이다』.

머튼의 자서전은 기억의 자세함과 인물묘사의 흥취와 함께 빈번한 풍경묘사의 () 보여준다.

여러권의 소설 시작(時作) 시인으로서의 관찰및 언어구사력을 상기케 한다. 다음의 구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신앙의 눈으로 파악한 것이며 소박한 물체속에 감동적인 시심(時心) 느끼게 한다. 『어느 꽃이 피든지, 어느 씨가 땅에 떨어지든지, 어느 이삭이 바람에 고개짓을 하든지, 세상 전체에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자비를 설교하지 않는 것이없고 선포하지 않는것이 없다.

1938
입교하여 41년에 수도회에 입회했으니 매우 신속한 결단으로 보이지만 세속의 삶과 성소의 부름에 응답하기까지의 긴장을 묘사한 구절들은 담담한 서술 속에 준렬한 자아성찰과 성직에 대한 강한 매력을 드러낸다.

『나의 보화는 모두 지상에 있었다, 나는 작가, 시인, 평론가, 교수가 되고 싶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지성의 쾌락, 감관의 쾌락을 즐기기를 원했고, 이러한 쾌락을 누리기 위하여는 영적 파멸로 끝날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 처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문필에 종사하며 교단에 서는 일이 경건한 영신생활과 어긋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세속적 삶의 견인력이 매우 강했던 만큼 성직에 대한 갈망이 더욱 절실해 것이 아닐까. 다음의 구절은 수덕생활에 대한 욕구를 표현성 있는 비유와 심리적인 통찰로 훌륭히 표현한다.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식물이 햇별속에 잎사귀를 펴듯, 넓고 깊은 고독속에 잠겨 하느님의 응시속에 파묻히는 삶이었다. 나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고 하느님과의 일치에만 거의 전적으로 지향하는 규칙이 필요하였다.

햇볕 속에 잎사귀를 펴는 식물에 견준 수동적 평화와「하느님의 응시 속에 파묻히는 삶」의 겸손과 행복과「격리」와「지향」에 암시된 영적 필요 결단이 미묘히 어울어져 있다. 이후의 수도생활은 묵상과 기도와 노동과 함께 시작(時作) 저술활동을 포함하였으니 작가, 시인, 평론가, 교수가 되고 싶었던 세속적 야심은「하느님과의 일치」를 지향하는 삶에 의해 성화(聖化)되어 예측치 않은 방향에서 재능의 개화(開花) 보인다. 1944년의「30 시집」과 48년의「칠층산」은 성화된 재능의 첫열매인 만큼「하느님의 응시 속에 파묻히는 삶」의 내용과 의의는 궁극적으로는 세상에 알려지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칠층산」은 1945년까지의 삶을 기록한 것으로 이자서전에는 편의 자작시가 수록되어 있다. 하나는 트라피스트회에 입회하기 직전쿠바 여행에서 얻은 「코블의 성모(聖母) 위한 노래」요, 하나는 1943 전사한 아우를 위해 애가(哀歌)이다.

성모를 위해 노래는 수도생활을 결심한 이의 행복감을 담은 시로 이후의 시작(時作) 터놓은 회심작이며「칠층산」에서는 코블의 대성당을 찾은 성모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타자(打字) 것이라 하지만 시의 해석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없기 때문에 평범한 문체이지만 난해하게 느껴진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시를 읽어오다가 근년에야「칠층산」을 읽으며 시의 뜻을 새로이 묵상하였다.

시는 사상(思想)이나 논리의 적개 대신 이미지 비유에 심경을 담은 것이기에 심경을 파악함에 올바른 접근의 길이 있다. 『백인 처녀들이 나무처럼 머리 쳐들고/흑인 처녀들이 거리에/홍학(紅鶴)처럼 비치며 가네. /백인 처녀들이 물처럼 소리 높여 노래하고/흑인 처녀들이 흑처럼 조용히 이야기하네. /백인 처녀들이 구름처럼 팔을 벌리고/흑인 처녀들이 날개처럼 눈을 감았네.』여기까지가 시의 전반(前半)이고 후반은 이렇게 이어진다-『천사들이 ()처럼 머리 숙이고/천사들이 완구(玩具)처럼 고개를 드네/하늘의 별들이/()이루어서 있기에./모자이크 땅의 조각, 조각이/새처럼 일어나 날아가네.

머튼이 찾아간 코블의 대성당에는「여왕 복장에 관을 명란한 작은 성모님」이 안치되어 있었으니 백인 처녀와 흑인 처녀들의 모티프는 대성당의 방문과 연관된 것이다. 처녀들의 거동과 동작은 자연적 아름다움과 함께「물」과「흙」의 비유가 암시하듯 찬미와 명상의 순간을 상기시킨다. 「구름」처럼 벌린 팔과「날개」처럼 감은 눈도 신심의 수용성과 묵상의 깊이를 시사한다.

여기에 담긴 안심(安心) 기쁨을 파악하면 후속되는 부분은 쉽게 풀린다. 천사들도 하느님의 슬기가 현시된 우주의 질서와 아름다움에 찬탄하고, 모자이크 그림으로 비유된 땅도 높은 세계를 향해 날아오른다. 시는 이처럼 만물의 조화와 신령한 힘을 향한 찬미와 흠숭과 인력(引力) 노래한 것이다.

나무와 홍학에 비겨 거리풍경을 소묘하고 물과 흙의 원소를 언급한 하늘의 구름과 날개와 별에 시선을 옮기고 드디어는 모자이크에 비유된 땅의 상승(上昇)으로 끝맺음으로써 우주의 질서와 신령한 힘의 인력을 암시한다. 혼돈과 폭력이 가득한 지상적 삶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회심이 주는 안심과 희열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이시는 성모(聖母) 향한 열렬한 찬미가이자 수덕생활을 앞둔 머튼의 행복감을 뚜렷이 드러낸다고 하겠다.

코넬대학에 다니는 동생 폴은 형처럼 영적 공허에 시달리다가 수도생활을 시작한 형의 권유와 지도로 세례를 받는다. 카나다 공군에 입대한 그는 실전에 투입되기 직전 결혼까지 하였으나 임무중 북해에 추락되어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사망한다. 「아우를 위해」는「1943 전투 실종되다」의 부제가 시사하듯 실종 소식에 접한 충격과 슬픔을 다룬 작품으로 실종 소식 직후에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망 소식을 들은 애초의 심경을 부각시킨 것일 수도 있다.

『어떤 황량한 연기 자욱한 나라/어디에서 몸을 쓰러뜨렸더냐?/어떤 위험한 풍경속에서/불행한 영혼아 길을 잃었더냐?』이처럼 둘째 구절은 수도생활의 현장에서 아우의 죽음을 애도한 첫째 구절과 함께 실종의 소식만으로도 전사했으리라는 예감을 드러내고 있다.

시는 개인적 서정의 강렬함과 함께 비극적 인간조건을 그리스도교적 고난과 구원의 역사관속에 포섭했다는 점에서 비상한 감동과 보편적 의의를 지닌다.『오라. 고심(苦心)속에 쉴자리 찾고/ 슬픔에 머리 기대라/ 목숨 피를 모두 줄테니/보다 편한 잠자리를 마련하여라-/ 입김 죽음을 네네 줄테니/ 나은 휴식을 취하도록 해라.』이러한 진솔한 표현과 함께 형제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의속에 파악하는 신심으로 위로의 모티프를 제시한다. 『너의 4월의 잔해(殘骸)속에 그리스도는 살해되시고/ 봄의 폐허에서도 울고 계신 까닭이다/ 분이 흘리시는 값진 눈물은/아쉬운 손바닥의 너의 노자(路資)/고향길 찾아 돌아오너라.』이 시의 심원한 슬픔과 궁극적 위로의 정은 부친을 애도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속에 재회를 희망한 구절과 함께「칠층산」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이룬다.

 

이영걸ㆍ미국 세인트루이스대 영문학박사ㆍ현 한국외국어대 영어과교수

 

 

고통 속에 꽃피는 믿음·희망… 우리를 위로하는 고전 명작

2020-04-18 09:18:43|이지혜 기자|가톨릭평화신문

 

침묵과 고독, 자연 속에서 기도하고 관상하며 하느님께 나아간 영성가 토머스 머튼(1915~1968)의 자전적 일기. ‘20세기판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이라고 불린다. 1948년 책이 출판된 이래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됐다. 방황하는 인간의 고뇌와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를 담아낸 아름다운 문학작품이다. 토머스 머튼 수사가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그를 가로막았던 유혹과 장애, 좌절 속에서 방황했던 어둠과 수도원에서의 황홀한 내적 삶이 교차한다.

 

 

 

참 진리 찾아가는 영성가의 삶

2009-04-12 00:00:00|곽승한 기자|가톨릭 신문

 

토머스 머튼(1915~1968, 트라피스트 봉쇄수도원)의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 ‘20세기판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으로 불리는 이 책은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물론 세계 문단에서도 ‘고전 중에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1948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1년 만에 60만부가 팔렸고, 이후 한국어를 비롯한 20여개 국어로 번역돼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켜왔다.

「칠층산」(토머스 머튼/정진석 옮김/바오로딸/856쪽/1만4000원)이 ‘성 바오로 딸 출판사’의 기획물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시리즈를 통해 새롭게 재출간됐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우리말로 옮겼다.

1998년 원서 개정판에 머튼의 친구인 로버트 지루의 머리말과 국제토머스머튼학회 설립회장 윌리엄 H. 셰넌의 ‘독자에게 알리는 글’을 새롭게 추가했다. 또 중?장년층 독자들을 위해 글씨 크기를 대폭 키웠고, 손에 잡기 쉬운 고급 양장본 판형으로 선보여 소장 가치를 더했다.

「칠층산」은 토머스 머튼이 영적 체험을 겪고, 수도회에 입회하기까지의 정신적 여정(旅程)을 그린 작품이다. 깊은 영적 갈망 속에서 주님을 선택한 한 수도자의 내적 고뇌와 번민이 진솔하게 펼쳐진다.

책은 머튼의 삶과 신앙을 추적해 나간 전기(傳記) 형태로 쓰였다. 그러나 인간의 고뇌와 하느님의 섭리가 탄탄한 줄거리 안에서 절묘하게 부각돼 한 편의 문학작품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가톨릭 소설이지만 신앙의 유무에 관계없이 비신자들도 책을 통해 삶의 참된 진리를 새삼 되새길 수 있다.

정진석 추기경은 ‘옮긴이의 말’에서 “머튼의 자전 소설인 이 책은 현대사회에 대한 통찰과 깊은 영성을 다뤘기에 신앙과 종파를 초월해 지식층 전반에 오랫동안 선풍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한국토머스머튼연구회 대표)은 ‘추천사’에서 “1975년 5개월 가량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머튼의 「칠층산」을 접하고 깊은 감명을 받으며 단숨에 읽었다”며 “그 뒤로 오늘날까지 머튼은 미래 인류 사회와 전 그리스도교계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가톨릭 영성가로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바오로딸은 이번 「칠층산」에 이어 월터 J. 취제크의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나가이 다카시의 「묵주알」 등을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시리즈로 준비하고 있다.

 

 

[고전의 향기에 취하다]-(1)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

2009-01-18 00:00:00|성찬경 시인|평화신문

 

방황하는 젊은이라면 칠층산으로 가라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은 웬만큼 독서를 하는 사람치고 안 읽은 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좋은 화제가 되겠다 싶어 몇 마디 얘기를 꺼내보면 의외로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어찌된 영문일까?

 좋은 책은 한 번만 읽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닐진대 안타깝기만 하다. 두 번, 세 번, 아니 여러 번 읽을수록 좋다.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토마스의 이 책은 방황하고 고뇌하는 젊은이와 그러한 젊은이를 하느님께서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가를 참으로 감동적으로, 동시에 매우 문학적으로 저술한 명저다. 어떠한 설명도 책에 쓰인 본문을 직접 음미하는 것만 못하다. 그래서 그러한 감동적 장면을 몇 군데 뽑아서 음미해 본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뉴질랜드인이고, 어머니는 미국인이다. 부모가 모두 화가로 파리에서 만나 혼인해 토마스를 낳았는데 아버지에게서는 세상을 바로 보는 고결한 성품을, 어머니에게서는 다재다능한 성품을 물려받았다고 작가 자신은 술회한다.

 토마스가 여섯 살 되던 해 어느 날 일이다.

 "아버지가 편지 한 통을 나에게 주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나에게 보낸 편지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과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쓰고 있었다. 나는 집 뒤뜰에 있는 단풍나무 아래에서 그 편지를 읽고 또 읽고 결국 무슨 뜻인지 알아내고야 말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절망이 무겁게 밀려왔다. 그것은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릴 수 있는 어린 아이의 슬픔이 아니었다. 몹시 당혹하고 침통한 어른의 슬픔이었다.…"(정진석 추기경 번역 이하 같음).

 이같이 어린 토마스는 일찌감치 인생, 그 사바세계의 신고를 겪는다. 그 후 토마스는 방랑벽이 있는 부친을 따라 이곳저곳을 전전했고, 동생 폴은 외가에서 자랐다. 중ㆍ고교 교육을 프랑스와 영국에서 받을 무렵 토머스 나이 16살 때 부친마저 뇌종양으로 런던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토마스는 그때 고아가 됐다.

 집도 없고, 가족도 없고, 나라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친구도 없고, 하느님도 없고, 천당도 없고, 은총도 없고 하여간에 아무것도 없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1학년을 마치고 외조부의 나라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된 것을 몹시 기뻐한 토마스는 특히 활력이 넘치는 뉴욕과 컬럼비아대학을 사랑하게 된다. 영문과에서 마음에 드는 교수와 친구들에 둘러싸여 학위도 받고, 또 시와 소설 등 많은 습작을 해 장차 문사가 될 기초를 단단히 다졌다.

 토마스는 개신교 집안 분위기에서 컸다. 어머니는 퀘이커 교도였다. 아버지는 종교적 성향이 매우 강한 편이었지만, 특별한 교회에 소속되지는 않았다. 이 무렵 토마스는 출세주의자였고 이따금씩 강한 종교적 충동도 느꼈으나 그래도 무신론자에 가까웠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서도 저자 에티엔느 질송이라는 이름에 끌려 「중세철학의 정신」이란 책을 읽다가 스콜라 철학자들이 예사로 쓰는 무미건조한 용어 중의 하나인 자존성(自存性)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전혀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다.

 "이 개념 덕분에 나는 가톨릭 신앙이 비과학적 시대의 애매모호하고 미신적인 유물이 결코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그런 줄로 믿어왔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가톨릭 신앙의 하느님 개념은 깊고도 간명하며 단순하고도 명확한 것이었다."

 이 정의의 핵심을 가리키는 말이 라틴어로 'aseitas', 영어로도 그냥 음역하여 'aseity'다. 자존성(自存性)이다. 하느님은 "나는 있는 자이다(Ego sum qui sum)"는 말씀과 같이 그냥 있는 존재이며, 존재 자체이며, 따라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연속되는 인과율에서 벗어나서 계신 분이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이 하느님 자신의 원인이라는 논리에서도 완전히 벗어나 계신 분이다. 하느님은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존재 그 자체, 존재하는 순수 현실유(現實有)다. 이런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이 계실 뿐이다. 하느님에 대한, 일반 논리를 뛰어넘는 이러한 정의(定義)는 그 자체가 완벽한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절대 논리에 깨끗이 승복하고, 무조건적으로 하느님께 모자를 벗고 귀의하는 청년 토마스는 얼마나 순수하고 선량하고 총명한가! 구질구질한데라곤 추호도 없는 토마스의 이러한 결심과 선택을 지켜보면서 거의 미학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아마 이 부분이 이 책의 숨은 (화려하게 극적이 아니기 때문에) 정점이 아닌가 싶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로 결심한 후 그는 어느 날 미사에 (영세 전이지만) 참례한다. 첫 미사를 경험하고 난 후의 심경을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다시 브로드웨이를 한가하게 걸었지만 세상에 새로 나온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행복하고 평화스러웠는지, 왜 생의 보람을 새삼 느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나는 확실히 세상에 새로 태어난 것이었다. 컬럼비아의 못 생긴 건물까지도 다르게 보였고, 폭력과 소란이 늘 판을 치던 그 거리 구석구석까지도 어디나 평화로웠다. 111번가 어둠침침한 작은 차일드 식당 밖 지저분한 생나무 울타리 뒤에 앉아 아침을 먹노라니 신선이 땅에 내려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세례를 받기로 결심을 했고, 나아가 수사 신부가 될 결심을 한다. 마침내 봉쇄수도원인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사가 됐지만, 단 하나뿐인 동생 폴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하는 장면에서 이 소설은 끝난다.(전사하기 전에 폴도 세례를 받도록 토머스가 인도했다.)

 1948년 이 책이 출판된 이래 이 책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됐다. 가히 몇십 년 동안 꾸준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 책은 20세기에 쓰인 「고백록」(아우구스티노 성인의)이라는 평을 듣는다. 매우 타당한 비교다. 토마스 머튼의 문체는 간결하고 뜻이 분명하면서도 그 뜻이 또 깊다. 가히 이상적 문체라 할 수 있으며, 꼭 수도자가 지향할 법한 문체다. 나는 머튼의 글을 읽을 때 머튼의 지성이 어딘지 모르게 T. S. 엘리어트의 지성과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토마스의 이 책은 소설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전기적(傳記的)이고, 전기라 하기에는 너무도 재미가 있어 소설적이다. 전편을 통해서 방황하는 인간의 고뇌와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가 절묘하게 부각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