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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25 1기(13.3~18.2)

4월의 추천 도서 (1512) 장준하 문집 1. 민족주의자의 길 - 장준하 문집 간행위원회

 










1. 책 소개

 

장준하 선생의 10주기가 되는 해인 1985년에 김재준, 함석헌, 김성식, 홍남순, 문익환, 안병무, 계훈제, 문동환, 백기완(이상 추모문집 간행위원)은 장준하의 글을 모아서 장준하문집을 펴냈다. 장준하문집은 모두 3권으로 이루어졌으며, 간행위원회는 이 문집 간행으로 이 땅의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염원하시다 산화하신 선생의 신념이 아무쪼록 우리 민중의 가슴 속에 열매로 영글어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염원을 해제(解題)에 쓰고 있다. 다음은 '<해제> 문집을 엮으면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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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온몸으로 실천하시다 한을 품으신채 선생께서 눈을 감으신지 벌써 10. 지난 10년의 세월이 선생의 생명을 앗아간 폭압의 연장이었을진대, 순탄한 역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지난 10년 동안 선생을 위한 정리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변명할 길이 없다. 이제 선생께서 글로 남기시어 우리 모두에게 끼쳐 주신 신념을 한자리에 모아 지난 10년 동안 쌓여 온 우리의 게으름과 부끄러움을 가리려 한다.

일찍이 일본 제국주의를 온몸으로 거부하여 독립투쟁으로 몸을 일으키신 선생은 글만 남기는 지식인이 아니었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민족이 분단되어 동족상잔가지 치르는 민족사 최대의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위기를 부여안고 고민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이셨다. 따라서 선생께서 남기신 글은 그때 그때 실천적 과제를 안고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피땀으로 쓰여진 결정들이다.


출처 - 사단법인 장준하기념사업회

 



2. 책 속으로



1권은 다시 4부로 나누어 민족통일을 염원하시던 선생의 사상적 총화라 할 수 있는 「민족주의자의 길」,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전후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환경과 그 환경 속에서 민족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민족 통일전략의 현 단계」등의 논문이 제1 '민족주의자의 길'에 실렸다. 그리고 제1부의 글들은 선생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내용으로 발표된 연대의 순으로 엮었다.



2 '머리 숙이라 민권 앞에'에는 『思想界』에 실린 「한·일관계의 기형화와 전망」을 비롯하여 『신동아』, 『기독교 사상』, 『씨알의 소리』 및 각 일간지에 실린 글 등 11편의 투쟁적인 정치 논선을 묶었다.



3부에는 선생의 기명으로 나간, 그 유명한 『思想界』권두언을 모았다. 이 『思想界』권두언 모음은 선생께서 서거하신 직후 문익환 목사께서 준비하시다가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되시면서 원고를 압수당해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첫 기명 권두언인 「새해를 맞이하며」(1955 1월호)부터 시작하여 1950년대의 암울한 이승만 독재체제 속에서 4·19 민주혁명의 씨앗을 뿌려가던 시절의 「새 세대를 아끼자」(1956 4월호), 「민주주의를 기원한다」(1956 9월호), 「우리는 특권계급의 밥이 아니다」(1957 6월호), 「자주·자립의 촉진을 위하여」(1958 9월호),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1959 3월호) 등이 실렸으며, 4·19 민주혁명이 성공한 후의 「민권 전선의 용사들이여, 편히 쉬시라」(1960 5월호),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 다시 저항의 붓끝을 가다듬어 세운 「누가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가」(1963 11월호), 「현행 한·일회담을 분쇄하자」(1965 5월호)로 이어지면서 선생의 『思想界』가 비장한 최후를 마치면서 나온 백지권두언(1966 11월호)을 마지막으로 기명 권두언 전부를 연대순으로 엮었다.



1 4부에서는 선생께서 참여하신 좌담회 글 3편을 실었다. 전란 중 부산에서 발간되었던 『思想界』의 전신 『思想』제2(1952 10월호)에 실린 「사상운동의 회고와 전망」, 그리고 20여년 뒤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체제가 기승을 부리던 1970년대 초 『씨알의 소리』(1973 10월호)에 실린 「외래문물의 홍수와 민족문화의 위기」등이다. 좌담회 가운데서도 『씨알의 소리』1972 8월호에 실린 「민족통일을 위한 토론회 - 민족통일의 구상①」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정권 차원이 아닌 민중 차원의 통일운동, 통일논의의 자유확대를 위한 첫 번째 모색이 선생께서 함석헌 선생과 더불어 주도하신 이 토론회였다. 이 토론회에서 제기된 견해들이 그 후 보완, 발전되어 1970년대초 이래 오늘날까지 민주화운동 세력의 민족통일운동론의 큰 줄거리를 형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