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소개
인문학, 자연과학, 행동경제학의 세계가 어우러지는 최고의 인문학교양서!
한국교육방송공사가 오래전부터 야심차게 기획하고 2016년 4월부터 2017년 중반까지 방영되었던 프로그램 『EBS 특별기획 통찰』은 하나의 주제, 서로 다른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통찰을 대한민국 시청자들에게 던져주었다. 기획 단계부터 인문, 사회, 철학, 역사, 문학, 종교, 예술, 교육, 경제, 과학 등 전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국내 명사들이 초빙되어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고, 시청자들의 유례없는 호응이 이어지며 인문과 과학의 융합이 구현된 새로운 대중 콘텐트의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시 동굴에서부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까지, 단테의 『신곡』에서부터 서해 류성룡의 『징비록』까지, 호모 사피엔스에서부터 인공지능 로봇에 이르기까지, 만물의 작은 입자에서부터 우주의 커다란 행성에 이르기까지, 『통찰』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지상(地上)의 인류가 이제껏 만들어낸 거의 모든 지식 논의들이 지상(紙上)에 하나씩 풀어져 나온다. 과학이라는 씨줄과 인문이라는 날줄이 서로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인간의 아름다운 무늬[人文]가 정교하게 제 모습을 드러낼 때쯤 ‘내 안에서 나를 만나는 통찰’이 시작된다.
원시 동굴에서부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까지, 단테의 『신곡』에서부터 서해 류성룡의 『징비록』까지, 호모 사피엔스에서부터 인공지능 로봇에 이르기까지, 만물의 작은 입자에서부터 우주의 커다란 행성에 이르기까지, 『통찰』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지상(地上)의 인류가 이제껏 만들어낸 거의 모든 지식 논의들이 지상(紙上)에 하나씩 풀어져 나온다. 과학이라는 씨줄과 인문이라는 날줄이 서로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인간의 아름다운 무늬[人文]가 정교하게 제 모습을 드러낼 때쯤 ‘내 안에서 나를 만나는 통찰’이 시작된다.
2. 목차
추천사
들어가는 말
1부 인간(Human)
1장_심연의 동굴, 통찰의 시작
2장_인류 문명의 기원, 『길가메쉬 서사시』
2부 자연(Nature)
3장_자연과학에서 인문학을 찾다
4장_과학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3부 역사(History)
5장_지중해 교역이 유럽에 남긴 것
6장_임진왜란과 한·중·일 관계
4부 예술(Art)
7장_단테가 그린 천국과 지옥
8장_미술이 마술이 될 때
5부 상생(Coexistence)
9장_이기적 유전자, 이타적 행동
10장_기생충과 『손자병법』
6부 미래(Future)
11장_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미래
12장_로봇도 윤리적일 수 있는가
1부 인간(Human)
1장_심연의 동굴, 통찰의 시작
2장_인류 문명의 기원, 『길가메쉬 서사시』
2부 자연(Nature)
3장_자연과학에서 인문학을 찾다
4장_과학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3부 역사(History)
5장_지중해 교역이 유럽에 남긴 것
6장_임진왜란과 한·중·일 관계
4부 예술(Art)
7장_단테가 그린 천국과 지옥
8장_미술이 마술이 될 때
5부 상생(Coexistence)
9장_이기적 유전자, 이타적 행동
10장_기생충과 『손자병법』
6부 미래(Future)
11장_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미래
12장_로봇도 윤리적일 수 있는가
출처 : 본문 중에서
3. 책 속으로
“이러한 상인들의 후원으로 르네상스가 도래했다. 그리고 그 르네상스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서 모은 이자로 지탱되었다. 문예사조 뒤에 숨은 상인들의 존재는 찬란한 문화융성기에 이렇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대부업을 하면서 이탈리아 상인들은 계약마다 라틴어로 문서를 남겼는데, 여기엔 누가 얼마를 빌리고 언제까지 갚는다는 상세한 사항들이 실려 있다. 그런데 그 계약서 끝에는 언제나 ‘그라티스 에트 아모레(gratis et amore)’라는 문구를 달아놓았다. 뜻은 ‘은혜와 사랑으로,’ 즉 ‘이자를 받지 않고 공짜로’ 돈을 빌려준다는 뜻이다. 물론 거짓이다. 대놓고 이자를 받을 수 없었던 고리대금업자의 고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공짜를 좋아하는지 그라티스(gratis), 이 단어는 오늘날 영어에도 남아있다.”
―5장, “지중해 교역이 유럽에 남긴 것” 中에서―
“코미디라는 장르는 그리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코미디언들은 당시 권력을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을 풍자해서 웃기는 사람이었다. 사회를 선동하고 세상을 비꼬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항상 부자와 권력자들의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코미디언들은 늘 도시를 쫓겨나 지방을 유랑하곤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보면, 코미디의 유래를 잘 알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 최초로 희극(Komodia)이란 장르를 개발했던 그리스인 작가들은 통치자들의 비난과 시민들의 야유를 피해 도시에서 공연을 하지 못하고 시골마을(Kome)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코미디가 탄생했다. 자 이게 무슨 말일까? 코미디는 본래부터 매우 불온한 장르라는 말이다. ... 단테의 『신곡』이 코미디라는 말은 그것이 중세의 체제를 뒤흔드는 불온한 개념을 담고 있었다는 뜻이다.”
―7장, “단테가 그린 천국과 지옥” 中에서―
“인간을 흔히 호모 사피엔스라 부른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그런데 사유의 존재는 자신의 생존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골몰해왔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나만 아니면 돼’라는 외침. 하지만 그 외침으로 호모 사피엔스를 다 규정할 수 없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호모 사피엔스는 타인의 생존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공생하는 인간,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를 말하는 현대 생물학자들의 결론은 인간의 이타성이 발현되는 지점까지 진화한 인간이 지구의 패자(敗者)가 되었다는 것이다.”
―9장, “이기적 유전자, 이타적 행동” 中에서―
“인생에 도움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아닌데 인간인 끊임없이 놀고자 한다. 그런 인간, 호이징가(Johan Huizinga)가 말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야말로 인공지능 시대 인간이 인간성을 가질 수 있는 절대적 무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계라면 상당히 궁금해 하겠지만, 기계는 놀이를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즐거움과 행복의 정의만 내릴 뿐 놀이에 수반하는 감정을 느낄 수 없으므로 인간의 놀이행위를 신비스럽게 바라볼지도 모른다. 결국 미래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역동적인 일꾼이 아닌 빈둥거리는 한량, 이곳저곳 놀러 다니는 백수가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도 모두 실업자였듯이. 혼자 놀면 범죄자가 되지만 다 같이 놀면 철학자가 될 수 있다!”
―11장,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미래” 中에서―
“코미디라는 장르는 그리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코미디언들은 당시 권력을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을 풍자해서 웃기는 사람이었다. 사회를 선동하고 세상을 비꼬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항상 부자와 권력자들의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코미디언들은 늘 도시를 쫓겨나 지방을 유랑하곤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보면, 코미디의 유래를 잘 알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 최초로 희극(Komodia)이란 장르를 개발했던 그리스인 작가들은 통치자들의 비난과 시민들의 야유를 피해 도시에서 공연을 하지 못하고 시골마을(Kome)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코미디가 탄생했다. 자 이게 무슨 말일까? 코미디는 본래부터 매우 불온한 장르라는 말이다. ... 단테의 『신곡』이 코미디라는 말은 그것이 중세의 체제를 뒤흔드는 불온한 개념을 담고 있었다는 뜻이다.”
―7장, “단테가 그린 천국과 지옥” 中에서―
“인간을 흔히 호모 사피엔스라 부른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그런데 사유의 존재는 자신의 생존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골몰해왔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나만 아니면 돼’라는 외침. 하지만 그 외침으로 호모 사피엔스를 다 규정할 수 없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호모 사피엔스는 타인의 생존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공생하는 인간,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를 말하는 현대 생물학자들의 결론은 인간의 이타성이 발현되는 지점까지 진화한 인간이 지구의 패자(敗者)가 되었다는 것이다.”
―9장, “이기적 유전자, 이타적 행동” 中에서―
“인생에 도움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아닌데 인간인 끊임없이 놀고자 한다. 그런 인간, 호이징가(Johan Huizinga)가 말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야말로 인공지능 시대 인간이 인간성을 가질 수 있는 절대적 무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계라면 상당히 궁금해 하겠지만, 기계는 놀이를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즐거움과 행복의 정의만 내릴 뿐 놀이에 수반하는 감정을 느낄 수 없으므로 인간의 놀이행위를 신비스럽게 바라볼지도 모른다. 결국 미래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역동적인 일꾼이 아닌 빈둥거리는 한량, 이곳저곳 놀러 다니는 백수가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도 모두 실업자였듯이. 혼자 놀면 범죄자가 되지만 다 같이 놀면 철학자가 될 수 있다!”
―11장,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미래” 中에서―
출처 : 본문 중에서
4. 추천사
송길영(다음소프트 부사장)
통찰―꿰뚫어 보다
수십억 년 지구의 역사 가운데 인류가 살기 시작한 시점은 고작 최근 수백만 년 전에 불과합니다. 그 사이 우리는 얼마나 ‘발전’했을까요?
오랜 세월 봉인되어졌던 쇼베 동굴 속 믿기지 않을 만큼 멋진 벽화는 3만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인간들이 오늘날 우리와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알타미라 동굴 벽면에 그려진 황소들을 본 피카소가 “알타미라 이후로는 모든 게 타락뿐”이라고 한탄했다는 본문 속 일화는 원시 인류를 어처구니없이 미개하게만 묘사해온 영화 속 우리의 오만함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깨달음은 법칙의 존재를 희망합니다. 나일 강의 주기적 범람이나 지진과 태풍 같은 자연재해는 우리 조상에게 생존의 불안함을 안겨주었지만, 그 이유를 밝히려는 노력과 논리적인 설명이 이성적 사고의 출발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건 짐승 가죽을 뒤집어쓰고 길흉화복을 점치던 제사장의 역할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는지 모릅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과학이 그 명료함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자, 너나 할 것 없이 수학과 물리 법칙이 우리 삶을 기획하고 예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수고를 덜어주던 역할에서 신의 영역인 불로장생의 비밀을 밝혀내는 역할로 나아가지 않을까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익숙함과의 결별, 새로움이 주는 두려움에 대한 거부, 그리고 생경함에 대한 무한한 탐구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내 기득지로부터 비롯됩니다. 구전에 의해서, 그리고 문자를 통해서 남겨진 윗세대의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신화 속 시지포스와 같은 천형을 다시 겪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아이작 뉴턴이 1675년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에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라고 한 명언 역시 최소한 12세기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니 그 표현마저도 ‘거인의 어깨’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도 출신의 천재적인 수학자 라마누잔은 시대적 한계와 교육의 부재라는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른 두 살의 불꽃같은 삶을 송두리째 수학에 바쳤습니다. 이를 두고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죠. “라마누잔은 한 권의 수학교과서를 가지고 현대수학을 통째로 재창조했다. 만약 그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정규 교육과 정보 교류가 원활한 지금의 환경이 천재의 업적을 몇 배나 키워주었으리라 확신하는 건 아마도 주커버그만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
불과 한 세대가 지나지 않는 동안, 정보 접근과 정보 공유가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대가 왔습니다. 필경사에 의해 필사된 한 권의 책이 집 한 채 가격에 팔리던 때와 비교해 보면, 공부가 너무나 손쉬운 세상이 온 것입니다. 매일같이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데이터를 쉴 새 없이 만들어 빛의 속도로 정보 구름에 저장합니다. 논리적 사고의 얼마쯤은 전자두뇌에게 양여해도 될 시대가 온 듯합니다. 마치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동방견문록과 나침반, 항해술의 발전”이 “항해혁명”을 이루었듯이 생물학과 컴퓨터과학, 인공지능의 발달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내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요?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를 갖고자 하는데 아이러니스트(ironist)는 그 어휘를 철저하게 의심하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아이러니스트가 필요한 시대라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시대의 관성에서 벗어나 습관화된 어휘가 아닌 독창적인 ‘나만의 어휘’를 정하는 일이 내 고유성을 지키고 존재의 의미를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마지막 어휘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답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멋진 아이러니스트처럼 말이죠.
그럼 나만의 어휘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를 위한 출발점이 ‘질문하라, 질문하라, 그리고 질문하라! 바로 자신에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통찰을 위한 근원적 질문의 한 예는 극단적 생경함을 위해 남태평양 어느 섬으로 홀연히 떠났던 한 화가의 마지막 작품이 품고 있던 제목에서 발견됩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1897)」_Paul Gauguin
수십억 년 지구의 역사 가운데 인류가 살기 시작한 시점은 고작 최근 수백만 년 전에 불과합니다. 그 사이 우리는 얼마나 ‘발전’했을까요?
오랜 세월 봉인되어졌던 쇼베 동굴 속 믿기지 않을 만큼 멋진 벽화는 3만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인간들이 오늘날 우리와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알타미라 동굴 벽면에 그려진 황소들을 본 피카소가 “알타미라 이후로는 모든 게 타락뿐”이라고 한탄했다는 본문 속 일화는 원시 인류를 어처구니없이 미개하게만 묘사해온 영화 속 우리의 오만함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깨달음은 법칙의 존재를 희망합니다. 나일 강의 주기적 범람이나 지진과 태풍 같은 자연재해는 우리 조상에게 생존의 불안함을 안겨주었지만, 그 이유를 밝히려는 노력과 논리적인 설명이 이성적 사고의 출발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건 짐승 가죽을 뒤집어쓰고 길흉화복을 점치던 제사장의 역할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는지 모릅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과학이 그 명료함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자, 너나 할 것 없이 수학과 물리 법칙이 우리 삶을 기획하고 예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수고를 덜어주던 역할에서 신의 영역인 불로장생의 비밀을 밝혀내는 역할로 나아가지 않을까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익숙함과의 결별, 새로움이 주는 두려움에 대한 거부, 그리고 생경함에 대한 무한한 탐구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내 기득지로부터 비롯됩니다. 구전에 의해서, 그리고 문자를 통해서 남겨진 윗세대의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신화 속 시지포스와 같은 천형을 다시 겪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아이작 뉴턴이 1675년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에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라고 한 명언 역시 최소한 12세기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니 그 표현마저도 ‘거인의 어깨’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도 출신의 천재적인 수학자 라마누잔은 시대적 한계와 교육의 부재라는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른 두 살의 불꽃같은 삶을 송두리째 수학에 바쳤습니다. 이를 두고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죠. “라마누잔은 한 권의 수학교과서를 가지고 현대수학을 통째로 재창조했다. 만약 그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정규 교육과 정보 교류가 원활한 지금의 환경이 천재의 업적을 몇 배나 키워주었으리라 확신하는 건 아마도 주커버그만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
불과 한 세대가 지나지 않는 동안, 정보 접근과 정보 공유가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대가 왔습니다. 필경사에 의해 필사된 한 권의 책이 집 한 채 가격에 팔리던 때와 비교해 보면, 공부가 너무나 손쉬운 세상이 온 것입니다. 매일같이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데이터를 쉴 새 없이 만들어 빛의 속도로 정보 구름에 저장합니다. 논리적 사고의 얼마쯤은 전자두뇌에게 양여해도 될 시대가 온 듯합니다. 마치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동방견문록과 나침반, 항해술의 발전”이 “항해혁명”을 이루었듯이 생물학과 컴퓨터과학, 인공지능의 발달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내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요?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를 갖고자 하는데 아이러니스트(ironist)는 그 어휘를 철저하게 의심하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아이러니스트가 필요한 시대라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시대의 관성에서 벗어나 습관화된 어휘가 아닌 독창적인 ‘나만의 어휘’를 정하는 일이 내 고유성을 지키고 존재의 의미를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마지막 어휘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답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멋진 아이러니스트처럼 말이죠.
그럼 나만의 어휘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를 위한 출발점이 ‘질문하라, 질문하라, 그리고 질문하라! 바로 자신에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통찰을 위한 근원적 질문의 한 예는 극단적 생경함을 위해 남태평양 어느 섬으로 홀연히 떠났던 한 화가의 마지막 작품이 품고 있던 제목에서 발견됩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1897)」_Paul Gauguin
출처 : 교보문고
5. 출판사 서평
-여기 질문하실 분 있나요? 오바마가 한국 사회에 던진 화두는?
-그리스 철학자들은 모두 과학자였다? 과학자를 왜 ‘자연철학자’로 불렀을까?
-단테, 지옥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그대만의 별을 따라가라!”
-미술이 마술이 될 때, 그리스 고전주의가 덕수궁 석조전에 부린 마술은?
-인공지능을 만난 호모 사피엔스, 4차 산업혁명과 로봇윤리학의 미래는?
-나라의 기초, 심연을 본 사람, 고대 영웅 신화를 통해 배우는
-지중해 상인들은 유럽 문화에 무엇을 남겼나? 르네상스가 상인들의 손에서?
『EBS 특별기획 통찰』이 말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시각 '통찰'
청년실업, 가계부채, 인구절벽, 초고령화 사회, 흙수저론
시대의 갈림길에서 엄혹한 난제들을 날카로운 통찰로 꿰뚫어본다!
삼포시대, 이태백, 청년실업, 가계부채, 인구절벽, 초고령화 사회! 모두 한국사회를 표현하는 말들이다. 젊은이들은 ‘흙수저,’ ‘헬조선’을 외치고, 3040 가장들은 사다리가 없는 상황에 눈물을 삼킨다. 여기에 북한은 세계 각국의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연일 미사일을 동해상으로 쏘아올리고 있으며, 지하 핵실험을 통해 주변국들을 한껏 긴장시키고 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이 시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을까? 있다면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동굴(洞窟)은 통찰(洞察)의 자궁이었다!”
동굴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삶을 시작했던 장소다. 자궁에 탯줄로 이어진 태아처럼 어두운 동굴 속에 웅크리고 숨어든 인류의 조상들은 거기서 인류 최초의 사유를 시작했다. 바로 그곳에서 무수한 존재의 질문들을 쏟아냈고, 해답을 찾으려 인간은 스스로를 성찰했다. 동굴 속에서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행위가 통찰인 셈이다. 쇼베 동굴에서 벽화를 그리며 ‘열정(passion)’을 발견하고, 동굴을 나와서 도시를 세우며 ‘공감(compassion)’을 얻은 호모 사피엔스는 단테의 『신곡』을 통해 천국과 지옥을 그리며 지중해 역사와 임진왜란을 통해 온고지신을 터득한다. 미(美)는 본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 이전부터 있었다. 피카소에게 모든 예술은 데카당스일 뿐! 결국 인간의 배움 역시 파괴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삶 중심의 공부’ vs ‘앎 중심의 공부’”
근대 이후 인문학의 언어와 자연과학의 언어는 서로 소통이 안 된 채 자기 독백만 반복했다. 인문학은 자연과학의 냉소 가득한 시선을, 자연과학은 인문학의 회의 섞인 눈초리를 던질 뿐이었다. 그러나 삼라만상의 실재를 파악하는 일에 삶 중심의 공부와 앎 중심의 공부 모두가 필요하다. 고전경제학이 말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행동생물학에서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신체를 숙주 삼아 생존하는 기생충에서 과거 『병법』의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인공지능에게 윤리학이 가르치는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인간과 자연, 철학과 과학이 바라보는 지점에서 문과와 이과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는 인간 지성의 답변을 들어본다.
“인간의 미래, 과연 예측 가능한가?”
인간의 과학은 과연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이야기는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알파고와 같은 초지성체의 등장으로 기계 스스로 ‘딥 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무한히 자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측은 오로지 신의 영역일까? 현대 양자역학이 말하는 코펜하겐 해석에 왜 슈뢰딩거는 고양이를 꺼내들었고,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을까? 야심차게 준비한 신간 『EBS 특별기획 통찰』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 물음을 고민하고 선별된 여섯 가지 핵심 주제로 그 해답을 더듬어가는 가운데 독자들은 여느 인문학 서적에서도 쉽게 얻지 못한 지적인 깊이에 포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EBS 특별기획 통찰』은 우리 시대 최고 지성들의 혜안과 통찰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소중한 경험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모두 과학자였다? 과학자를 왜 ‘자연철학자’로 불렀을까?
-단테, 지옥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그대만의 별을 따라가라!”
-미술이 마술이 될 때, 그리스 고전주의가 덕수궁 석조전에 부린 마술은?
-인공지능을 만난 호모 사피엔스, 4차 산업혁명과 로봇윤리학의 미래는?
-나라의 기초, 심연을 본 사람, 고대 영웅 신화를 통해 배우는
-지중해 상인들은 유럽 문화에 무엇을 남겼나? 르네상스가 상인들의 손에서?
『EBS 특별기획 통찰』이 말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시각 '통찰'
청년실업, 가계부채, 인구절벽, 초고령화 사회, 흙수저론
시대의 갈림길에서 엄혹한 난제들을 날카로운 통찰로 꿰뚫어본다!
삼포시대, 이태백, 청년실업, 가계부채, 인구절벽, 초고령화 사회! 모두 한국사회를 표현하는 말들이다. 젊은이들은 ‘흙수저,’ ‘헬조선’을 외치고, 3040 가장들은 사다리가 없는 상황에 눈물을 삼킨다. 여기에 북한은 세계 각국의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연일 미사일을 동해상으로 쏘아올리고 있으며, 지하 핵실험을 통해 주변국들을 한껏 긴장시키고 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이 시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을까? 있다면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동굴(洞窟)은 통찰(洞察)의 자궁이었다!”
동굴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삶을 시작했던 장소다. 자궁에 탯줄로 이어진 태아처럼 어두운 동굴 속에 웅크리고 숨어든 인류의 조상들은 거기서 인류 최초의 사유를 시작했다. 바로 그곳에서 무수한 존재의 질문들을 쏟아냈고, 해답을 찾으려 인간은 스스로를 성찰했다. 동굴 속에서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행위가 통찰인 셈이다. 쇼베 동굴에서 벽화를 그리며 ‘열정(passion)’을 발견하고, 동굴을 나와서 도시를 세우며 ‘공감(compassion)’을 얻은 호모 사피엔스는 단테의 『신곡』을 통해 천국과 지옥을 그리며 지중해 역사와 임진왜란을 통해 온고지신을 터득한다. 미(美)는 본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 이전부터 있었다. 피카소에게 모든 예술은 데카당스일 뿐! 결국 인간의 배움 역시 파괴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삶 중심의 공부’ vs ‘앎 중심의 공부’”
근대 이후 인문학의 언어와 자연과학의 언어는 서로 소통이 안 된 채 자기 독백만 반복했다. 인문학은 자연과학의 냉소 가득한 시선을, 자연과학은 인문학의 회의 섞인 눈초리를 던질 뿐이었다. 그러나 삼라만상의 실재를 파악하는 일에 삶 중심의 공부와 앎 중심의 공부 모두가 필요하다. 고전경제학이 말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행동생물학에서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신체를 숙주 삼아 생존하는 기생충에서 과거 『병법』의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인공지능에게 윤리학이 가르치는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인간과 자연, 철학과 과학이 바라보는 지점에서 문과와 이과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는 인간 지성의 답변을 들어본다.
“인간의 미래, 과연 예측 가능한가?”
인간의 과학은 과연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이야기는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알파고와 같은 초지성체의 등장으로 기계 스스로 ‘딥 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무한히 자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측은 오로지 신의 영역일까? 현대 양자역학이 말하는 코펜하겐 해석에 왜 슈뢰딩거는 고양이를 꺼내들었고,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을까? 야심차게 준비한 신간 『EBS 특별기획 통찰』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 물음을 고민하고 선별된 여섯 가지 핵심 주제로 그 해답을 더듬어가는 가운데 독자들은 여느 인문학 서적에서도 쉽게 얻지 못한 지적인 깊이에 포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EBS 특별기획 통찰』은 우리 시대 최고 지성들의 혜안과 통찰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소중한 경험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베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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