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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추천 도서(21.3~22.2)/2021-12

12월의 추천도서 (3225) 또 하나의 조선

1. 책소개

 

밑바닥 여종에서 저 높은 왕비까지
산골 촌부에서 한양 마님까지
10대 소녀에서 여든 할머니까지…

남성들의 나라에서 한평생을 살아내고
때로는 경이롭게 운명을 넘어선 여자들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조차 버거웠던 시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취를 남긴 52명의 조선 여성이 있었다. 《또 하나의 조선》은 신분상으로는 밑바닥 여종에서 왕비까지, 지역으로는 남녘 산골 촌부에서 한양 마님까지, 나이로는 10대 소녀에서 여든 할머니까지, 정사(正史)라고 하는 실록이나 양반 남성의 문집으로 구성되는 조선 ‘너머’의 조선을 담았다. 조선이라는 역사 공간에서 여자로 살았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조선 여성들의 일반적인 삶’이란 착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렇듯 그들 또한 각기 다른 환경과 맥락 속에 놓인 감정과 욕망의 주체였다. 특정한 유형이나 이미지로 규정할 수 없는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존재였다. 장희빈, 대장금, 황진이처럼 널리 알려진 인물들을 비롯해 ‘음란하고 아름다웠던’ 낙안 김씨, 당대에선 드물게 여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긴 성장기의 주인공 숙희, 마을을 돌며 근심을 위로했던 무녀(巫女) 추월, 상속받은 액수의 세 배로 재산을 불린 ‘자산 관리의 달인’ 화순 최씨 등 시대의 한계와 인간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여성들의 다채로운 서사가 《또 하나의 조선》을 이룬다. 그 서사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조선이라는 사회의 정신과 만나는 동시에 도도히 흐르는 인간 근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인 저자 이숙인은 〈한겨레〉에 2년간 연재했던 [이숙인의 앞선 여자]를 묶고 보강한 이번 책을 통해 말한다. “자료가 남아 있어도 주목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사소한 기록 하나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었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 책은 짧게나마 기록에 남은 자들을 통해, 소외되었던 여자들을 기억하려는 시도이다.”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저자 : 이숙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 가족과 여성 중심의 연구 시각으로 조선시대 사상사를 기획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유교경전의 여성사상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를 지냈고, 여러 대학에서 동양철학 및 한국철학을 강의해왔다. 근래에는 전문 연구의 대중화에 의미를 두고 다산연구소의 〈실학산책〉, 〈한겨레〉의 〈이숙인의 앞선 여자〉 등의 칼럼을 써왔고, 시민을 대상으로 한 동아시아 문화와 한국학 강좌에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 《정절의 역사》 《신사임당》이 있고, 공저로 《조선 여성의 일생》 《노년의 풍경》 《일기로 본 조선》 《선비의 멋 규방의 맛》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열녀전》 《여사서》 《오륜행실도》와 공역으로 《역주 묵재일기》(전6권) 등이 있다. 

출처:교보문고

 

3. 목차

 

들어가는 말

1. 구체적으로 살고 입체적으로 존재하다
피난길의 담대한 꿈, 남평 조씨
솔직한 모성, 신천 강씨
평범했으나 숭고한 삶, 김돈이
대적하는 짝, 송덕봉
가려진 재능, 신사임당의 두 손녀
칼 대신 붓을 든 이유, 풍양 조씨
근원적 고통에 대한 유대, 여비 춘비
사랑으로 쓴 성장의 기록, 손녀 숙희
마을을 돌며 근심을 위로하다, 무녀 추월
유모의 인생역전, 봉보부인 백씨
자산 관리의 달인, 화순 최씨
선비 아내의 내공, 문화 류씨
알 수 없는 탁월함, 송씨 부인
다산의 아내로 산다는 것, 홍혜완
귀양지에서 다산을 되살리다, 소실 홍임모母

2. 성녀와 마녀의 프레임을 넘어
마음의 주체가 되다, 허난설헌
시대를 초월하는 시대정신, 황진이
임금의 마지막을 지킨 어의녀, 대장금
공동체를 위한 한 줄기 빛, 논개
시련에도 잃지 않은 예의, 정순왕후
가부장 권력을 내 편으로, 소혜왕후
조선과 중국의 경계인, 한계란
7개월 만에 ‘구성된’ 죄, 폐비 윤씨
사실은 평범한 여인, 장희빈
성공을 향한 몸부림, 정난정
뒤늦게 위로된 슬픔, 세자빈 강씨
사랑이라는 영원한 주제, 도미 부인

3. 닫힌 운명에 균열을 내다
부당한 이혼 요구에 맞서다, 신태영
혈통의 허상을 드러내다, 옥비
성범죄 피해자의 사적 복수, 김은애
사족 여성의 사생활, 함안 이씨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는 국가, 환향녀 윤씨
감정과 욕망의 주인, 여비 돌금
죽음으로 얻은 명예의 역설, 박씨 부인
집단 광기의 제물, 신숙녀
열녀 만들기 프로젝트, 배천 조씨
아름답고 음란하게, 낙안 김씨
임금의 새벽잠을 깨운 촌부, 윤덕녕
참을 수 없는 희롱, 여비 향복
사족의 민낯을 까발리다, 유감동

4. 시대의 틈에서 ‘나’를 꽃피우다
보고 느끼고 기록하라, 남의유당
가문의 영광을 만든 여자, 서영수합
사람을 만드는 교육, 이사주당
집안일의 지식화, 이빙허각
삶의 성리학자, 임윤지당
퇴계학 중흥의 어머니, 장계향
여성 불교의 적극적인 힘, 이예순
남편의 스승이 되다, 강정일당
고통을 글로 치유하다, 김호연재
낙방거사를 품은 여걸 시인, 김삼의당
천하를 품에 안은 소녀 여행가, 김금원
대정 벌판의 따뜻한 바람, 정난주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이른바 생열녀(生烈女) 조씨의 자기 기록은 2백 자 원고지 5백 장 분량에 담겨 있다. 이름하여 〈자긔록〉이다. (…) 이 기록은 남성 문사들의 붓끝에서 나온 그간의 열녀가 여성 그 자신의 진실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열녀가 된 여성들이 과연 남성들이 찬양해온 그런 존재, 즉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의(義)을 향해 장렬하게 죽은 굳센 의지’의 소유자인가 하는 것이다._51쪽

공부 외에 집안일을 즐겨 하지 않는 숙희를 할아버지는 개의치 않았다. 숙희는 봉제사·접빈객의 노동에 묻혀 죽도록 일만 하고 배움과 지식에서 차단되었다고 하는 조선 여성과는 다른 모습이다. 열두 살의 숙희는 언문을 잘하기로 소문이 났다. 조부에게 글을 배우러 오던 열다섯 살 손응상이 언문을 공부하면서 숙희에게 배움을 청했다. 이 사실은 동생 숙길을 통해 할아버지에게 보고되었다. 중간에 말 심부름을 한 노비들이 볼기에 장(杖) 10여 대씩 맞았고 응상은 쫓겨났다. 숙희 또한 할머니에게 종아리 10대를 맞았다._64쪽

영화나 소설 속 유모가 자신이 기른 아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정도였다면 백씨는 욕심이 많고 수완이 좋았다. 이에 봉보부인에 빌붙어 벼슬을 구하려는 자들이 모여들었다. 문을 활짝 열어 그들을 상대한 결과, 가산은 점점 불어났고 궁중에 출입하는 날이면 추종하는 자가 길에 가득했다. 왕과 자주 대면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위치의 봉보부인은 관찰사, 이조참판, 병마절도사 등을 청탁하여 따냈다._76쪽

자료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황진이에 관한 많은 부분은 실재라기보다 허구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1505~1506년 즈음에 태어나 40년 남짓 살다간 중종 연간(1506~1544)의 인물이라는 것 외에 출생이나 행적들에 대해서는 이야기마다 제각각이다. (…) 물론 세월이 갈수록 부풀려지거나 새로워졌다는 것이지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시에 등장하는 벽계수나 소세양 등도 그녀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사람들이다._121~122쪽

중종의 신뢰 속에서 장금의 의술은 점점 정교해져 10년이 지나자 대장금이라 불리며 내의녀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된다. 다시 20년이 흐른 중종 39년(1544)에는 이른바 어의녀(御醫女)로 임금을 진료하고 약을 의논하는 일을 맡는데 여의로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예순 안팎은 되었을 것이다. 장금이 실력 있는 의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노력이 크지만 무엇보다 세종 이후 훌륭한 여의를 기르고자 한 제도적인 노력이 큰 몫을 했다._129쪽

여기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그 어떤 권력과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도미 부인의 정절에 있다. 그런데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폭력적인 장면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사기》의 시대, 즉 12세기 사람들의 정서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그 하나는 여자를 걸고 남자들이 ‘내기’를 한다는 점이다. 왕 개루와 평민 도미, 왕의 신하가 그 남자들이다. 특히 개루와 도미는 신분으로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지만 여자를 ‘거래’하는 ‘남자’라는 점에서는 동류다._187쪽

신태영의 법정 투쟁에서도 보듯 그때도 지금처럼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는 무리가 있었고, 그때도 지금처럼 송사의 원칙을 지키며 약자를 위한 공감의 정치를 펼친 정치가들이 있었다. 진실과 가치 편에 선 정치가들이 있었기에 ‘윤리의 적’으로 매도된 신태영이 살아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부당한 요구에 맞선 신태영의 의지와 노력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 친분과 여론 몰이를 통해 신태영의 이혼이 합법화되던 분위기에서 자기 변론의 기회를 얻은 신태영은 수천 마디에 달하는 공초를 올림으로서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이다._200쪽

국왕 정조가 김은애의 행위에 주목한 것은 성범죄의 피해자이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만연했던 시대에 용기와 기백으로 자신의 무죄를 입증코자 했다는 데 있다. 김은애의 시대인 18세기는 성폭력은 물론 추문으로도 자결을 선택하는 여자들이 많았는데 정조도 그런 사건들을 자주 접하고 있었다. 왕은 은애의 행위가 생사를 초월하여 기절을 숭상한 열국 시대 섭정(攝政)의 누이에 비유된다고 하고, 사마천이 다시 태어난다면 〈유협전游俠傳〉 말미에 은애를 포함시킬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왕은 김은애의 행위에서 협객의 풍모를 읽은 듯하다._211~212쪽

돌금은 성미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주로 상전의 며느리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돌금이 며느리를 업신여겨 말을 거역하고 혹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거짓으로 꾸민다. 너무 화가 나 천택을 시켜 등 30대를 때리게 했다.”(1553년 9월 18일) “돌금이 매번 며느리에게 화를 낸다기에 불러 꾸짖고 다른 비(婢)를 시켜 입가를 잡아당기고 귀밑털을 흔들고 머리채를 잡아끌고 다니게 했는데 오만함을 징계하기 위해서다.”_231~232쪽

최상층 신분의 김씨가 아들딸 손자까지 두고 환갑에 이른 마당에 재혼을 감행한 것은 남들보다 욕망이 다소 과한 점도 있지만 두세 번 시집가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던 시대였기에 가능했다. 그래도 자식 보기에 민망했는지 몰래 추진하다가 혼인 당일에야 자식들과 한바탕 몸싸움을 벌인다._254쪽

간통남의 이름은 투옥된 감동이 하나하나 불면서 나온 것인데 ‘추가된 간부 명단[加現夫]’이 사흘 거리를 두고 발표되는 식이었다. 5명으로 시작된 명단이 계속 늘어나는 바람에 한 달이 넘도록 조정과 재야가 벌집 쑤신 듯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족 부녀 유감동이 창기(倡妓)를 자처하며 수십 명의 상대남과 간통 행각을 벌인 이유가 궁금했다._273쪽

많은 글 중에 남편과 나누는 시가 한 편도 없는 것이 흥미롭다. 시와 함께 술과 담배 또한 그의 ‘걱정스러운 창자’를 품어주었다. 자신을 “즐거움도 슬픔도 없는 술 취한 한 미치광이[無樂無非一醉狂]”로 표현하고, “취하고 나니 천지가 넓고, 마음을 여니 만사가 그만일세”라고 한다._333쪽

14세의 금원은 긴 여행길에 오르는데 부모의 허락을 얻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허락이 떨어지자 남장(男裝)을 하여 원주 집에서 출발하는데 “갑자기 흉중이 호연해지며 매가 새장에서 나와 바로 하늘 높이 올라가는 듯하고 천리마나 재갈에서 벗어나 바로 천 리를 치닫는 기세였다”라고 한다. 그녀는 왜 ‘보통사람’으로 살지 못하고 여자들, 특히 처녀들에게 금지된 바깥세상을 그토록 꿈꾸었을까._342쪽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성녀도 마녀도 아닌 ‘한 인간’의 자취,
그 다채롭고 도도한 힘을 만나다

이 책의 1부 ‘구체적으로 살고 입체적으로 존재하다’는 자신의 운명 안에서 나름대로 개성 있게 살았으나 ‘시대가 주목하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여겨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일례로 경북 지역에서 칠십여 생을 살다 간 신천 강씨는 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점잖게 박제된’ 양반가 여성의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첩을 들인 남편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강씨의 목소리는 500년 전을 살던 한 여성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날것 그대로 전한다.

“뒤로 갈수록 편지의 내용은 과격해진다. ‘오로지 그년에게 붙어서 당신 것을 맡기니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싶구나. 아마도 나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니 속절은 없다.’ 강씨는 또 자신의 서러운 뜻을 남편과 자식이 모르고 있고, 또 늘 용심이 나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울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 사족 마님은 품위를 지키느라 무심한 척 애를 쓴다.”_23쪽

사족 이문건가의 여비(女婢)였던 춘비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다. 35세 전후에 몸에 종기가 퍼지기 시작해 두 달 만에 숨을 거둔 그녀를 ‘주인’ 이문건은 살려보려 애쓰며 시시각각 모든 상황을 세세하게 적어둔다. 사극에서 노비들은 그저 충직하거나 말이 없고 기록에서도 보통 소유주의 물목에 불과한데, 이문건의 시선에 담긴 춘비는 투병 중 ‘소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동시에 근원의 고통과 두려움을 호소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이문건의 ‘기록벽’ 덕에 존재의 흔적을 남기게 된 여성들이 이 책에 여럿 등장한다. 신분을 넘어선 인간 유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춘비를 비롯해 또 다른 여비 돌금과 향복, 이문건이 30년간 쓴 일기의 여자주인공인 아내 김돈이, ‘단골’로 거래했던 무녀 추월, 애지중지하던 손녀 숙희 등이다. 이들을 연결하는 이문건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우리가 과거의 인물을 불러낼 때 ‘하나의 틀’에 가두지 않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 사족 남성 이문건은 자상한 남편이자 손녀·손자를 살뜰하게 보살피고 훌륭하게 길러낸 조부인 동시에, 노비를 부릴 때는 누구보다 매정하고 심지어 어린 여비를 강간하기까지 한 사내다. “이러한 이중성에 더하여 자기 주변의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에 관한 가장 진지한 기록을 남긴 소중한 자료원”(7쪽)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역사 속 인물을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은 2부 ‘성녀와 마녀의 프레임을 넘어’에서도 돋보인다. 허난설헌, 대장금, 논개 등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여성들도 낯선 맥락 속에 배치될 때 기존의 도식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다. “우리의 삶이 인과적 순서를 밟아 계획대로 펼쳐지지만은 않듯, 이들의 삶도 우연과 필연의 길항 속에서 어둠과 밝음이 교체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6쪽) 황진이는 남성의 시각으로 재단되어온 ‘사랑의 화신’이나 ‘성녀(聖女)’ 같은 상징을 벗고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거듭난다. 저자는 또한 우리에게 폐비 윤씨로 더 잘 알려진 제헌왕후가 ‘현숙한 왕비’에서 도저히 중전 자리에 둘 수 없는 악녀가 되는 데 걸린 고작 7개월의 시간을 쫓아가며, ‘구성된 죄’의 전후를 살핀다. 장희빈에게서 300년 넘은 ‘악녀’ 꼬리표를 떼어낸 뒤, 그녀가 냉엄한 역사 현장에서 겨우 열 살 남짓한 아들의 미래를 기원했던 평범한 여자였음을 설명하기도 한다. 정난정, 정순왕후, 소혜왕후 등도 복잡다단하고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 섬세하게 재발견된다.

“여성이지만 ‘여성’을 넘어서야 했던 소혜왕후는 시시각각 모순된 상황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남편에게 순종할 것을 주장하면서 남성을 계도하여 정사를 행한 역사 속 여걸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자신의 책이 ‘민간의 우매한 여자들에게까지’ 널리 읽히기를 바라면서 그 내용은 주로 남성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서술은 학식과 정치적 감각을 두루 갖춘 이 여성 앞에 펼쳐진 세계 자체가 하나의 역할만을 고집하기에는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 아닐까.”_149~150쪽

역사는 ‘그들’로만 기록될 수도 있지만
세계는 ‘그들’만으로 구성될 수 없다

확장하고 진화하는 페미니즘과 백래시(backlash, 사회·정치적 변화에 반발하는 심리 및 행동)의 물결이 공존하는 오늘날, ‘공식적인’ 가부장제 사회에 각자의 방식으로 균열을 시도했던 여성들의 상처와 성취를 동시에 들여다보는 일은 더 의미 깊다. 3부 ‘닫힌 운명에 균열을 내다’에서는 주로 그 치열한 분투를, 4부 ‘시대의 틈에서 나를 꽃피우다’에서는 크고 작은 성취를 볼 수 있다. 성범죄 가해자를 직접 응징하고 자수한 김은애, 20세에 과부가 되어 늙고 가난한 시부모를 부양하던 중 ‘음란하다’는 헛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씨 부인, ‘열녀’가 당사자의 뜻이라기보다 다양한 시선에 의해 주문되고 제작됨을 보여주는 배천 조씨 등은 지금의 우리가 과연 그들로부터 얼마나 나아갔는지, 또는 얼마나 겹쳐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조정과 재야의 수많은 남자와 간통한 혐의로 투옥된 유감동이 지방으로 쫓겨나 종적을 감춘 데 비해, 그 많은 간부(奸夫)들은 시간이 지나자 슬금슬금 다시 요직으로 복귀해 나라를 이끌었다는 사실에선 결코 낯설지 않은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련한 처지의 박씨를 희롱하고 능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김조술, ‘정의란 무엇인가’를 던져 놓고 간 그의 죽음도 전혀 의미가 없진 않았던 셈이다. 이 역사적 사례를 통해 다시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2백 년 전 피해자 박씨가 그랬던 것처럼 성범죄 피해에서는 여전히 자기 파괴적으로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다. 성범죄 피해자의 명예는 죽어야만 회복되는 것인가. 죽어도 회복되지 않은 명예는 누구의 몫인가.”_238~239쪽

한편, 시대의 한계와 운명에 기꺼이 도전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가슴 벅찬 울림을 준다. 여자들의 외출이 엄격히 규제됐던 사회에서 ‘여행’에 승부를 건 두 여성, 남의유당과 김금원이 만들어낸 풍경들은 호쾌하고 통쾌하다. ‘밥이나 하고 옷이나 만들던’ 여자들의 일을 지식의 영역으로 체계화한 이빙허각, 당시 일반적이던 도피로서의 여성 불교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여성 불교의 힘을 보여준 이예순, 글과 시로 고통을 치유하고 존엄을 회복한 김호연재와 김삼의당 등은 강하고 명민한 여성들의 아름다운 성취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여자’였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다르게 욕망하고 행동했던 52명을 통해 오늘의 독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미래를 고민하게 된다. 역사는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소외하는가. 한 사회를 성찰하고 그 속의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 하나의 조선》이 존재했듯이 지금 이 순간 발견되지 않은 ‘또 하나의 한국’은 어디에 있을까.

“남의유당은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리 강했고 사람 사는 모습에 관심이 많았다. 여염집과 장터 구경은 물론 달 밝은 밤이면 망루에 올라 경관을 즐기는데, 마치 관내를 시찰하는 장수처럼 호방하게 굴다가 관아로 돌아오곤 한다. 방 안에 널려 있는 침선(針線) 거리를 보고서야 자신이 규방 여인이라는 사실에 박장대소한다.”_285쪽

 

출처: 한겨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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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조선: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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