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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추천 도서(21.3~22.2)/2022-1

1월의 추천도서 (3246) 마르크스와 함께 푸코를

1. 책소개

 

아래로부터의 공통의 전략을 위해,
푸코의 진실과 마르크스의 진실은 함께할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 현존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로 꼽히는 자크 비데의 신간 『마르크스와 함께 푸코를: 메타구조란 무엇인가』는 마르크스와 ‘함께’ 푸코를 읽을 것을 제안한다. 이는 둘 사이의 상보성을 인지하는 것, 둘 사이의 잠재적인 마주침의 지점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주의가 탐험하지 않고 내버려둔 착취의 어떠한 측면에서 푸코를 추수하는 것, 그리고 마르크스의 것이었던 전체적 관점 내에 푸코의 작업들을 재기입하는 것이다.

전작 『마르크스의 생명정치학: 푸코와 함께 마르크스를』(오월의봄, 2020)이 마르크스에서부터 출발해 푸코에게로 도달하는 방식으로 푸코와 마르크스를 결합했다면, 이 책은 푸코에서부터 출발해 마르크스에게로 도달하는 방식으로 푸코와 마르크스를 결합한다. 요컨대 전작이 푸코의 사상을 배경으로 삼고 메타-마르크스주의를 실천하는 저작이라면, 이 책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배경으로 삼고 푸코의 철학을 연구하는 저작이다. 이를 통해 비데는 푸코-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 아래 결국 메타구조론 그 자체를 완성한다.

 

출처:교보문고

 

2. 저자

저자 : 자크 비데 (Jacques Bidet)

1935년 프랑스 출생. 프랑스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연구자이자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 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에티엔 발리바르와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알튀세르의 사상을 계승해 전 세계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기여해 왔다. 알튀세르는 생전에 비데의 작업을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에 공헌하는 중요한 시도로 인정한 바 있으며, 발리바르 역시 비데를 지속적으로 참조하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 「『자본』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1985)에서 구축한 ‘메타구조적 접근’ 혹은 ‘메타구조론’을 논문 출간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메타-마르크스주의’라는 또 다른 이름 아래 꾸준히 발전시켜 왔고, 특히 『근대성의 이론: 마르크스와 시장』(1990), 『일반이론』(1999), 『『자본』에 대한 설명과 재구성』(2004)에서 그 접근법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존 롤스와 정의론』(1995), 『세계-국가』(2011), 『마르크스와 함께 푸코를』(2014)에서는 이 메타구조적 접근을 존 롤스의 철학, 세계-체계, 미셸 푸코의 철학 등으로까지 확장했다. 『신자유주의: 또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2016)에서는 그런 이론 틀 안에서 동시대 신자유주의를 헤게모니 체제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했고, 『‘그들’과 ‘우리’?: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하나의 대안』(2018)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좌파 포퓰리즘을 둘러싼 논쟁에 개입한 바 있으며, 『마르크스의 생명정치학』에서는 『마르크스와 함께 푸코를』의 논의에 기반해 ‘노동법 (개악) 투쟁’이라는 구체적인 정세에 실천적으로 개입했다.
국내에는 박사학위 논문이 『『자본』의 경제학, 철학, 이데올로기』(1995)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어 한국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밖에도 제라르 뒤메닐과 함께 쓴 『대안마르크스주의』(2014)가 번역되어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본서와 짝이 되는 저서인 『마르크스의 생명정치학』이 『마르크스의 생명정치학: 푸코와 함께 마르크스를』(2020)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출처:교보문고

 

3. 목차

 

서문-왜, 그리고 어떻게, 마르크스와 푸코를 결합하는가?

1장 푸코/마르크스 쟁론: 규율과 통치 가능성
2장 소유-권력과 지식-권력
3장 마르크스적 구조주의와 푸코적 유명론?
4장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와 푸코의 ‘자유주의’

결론을 위한 요소들-아래로부터의 전략
부록-‘메타구조’란 무엇인가?
옮긴이의 글-푸코를 위하여 마르크스를 읽자: 자크 비데의 메타/구조론과 포스트-포스트-마르크스주의
찾아보기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따라서 나는, 하나의 동일한 이론적 구축물 내에 이 마르크스의 접근과 푸코의 접근을 모두 함께 포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매우 위험천만한 하나의 기획, 전쟁의 천재라면 아마도 이 표현에 부여할 그러한 의미에서의 ‘하나의 힘 조작’[즉 마르크스의 사상과 푸코의 사상을 인위적 힘을 가해 절합시켜 보는 ‘조작’ 혹은 ‘작전’]을 시도해 볼 것이다.
_14쪽

푸코는 계급관계와 그 재생산이 아니라, 개인에 의한 다른 개인에로의 그리고 특히 공적 혹은 사적 제도가 자기의 대상으로 취해 통제[관리]하고 노동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는 그러한 개인에로의 ‘계급’(푸코 자신이 이 용어를 사용한다) 권력의 실행을 고려한다. 푸코는, 이 제도가 예속화assujettissement 기능과 억압적 차원을 지녔음에도, 그 안에서 인구가 문화와 역량puissance에서 더 우월한 형태로 상승되는 그러한 합리적 장치를 확립하는 본성을 이 제도가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본질적인 한 부분에서는, 사회과학 그 자체의 기원적 중핵이다. 감옥의 경우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경우에서, 규율은 권력에 상관적인 지식, 즉 지식-권력의 작동을 자신의 상관항으로 지닌다. 이것은 동시에 새로운 지배의 질서이기도 한 것으로서의 새로운 이성이 취하는 질서이다. 전체적으로, 그리고 특히 이러한 양가성과 관련해, 푸코의 논의는 마르크스의 논의와 가족유사성을 지니는데, 이 마르크스의 논의 또한 지성의 억압자이자 동시에 그만큼 지성의 요인이기도 한 자본주의에게, 이 자본주의 자신으로부터 빚지고 있는 바를 되돌려 주고자 한다.
_52~53쪽

나는 푸코의 개념성을 대상으로 다시 작업함으로써 이러한 질문들에 답변하고자 시도할 텐데, 이 푸코의 개념성이 취하는목표는 분명 이러한 관점으로 정식화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푸코가 (마르크스의 기획을 다시 의문에 붙임과 동시에) 마르크스의 기획을 이러한 방향으로 확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푸코는 현대사회의 중심에서 자본과 평행하게 존재하는, 권력과 지배의 또 다른 극autre po?le을, 그러니까 지식-권력의 극을 식별한다(2.1). 푸코는 이 지식-권력이라는 극에 고유한 하나의 이론화, 지식과 권력을 절합하는 하나의 이론화를 우리에게 제공한다(2.2). 그리고 푸코는 이 지식-권력이라는 극에 대한 비판 또한 생산하는데, 이 비판은 이 지식-권력의 지배에 대항할 수 있게 해주는 무기들을 우리에게 제공하고자 함과 동시에 이 지식-권력을 사회적 해방을 목적으로 동원하고자 한다(2.3).
_106~107쪽

사회와 개인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 사회학의 이러한 고전적인 문제, 이렇듯 이질적인 두 철학에 대한 준거를 통해 극화되는dramatise? 이러한 문제는 여기에서 하나의 예리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두 작업이 증거하는 개념적 노동과의 관계 속에서, 마르크스를 구조에 관한 하나의 현실주의 내에, 푸코를 존재와 사물[즉 실재]에 관한 하나의 유명론 내에 정당하게 가두어버릴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양자택일로부터 드러나는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정치적 선을 하나의 선이 다른 하나의 선에 대립되는 방식으로 그어내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어떠한 조건 속에서, 이 두 개의 정치적 선을 모두 그 어떠한 절충주의에도 빠지지 않으면서 하나의 정치적 길-그 안에서 다양한 사회적 전복 전체가 스스로를 인지할 수 있을-이 취하는 부조화하면서도 분리 불가능한 두 요소로 떠맡는 결론으로 향해 가는 이론적 시련을 기도할 수 있는가? 이 두 개의 개념성 모두에 내재하는 한계에 관한 하나의 비판적 분석, 이 두 개의 개념성이 하나의 일반이론 내로 통합되는 것이 불가능함을 표현하는 이러한 한계에 관한 하나의 비판적 분석은 필수적 전제로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3.3).
_193쪽

우리 시대 고유의 ‘사회적 생산성’이라는 바로 이러한 도식에서부터 출발해, 나는 이 마르크스와 푸코 각자의 사고방식을 비교하고 이 사고방식들 간 모순을 넘어 서로의 사고방식을 절합하고자 한다. 결국 우리의 질문은 현대적이고 동시대적인 이 세계와 그 미래에 관한 이해를 위해 이 [대문자] 자본주의, [대문자] 자유주의, [대문자] 신자유주의라는 이름들이 지니는 가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이름들은 인식의 도구인가 인식론적 장애물인가? 이 개념들로부터, 그리고 사회과학과 정치철학의 전장 위에서 전개되는 이 개념들 간의 경쟁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_280쪽

이제 우리는 서론에서 언급된 우리의 출발점 ‘인민 내부의 모순’으로 되돌아온다. 물론 우리는 모두 소유와 지식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항상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을 잘 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소유와 지식에서 현대 계급권력의 두 가지 요인을 읽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개념들은, 서로에 대해 적대적인 철학들에 의거하는 경향이 있으며 인간 해방에 관한 서로 분기하는 판본들을 제시하는 이질적인 이론적 접근[즉 푸코의 접근과 마르크스의 접근]에 속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에게서 영감을 얻는 이들과 푸코에게서 영감을 얻는 이들이 자신들 사이에서 전략적 관점에서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전혀 쉽지 않다.
_347쪽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메타구조적 정사각형에서 출발해
마르크스와 푸코를 재독해하는 시도

푸코와 마르크스. 우리가 두 이름을 연결하는 것은 많은 경우, 이 둘을 대립시키기 위해서다. 노동자 운동의 이론가이자 총체성의 철학자인 마르크스에게, 특이성과 미시-권력의 사상가이자 숨을 헐떡이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격렬한 비판가이기도 한 푸코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현존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로 꼽히는 자크 비데의 신간 『마르크스와 함께 푸코를: 메타구조란 무엇인가』는 마르크스와 ‘함께’ 푸코를 읽을 것을 제안한다. 이는 둘 사이의 상보성을 인지하는 것, 둘 사이의 잠재적인 마주침의 지점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주의가 탐험하지 않고 내버려둔 착취의 어떠한 측면에서 푸코를 추수하는 것, 그리고 마르크스의 것이었던 전체적 관점 내에 푸코의 작업들을 재기입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지식-권력’에 기대어 있지 않은 ‘소유-권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계급관계를 떠받치지 않는 규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통치성 속에서 희미해지지 않는 국가란 존재하지 않으며 ‘조직’ 없는 ‘시장’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렇다.
전작 『마르크스의 생명정치학: 푸코와 함께 마르크스를』(오월의봄, 2020)이 마르크스에서부터 출발해 푸코에게로 도달하는 방식으로 푸코와 마르크스를 결합했다면, 이 책은 푸코에서부터 출발해 마르크스에게로 도달하는 방식으로 푸코와 마르크스를 결합한다. 요컨대 푸코의 사상을 배경으로 삼고 메타-마르크스주의를 실천한 저작과 마르크스의 사상을 배경으로 삼고 푸코의 철학을 연구하는 저작이 짝을 이룬다. 이러한 비데의 작업은 푸코-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 아래 결국 메타구조론 그 자체를 완성한다. 그리고 이 모든 시도는 비데 사상의 정수를 집약하는 ‘메타구조적 정사각형’에서 출발한다.
비데는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에티엔 발리바르와 마찬가지로 알튀세르의 충실한 이론적 제자이지만, 발리바르가 마르크스주의의 탈구축에 더 방점을 찍는 것과 대조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유연하게 탈구축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의 유산에 더욱 고집스럽게 머무르려 한다. 《마르크스와 함께 푸코를》은 비데의 이러한 메타구조론의 관점에서 푸코와 마르크스를 이론적으로 치밀하게 화해시키려는 시도다. 비데는 마르크스를 메타구조적 관점에서 재독해해 메타-마르크스주의를 구축하고, 이 메타-마르크스주의의 공백을 푸코의 철학으로 메운다.
마르크스와 푸코 사이의 ‘쟁론’은 아카데믹한 질문들의 핑곗거리로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투쟁의 지형 위에서 푸코와 마르크스는 서로 교차한다. 자크 비데가 말하듯, 우리에게는 ‘아래로부터의 공통의 전략을 위해’ 푸코의 진실과 마르크스의 진실 서로가 서로를 들을 수 있게 만드는 과업이 여전히 남아 있다.

 

출처: 생각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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