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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추천 도서(18.3~19.2)

9월의 추천도서(2017)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 밀턴 마이어


1. 책 소개


열 명의 나치를 통해 침묵과 방조의 역사를 파헤친다.

나치 시대를 이해하는 필독서『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나치와 히틀러의 잔혹상이 남아 있던 1955년 처음 출간 된 이 책은 당시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지금도 세계적으로 나치 시대를 이해하는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저자 밀턴 마이어는 패전국 독일을 찾아 열 명의 나치 가담자와 심층적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완성했다. 예리한 통찰과 분석으로 나치즘이 무기력한 수백만 명 위에 군림한 악마적인 소수의 존재가 아니라 다수 대중의 동조와 협력의 산물이었음을 밝혀낸다.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와 그 추종자인 소수의 전횡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이 책의 저자는 대다수 독일인은 나치즘의 피해자가 아닌 공범죄라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대다수 독일인들이 히틀러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나치 정권의 정책을 지지하며 권력을 안겼으며 반유대주의와 반공주의 선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비극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황금기라고 믿었던 히틀러 시절, 유대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생긴 반유대적 감정과 나치 전력자들의 책임의 외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인간은 불의에 맞서야 함을 항변한다. 자신이 인터뷰한 평범한 독일인들은 그저 무난히 살아가려는 바람 때문에 부패하게 되었다고 지적하며 전후 독일의 나치 가담자들의 말과 생각을 통해 비극의 근원을 밝히고 이를 막기위한 시민적 행동을 촉구한다.

처 : 교보문



2. 저자


저자 밀턴 마이어(Milton Sanford Mayer)(1908~1986)는 미국의 언론인 겸 교육가이며, 《프로그레시브》에 오래 연재한 칼럼니스트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시카고에서 개혁파 유대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시카고 이브닝 포스트》 등 여러 매체에서 기자로 일했는데, 1939년 10월 7일자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게재한 「나는 이 일에서 빠져야 할 것 같다(I Think I’ll Sit This One Out)」로 널리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는 1950년에 퀘이커교도가 되었는데, 1960년대에는 국무부의 규정에 따라 ‘충성 맹세’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여권 발급이 취소되어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시카고 대학, 매사추세츠 대학, 루이스빌 대학은 물론이고 해외 여러 대학에서도 교편을 잡았고, 시카고 대학 총장 출신의 교육가 로버트 M. 허친스가 설립한 ‘민주주의 제도 연구 센터’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전쟁세에 반대하는 작가 및 편집자 선언문」에 서명하였다. 마이어는 1986년에 자택이 있는 캘리포니아 주 카멜에서 사망했다. 그의 저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이 책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1955년에 출간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나치 시대를 이해하는 필독서로서 꾸준히 읽히고 있다. 마이어의 다른 저서로는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What Can a Man Do?)』, 그리고 모티머 애들러와의 공저인 『교육 혁명(The Revolution in Education)』 등이 있다.

처 : 교보문


3. 목차


서문 

1부 열 명의 남자 
크로넨베르크 이야기 
1638년 11월 9일 / 1938년 11월 9일 
1장 열 명의 나치, 비극의 방관자 
2장 나치가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다고 믿었다 
3장 히틀러와 나 
4장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5장 입당자들, 3월 한철의 제비꽃들 
6장 반공주의라는 종교, 공산주의보다는 독재를! 
7장 “우리는 우리의 피로써 생각한다” 
8장 반유대주의라는 악마가 선잠에서 깨워나다 
9장 사라진 유대인들, “모두가 알았다”와 “아무도 몰랐다” 
10장 기독교인의 의무로서 반유대주의 
11장 뉘른베르크의 탄식, 그들은 뉘우치지 않았다 
12장 주권자 국민이 익숙치 않은 독일 
13장 그들이 처음 찾아왔을 때 
14장 그때 충성선서를 거부했다면… 
15장 광기: 하인리히 힐데브란트, 전후에야 참상을 알았다 
16장 광기: 요한 케슬러, 영혼을 잃다 
17장 광기: 튜턴 족의 분노, 빗나간 애국적 낭만주의 

2부 비극을 자초한 독일인의 초상 
폭염, 민족성의 우화 
18장 어쨌거나 나치는 독일인의 성격에서 만들어졌다 
19장 독일인의 무거운 짐, 꽉 막혀버린 변경의 역사 
20장 “피오리아가 무엇보다 우선이다” 
21장 새로 이사 온 아이 
22장 새로 이사 온 두 아이, 독일인과 유대인 
23장 국가사회주의, 굶주린 토양의 열매 
24장 위험한 이상 
25장 혁명이 부재한 역사, 규율과 질서의 강박 

3부 그들의 원인과 치료법, 독일은 어떻게 치유될 것인가? 
재판, 뒤늦은 판결 
1948년 11월 9일 
26장 헤르만 괴링이 헤르만 마이어가 된 이후 
27장 사람은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 
28장 강매된 민주주의와 자유 
29장 히틀러를 위해 시작했으나 이제는 미국을 위해… 
30장 모든 독일인이 하룻강아지는 아니지만 
31장 평화를 놓고 벌어지는 줄다리기 
32장 “우리가 러시아인과 똑같다는 거야?” 
33장 마르크스가 미헬에게 말을 걸다 
34장 계산 못한 위험, 나치즘만큼 위험한 군국주의적 반공주의 

감사의 말 
1966년 서문 
옮긴이의 말

처 : 본문 중에서


4. 책 속으로


나는 독일 사람들을, 그러니까 내가 어려서 독일을 방문했을 때에 알았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고, 그제야 나치즘이 단순히 무기력한 수백만 명 위에 군림하는 악마적인 소수의 독재가 아니라 오히려 대중운동이라는 사실을 난생처음으로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아돌프 히틀러라는 인물을 과연 내가 보고 싶어 했던 나치로 간주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찾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평범한 독일인이었다.(p.10) 

우리가 아는 나치즘은 노골적이고 철저한 폭정이었으며, 그 신봉자를 타락시키는 한편, 그 적과 신봉자 모두를 노예로 삼았다. 테러리즘과 테러가 공과 사를 가리지 않고 일상에 만연했다. 모든 조직마다 개인이나 집단의 난폭한 불의가 자행되었다. 하지만 이 평범한 독일인은 나치즘을 우리와 전혀 딴판으로 알았으며, 지금까지도 전혀 딴판으로 안다.(p.78) 

내 친구들의 의견을 보면, 아돌프 히틀러는 1943년까지, 또는 1941년까지, 또는 1939년까지만 해도 독일에 좋은 일을 해주었다. 그의 전략에 대한 저마다의 평가에 따라서, 그가 좋은 일을 했던 시기는 저마다 다를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그가 독일에 얼마나 나쁜 일을 저질렀는지는, 단지 지금의 독일을 바라보기만 하면 쉽게 알 수 있다. (pp.108∼109) 

제가 만약 1935년에 선서를 거부했더다면, 그건 결국 독일 전역에서 저와 같은 사람 수천수만 명이 선서를 거부했다는 의미였을 겁니다. 이들의 거부는 결국 수백만 명의 마음을 움직였을거에요. 그랬다면 정권은 전복되었을지도 모르고, 최소한 애초에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1935년에 제가 차마 저항할 채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야말로, 독일에서 저와 유사하게 영향력을 지녔거나 또는 영향력을 지닐 잠재력을 지닌 사람 수천 명, 또는 수십만 명도 저와 마찬가지로 저항할 채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었어요. 그리하여 이 세상이 상실되었던 겁니다.(p.225)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공격했을 때, 자기는 약간 불편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자기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구요. 그러다가 나치가 사회주의자를 공격했을 때, 자기는 약간 더 불편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자기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구요. 그러다가 나치가 학교와 언론과 유대인 등을 공격했을 때, 그는 번번이 더 불편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구요. 그러다가 나치가 교회를 공격하자 성직자였던 그는 결국 행동에 나섰다구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다음이었다구요.(p.239)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벌어진 전쟁은 결국 ‘전사들’의 나라, 즉 독일 영토까지 닥쳐오고 말았다. 헤르만 괴링은 1941년에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독일에 폭탄이 단 하나라도 떨어진다면, 내 이름은 헤르만 마이어가 될 것이다.” …… 1945년 5월 9일, 이제 더 이상 나치도, 비나치도, 나치 반대자도 없었다. 단지 실제 천년제국의, 돌 하나하나를 쌓아올려서 만드는 데에만 1,0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제국의 박살난 돌조각 밑에서 기어 나온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pp.404∼405) 

한 번도 노예인 적이 없었던 우리가 노예제라고 부르는 것조차도, 우리가 노예라고 부르는 상태에 항상 놓여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죽음보다도 덜 끔찍하게 여겨질 뿐이다. 그들은 공산주의와 그 이름과 결부된 모든 것을 증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것을 충분히, 그걸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들이 자유를 그만큼 좋아했더라면 그들은 일찌감치 히틀러를 반대하고 자유를 위해 죽었을 것이다.(p.440)


처 : 본문 중에서


5. 출판사 서평


위기의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방관자 혹은 동조자에 대한 보고서 
평범한 나치의 목소리를 통해 침묵하는 다수가 자초한 비극의 역사를 파헤친다 
1955년 출간 이후 60년 만에 한국어로 발간된 나치 시대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말을 걸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밀턴 마이어가 1년간 독일에 거주하면서 나치에 가담했던 열 명과 심층적 인터뷰를 통해 완성한 이 책은 나치와 히틀러의 잔혹상이 여전히 생생했던 1955년에 출간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나치 시대를 이해하는 필독서로서 꾸준히 읽히고 있다. 마이어는 예리한 분석과 통찰로 나치즘이 단순히 무기력한 수백만 명 위에 군림하는 악마적인 소수의 독재가 아니라 오히려 다수 대중의 동조와 협력의 산물이었음을 밝혀낸다. 보통사람들의 공범관계를 드러낸 이러한 문제의식은 훗날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하면서 제기한 ‘악의 평범성’ ‘무사고’에 깊게 맞닿아 있다. 밀턴 마이어는 다수의 침묵이 멀쩡했던 한 사회가 순식간에 광기의 사회로 돌변하는 데 어떻게 일조할 수 있는지 강력하게 경고하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우리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에게 왔을 때”로 시작하는 니묄러 목사의 시를 인용해 1960년대 미국의 사회운동가들에게 널리 퍼지게 한 것도 이 책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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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내용 

평범한 사람들의 안이함이 만들어낸 독재와 오욕의 역사 
열 명의 나치를 통해 침묵과 방조는 역사의 범죄임을 밝혀내다
 

이 책『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나치에 대한 기억이 생생했던 1955년에 출간되어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저자 밀턴 마이어는 패전국 독일을 찾아 열 명의 나치 가담자와 심층적인 인터뷰를 수행할 때,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게다가 서툰 독일어 실력은 그들에게 긴장감과 경계심을 푸는 데 오히려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인터뷰가 처음부터 수월하지는 않았는데, 열 명의 독일인은 차츰 마음의 빗장을 열면서 속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른바 ‘작은 자’로 자처하는 이들은 각자의 이력이며 신념을 설명하고, 과거에 대한 향수와 후회를 언급하며, 심지어 나치와 히틀러에 관한 나름의 평가를 내린다.

밀턴 마이어가 만난 이 열 명의 ‘작은 자’들은 대체로 선량하고 가정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저자의 글이 호소력을 갖는 것은 그들이 더 낫거나 더 못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인데, 이들은 한나 아렌트가 멀쩡한 아이히만을 통해 제기한 ‘악의 평범성’과 큰 맥락에서 통하는 사람들이다. 밀턴 마이어는 이 지점에서 더욱 깊게 나치 시대의 밑그림을 파헤친다. 

이 열 명의 전 나치 당원들은 각각의 이유로 나치에 가담한다. 누군가는 나치야말로 독일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고, 누군가는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는 자신이 나치가 됨으로써 곤경에 빠진 이를 도울 수 있다고, 누군가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신이 나치를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처럼 여러 이유로 나치에 가담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내린 비겁한 선택에 불과했으며, 서로 눈치만 보다가 결국 역사상 최악의 정권 밑에서 최악의 범죄를 묵인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쟁 범죄는 흔히 히틀러와 그 추종자인 소수의 전횡으로 간주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소개된 독일인들도 가해자로서 참회하기보다는 ‘또 다른 피해자’로 자처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하지만 독일 인구 7,000만 명 가운데 소수인 100만 명이 저지른 전횡의 배후에는 다수인 6,900만 명의 동의와 참여가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즉 대다수 독일인은 나치즘의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공범자라고 봐야 정확하다는 것이다. 대다수 독일인은 히틀러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나치 정권의 정책을 지지하여 권력을 안겼으며, 반유대주의와 반공주의에 근거한 선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비극의 원인을 제공했다. 

히틀러와 나치가 행복하게 해주었다고? 그들이 황금기라고 믿었던 시절 

마이어가 인터뷰한 몇몇 사람들은 히틀러 시절을 자기 인생의 황금기로 생각한다. 나치 시대에 누렸던 단기간의 풍족한 삶이며 복지 혜택을 그리워하면서, 비록 히틀러가 잘못을 했지만 잘한 부분도 있다고 두둔하기까지 한다. 저자가 빵집 주인 베데킨트에게 왜 나치를 신봉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나치가 “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렇게 했구요”라고 답한다. 실제로 마이어가 인터뷰한 열 명 중 아홉 명은 직장이 있었다. 아이들은 여름에 캠프에 가고, ‘히틀러 소년단’ 때문에 거리를 쏘다니지 않았기에 부모들은 걱정을 덜었고 집안일은 잘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무도 추위에 떨지 않았고, 아무도 굶주리지 않았으며, 아무도 아픈 상태로 방치되지 않았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나치라는 새로운 질서의 축복이 모두에게 도달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언론의 조작을 통해 모든 것이 그러하다고 믿었지만 사실 나치의 폭정은 철저히 은폐되어 있었고, 자신들이 평온하다고 생각하는 공동체의 외부로 나가지도 시선을 돌리지도 귀 기울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독일인의 태도가 비극을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히틀러 치하에서 독일은 발전을 이루었다는 주장도 단기적으로는 발전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이는 여러 독재 정권을 미화하는 주장에서 흔히 드러나는 오류이기도 하다. 

‘그들이 내게 왔을 때,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 대표적 국외자(局外者)는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였다. 밀턴 마이어가 만난 나치 친구들은 항상 공산주의 세력이 독일을 위협한다는 위기의식 속에 살았다. “공산주의보다는 독재들”이라는 주장 속에서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독일을 구하기 위해 나치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열 명의 남자들은 실제로 공산주의자를 만난 적이 없거나 혹 알고 지내는 공산주의자가 있다 해도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근거 없는 두려움은 나치가 결국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 그 두려움은 끊임없이 왜곡·조장되었다. 

또 유대인에 대한 편견도 상식을 넘어서는데, 독일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던 탈무드를 유대인의 비밀성경이라고 한다던가, 유대인은 한눈에 딱 알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 속에서 상식 이하의 반유대적 감정을 읽는다. 유대인인 저자가 보기엔 황당하고 기가 막히는 상황이다. 사실 독일의 유대인들에게 독일은 사랑하는 조국이었다. 상당수 유대인들은 독일사회에 동화되어갔고, 독일사회에 일정 정도 기여하기도 했다. 나치 시대에 “반유대주의라는 악마가 선잠에서 깨어”나면서 그동안 별탈 없이 잘지냈던 유대인 이웃들은 강제수용소로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갔다. 밀턴 마이어는 나치 친구들의 유대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는데, 실질적으로 이들 모두 반유대주의자였다고 지적한다. 패전 이후에도 그러한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는데, 심지어 그중 일부는 미국의 인종 갈등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반유대주의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나치는 ‘평온한’ 독일 공동체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를 지목했고, 이들부터 체제에서 제거되었다. 대다수 독일인들은 수용소로 끌려가는 이들을 지켜보기만 했는데, 점차 탄압의 범위가 넓어져갔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에게 왔을 때”로 시작하는 시는 그러한 시대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시는 원래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1892~1984)가 전후에 내놓은 발언에서 유래하는데, 밀턴 마이어가 이 책을 통해 인용함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니묄러 목사는 반나치 운동을 하다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끌려가기도 했지만,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는 않았다. 그의 발언은 저항에 미온적이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한 뼈저린 후회와 자괴감의 산물이었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내게 왔을 때,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마틴 니묄러 

밀턴 마이어는 이 지점에서 나치의 범죄에 대해 국가와 집단의 책임을 묻는 것만큼이나,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독일의 한 공학자가 한 말은 그 지점과 관련해 의미심장하다. “제가 만약 1935년에 선서를 거부했더다면, 그건 결국 독일 전역에서 저와 같은 사람 수천수만 명이 선서를 거부했다는 의미였을 겁니다. 이들의 거부는 결국 수백만 명의 마음을 움직였을거에요. 그랬다면 정권은 전복되었을지도 모르고, 최소한 애초에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이 공학자의 뼈 아픈 고백처럼, “이 모든 비극은 나치의 전횡에 내가 반대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독일인 모두가 시인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결국 독일의 비극은 겁에 질려 있거나 자신의 안위에 갇힌 대다수 독일인이 자초한 결과라는 것이다.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 
60년 만에 한국어로 발간된 나치 시대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말을 걸다
 

밀턴 마이어가 1950년대에 찾았던 독일은 분단상황과 재무장 문제 등 여러 혼란 상황에 직면했다. 저자는 양차대전의 주범이자 나치를 탄생시킨 독일에 대한 깊은 우려감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런 우려와 달리 독일은 경제 발전이며, 나치 청산과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여러 목표를 순탄하게 이루어냈다. 얼마 전 세계적 시장조사 기업인 GfK가 발표한 2014 국가브랜드지수(NBISM) 조사 결과에서 독일이 국가이미지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독일은 이제 세계로부터 부러움을 받는 나라로 발전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이 나왔던 당대에는 나치 청산이 미온적이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저자가 보기에 독일인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뭐가 문제인지도 가려내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 나치 전력자들은 과거를 뉘우치기는커녕, 자기들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오히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라며 반문할 뿐이다. 마이어는 전후에 나치의 죄상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많은 독일인이 이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 이유를 권위에 맹종하는 한편 주권자로서의 시민의식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찾기도 한다. 

밀턴 마이어는 열 명의 나치를 통해 인간은 불의에 맞서야 함을 항변한다. 이는 독일이라는 특정한 곳, 나치 집권기라는 특정한 시기, 열 명의 나치라는 특정한 인물들을 넘어 인간 전체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는 오욕의 역사에 대한 망각과 역사적 퇴행이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안이함은 또다시 비극을 불러온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의 과정에서 수없이 증명되곤 했다. 밀턴 마이어는 자신이 인터뷰한 평범한 독일인들은 그저 무난하게 살아가려는 바람 때문에 부패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에 파묻혀 연대의 미덕도 사태를 직시하려는 의지도 말살되어버렸다. 전후 독일의 나치 가담자들의 말과 생각을 통해 비극의 근원을 밝혀내고, 비극을 막기 위한 시민적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과거사를 돌아보게 된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과 독재의 유산은 여전히 한국사회 발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해 수월하게 갈 길도 어렵게 돌아가게 하고, 부지불식간에 역사적 퇴행을 불러오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 근거없는 종북몰이, 국가통합을 저해하는 일베류의 소동 등도 그런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밀턴 마이어가 전하는 메시지가 단순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제기되고 결코 망각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1955년에 출간된 이 책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얼마 전 프리츠라는 신인 걸그룹이 부산경마공원에서 열린 모 행사에서 검정색 드레스에 나치의 심볼마크와 유사한 모양의 완장을 찬 해프닝이 벌어졌다. 처음엔 이들의 의상이 큰 화제를 이끌어내지 못했으나 해외 유력언론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보도가 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를 보면 기분 나빠 하면서도, 정작 역지사지로 나치를 상징하는 스와스티카를 보면 아무 느낌이 없고, 오히려 이번 사건처럼 멋진 상징이라 생각해서 은근 따라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유대인과 유럽인 모두에게는 크나큰 트라우마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가 나치의 만행과 과거사를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외국에서도 일본의 만행이나 과거사를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문제겠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을 통해 나치의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찬사 

‘버젓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나치가 되었을까. 법을 준수하는 시민 열 명의 삶 이야기. “밀턴 마이어가 독일인에 관해 쓴 책은 비범한 선견지명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에 와서 더욱 시기적절하고, 유럽 내에서도 가장 말썽을 겪는 (또는 말썽꾸러기인) 이 나라를 이해하고자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필요불가결한 자료다.” 
― 존 피셔, 《하퍼스 매거진》 

“히틀러의 천년제국이 몰락한 이후, 독일에 관해 집필된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밀턴 마이어의 이 책이야말로 가장 읽기 좋고 가장 계몽적인 책 가운데 하나다.” 
― 한스 콘,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매력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깊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이것이야말로 독자를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단순히 독일인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독자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인 것이다.” 
― 어니스트 S. 피스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독일계 유대인 출신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의 미국 언론인 마이어 씨는 양심적인 공평함과 아낌없는 정직함을 목표로 삼았는데, 본 서평자의 생각으로는 이런 시도가 성공을 거둔 듯하다. 그의 책이 대단한 위력을 지닌 이유도 저자의 바로 이런 태도 때문이다.” 
― 월터 L. 돈, 《새터데이 리뷰》 

“다시 한 번 독일 문제가 우리 정치의 한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그 문제의 배후에 놓인 본성을 이 책보다 더 잘, 더 친절하게, 더 문학적으로 논의한 책은 또 없을 것이다.” 
― 어거스트 헥셔, 《뉴욕 헤럴드 트리뷴》


처 : 갈라파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