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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추천도서(24.3~25.2)/2024-09

9월의 추천도서 (4212) 내게 너무 낯선 나

 

1. 책소개

 

 

 

 

“나는 나 자신을 완벽히 이해하지만
나 자신에게조차 완벽한 타인이다”
우리 이론이 포착하지 못한 마음과 그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뉴요커》 전속 기자이자 의료윤리, 정신의학, 사법 및 교육 등을 주제로 다양한 글을 기고하고 있는 레이첼 아비브의 데뷔작.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화이팅어워드 논픽션 그랜트상을 수상했다. 거식증, 우울증에서부터 조현병, 경계선 인격 장애까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정신의학적 해석 방식의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현대 정신의학이 정신질환의 증상을 구분하는 방식과 평범한 공동체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 증상을 경험하는 방식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한 중년 남성이 경험한 만성적 외로움은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도, 가정불화로 압박감을 느끼는 소녀의 식사 거부는 ‘거식증’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그런데 외로움과 우울증, 식사 거부와 거식증이 과연 우리의 생각만큼 직선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개념일까?
『내게 너무 낯선 나』는 이처럼 인간의 고유한 경험과 의학적 진단 사이에서 납작해지다 못 해 ‘지워진’ 이야기들을 추적해 그 이야기들이 가능했던 본래의 모습들을 펼쳐 놓는다. 레이첼 아비브가 복원한 이야기들은 평범하디평범한 우리, 그리고 우리의 삶 속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출처:본문중에서

 

 

 

 

2. 저자

 

저자 : 레이첼 아비브 (Rachel Aviv)

 

미시간주에서 나고 자랐다. 2004년 브라운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3년부터 《뉴요커》의 전속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의료윤리, 정신의학, 사법 및 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와 관련해 글을 기고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정신의학적 설명의 한계에 부딪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게 너무 낯선 나』. 데뷔작인 이 책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뿐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 《뉴요커》 《커커스》 《북포럼》 《NPR》 등 유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비평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화이팅어워드 논픽션 그랜트상을 수상했다. 이 책이 낯선 사람으로 환영받기를 바라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문처럼 상상되길 희망한다.

 

출처:본문중에서

 

 

 

 

3. 목차

 

이 책을 향한 찬사

[프롤로그] 레이첼의 이야기: “나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제1장] 레이의 이야기: “과연 그것이 나인가? 내가 아닌가? 나는 대체 무엇인가?”
[제2장] 바푸의 이야기: “내게 닥친 고난은 나를 완전히 버리라는 신의 계시인가?”
[제3장] 나오미의 이야기: “내 말을 좀 들어 주세요.”
[제4장] 로라의 이야기: “의사는 내 마음을 읽었다. 나는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에필로그] 하바의 이야기: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완벽한 타인이다.”

감사의 말

 

출처:본문중에서

 

 

 

 

4. 책속으로

 

이렇듯 거식증을 가까스로 피했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정신질환의 초기 상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신질환의 초기 상태란, 뭔가 강렬하게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 같지만 아직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세상을 재구성할 정도까지는 가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흔히들 정신질환은 만성적이고 고치기 힘들며 삶을 송두리째 삼켜 버리는 힘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의 초기 상태에서 우리가 그 질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부분이 과연 그것의 진행 과정을 얼마나 많이 결정하게 될까?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이야기에 스스로를 가둬 버리기도 한다._41쪽

이 책은 그가 말한 ‘자기 완결적이고 닫혀 있는 진리의 체계’ 그 ‘바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삶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펼쳐지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인간 경험의 바깥 가장자리, 다시 말해 ‘정신의 오지psychic hinterlands’라고 불릴 만한 곳에서 펼쳐진다는 점이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이러한 소통 불가능성을 극복하려고 했던 환자들의 이야기와 그 세계를 번역하고자 한다._46쪽

“나는 어떻게 나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가? 이제 레이 오셔로프는 과연 누구인가?” 그는 정신과 약물을 30년간이나 복용해 왔지만 여전히 외로웠고 중심이 없는 것 같았다. 레이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내 모습과 내가 되어야 했던 모습 사이에는 고통스러울 만큼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는 ‘치료되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레이의 질환에 대한 두 가지 상이한 이야기인 정신분석학과 신경생리학은 모두 그를 치료하는 데 실패했다. 이제 레이는 새로운 이야기로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차 있었다. 그 이야기란 바로 자신의 회고록이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구성하거나 적절한 언어를 찾을 수 있다면 “마침내 치유의 땅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_99쪽

종교에 대한 몰입이 ‘정신질환’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로 강제로 대체되면서 바푸는 위축감을 느꼈다. 그녀에게 정신질환이라는 프레임은 모욕적이었다. 하지만 신비주의적 성향도 그녀에게 낙인을 찍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정신의학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을 주기도 하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 나는 신비주의나 정신질환으로 분류되기 ‘이전의’ 바푸의 고통이 어떠했는지가 더 궁금하다. 내가 거식증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 내 안에 존재했던 감정들이 무엇이었는지 질문하듯 말이다. 두 경우 모두 원래의 경험은 포착되기 힘들었고, 자신만의 언어로 이해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_127쪽

“우리가 아는 한 그런 걸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백인들뿐이었어요.” 플로리다의 이모들 중 하나는 복도에 서서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릇들을 끊임없이 닦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정신질환에 걸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른 친척들은 늘 분노에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해해요.” 플로리다는 말한다. “그런데 정신질환이라고? 그건 아니죠.” 그녀는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가족들은 기분이 축 처지면 그냥 낮잠을 잤어요. 낮잠이 치료제였죠.”_188쪽

로라는 자신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마치 네 잘못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어요. 너는 게으르지 않아. 너는 무책임한 게 아니야. 네 탓이 아니었어.” 병원을 떠나자 로라는 기분이 들떴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어요.” 로라는 말했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이미 내가 무슨 말을 할지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요. 나는 양극성 장애 2형이고, 그것도 어릴 때부터 계속 그랬던 거예요.” 로라는 아버지에게 울면서 전화했다. “아빠, 좋은 소식이 있어요. 의사 선생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어요.”_260쪽

레이와 바푸, 나오미와 로라는 모두 제각각 자신의 질병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다. 그들이 쓰려는 언어가 그들을 설명하기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그들은 깊은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들의 심리적 경험을 서술했다. 또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감각이 진짜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고 싶어 했다. 자신이 신과 결혼했다고 믿든, 인종차별주의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믿든 관계없이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권위자들에게 (바푸의 경우에는 영적 스승들에게, 나머지 경우에는 의사들에게) 알려 주려고 애썼다. 그들의 고통은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경험한 고통의 경로와 정체성은 모두 바뀌어 갔다._327쪽

 

출처:본문중에서

 

 

 

 

5. 출판사서평

 

★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비평 부문) 최종 후보작
★ 화이팅어워드 논픽션 그랜트 부문 수상작
★ 『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공감 연습』 레슬리 제이미슨 추천
★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 《워싱턴 포스트》 《뉴요커》 《커커스》 《북포럼》 《NPR》 올해의 책

| 왜 어떤 사람은 정신질환을 앓고도 회복되는 데 반해
어떤 사람은 이를 마치 자신의 ‘커리어’인 양
지니고 살아가는가?

외롭고 무관심하고 쓸쓸한 이 세계를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살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마흔한 살의 백인 남성 레이도 그러했다. 신장학 전문의이자 잘나가는 투석 회사의 CEO였던 그는 자신의 경영 과실로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우울과 강박에 사로잡힌다.
부모님이 이혼한 지 1년 정도가 지난 여섯 살짜리 소녀는 3일간 식음을 전폐한 끝에 의사로부터 식이 장애를 진단받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다름 아닌 저자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여섯 살의 레이첼은 음식과 몸에 대한 허무맹랑한 생각들을 키우며 거식증에 ‘채용’된 듯 보인다.
루스벨트가의 후손이자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수재, 그리고 사교계의 유명 인사 로라는 자신이 “낯선 사람의 삶에 갇혀 있었던 것”만 같았고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늘 전전긍긍했다. 양극성 장애(조울증)을 진단받은 데 이어 경계선 인격 장애를 추가로 진단받은 뒤로 로라는 14년간 19종의 약물을 복용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삶의 어느 순간에 정신질환에 채용된 인물들이다. 개중에는 정신질환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된 이가 있는가 하면, 이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또 자신의 불행을 설명해 줄 단 하나의 이론을 끝끝내 찾지 못한 사람도 있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다른 결말로 이끌었을까? 이에 대해 레이첼은 ‘정신의학적 모델’과 정신적 위기를 겪은 각 개인이 이 세계에서 자아를 이해하기 위해 찾아 헤맨 적절한 설명 방식, 다시 말해 그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 사이 간극에 주목할 필요가 있노라 말한다.

| 모든 아픔에는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의 병명이 아닌 내 마음이 경험하는 아픔에 관하여

정신질환은 인간의 두개골 안에서 발생하는 현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병리적 현상은 분명 개인의 내면으로부터 생겨나지만 또한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맺는 관계, 우리를 둘러싼 공동체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제 막 14개월이 된 쌍둥이 아들들과 함께 다리 밑으로 투신한 싱글 맘 나오미(결국 쌍둥이 아들 중 한 아이는 사망했다). 젊은 흑인 여성이자 정부의 지원을 받아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자라 온 환경의 또 다른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과 싸웠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면 알수록 깊은 무기력과 우울의 늪에 빠졌다. ‘내 아이들이라고 과연 다를까?’ 인종차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세계는, 수 세대에 걸쳐 자유나 평등 같은 사회질서에 배제당한 현실은, 나오미의 진짜 ‘역사’는 그 자체로 트라우마가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흑인은 미치지 않는다’라는 뿌리 깊은 믿음은 흑인 환자의 우울증을 제대로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것을 막았다. 나오미는 쌍둥이를 출산한 뒤 명백히 산후 정신병의 증세를 보여 주고 있었음에도 “상세 불명의 정신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2급 살인으로 기소된 나오미는 법정에서 당시 정신이상으로 인해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였음을 항변했지만, 담당 의사들은 그녀의 병리적 증상을 두고 “사회에 대한 예리한 관찰에서 비롯된 망상”이라 결론 내렸고, 그 결과 나오미는 14년을 수감된 채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흑인, 저소득층, 한부모 자녀이자 동시에 싱글 맘인 나오미. 조울증, 산후 우울증이라는 병명은 나오미를 둘러싼 위와 같은 복잡한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기엔 너무나 얄팍해 보인다. 환자의 마음 상태를 만든 사회구조를 파악하려 노력하고 이를 인정했다면, 그리하여 치료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나오미는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 “회복이 아닌 변신이 우리의 길이 된다”
불안정한 마음들의 입체적 연대기

최근 신경다양성에 대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대중화됨에 따라 관련 정보 및 실제 사례에 접근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물론 그 반대급부로 인간의 다양성 영역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증상과 아픔들이 ‘개성’이나 ‘정체성’의 문제로 이해되고 있는 상황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전에는 충분히 삶의 일부로 관리되어 온 문제들, 회복 가능한 가벼운 증상들이 정신질환으로 진단되고 있는 지금, 스스로를 환자라 의심하면서 환상에 가까운 정상성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약물을 처방받거나 상담 치료를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정상(성)이란 개념은 ‘정상으로부터 멀어진 자, 어떻게든 다시 이곳으로 복귀할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 책은 본디 복귀, 다시 말해 회복에 관한 책이 아니다. “우리를 뒤흔드는 동시에 실로 눈이 부신 보고문학”이라 극찬한 퓰리처상 파이널리스트 캐시 박 홍의 말처럼, 이 책이 그토록 특별한 이유는 회복이 아닌 변신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 나오는 하바는 청소년기와 성인기 내내 거식증에 시달리면서도 ‘회복’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저 어제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오늘은) 내가 있었던 곳 중 가장 좋은 장소에 있는 것 같아”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종교적 열정으로 인해 조현병 진단을 받은 바푸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가족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고 자신의 영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저자는 심리학자 팻 디건의 말을 빌려 이렇게 주장한다. 회복이란 ‘최종산물’이나 ‘완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외려 “자신의 한계를 뼛속 깊이 받아들이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우리 안의 어둠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받아들이되 그것이 다만 우리 존재의 총체성으로부터 나온 곁가지일 뿐임을 받아들이자고. 고통 그리고 이 고통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 말하든 그것이 우리를 옭아매지 못하게 하자고. 그리하여 그로부터 회복되는 게 아닌 ‘변신’하기 위한 길을 모색할 것을 이 책은 눈부시게 보여 주고 있다.

 

출처: 내게 너무 낯선 나출판사 타인의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