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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추천 도서(18.3~19.2)

8월의 추천도서(2009) 그 겨울 그리고 가을 - 유종호


1. 책 소개


17세 소년의 눈으로 그려낸 6ㆍ25 동란기의 역사와 삶의 풍경 

역사적 인식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자전적 에세이 『그 겨울 그리고 가을-나의 1951년』. 원숙한 지성과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변함없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 문단의 1세대 평론가 유종호의 회상 에세이 <그 겨울 그리고 가을-나의 1951년>이 출간되었다. 

<나의 해방 전후>에서 작가는 1940년부터 1949년까지 해방 전후의 한국사회를 저자의 유년기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하여 그려냈다. 이번 작품 <그 겨울 그리고 가을>에서는 6ㆍ25 동란기의 체험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이 작품은 월간 <현대문학>에 2008년 1월호부터 일 년 동안 연재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번 회상 에세이는 저자만의 개인적인 체험을 넘어, 이 시대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는 근접 과거에 대한 역사와 삶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큰 의미와 울림을 전해준다. 

처 : 교보문


2. 저자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와 뉴욕주립대(버팔로)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2006년 연세대 특임교수직에서 퇴임함으로서 교직생활을 마감했고 현재 예술원 회원이다. 1957년 이후 비평 활동을 해왔으며, 저서로 『유종호 전집』(전 5권) 이외에 『시란 무엇인가』『서정적 진실을 찾아서』『다시 읽는 한국시인』『나의 해방전후』 등이 있다. 『그물을 헤치고』『파리대왕』 등의 번역서가 있고, 2004년에 유일 시집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를 냈다. <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인촌상><만해학술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처 : 교보문


3. 목차


책 머리에 

1. 북풍한설 찬바람에 
2. 내가 받은 첫 새경 
3. 은하수 밀크초콜릿 
4. 4월의 올드 랭 사인 
5. 담요 한 장 짊어지고 
6. 부칠 곳 없는 편지 
7. 중앙선 간현역 부근 
8. 밥집의 공포 
9. 여름밤의 산술 
10. 마법의 손거울 
11. 가을 목숨 시름시림 
12. 세월이 간 뒤

처 : 본문 중에서


4. 책 속으로


너무 까마득해서 정확한 날짜는 헤아릴 길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당장 집을 떠나 피란을 가라는 공고가 났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고랑포에서 격전 중이라는 좀 때늦은 신문기사를 본 것이 바로 며칠 전이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야말로 엄동설한에 광목천의 배낭 하나를 달랑 메고 떠나자니 속이 시려왔다. 서둘러 점심을 대충 먹고 난 뒤였다. 고명이랍시고 밤콩을 넣은 백설기가 내 배낭 속엔 가뜩 들어 있었다. -「1. 북풍한설 찬바람에」 중에서 

많이 기억하는 쪽이 약자이며 강자는 결코 기억하지 않는다는 깨우침이 섬광처럼 머리를 스쳤다. 많은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많이 상처받았다는 것이고 많이 아팠다는 것이다. 삶의 강제가 안겨준 아픔의 흉터가 아니라면 기억이란 대체 무엇인가? 생존이란 본원적 치욕의 그때그때 상흔이 바로 기억이 아닌가? 기억은 상처 입은 자존심이고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내적 독백이다. 용서되지 않는 것이 주체이건 타자이건 우리를 번롱翻弄하는 우연과 필연의 거역할 길 없이 막강한 힘이건. 그러니 기억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 「4. 4월의 올드 랭 사인」 중에서 

바로 그때였다. 역사 쪽에서 미친개가 잰걸음으로 광장을 질러오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둘러보았으나 이렇다 하게 눈에 뜨이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는 분명히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다가온 그는 다짜고짜 나의 뒷덜미를 잡고 마구 흔들더니 내동댕이치듯 밀쳤다. 몸의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면서 미친개에게 물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가 무장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도 났다. 순간 돌멩이를 찾았다. 돌멩이는 눈에 뜨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세운 나에게 다가온 그는 다시 뒷덜미를 잡으려 했고 나는 몸을 숙이면서 피했다. 
-「6. 부칠 곳 없는 편지」 중에서 

옛날 목욕을 하고 팔매질을 했던 강가는 이제 유원지로 변했고 막사가 있던 언덕은 완전히 수풀로 변해 있었다. 강물과 터널이 아니라면 인지가 어려웠을 것이다. 머지않아 새 철길이 완공되면 동화와 간현역이 합쳐서 서원주西原州역이 될 것이라 한다. 한센병 환자를 숨기고 밥장수를 하던 농가의 흔적도 대중할 길이 바이없었다. 황량하던 옛 마을은 낚시터와 놀이터를 갖춘 무성한 녹색공간이 되어 있었고 웬 멍청하게 생긴 백발노인이 하나 철 아닌 이삭줍기라도 하는지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배회하고 있었다. 
-「12. 세월이 간 뒤」 중에서

처 : 본문 중에서


5. 출판사 서평


성장소설을 뛰어넘는 깊은 감동과 울림! 
2004년 출간된 『나의 해방전후』가 1941년부터 전쟁 발발 한 해 전인 1949년 무렵의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면, 이번 에세이는 1951년 당시 17세였던 저자의 6ㆍ25 동란기 체험을 담고 있다. 
엄동설한에 광목천 배낭 하나 둘러멘 채 떠나야 했던 피란기의 경험을 시작으로 미군부대 노동사무소에서 제니터(문지기)와 서기로 일한 뒤 다시 학교로 복귀하기까지. 저자는 암울하고 힘겨웠던 시대의 풍경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끄집어내며, 전쟁기의 삶과 역사를 17세 소년의 눈으로 재현해낸다. 특히 이번 에세이는 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닌, 피란길 이후에 저자가 겪어야 했던 한 시절을 상세한 묘사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한 편의 장편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와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내일의 삶을 기약할 수 없는 공포, 그리고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성장해가는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신념과 의지로 살아낸 한 시대의 역사 이야기 
불과 50여 년 전의 우리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6ㆍ25 동란기의 역사와 삶은 마치 먼 과거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로만 들리게 마련이다. 저자가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우리 역사가 안고 있는 아픔의 한 시대를 되새겨봄으로써 그 역사가 다시금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무엇보다도 어두웠던 시대의 진상을 왜곡됨 없이 있는 그대로 복원해내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수통스럽기까지 했던 가족과 개인사, 나아가 당시 세대들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아픔의 추억을 저자는 상세한 세목까지 조심스럽게 들춰낸다. 자의와는 무관하게 주어진 험난한 역사의 급류 속에서 꿋꿋한 신념과 희망에 대한 의지로 살아내야만 했던 시대. 힘겹게 살아낸 하루하루는 추억이 되고, 그 추억들은 모여 역사가 된다. 지금은 백발의 노인이 된 시대 최고 석학의 회상 에세이는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삶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


처 : 현대문학